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교회에서, 평신도 간사를 세웠었습니다.
그중 한 지체가 모임 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우리 중 누구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기를 소원합니다. 정말 생명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참 귀한 고백이었습니다.
어떻게 들으면, 교만하게 들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 순수하게 누구보다 더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그런 고백을 듣고, 제 믿음보다 더 뜨겁고, 열정적인 것을 느끼고, 고개를 숙이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공을 쌓듯 열심히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요?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말뿐만 아니라 삶에 ‘공적’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공적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터 위에 세운 것입니다. 즉, 주님이 인정하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0~15절, #김영한, #아침개인묵상, #성경 하브루타 코칭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살되, 무엇을 조심하라고 하였나요? (10절)
-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둔 것에 어떻게 그 터 위에 세울지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2) 바울은 왜 이렇게 터 위에 어떻게 세울지 고심하게 하였을까요?
- 그 당시에는 영지주의자들, 초대교회 이단들, 거짓 선생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 바울은 왜 ‘건축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을까요?
- 바울이 '집'(오이코도메)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는데요.
- '건축자'(아르키테크톤)라는 말은 여기에서만 사용하였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세우시는 숙련된 건축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4) 바울은 닦아 둔 것 외에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다고 하였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 터를 닦아 주고, 그 터의 기본과 근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5) 사도들은 바울이 말한 ‘터’를 어떤 단어로 기술하였나요?
- 사도들은 '터'를 '모퉁이 돌'이라 하였습니다(에베소서 2:20).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 바울은 무엇으로 터 위에 세울 수 있다고 하였나요? (12절)
- 은, 보석, 나무, 풀, 짚으로 그 터 위에 세울 수 있다고 비유하였습니다.
- 바울은 두 부류로 나누어 설명하였습니다. 즉, '금, 은, 보석'은 값비싸고 견고한 것이고, 다른 부류는 '나무, 풀, 짚'으로 값싸고 허술한 것이었습니다.
- 이런 대조를 통해 바울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과 이에 비해 변하고, 일시적인 것을 대조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거짓된 가르침은 쉽게 소멸될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런 가르침은 바울의 말에 의하면, '천한 초등 학문'이며 '철학과 헛된 속임수'였습니다(갈 4:9;골 2:8).
2) 그러나 여러 가지로 터 위에 세우지만, 공적이 나타날 때에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하였나요? (13절)
- 공적을 밝힐 때, 불로 나타나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한다고 하였습니다.
3) 나 자신은 어떤 것으로 터 위에 공적을 세우고 있는 것 같은가요?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1) 어떤 자가 상을 받는다고 하였나요? (14절)
-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마지막 심판 때 있을 보상이 있을 것으로 말하였습니다(고후 5:10).
2) 상급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정말 하나님은 차등으로 이 세상의 삶에 따라 다르게 상급을 주실까요?
3) 어떤 자가 해를 받는다고 하였나요? (15절)
-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나마 자신은 구원받지만 벌거벗은 것 같은 구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4) 이런 공적 사상은 카톨릭에서 연옥사상과 선행 구원론으로 발전하였는데요. 어떤 점이 문제가 될까요?
5) 오늘 본문 말씀 중 받은 도전 혹 은혜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