사조의 법을 이었다. 휘(諱)는 법융(法融)이요, 윤주(潤州)의 연능 사람이며 성은 문씨였다. 사조께서 쌍봉산에 계실 적에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여기에 오기 전 무덕 칠년 가을에 여산(廬山) 꼭대기에서 동쪽으로 기주의 쌍봉산을 바라보니 봉우리에 자주빛 구름이 일산 같이 서리었고 그 밑에는 흰 기운이 여섯 가닥이 가로퍼져 있었다.” 이때 사조가 오조(五組)에게 물었다. “그대는 저 상서(尙書)를 알겠는가?” 오조(五組)가 대답했다. “스님 밑에서 곁으로 다시 한 가닥이 퍼질 징조가 아니겠습니까?” “그대는 내 뜻을 잘 알았다. 잘 있으라. 나는 강동으로 가리라.” 그리고는 바로 떠나 우두산(牛頭山) 유서사(幽捿寺)에 이르니 중이 수 백 명 앉았는데 아무도 도기(道機)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곁을 지나는 중에게 물었다. “대중이 모두 몇이나 되는가? 그리고 그 가운데는 도인이 있는가?” 중이 대답했다. “스님은 사람을 너무나 얕보시는군요. 출가한 사람으로서 누가 도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누가 도인인가?” 중이 대답이 없더니, 이어 말했다. “산 꼭대기에 나융(나融)이라는 이가 있어 몸에는 베옷 한 벌만 걸쳤으며, 중을 보아도 합장도 할 줄 모르니, 그가 이상한 사람입니다. 선사께서 가 보십시오.” 사조께서 암자 앞으로 가서 오락가락하면서 말했다. “선남자(善男子)야, 심심삼매(甚深三昧)에만 들어있지 말라.” 이에 나융(나融)이 눈을 뜨니 사조가 물었다. “그대의 배움은 구함이 있어서인가? 구함이 없어서인가?” 나융(나融)이 대답했다. “나는 법화경에서 「열고 보이고 깨닫고 들게 한다」고 한 말에 의해 도를 닦습니다. “연다 함은 누구를 열며, 깨닫는다 함은 무엇을 깨닫는다는 말인가” 나융(나融)이 대답이 없으니, 사조께서 말씀하셨다. “서천(西天)에서는 二十八 조사가 마음의 인장을 전하셨고, 그리고 달마(達磨)대사는 이 땅에 오셔서 서로 전하여 사조에 이르렀는데 그대는 모르는가?” 나융(나融)이 이 말을 듣자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저는 항상 쌍봉산을 바라보고 정례하면서 한 번 가서 뵙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조를 알고자 하거든 바로 내가 사조니라.” 이에 벌떡 일어나 발에 머리를 문지르며 절하고 말했다. “스님께서 무슨 인연으로 여기까지 왕림하셨습니까?” “우정 왔노라.”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여기 말고 딴 주거처가 있는가?” 나융(나融)이 손으로 뒤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다시 다른 암자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조사를 인도해서 암자 앞으로 가니, 범과 이리가 앞 뒤로 둘러 있고, 사슴 떼가 사방에 뛰고 있었다. 사조께서 두 손으로 두려운 시늉을 하면서 「무서워라」했더니 나융이 말했다. “스님에겐 아직 그런 것이 남아 있습니까?” 조사께서 물으셨다. “지금 무엇을 보았는가?” 나융이 이 말씀에 의해 현묘한 이치를 깨달았으나 대답은 없었다. 조사께서 이에 다음과 같은 설법을 해주셨다. “대저 백 천 가지 묘한 법문은 모두가 마음으로 돌아가고, 항하의 모해 같이 수 많은 묘한 공덕은 모두가 마음자리에 있다. 온갖 지혜가 모두 본래부터 구족하고 신통과 묘한 작용이 모두 그대의 마음에 있다. 번뇌와 업장이 본래부터 비었고 온갖 과보가 본래부터 갖추어 있다. 삼계에서 벗어날 것도 없고 보리를 구할 것도 없다.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이 성품이지만 형상은 평등하다. 대도(大道)는 비고 넓어서 생각과 분별이 끊였나니, 이러한 법을 그대가 이제 이미 얻었다. 조금도 모자람이 없어, 부처와 다름이 없고, 다시 성불할 법도 없다. 그대는 다만 마음에 맡겨 두라. 관도 짓지 말고, 마음을 모으지도 말고, 탐, 진, 치를 일으키지도 말고, 근심을 품지도 말라. 땅땅하여 걸림이 없고 뜻에 맡겨 자재하니, 선을 지으려 하지도 말고 악을 지으려 하지도 말라. 다니고 섰고, 앉고, 누울 때와 눈에 띄고 만나는 인연이 모두가 부처의 묘한 작용이어서 쾌락 하여 근심이 없기 때문이며 부처라 하느니라.” 나융(나融)이 물었다. “마음에 이미 모두가 구족하다면 어떤 것이 마음이며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사조께서 대답하셨다. “마음이 아니면 마음을 묻지 못할 것이요, 마음을 물으면 마음이 아닌 것이 아니니라.” “이미 관행을 허락지 않으셨으니, 경계가 일어날 때엔 어떻게 대치하리까?” “경계와 반영에는 좋고 추함이 없지만 좋고 추함이 마음에서 일어난다. 마음에 구태여 이름 짓지 않으면 망정이 어디서 일어나랴? 망심이 이미 일어나지 않으면 참 마음이 마음껏 두루 알아서 마음을 따라 자유자재할 것이요, 다시는 처음도 끝도 없으므로 상주법신(常住法身)이 아무런 변역도 없다 이르니라. 내가 나의 스승 승찬(僧璨) 화상에게서 이 돈오법문(頓悟法問)을 받았는데 이제 그대에게 전하노니, 그대는 잘 받아 지니어서 나의 도를 번성케 하라, 이 산에 살기만 하면 뒷날엔 다섯 사람이 그대의 뒤를 이어 끊이지 않게 되리니, 잘 간직하라. 나는 떠나리라.” 이 말씀에 선사(나융)께서는 옥의 티 같은 번뇌가 몽땅 없어지고 모든 상이 영원히 없어지니 이로부터는 신령스런 귀신이 공양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이 것으로써 살피건대 여래의 비밀한 뜻이 어찌 닦아 증득함으로써 능히 이를 수 있으며, 조사의 맏 아들과 현묘한 문에 어찌 고요함만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말이 없어져야 이치에 계합하거늘 현요(玄要)를 돌아보기에 하늘과 땅의 차이가 생겼고, 고요한 생각은 근원에 돌아갔거늘 선추(禪樞)를 바라보기에 초월(楚越)이 막히는 줄 알겠다.
나융이 다시 여쭈었다. “대저 성인은 어떤 법을 끊으며, 어떤 법을 얻었기에 성인이라 불리웁니까?” 조사께서 대답하셨다. “한 법도 끊지 않고 한 법도 얻지 않나니, 이것을 성인이라 하느니라.” “끊지도 않고 한 법도 얻지도 않으면 범부와 무엇이 다릅니까?” “다름이 있느니라. 왜냐하면 온갖 범부는 모두가 끊어야 할 허망한계교가 있다고 여기고 얻어야 할 참마음이 있다고 여기거니와 성인은 본래 끊을 바가 없고, 또 얻을 바가 없기 때문에 다르니라.” “어째서 범부는 얻을 바가 있다 하고 성인은 얻을 바가 없다 하십니까? 얻음과 얻지 못함이 어떠한 차별이 있습니까?” “차이가 있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범부는 얻을 바가 있으니 허망함이 있고, 성인은 얻을 바가 없으니 허망함이 없다. 허망함이 있으면 다름이 있고, 허망함이 없으면 다름이 없으면 다름이 없느니라.” “다름이 없다면 성인이란 이름이 어찌하여 생겼습니까?” “범부나 성인이나 둘이 모두가 거짓 이름이다. 거짓 이름의 중간에 둘이 없는 것이 곧 다름이 없는 것이니라. 마치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이라 하는 것과 같으니라.” “성인이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 같다면 곧 없는 것이리니, 사람들로 하여금 배우게 하겠습니까?” “내가 거북의 털이라 한 것은 거북까지 없다고 한 것은 아닌데 그대는 어째서 이런 질문을 하는가?” “그렇다면 거북은 무엇에 견주고, 털은 무엇에 견주었습니까?” “거북은 도에 견주고 털은 나에 견주었느니라. 그러므로 성인은 나가 없고 도만 있으며, 범부는 도는 없고 나만 있다. 나에 집착하는 자는 마치 거북의 털이 나 토끼의 뿔과 같으니라.”
다음은 이어 지엄(智嚴)에게 법을 전하시니, 현경원년이었다. 사공인 소무선(蕭無善)이 건초사로 나오시기를 청했는데 조사께서 사양타 못하여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떠나면 다시는 이 땅을 밟지 못할 것이니라.” 이미 산문 밖을 나서니, 짐승들이 슬피 울며 달이 지나도록 멈추지 않고 산골의 못, 개울, 우물에는 자갈과 모래가 속아 일시에 메꿔졌고 뜰앞에 오동 네 포기가 오월에 번성하더니 하루 아침에 모두 말랐다. 조사께서 현경 이년 정사 윤 정월 二十 三일에 건초사에서 입적하시니, 춘추(春秋)는 六十 四세요 법랍은 四十 一세였다. 二十 七일에 장례를 지내니, 탑은 금릉 뒷 호수의 계룡산(溪龍山)에 있으니, 곧 기사산이다. 이로부터 우두종의 여섯 가지가 생기니, 제일은 융 선사요, 제이는 지엄(智嚴)이요, 제삼은 혜방이요, 제사는 법지(法志)요, 제오는 지위요, 제육은 혜충(惠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