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안에서도
교회 안에도
선교 현장 안에도 파가 있습니다.
편애와 편견이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도 다 파가 있습니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 자신이 따르는 사람과 묶여 있습니다.
파로 나뉜다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모두와 같이 갈 수 없고,
사람은 모두와 일치 할 수 없고,
사람은 모두와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같이 다니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고,
하나님, 믿는 자, 세상 사람이 보기에도 이상하다면, 고민해야 합니다.
불법 세습,
성적 스캔들,
재정 비리에 연루된 사람과 한 파를 이루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파벌의 문제는 오늘날만 아니라 바울이 섬길 때도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3:1-9, #김영한, #아침개인묵상
<하나님의 동역자들>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1) 바울은 왜 어린 아이들을 대함 같이 한다고 하였나요? (1절)
- 신령한 자들을 대함 같이 하지 못하는 것은 고리도 성도들이 육신에 속한 자, 즉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2)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을 젖으로 먹이지 않고, 밥으로 한 것은 무슨 이유였나요? (2절)
- 이는 고린도 성도들이 감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3) 고린도 성도들이 육신에 속한 자로 있을 때, 어떤 모습이었나요? (3절)
- 고린도 성도들 가운데 시기, 분쟁이 있었고,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로 행하였습니다.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1) 초대교회에는 어떤 파가 있었나요? (5-6절)
- 당시 아볼로와 바울은 유명한 사도였습니다. 아볼로와 바울은 복음 사역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수고하였습니다. 열심히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전도하며 다녔습니다.
- 그런데 사람들은 두 사도의 뒤를 따르는 가운데 아볼로파 그리고 바울파 이렇게 두 그룹으로 나뉘었습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나니”
(고전 3:5-6)
- “나는 아볼로파다! 당신은 어느 파냐?” 이렇게 파당을 나누며 특권의식을 가졌습니다. 단순한 자부심을 넘어 이들은 주님을 따르기보다 아볼로 혹 바울파를 더 중요시하였습니다.
요즘 성도들 중에서도 어느 큰 교회 혹 유명한 목사님 밑에서 신앙 생활하는지에 따라 대단한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전도하기보다 자신의 교회 혹 목회자에 대해 이야기하며 전도하려고 합니다.
더 큰 문제는 큰 교회, 특화된 중소형 교회, 괜찮은 건강한 교회에 다니면, 자신도 상당히 괜찮은 사람, 건강한 신앙인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자만한 가운데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신앙생활 할 때 혹 전도할 때 다른 어떤 것을 내세우고, 자랑삼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전해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입니다. 교회에 누가 있어서 교회에 무슨 대단한 것이 있어서 사람들을 전도하고 복음 이외의 것을 전해서는 교회가 안 됩니다!
교회는 오직 순수하게 복음만을 전하고 복음으로 진검승부를 해야 합니다. 복음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비바람이 치던 홍수가 나거나 가뭄이 나든 교회는 복음의 뿌려야 합니다.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 바울은 어떤 중요한 사실을 말 하나요? (7-8절)
- 우리가 자랑할 것은 주님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심은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하고 그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고린도전서 3:7-8)
- 바울은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서로 같다고 합니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동일하게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께 상급을 받는다고 합니다.
2)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 나 자신만 복음을 받아 누리는 삶이 아니라 복 된 소식을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3) 우리는 삶에서 전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왜 복음을 증거 하지 않을까요?
차면 넘치는 잔
잔에 물을 계속 부으면, 잔이 찹니다. 잔에 물이 넘쳐납니다. 이것이 전도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삶에 차고, 넘치면 복음을 저절로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십자가에서 부어 주셨습니다. 이 넘치는 사랑을 받은 우리는 잠잠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사랑과 한없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 자는 오직 그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구름을 타고 심판 주로 오심을 증거 해야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님이 우리를 담대하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하십니다.
우리가 매일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우리가 전도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가득 차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어떻게 증거하고 전할 수 있겠습니까?
전도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전도할 만큼 풍성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없는 고로 나 자신조차 서 있기 힘겨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너무나 행복해집니다. 우리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도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행복에 겨워합니다.
정말 바보처럼 짝사랑하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현재 어떻게 지내는지를 묻기도 합니다. 그 사람 이야기를 들으며 행복해합니다. 가슴에 오는 찡한 감동을 느낍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우리 주위에 사람들이 예수님에 관해 관심이 없고요. 잘 알지 못해도 나 자신이 너무나 행복해서 주님에 관해 말합니다. 예수님 이름을 언급하며 마음을 고백합니다. 사람들이 주님에 대해 관심이 없어도 그 은혜를 말하고 다닙니다. 이런 자는 삶 속에 예배자의 삶을 삽니다. 전도자의 역할을 합니다.
좋은 제품을 써 본 사람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좋아서 그 제품을 사람들에게 소개합니다. 이렇듯 전도도 그렇습니다.
전도는 내 안에 계신 분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그저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위의 사람들은 정말 우리가 짝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자리를 마련해 같이 그 사람을 만나 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대상을 우리의 친구들이 만나면 그들도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도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을 정말 좋아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도도 우리가 좋아하는 예수님을 그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그들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사람들도 정말 인격적이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을 만나 안식하고 평안을 얻고 살아가게 됩니다.
인생은 너무나 힘듭니다.
우리 혼자서 하나님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지도책 없이 복잡한 미로를 한없이 방황하고 헤매며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올인
전도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의 삶 안에 계신 주님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주님께 올인 시킬 때 세상 사랑들이 놀라서 우리가 어디에 우리의 초점을 두고 사는지 궁금해하고 그 길로 와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과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과 똑같은 길을 간다면 그 안에는 참 영향력이 없습니다.
예전 교회에서 진혁이가 소프트볼을 던지는 방법을 잘 모르다가 어느 날 “이제야 던지는 방법을 알았다”라고 했습니다. 소프트 볼은 손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던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도는 입으로, 책자로, 전도 집회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전체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께 올인 될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주님께 던지는 우리의 헌신을 보고 놀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올 인하지 아니하면 전도는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전부 주님께 드리지 않을 때 주님도 없고, 온전한 나 자신도 없고, 복음 전파도 없습니다. 전부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삶을 드릴 때 가정이 바뀌고, 교회가 바뀌고, 세상이 바뀝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이 다 교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교회 안에 전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지 어떻게 주님 앞에서 살아야 할지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3) 오늘 말씀 중 받은 도전 혹 은혜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