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설날 아침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아들 딸을 데리고
성묘길에 나섰다. (집사람은 설날 아침에도 병원에 있는 환자를 돌본다고
출근을 했다) 집(부산 대신동)에서 10시 15분에 나섰는데 낙동강 남해고속도로 입구에서부터
차량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날씨는 약간 흐렸지만 비교적 푸근한 편이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니 도로엔 차량들이 많았지만 마산까지는 소통이 원만했다.
창원으로 들어서기 전 전광판에 북창원부터 정체구간이 4Km 되어 있다는 표시를 보고
바로 마산으로 빠졌다. 서마산에서 다시 산인으로 들어가려다 도로에 늘어선 차량들을 보고
도저히 진입할 엄두가 생기지 않아 통영으로 연결되는 산복도로를 타고 신마산으로 넘어갔다.
무학산 아래로 흘러내리는 성원골을 지나 자산동을 통과하면서 옛날 이 자리는 화장막이 있었던
곳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전벽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이 변했다. 부산에도
초읍에는 옛날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당감동 화장막 바로 뒷편이었음) 불도저로 밀어 버리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우리가 다녔던 마고도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도로 밑 어디쯤 되지 않겠나 싶었다.
조금 더 가다보면 마여고, 성지여고, 마산대학 자리도 생각났다. 저멀리 최치원선생이 활로 쏘아 돼지를 잡았다던
저도가 가고파의 푸른 바다에 떠 있고 그 뒤로 마창대교가 그물을 쳐 놓은 듯 걸려 있었다.
대거리 고개를 지나 통영가는 길로 접어 들었더니 웬넘의 차들이 그리도 많은지...
거북이 걸음으로 통영,진주 갈림길 까지 갔다가 새로 난 진주로 가는 일반국도에 차를 올리니
도로가 한산하여 날아갈듯이 달렸다.(제한속도 80km/h)
목적지인 진성면 대사리에 도착하니 12시15분, 평소 1시간 15분정도 소요되는 시간에 비하면 그렇게
지체된 것은 아니었다. 차를 산소 아래 농도에다 주차해 놓고 술과 안주 약간을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상석위에 음식을 차려놓고 아이들과 절을 했다.
내 어릴 적엔 흰두루마기르 입은 아버지 손을 잡고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성묘를 다녔다.
해마다 이 때쯤 구정 추위라 해서 땅은 꽁꽁 얼어 붙었고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삭풍은
귀를 베어내듯 쓰리고 아팠다. 얼어붙은 손가락을 입김으로 호호 불어가며 동네 어른들한테 세배를
다닌 기억도 아련하다. 널뛰기, 제기차기, 팽이치기, 연날리기, 보름날 달집 태우기 등의 재미도 있었다.
성묘를 마치고 동네 재종 집에 들러 여러 어른께 인사를 드리고 점심을 먹었다.
오는 길이 막힐거라고 예상되어 한시라도 바삐 출발하는게 나겠다 싶어
2시반에 다시 차에 시동을 걸어 왔던 길로 되돌아 나왔다.(남해고속도로가 정체될것으로 예상되어)
통영에서 나오는 차들과 만나는 3거리 약간 못미쳐서 차들이 도로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드디어 올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한 것 같았다.
가다 서다를 반복 하기를 수십번, 진동을 거쳐 마창대교로 빠졌다.
마창대교에서 다시 진해 장복터닐을 지나 진해 시내를 관통하여 웅천,웅동,명지, 하단으로
집에오니 6시반, 장장 4시간이나 소요되었다. 거리는 왕복 200Km였으니, 올때는 시속 25km로
기어 온 셈이었다. 어쨌든 성묘를 다녀오고 나니 기분이 가뿐했다.
첫댓글 할 짓을 하는 사람은 늘 부럽다. 꿈 속에도 그렸던 고향의 산천이 이 글을 보려고 그랬던가. 추억은 아름답다고 누가 말했던가? 그래도 내 발자국엔 땀방울이 맸혔는데......어떤 땐 목숨을 걸고 .....설, 잘 쉰 것 같네. 삼가 조심함이 뜻대로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