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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시인 자료
[1] 시 4편
산에 언덕에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시집 『阿斯女』, 1963(백마강 기슭 시비에 새겨짐, 1970년)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52인 시집』, 1967
산문시 <1>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가더란다. —『月刊文學』, 1968년 11월 창간호
錦江 <序章>
우리들의 어렸을 적/ 황토 벗은 고갯마을/ 할머니 등에 업혀/ 누님과 난, 곧잘/ 파랑새 노랠 배웠다.
…// …// 쇠방울소리 뿌리면서/ 순사의 자전거가 아득한 길을 사라지고/ 그럴 때면 우리들은 흙토방 아래/ 가슴 두근거리며/ 노래 배워주던 그 양품장수 할머닐 기다렸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 …/ 정오가 되면 그 하늘 아래도 오포가 울리었다./ 일 많이 한 사람 밥 많이 먹고/ 일하지 않은 사람 밥 먹지 마라,/ 오우우 …… 하고.// …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그 가슴 두근거리는 큰 역사를/ 몸으로 겪은 사람들이 그땐/ 그 오포 부는 하늘 아래 더러 살고 있었단다.
…/ 그래서 그분들은 이따금/ 이야기의 씨를 심어주고 싶었던 것이리./ 그 이야기의 씨들은/ 떡잎이 솟고 가지가 갈라져/ 어느 가을 무성하게 꽃피리라.// …// 배꼽 내놓고/ 아랫배 긁는/ 그 코흘리개 꼬마들에게.
2
우리들은 하늘을 봤다/ 1960년 4월/ 역사를 짓눌던, 검은 구름장을 찢고/ 영원의 얼굴을 보았다.
잠깐 빛났던,/ 당신의 얼굴은/ 우리들의 깊은/ 가슴이었다.
하늘 물 한아름 떠다,/ 1919년 우리는/ 우리 얼굴 닦아놓았다.
1894년쯤엔,/ 돌에도 나무등걸에도/ 당신의 얼굴은 전체가 하늘이었다.// …// …// …//….
—장편 서사시 ‘錦江’(1967)(일부 생략, 행붙임: 편집자)
[2] 연보(생몰연월일: 1930.8.18.~1969.4.7.)
1930 부여읍 동남리 출생(1남 4녀의 맏이)
1942(13살) 부여초등학교 졸업
1945(16살) 전주사범학교 입학
1948(19살) 전주사범학교 퇴학(“친일파를 몰아내라!, 토지개혁을 실시하라!”는 동맹휴학 주동, 무단 장기 결석, 4학년 때)
1949(?) 고향 근처 초교 부임, 3일 만에 사임(사범학교 때 사이가 나빴던 교사가 있어서)
1949(20살) 단국대 사학과 입학
1950(21살) 6.25 발발, 귀향(이미 인민군 치하. 7.15경부터). 골방 칩거 중, 민주청년동맹 선전부장직 수락 위협적 강요(부득이 맡게 돼 2달간 탄약과 식량 운반, 다리 보수 등 참여)
1950.9.30.경 연합군의 부여 수복. 부산으로 감(피신 겸 전시연합대학 수학 목적)
1950.말경. 국민방위군 소집영장 받고 입대
1951.2월경. 대구수용소를 빠져나와 거의 탈진상태로 동료들과 부산행(국민방위군은 4.30. 공식해체됨). 배가 고파 낙동강변에서 게를 잡아 날로 먹음, 이때 폐디스토마균에 감염됨. 4월 말경 반주검이 돼 귀가.(국민방위군 복무로 인민군 부역 시비 잠복)
1951(22살) 여름끝 무렵. 전시연합대학 수학 위해 대전행. 친구와 사적지 탐방 시작
1953(24살) 단국대 사학과 졸업. 초봄 서울행. 친구와 돈암동에 책방 운영(실은 점원)
1953.초겨울. 책방에서 손님 인병선과 말을 처음 나눔. 그녀는 이화여고 3학년이며, 동국대 교수를 지내기도 하고 “조선의 농업 기구 분석”, “조선의 토지 문제” 등 저자 인정식(6.25때 행불)의 외동딸임
1955(26살) 여름, 4년 만에 귀향. 인병선 동행. 가을 국군 입대
1956(27살) 가을, 제대 귀향(2대 독자로 1년 복무). 결혼(10월). 본가에서 7식구 기거.
1957(28살) 부친 대서업과 텃밭 한 뙈기 수입이 전부. 대학 휴학한 부인 ‘이화양장점’ 운영. 맏딸 정섭 출생
1958(29살) 보령 주산농고 근무 시작. 폐디스토마 재발, 휴직 요양, 처와 딸 서울로 보냄
1959(30살)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大地’, 조선일보 신춘문예 입선. 맏아들 좌섭(현 서울의대 교수) 출생
1960(31살) 월간 교육평론사 취직. 『학생 혁명 시집』 편집 출판(7월)
1961(32살) 명성여고 야간부 국어교사로 취임(작고시까지 거의 9년 재직). 시론 ‘시인정신론’ 발표. 동선동에 아담한 기와집 마련. 차남 우섭 출생
1963(34살) 3월, 첫 시집 『아사녀』 출간
1964(35살) 3월, 건국대 대학원 국문과 입학, 한 학기만 수학
1966(37살) 시극 ‘그 입술에 파인 그늘’을 최일수 연출로 국립극장에서 상연
1967(38살) 펜클럽 작가기금으로 장편 서사시 ‘錦江’ 발표
1968(39살) 오페라타 ‘석가탑’(백병동 작곡)을 드라마센터에서 상연
1969(40살) 별세(4월 7일, 간암). 파주군 월롱산 기슭 안장
1970.4.18. 부여읍 동남리 백마강 기슭에 시비 세워짐
1975.6. 『申東曄 全集』 간행됨. 7월 정부 당국 판매금지(내용 긴급조치 9호 위반 이유)
1979 시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간행됨
1980 『증보판 신동엽 전집』 간행됨
1982 유족과 창작과비평사 '신동엽 창작기금' 공동 제정, 매년 지원(첫 수혜, 소설가 이문구)
1985.5. 유족과 문인들, ‘신동엽 생가’ 복원(초가를 기와집으로)
1988 미발표 시집 『꽃같이 그대 쓰러진』, 미발표 산문집 『젊은 시인의 사랑』 간행됨
1989 시 ‘산에 언덕에’가 중학교 교과서에 실림
1993 모교 단국대 교정에 시비 세워짐. 묘 이전(부여읍 능산리 왕릉 앞산, 11.20)
2013.5.3. 신동엽문학관 개관(부여 생가 옆)
2019.6.20. 동국대부속여고(옛 명성여고) 교정에 시 ‘껍데기는 가라’가 새겨진 시비 건립
—참고: 김응교, “금강을 노래한 민족시인 신동엽”, 사계절, 1994
*인병선(1935~ ): 현 짚풀생활사박물관 관장, 시인, 짚풀문화학자, 민속학자
*짚풀생활사박물관: 혜화동로터리에서 성균관대 방향 300m 이내 우측 소재
[3] 시론
—001. 시업가(詩業家)는 있어도 시인은 드물다. … 언어를 재료로 하여 손끝으로 언어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경우 그들은 '시인'이 아니라 '시업가(詩業家)'인 것이다. —‘시인ㆍ가인(歌人)ㆍ시업가’ 중
—002. 잔잔한 해변을 원수성세계(原數性世界)라 부르자 하면, 파도가 일어 공중에 솟구치는 물방울의 세계는 차수성세계(次數性世界)가 된다 하고, 다시 물결이 숨자 제자리로 쏟아져 돌아오는 물방울의 운명은 귀수성세계(歸數性世界)이고.
땅에 누워있는 씨앗의 마음은 원수성세계이다. 무성한 가지 끝마다 열린 잎의 세계는 차수성세계이고 열매 여물어 땅에 쏟아져 돌아오는 씨앗의 마음은 귀수성세계이다.
… 시도와 기교를 모르던 우리들의 원수세계가 있었고 좌충우돌, 아래로 위로 날뛰면서 번식 번성하여 극성부리던 차수세계가 있었을 것이고, 바람 잠자는 석양의 노정(老情) 귀수세계가 있을 것이다.
시란 바로 생명의 발현인 것이다. 시란 우리 인식의 전부이며 세계 인식의 통일적 표현이며 생명의 침투며 생명의 파괴며 생명의 조직인 것이다. 하여 그것은 항시 보다 광범위한 정신의 집단과 호혜적(互惠的) 통로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하나의 시가 논의될 때 무엇보다도 먼저 그것을 이야기해 놓은 그 시인의 인간정신도와 시인혼이 문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철학, 과학, 종교, 예술, 정치, 농사 등 현대에 와서 극분업화된 이러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인식을 전체적으로 한 몸에 구현한 하나의 생명이 있어, 그의 생명으로 털어 놓는 정신어린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가히 우리시대 최고의 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선지자(先知者)여야 하며, 우주지인(宇宙知人)이어야 하며, 인류 발언의 선창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산간과 들녘과 도시와 중세와 고대와 문명과 연구실 속에 흩어져 저대로의 실험을 체득했던 뭇 기능, 정치, 과학, 철학, 예술, 전쟁 등, 이 인류의 손과 발들이었던 분과들을 우리들은 우리의 정신 속으로 불러들여 하나의 전경인(全耕人)적인 귀수적인 지성으로서 합일시켜야 한다.
*전경인(모든 것을 경작하는 사람)=‘모든 인식을 전체적으로 한 몸에 구현한 하나의 생명’
*원수성세계:차수성세계=본질:현상, 알맹이:껍데기, 내용:형식, 정신:기교, 낙원:실낙원 등
*귀수: 원수로의 복귀
—‘시인정신론’ 중
—003. 우리들은 정신을 찾아 각고의 길을 헤매야 한다. 시(詩)에서의 피나는 노력과 고심이란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기교나 수사법을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높은 경지에 이르려는 정신인의 구도적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수운(水雲)이 삼천리를 10여 년간 걸으면서 농노의 땅, 노예의 조국을 본 것처럼, 석가가 인도의 땅을 헤매면서 영원의 연민을 본 것처럼, 그리스도가, 그리고 성서를 쓴 그의 제자들이 지중해 연안을 헤매면서 인간의 구원을 기구(祈求)한 것처럼 오늘의 시인들은 오늘의 강산을 헤매면서 오늘의 내면을 직관해야 한다.
자기에의 내찰, 이웃에의 연민, 공동언어를 쓰고 있는 조국에의 대승적 관심, 나아가서 태양의 아들로서의 인류에의 연민을 실감해 봄이 없이 시인의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공예품 같은 현대시’ 중
-끝-
첫댓글 햇무리샘 덕분에 늘 공부해요 ^^
아하..
신동엽 선생님은 살아서는 못 뵙고, 그 시적인 영혼은 두 번째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