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을 걸으며
森間幽溪淸葉氣(삼간유계청엽기)-울창한 숲사이계곡 푸른 잎에 맑은 공기
人醉艶綠山鳥聲(인취염록산조성)-사람은 염록에 취하고 산새들은 노래하네
刺槐松風蒙自醒(자괴송풍몽자성)-아카시아향기 소나무바람이 정신을 일깨우고
放下慢步信脚行(방하만보신각행)-아무 생각 없이 느리게 다리가 가는대로
농월(弄月)
대공원 숲속을 걸으며 쓴 일기
오늘 친목 모임으로 과천 대공원 숲길을 걸었다.
유적지를 답사할 때나 어디를 가든지 느끼는 마음이지만 우리나라 숲이 이렇게 울창한데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60년전 박정희 정부가 끼니를 굶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사방사업(砂防事業), 조림사업(造林事業) 부엌개량사업, 에너지육성사업이 지금 이 나라가 푸른 숲으로 덮인 초석(礎石)이되어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5월 상순(上旬) !
염록색 잎이 피튼치드(phytoncide)를 뿜으며 6월을 향한 성장(成長)으로 초록색 건강한 윤기가 진하다.
참 자연의 조화는 오묘하다.
식물이 여러 균(菌)이나 해충(害蟲)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할 목적으로 내 뿜는 예방독성 휘발성의 물질인 피튼치드(phytoncide)가 인간이 들이마실 경우 스트레스가 풀리고 면역 기능이 강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삼림욕(森林浴)이다.
모든 살아있는 생물이 그렇겠지만
사람도 살아가는 동안에 전혀 예기치 못했던 순간에 행복과 불행이 교차된다.
행복한 순간은 크게 느끼지 못하지만 불행한 순간은 그 충격이 매우 크다.
사업의 실패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일도 크지만
특히 건강이 크게 나쁘게 되는 일이 생기면 천지가 암담해 지고 절망을 하게 된다.
중국 남송(南宋)의 대표적 시인이며 중국 시사상(詩史上) 최다작(最多作)으로 유명한 육유(陸游)의 이야기다.
당시 남송은 금나라의 침략을 받아서 온 나라가 근심 중이었다.
조정은 화친을 맺자는 주화파(主和派)와 싸우자는 주전파(主戰派)로 나뉘었다.
육유(陸游)는 전쟁을 주장하다가 한직(閒職)으로 밀러났고, 결국 벼슬을 던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낙향한 육유(陸游)의 마음이 편안할 리가 없다.
육유는 어느 날 고향에 있는 한 숲길을 산책하게 되었다.
숲길의 이곳저곳을 거닐다가 어느 한적한 곳으로 향했다.
계속가다 보니 길은 좁아지고 인적도 드물어졌다.
그만 돌아갈까 싶었지만 내친 김에 그는 계속 걸었다.
그때 육유(陸游)의 눈앞에 뭔가 아른거림 속에 처음 보는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山重水復疑無路(산중수복의무로)-산 넘고 물 건너 길이 끊긴 듯하나
柳暗花明又一村(류암화명우일촌)-버드나무 그늘 짙고 꽃 환한 마을이 보이네.
簫鼓追隧春社近(소고추수춘사근)-피리 소리 북 소리 잇따르니 봄 제사 가까운 듯
衣冠簡樸古風存(의관간박고풍존)-차림새 소박하여 옛 모습이 남아있네.
육유(陸游)
육유(陸游)가 마치 유토피아 같은 이상향(理想鄕)의 마을을 보고 읊은 시다.
그날 육유는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길이 끝난 곳에서 만난 마을을 잊을 수가 없었다.
막연하게 걷다가 만난 마을이지만 이제는 틈나면 찾아가고픈 생각이 들었다.
從今若許閒乘月(종금약허한승월)-이제 한가하면 달빛 따라 나서서
拄杖無時夜扣門(주장무시야구문)-지팡이 짚고서 아무 때나 문 두드리리.
육유(陸游)
육유의 시에는 절망 끝에 희망이 느껴진다.
그가 관직에서 소외되어 꿈을 잃고 끝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또 하나의 마을을 만났던 것이다.
위에 육유(陸游)의 시중에
山重水復疑無路(산중수복의무로)-산 넘고 물 건너 길이 끊긴 듯하나
의 구절이 “절망(絶望)”이라면
柳暗花明又一村(류암화명우일촌)-버드나무 그늘 짙고 꽃 환한 마을이 보이네.
는 “희망(希望)”인 것이다.
다윗의 반지에 새겨진 글귀처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아무리 불행이 닥쳐서 힘이 들지라도 시간은 흐르게 되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변화(變化)가 따라와서 또 다른 양상(樣相)이 오는 것이다.
지금은 암담(暗澹)하지만
절망의 순간에도 마음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누구든지 각자의 저마다
柳暗花明又一村(류암화명우일촌)-버드나무 그늘 짙고 꽃 환한 마을이 보이네.
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걸으며 생각하며 !
오늘 대공원 5월을 보내는 숲길을 걸으면서 육유(陸游)의
“환한 마을이 보이네(明又一村)”가 생각나서 이 글을 쓰며 다시 다짐하여 본다.
힘들더라도 참고 견디어 보자 !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