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도
주님,
주님의 권능을 떨치시고 그 크신 힘으로 저희를 도우시어
자비로운 은총으로 저희 죄를 없애시고 어서 저희를 구원해 주소서.
제1독서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간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26,1-6
1 그날 유다 땅에서는 이러한 노래가 불리리라.
“우리에게는 견고한 성읍이 있네.
그분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성벽과 보루를 세우셨네.
2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3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당신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4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5 그분께서는 높은 곳의 주민들을 낮추시고 높은 도시를 헐어 버리셨으며
그것을 땅바닥에다 헐어 버리시어 먼지 위로 내던지셨다.
6 발이 그것을 짓밟는다.
빈곤한 이들의 발이, 힘없는 이들의 발길이 그것을 짓밟는다.”
복음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21.24-2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4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25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신앙이 쉽게 무너지는 사람의 특징
오늘 복음은 신앙이 있다고 하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모래 위의 집처럼 무너진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이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많은 신자가 냉담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오늘 복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냉담한 이들은 어쩌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뜻, 곧 사랑의 실천에 목적을 둔 신앙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신앙의 목적은 더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 어머니 이야기를 자주 해서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어머니가 고생하며 자란 집들은 다 천주교 신자의 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머니를 형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행복을 위한 도구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용했고 그래서 어머니는 한 집에서는 탈출해야 했으며, 또 한 집에서는 집사람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습니다.
도대체 그들은 왜 한 불쌍한 길 잃은 아이를 그렇게 이용하고 차별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어머니가 가족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길에 쓰러진 강도를 만난 사람이 형제로 보였다면 사제나 레위인이나 그냥 지나갈 수 있었을까요? 오직 사마리아인만이 그를 형제로 보아주었습니다. 형제로 보이지 않으면, 가족으로 보이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것을 휴가 때 놀러 가다 체험했습니다. 저도 아픈 사람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사고가 났다고 신고는 해 주었지만, 그분과 함께 있어 주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그 사고를 당한 사람이 가족으로 보였다면 그렇게 했을까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 강론을 수백 번 해도 실제로 그런 상황이 닥치면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지를 않습니다. 가족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JTBC ‘재벌집 막내아들’은 이상한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한 재벌가를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충성하던 주인공이 그들에게 배신당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렇게 죽게 된 주인공은 죽는 순간 다시 과거로 돌아가 그 재벌 집 셋째 아들의 손자가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래 일을 알기에 많은 돈을 벌고 재벌에 복수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요?
주인공은 I.M.F. 때 아버지가 정리 해고되어 어머니가 그 충격으로 사망하게 된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 상관도 없는 옛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갑니다. 가족들은 주인공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압니다. 이전 생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부모였음을. 그는 가진 재산 전부를 내어놓으며 망해가는 아버지 회사를 매입하려 합니다. 이것이 복수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기억만으로 지금은 남의 식구가 되어있고 아무 상관도 없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가진 모든 것을 버리는 주인공의 선택은 우리 모두의 공감을 얻습니다. 누구나 그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나의 부모였다는 기억이 이렇게 소중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모든 사람이 가족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무엇을 통해서겠습니까? 이 드라마처럼 ‘기적’을 통해서 입니다. 그 기적은 미사 때 ‘성체성사’로 일어납니다. 성체성사를 믿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모두 한 아버지를 둔 한 형제들이 됩니다. 말로만 형제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진짜 형제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창조자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 또한 나의 형제들이 됩니다. 그분에게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성체성사가 아니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십계명이 지켜질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려고 했다면 성체가 아니면 이는 불가능함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코로나를 이유로 냉담을 한다면 이는 그동안 신앙생활의 목적이 사랑의 실천이 있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다 자칫 사랑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빠질 위험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정치적으로 누군가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해서 큰 파장을 일으킨 성직자도 있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사실 우리 신앙의 목적이 사랑의 실천에 있음을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으면 누구도 그런 신앙의 길로 빠지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 신앙을 사랑 실천이라는 암석 위에 세웁시다. 그러면 우리가 짓는 신앙의 집이 결코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https://youtu.be/pKo3LjnywDI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행복의 문을 여는 193가지 이야기’라는 책에서 불행한 사람의 공통점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완벽주의는 불행하다. 그는 모든 걱정을 껴안고 인생을 살아간다.
2) 항상 남과 비교하려 한다.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경쟁심은 평안을 앗아간다.
3) 자기 자신만이 가장 옳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이런 사람과 함께 지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늘 고독하다.
4) 작은 일에 신경을 집중시킨다. 이런 사람의 표정은 항상 불만과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다.
5) 매사에 의심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6) 이웃을 위해 절대로 사랑과 물질을 베풀지 않는다. 한번 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밖으로 나올 줄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더 많은 것을 간직하면서 풍요롭게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에는 ‘풍요로움’ 대신에 ‘빈곤함’만 가득하게 됩니다. 사실 그들의 이런 행동은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복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혼자만 남게 되고, 그래서 힘든 시간을 계속해서 간직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기도 모습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어려움만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주님, 주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나만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만의 사랑이 아닌, 우리 모두를 향한 사랑. 그래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솔직히 이런 사람이 세상 안에서 많은 손해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손해를 보면서까지 남을 향한 사랑을 실천해야 하냐고 항의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자기만을 위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사람과 같습니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면 무너지고 맙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실행하면서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석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사람이 되어서 어떤 시련과 고통도 거뜬하게 이겨내게 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하늘 나라의 영광을 얻게 됩니다.
앞선 불행한 사람의 공통점이 나의 모습이 되지 않도록 정반대의 삶을 살아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의 영광을 차지하게 만드는 열쇠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둘도 없이 귀중한 것인데도, 우리는 언제나 어떤 것이 생명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가진 듯이 행동한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이란 무엇인가? (생텍쥐페리)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