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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독서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
<역대기 하권의 말씀 24,18-22>
그 무렵 요아스 임금과 유다의 대신들은
18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19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임금의 명령에 따라 주님의 집 뜰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
22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
즈카르야는 죽으면서,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 제2독서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 5,1-5>
형제 여러분,
1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2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4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5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 복음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묵상글
<편안으로 평안을 잃을 것인가?>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를 거행합니다.
만약 천국이 없다면 김대건 신부님의 일생은 그냥 고통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릴 적 마카오로 가며 수 없는 육체적 고생을 했고 공부하면서 정신적으로 더욱 그러했으며, 부모와 가족의 순교로 마음고생도 이에 못지않았습니다.
사제로 서품되어 조금은 편안하게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했겠지만, 순교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가 다 아는 바대로 김대건 신부님은 높은 벼슬과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 주겠다는 회유를 뿌리치고 순교의 길을 택합니다.
한순간도 편안해 본 적이 없는 삶이었지만 마지막까지 편안함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은 힘들기만 하셨을까요?
마지막에 조금도 편안하기를 원치 않으셨다면 사실 그동안 충분히 행복했던 것은 아닐까요?
하루의 마지막도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안했을 때 잠이 잘 오는 것이 아닐까요?
종일 쉬고 놀고 방탕하게 살았다면 오히려 불안해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편한 일과 힘든 일, 두 개가 앞에 놓여 있다면 항상 좁고 험하고 힘든 일을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사실 편할 때 더 고통스럽습니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행복해하십니다.
그 이유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편안할 수 없습니다.
상대를 위해 피를 흘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박해받는 시기에 더 신앙이 강해집니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신앙생활 하는 지금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먼 나라 이야기를 넘어서서 ‘왜 그 고생하며 신앙생활을 한 거야?’라며 의아해합니다.
고통의 의미를 잃어버린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일랜드도 가톨릭 국가로서 영국의 심한 박해를 450여 년 받으면서도 신앙을 잘 지켰지만, 소득이 높아지며 편안해진 지금은 다른 유럽 국가와 별반 차이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낙태법도 허용되었고 젊은이들은 성당을 떠났습니다.
삶도 신앙도 편안해지려고 하면 죽습니다.
‘쓰레기로 2층까지 꽉 찬 트레시 홈’이라는 유튜브 동영상이 있습니다.
주택가 한가운데 이층집 천장까지 쓰레기로 꽉 찬 이 모습은 실제로 보지 않으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집주인은 왜 쓰레기를 모으는 것일까요?
모두 다 필요하다 생각하니 모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모든 이상한 행위 뒤에는 항상 ‘죄책감’이란 것이 있습니다.
집주인의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여 아들이 원하는 것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쓰레기를 치울 때 아들은 필요한 것들인데 왜 치우느냐고 짜증 섞인 말까지 합니다.
아버지의 잘못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들을 고생시키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고생하면서 성장하게 창조되었습니다.
때가 되었으면 밖으로 떠밀고 혼자 힘으로 고생하며 살아가도록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부모가 해야 할 자녀에 대한 의무일 것입니다.
세상에 왜 이런 고통이 있느냐고 말하지만, 고통 없이는 어떠한 성장도 있을 수 없습니다.
‘양팔은 잃었지만 삶은 잃지 않았다’라는 유튜브 동영상이 있습니다.
전기 감전 사고로 양팔을 잃은 분이 계십니다.
자신이 만든 의수로 자신이 만든 자전거에 폐지를 싣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하루를 열심히 일해도 버는 돈은 5천 원 이하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표정은 매우 밝습니다.
집에만 있으라는 말을 뒤로하고 뭐라도 하고 있다는 보람 때문입니다.
그분을 보며 주위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합니다.
이분은 말합니다.
“난 팔을 잃었지 의지까지 잃은 것은 아닙니다.”
따님도 이런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같이 다닙니다.
덧글로 달린 몇 개의 글을 살펴보겠습니다.
“두 팔 두 손 멀쩡하여 지금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는 이 두 팔 두 손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힘들다고 엄살떨고 있는 나를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존경합니다.”
(Eugene Johns)
“땀 흘려 번 돈 4800원에 저렇게 환히 웃을 수도 있는 모습이 새삼 날 부끄럽게 한다.”
(미또)
“아저씨는 대기업의 CEO보다, 빌 게이츠보다 이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한 어떤 사람보다 위대한 사람입니다.
죄송하고요 감사합니다.”
(한휴머)
이분이 인터뷰하실 때 뒤에 성모상이 보였는데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이런 분이 현시대의 김대건 신부님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우주선에서 오랜 시간 있으면 건강이 좋을까요?
그곳은 기압이 낮아서 몸을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육이 약해지고 골밀도도 약해져서 우주에서 너무 오래 머물면 몸이 망가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힘들지만, 땅을 딛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근육도 생기고 뼈도 튼튼해집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싸우지 않으면 약해집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제일 힘드셨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편안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편안함과 싸워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강하게 되시었습니다.
편안함에 물들지 맙시다.
마치 개구리가 들어있는 물을 조금씩 가열하면 개구리는 뜨거워지는지도 모르고 죽는 것처럼 편안함은 우리를 알지도 못하게 죽입니다.
자꾸 몸을 불편하게 해야 하고 운동해야 합니다.
신앙도 고난 속에서 더 성장합니다.
하늘에서는 이 세상에서 성장시킨 신앙만큼 상을 받게 됩니다.
김대건 신부님이나 다른 순교자들을 안됐다고 보지 말고 부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6개월간의 긴 여정 끝에 마카오에 도착해서 세 명의 조선 신학생이 놀랐던 것은 건물이나 전례의 완벽함이 아니었습니다.
‘자유’롭게 미사에 참례할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만약 지금 교회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면, 우리 사회 분위기가 편안함을 선택하여 죽어가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 수원교구 영성관장, 수원가톨릭대 교수
♠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의 묵상글
<“교우들 보아라.”>
1784년 최초의 영세자를 탄생시킨 한국천주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1794년 12월 23일 비로소 한국 땅에 처음으로 주문모 신부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후 1835년 조선에 입국한 모방 신부님은 방인 성직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1836년 최양업, 최방제, 김대건 세 소년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최방제는 그곳에서 병사하였고 김대건과 최양업은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은 서양학문을 정식으로 익힌 첫 조선인으로서 최고의 지성인답게 당시 조선 왕국의 국가 정세와 교회 사정 및 민생상태에 관하여 예리하게 관찰하였습니다.
두 분은 보고 듣고 체험한 내용을 유창한 라틴어로 써서 스승 신부님들께 보고하였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5년 8월 17일에 상해 근교의 김가항에서 사제 서품을 받으셨습니다.
이때는 서품식이 요즘처럼 성대하지 않았습니다.
쪽배를 타고 그곳까지 간 11명만이 참석한 조촐한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한국천주교 사상 가장 뜻깊은 날입니다.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사제품에 오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날이 진정 빛나는 이유는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될 만큼 명실공히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사제였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탄생 200주년을 맞은 신부님의 마음을 헤아렸으면 좋겠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서품을 받으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15세에 영세 입교하시고 신학생으로 뽑혀 멀리 산 설고 물 설은 마카오로 떠난 그날부터 겪은 고초를 생각하며 감개무량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겠습니까?
우리는 상상할 뿐이지 말로써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서품을 받으면서 그날 모든 감사를 하느님께 드리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신부님이 사제가 되어 고향에 돌아가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금의환향이요. 개선장군같은 환영입니까?
아닙니다.
박해의 칼, 체포와 죽음뿐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사제가 된다는 것은 어려움도 있지만 교회 내에서는 영광스럽고 소중한 품위에 오르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 신분에 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께서 사제가 되었을 때는 사회적으로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목숨을 바치는 순교정신, 곧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없이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안겨다 주는 일이었습니다.
명실공히 십자가를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신부님은 그것을 잘 아시면서도 바로 그 믿음과 순교정신으로 사제품을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목숨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한국 신자공동체가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한국땅의 복음화와 구원이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당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쳐도 좋다고 생각하신 분입니다.
신부님은 자신을 위해 사제가 되신 분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사제가 되신 분이 아닙니다.
동포를 위해, 조국을 위해 세상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잘 살기 위해서 사제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해 1845년 10월에 배를 타고 조선의 충청도 해안에 상륙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846년 5월12일 순위도에서 잡혀 9월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처럼 양들을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바치셨습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가운데 수품을 받고 조선에 입국하였지만 아깝게도 겨우 13개월 동안만 사제로 살았습니다.
그나마 2개월은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황해 바다 위에서 보냈고 또 4개월은 감옥에서 지내다가 순교하셨으니 사목활동은 거의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한국 땅에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1784년, 지금부터 약 237년 전입니다.
당시 사회는 유교 사회였고 양반과 상놈이 구별되는 철저한 계급사회였습니다.
그리고 조상 제사에 대한 관습과 예절이 철저했던 시절입니다.
이때 천주교회의 기본 교리는 신분 계급과 조상제사라는 두 부분에 큰 충돌을 가져왔습니다.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양반 상놈 구분을 거부하며 우상 숭배의 제사를 거부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큰 죄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03년 동안(신유1801, 기해1839, 병오1846, 병인1866) 산발적인 박해 속에 살아야 했고 그 와중에 한국인 첫 사제가 나왔지만 13개월 만에 목자를 잃고 만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생각은 분명 다릅니다.
지나고 보니 신부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신앙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출생하신 솔뫼, 순교하신 새남터, 묻히신 미리내는 오늘도 우리에게 신앙의 표징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신부님께서는 더 많은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몫을 여전히 하고 계십니다.
신부님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하느님을 위하여 죽으니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할 것입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상에 대한 희망이 신부님을 지켜주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46년까지 21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중 한문과 한글로 쓴 편지가 각각 한 통씩이고 그 외에는 모두 라틴어로 썼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60년까지 19통의 편지를 전부 라틴어로 썼습니다.
그런데 김대건 신부님의 편지는 대부분 사제 서품 전에 쓴 것입니다.
반면 최양업 신부님의 편지는 사제 서품 후에 쓴 것입니다.
오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편지를 한 통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 그분의 믿음과 하느님과 그 백성을 위한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였는지 묵상하고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스물한 번째 편지는 옥중에서 쓴 것입니다.
옥중에서 쓰신 마지막 회유문(1846년 8월말)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하느님)를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데없고, 비록 주님의 은총으로 세상에 나고 주님의 은총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을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의 은혜를 배반하니 주님의 은혜만 입고 주님께 죄를 더하면 아니 남만 못하리.
이러한 어려운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 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걷기까지 기다리라.
혹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하여라….
이런 군난 때는 주의 시험을 받아 세속과 마귀를 쳐 공덕을 크게 세울 때니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지나간 성인성녀의 자취를 가르쳐 성교회의 영광을 더하고 천주의 착실한 군사와 의자(의로운 아들)됨을 증거하고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다) 하실 때를 기다리라.”
“이런 큰 어려움도 역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니 너희가 감수 인내하여 주님을 위하고 오직 주님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하느님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
이렇게 큰 사랑과 믿음을 지키라는 간곡한 호소를 담았습니다.
혹 우리에게도 힘에 겨운 일이 생긴다면 더 큰 믿음으로 주님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농부가 수확을 기다리며 온갖 수고와 땀을 아끼지 않듯이 우리도 참고 견디며 천상 것에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 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삶의 여정을 보면, 열심히 산다고 하는데 어려운 일이 생기기도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실망과 좌절이 올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고 그 안에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따라서 다가오는 예기치 않은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주님의 안배와 섭리를 찾기 위해 기도하고 간구할 때 새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삶은 하느님의 뜻과 세상의 일이 서로를 거스를 때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련 속에서, 억울함 안에서, 생각하지 못한 난관 앞에서 끝까지 견디며 하느님을 먼저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더 좋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만하면 됐지’,‘나도 사람인데’‘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이것이 유혹입니다.
사실 천상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견디는” 인내가 행복입니다.
언젠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흘리는 수고의 땀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도 눈물과 피로써 십자가를 짊어지고 세 번씩이나 넘어지면서 걸어가셨는데, 우리가 아무런 수고 없이 공짜로 천국을 얻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인내에 인내를 더할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기뻐하는 날 되시기 바랍니다.
- 청주교구 청주성모병원 원장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의 묵상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김대건 신부님은 1821년 충남 당진의 솔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술라 사이에서 3남매 중 맏아들이셨습니다.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는 오늘 복음 말씀에서처럼 사위의 밀고로 체포되어, 아들을 국경을 넘겨 보낸 국사범으로서 온갖 잔악한 형벌을 받은 후에 서소문 밖에서 목 잘려 순교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열다섯 살 때, 곧 1836년에 고국을 떠나 중국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하셨습니다.
그 후에 여러 차례 입국하고자 시도했다가 실패했으며, 마침내 1845년 1월에 온갖 고생을 겪고 압록강을 건너 입국하셨습니다.
그러나 전교 신부님을 모셔오기 위해, 몸이 불편한 중에도 온갖 고초를 겪으며 다시 상해로 가셔야만 했고, 1845년 8월 17일에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밤낮으로 열심히 사목하던 중 체포되셨습니다.
그는 모진 문초를 받으면서도, 옥중에서 신자들에게 믿음을 잃지 말고 하느님을 섬기며 고통을 참으라는 편지로 격려를 하셨습니다.
1846년 9월 16일, 사제품을 받은 지 1년 1개월 만에 스물다섯 살의 젊은 나이로 참수의 거룩한 순교의 빨마를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1949년에 한국 모든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선정되셨고, 1984년 5월 6일에 성인으로 시성되셨습니다.
성인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예수님 때문에” 모진 핍박과 수난 속에서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하셨습니다.
참으로 살 때나 죽을 때나 오로지 “예수님 때문에”만 살고, “예수님 때문에”만 죽으셨습니다.
마치 사도 바오로의 고백에서처럼, 살아있을 이유도 핍박을 받고 죽을 이유도, 오직 “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성인의 “옥중편지”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는 고문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관장께서 내가 천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형벌을 당하게 해주시니 관장께 감사합니다.”
이처럼 성인께서는 참으로 “예수님 때문에” 고문을 받으셨고, “예수님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성인께서는 바로 이러한 사랑으로, 오로지 예수님께 희망을 거셨습니다.
그렇기에 핍박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감사까지 드리셨습니다.
참으로 성인께서는 제2독서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시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하셨다.’ (로마 5,2-3).
예수님께서도 바로 이렇게 십자가에서 아버지를 증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증거는 단지 십자가에서만 있었던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공생활을 통한 일상적인 삶 전부였습니다.
바로 그러한 일상적인 증거의 삶이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삶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증거”, 곧 우리의 “순교” 역시 우리의 삶의 현장과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연속되는 죽음 속에 자리 잡아야 할 일입니다.
곧 일상의 삶 안에서 나 자신의 뜻에는 스스로 죽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순명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 희망을 걸고서, 매순간을 “순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도 사도 바오로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죽음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결국 드러나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죽을 몸에 예수님의 생명이 살아있음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2고린 4,10-11)
- 오늘 말씀에서 샘솟은 기도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마태 10,22)
주님!
고난과 시련이 당신을 증언할 기회가 되게 하소서.
그 속에서 당신의 능력과 현존을 체험하게 하소서.
오히려 굳세어지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 기회의 순간이 되게 하소서.
미움 받고 거부당할 때에도, 박해 받고 배신당할 때에도 당신과 함께 받게 하시고 당신의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아멘.
-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토 수도회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묵상글
<순교영성의 시대 - 신망애(信望愛) 향주삼덕>
오늘 우리는 한국순교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를 봉헌합니다.
성인을 생각할 때마다 늘 함께 살아 계신 듯 신선한 감동을 느낍니다.
25세 꽃다운 짧은 인생을 사셨지만 보통 사람의 몇 배를 참으로 충만한 삶을 사신 순교 성인입니다.
성인보다 거의 3배를 살아가고 있는 저를 더욱 분발케 하는 순교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입니다.
새삼 삶은 얼마나가 아닌 어떻게 살았는가, 즉 삶의 양이 아닌 삶의 질에 대해 묻게 됩니다.
성일 축일 때마다 불렀던 아름답고 비장(悲壯)한 성가 287장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노래(최민순 작사, 이문근 작곡)’도 생각납니다.
“서라벌 옛터전에 연꽃이 이울어라,
선비네 흰 옷자락 어둠에 짙어갈제
진리의 찬란한 빛 그몸에 담뿍안고,
한떨기 무궁화로 피어난 님이여.
동지사 오가던 길 삼천리 트였건만,
복음의 사도 앞에 닫혀있던 조국의 문
겨레의 잠 깨우려 애타신 그의 넋이,
이역의 별빛 아래 외로이 슬펐어라.”
4절 중 2절까지만 인용했지만 전부가 구구절절 감동입니다.
올해는 한국천주교회에 참 각별한 날입니다.
바로 성인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로 한국천주교회는 2020년 11월 29일-2021년 11월 27일까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을 지내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친필 메시지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사랑하는 한국의 국민에게 진심어린 인사를 보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해 주시고, 성모님께서 여러분을 지켜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저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20년 10월 23일
프란치스코”
마침 7월 2일자 한겨레 22쪽 ‘교황이라는 제왕적 칭호’라는 강우일 칼럼 중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관한 감동적인 내용 일부를 인용합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종은 서울 도착 후 한국주교회의 본부를 방문하고 주교단 전체와 만났다.
방문 기념 서명을 부탁하려고 가로세로 40cn 정도의 두꺼운 서명판을 준비하여 드렸다.
교종께 서명판을 돌려받았는데 서명이 안보였다.
제대로 의사 전달이 안 되었나 싶어 서명을 해주시라고 다시 부탁드렸다.
교종은 잘 보라고 했다.
서명판을 다시 살펴보니 아래쪽에 깨알같이 “프란치스코”라고 쓰여 있었다.
놀라서 다른 주교들에게 그 서명판을 보이자 모두 “와!-”하고 감동과 경탄의 환호가 터졌다.
그래서 나는 프란치스코 교종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런 분에게 여전히 교황이라는 제왕적 칭호를 습관적으로 붙이는 것은 역사를 올바로 성찰하지 않고 프란치스코 그분의 인품과 삶의 행적을 무시하고 욕되게 하는 것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자는 물론 모든 성인들은 우리의 영원한 회개의 표지, 희망의 표지, 구원의 표지, 우리 삶의 좌표가 됩니다.
바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답을 줍니다.
늘 강조하지만 기념, 기억할 뿐 아니라 우리 또한 성인이 되어 순교영성을 살라고 있는 순교성인 축일입니다.
사실 믿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순교영성의 시대입니다.
어떻게 순교영성을 살아야 합니까?
첫째, 믿음의 삶입니다.
양상과 정도의 차이일 뿐 계속되는 ‘주님의 전사’로서의 영적전쟁의 삶입니다.
주님의 전사는 바로 믿음의 전사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제대가 없는 영원한 현역의 믿음의 전사들인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이 강조하는 바도 믿음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습니다.
어떤 박해의 힘든 상황중에도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우리에게 일러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말하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십니다.
이어 주님은 참으로 어떤 역경 중에도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견뎌내는, 버텨내는 인내의 믿음입니다.
끝까지 참는 자가 이깁니다.
궁극의 승리는 끝까지 인내하는 믿음의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둘째 희망의 삶입니다.
희망이 있어 인내의 믿음입니다.
희망의 전사로 사는 것입니다.
희망이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세상의 보이는 희망이 아닙니다.
주님이 바로 우리의 영원한 꿈이자 비전이자 희망의 별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입니다.
이런 희망이 샘솟는 내적 힘의 원천입니다.
희망이야말로 영혼의 명약입니다.
잘 먹고 운동 잘 해서 건강이 아니라 희망이 생생해야 온전한 건강입니다.
온갖 시련 중에도 희망의 빛이 우리를 인도합니다.
다음 바오로 사도의 말씀도 무한한 위로와 힘이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셋째 사랑의 삶입니다.
사랑의 전사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끊임없이 부어집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바로 하느님은 우리 사랑의 샘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수맥(水脈)’에서 샘솟는 우리의 사랑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이런 하느님 주신 사랑이 있어 한결같은 지칠 줄 모르는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역대기 하권의 요아스 임금과 유대의 대신들을 이런 사랑을 잃어 하느님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이들은 예언자들의 증언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급기야 즈카르야 예언자까지 살해합니다.
즈카르야가 두려움 없이 이들을 질책할 수 있었던 것도, 의연히 순교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사랑의 힘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새삼 ‘순교는 성체와의 결합이다.’ 말이 생각납니다.
사랑의 순교요 사랑의 성체입니다.
그러니 평생을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로, 즉 믿음의 전사, 희망의 전사, 사랑의 전사로 사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이 우리 모두 한결같이 신망애 향주삼덕의 순교영성을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끝으로 순교영성을 요약한 제 좌우명 고백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찬미받으소서.”
아멘.
- 베네딕토 수도회 성 요셉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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