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를 하루 24시간으로 비유하자면, 우리가 현대인으로 산 지는 20초가 채 못 됩니다.
즉, 인류는 진화의 과정 중, 그 대부분의 기간을 원시인으로 보냈다는 얘기죠.
따라서, 진화의 방향성은 원시인들의 생존에 최적화된 방면으로 이루어졌으며,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현대인들의 뇌는 구석기 시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를 두고, 진화생물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표현해요.
"진화의 시계추는 여전히 구석기에 멈춰있다."
현대의 환경은 급변했지만, 우리의 뇌는 여전히 구석기에 머물러있다는 점,
바로 이 지점에서 현대 사회의 수많은 문제점들이 파생되는데,
그 중 가장 심각하다고 사료되는 문제가 바로 "도파민 과잉 현상"입니다.
건강하고 싶다면,
원시인처럼 살아라.
열악했던 환경을 기준으로 세팅된 인류의 시스템과
그 때와는 비할 수 없이 호전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
현대의 신체적, 정신적 질병들은 대부분 이 둘 간의 불협화음으로부터 출발됩니다.
가령,
도파민은 원래,
원시 인류로 하여금 생존에 필수적인 활동을 하게끔 유도하는 일종의 "뇌내마약물질 기제"였습니다.
섭식 행동이나 성적 행동, 사회적 활동 등은
원시 인류가 살아남고 번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활동들이었고,
우리의 뇌는 이러한 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낸 개체들에게 그에 대한 보상의 일환으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강렬한 쾌감"을 선물한 것이죠.
음식을 찾아다니기 위한 "노력" → 맛있다라는 "쾌감"
이성과 잘 지내보려는 "노력" → 사랑이라는 "쾌감"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노력" → 자기가치감이라는 "쾌감"
현대 사회는 "노력 없는 보상"이 넘쳐납니다. 그야말로 손쉬운 쾌감이 만연된 사회이죠.
원시인 선배들은 쉬지 않고 움직여야지만 조금의 도파민을 얻을 수 있었다면,
현대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또는 누워서 그의 몇십배에 달하는 도파민을 간단히 얻을 수 있어요.
원래 도파민 기제는 이러라고 만들어진 시스템이 아닙니다.
정당한 노력 후에 주어지는 "합당한 보상"의 개념이었죠.
스탠퍼드의 신경의학자인 Anna Lembke를 위시한 많은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바는
현대 사회의 도파민 과잉이 도파민에 대한 뇌의 둔감화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으며,
바로 이 노력-보상이라는 뇌의 기본 세팅이 점점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손쉬운 쾌감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점점 더 해당 행위들에 몰입하게 되고,
잔뜩 달아오른 도파민 시스템은 마치,
너무 많이 사용돼 탄성을 잃고 늘어져버린 스프링처럼 점점 더 무뎌져 갑니다.
이 과정에서 쾌감을 얻기 위한 최소 역치는 점점 더 높아지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예전보다 더 강렬한, 더 짜릿한, 더 흥분되는 자극거리들을 찾아내는데 혈안이 돼 있죠.
원래대로라면,
도파민 시스템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별탈없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도파민 과잉으로 인해 그 사용연한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무분별한 쾌감의 남용이 쾌감에 대한 면역 현상을 낳게 되는 것이죠.
즉, 도파민 과잉은 일종의 "쾌감 대출"인 셈인 겁니다.
미래에 얻을 쾌감을 미리 땡겨 쓰는 것이랄까?
도파민의 탄성이 얼마나 늘어져버렸는가는 우리가 갚아야 할 대출의 양과 비례합니다.
노력 없는 쾌락에 길들여질수록, 인생노잼시기는 그만큼 앞당겨집니다.
뭘 해도 재미없다, 인생이 무료하다라고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망가져버린 도파민 시스템에 갚아나가야 할 일종의 부채감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이 심리적 대출을 갚기 위해서는 도파민 시스템을 리셑시켜야 합니다.
이 리셑의 방법이 벌써 수년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도파민 디톡스"이죠.
마치 자연이 자정 작용을 통해 스스로를 정화하듯이,
우리의 뇌가 스스로 도파민 보상 기제를 리셑하도록 시간을 주는 겁니다.
이 도파민 디톡스 챌린지를 잘 해 내기 위한 방법은 심플합니다.
현대인의 삶에서 멀어지면 되요. 즉, 원시인처럼 살아 보는 것이죠.
디지털과의 거리두기
자연에서 있는 시간 늘리기
당과 카페인, 정제 탄수화물 줄이기
소수의 사람들과의 면대면 인간관계
그리고 운동
원시인처럼 산다는 것은,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노력하고, 더 적게 먹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버드의 저명한 정신의학자 John Ratey는
"운동"이야말로 모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의 꿈의 치료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운동은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 졸로푸트 등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대인들이 지니는 대부분의 심리적 질환은 앞서 얘기한 "구석기 뇌의 현대 사회 적응" 문제에서부터 비롯되죠.
따라서, 우리의 일상 생활을 원시 시대에 가깝게 세팅해주는 것만으로도
현대 사회 질병의 많은 부분들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뇌는 더 많이 움직일수록 건강해집니다.
신경과학자 Daniel Wolpert는 뇌가 존재하는 이유는 더 잘 움직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인류가 직립보행을 하기 시작하면서
두 손과 두 발의 다채로운 협응 능력을 키워나가는 과정 중에 필연적으로 뇌 용량이 커지게 되었고,
이러한 디테일한 운동 능력은 엄청난 양의 시냅스 간 연결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업적입니다.
실제로, 현대의 최첨단 로봇들조차 그 움직임에 있어서는 여전히 유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인류의 뇌가 더 잘 생각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더 잘 움직이기 위해 존재한다"라는 가설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가 도파민 디톡스를 하는 과정에서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손발을 놀리고 더 많이 운동한다면,
뇌에 건강한 자극이 가해짐으로써 그만큼 정신적 활성화 수준 또한 개선될 것이라 짐작해 볼 수 있으며,
운동이 신체 뿐만이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기여한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적으로 검증이 끝난 영역입니다.
도파민 디톡스를 통한 대출 청산에 성공했다한들,
이제 됐다는 생각에 쾌감을 땡겨 쓰는 행동을 다시 반복한다면 이는 분명 요요현상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따라서,
도파민 디톡스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정상적인 노력-보상 회로를 강화시키는 일입니다.
즉, 사소한 자기계발을 통해 합당한 보상감, 성취감을 맛보는 것이죠.
이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거창하게 하려면 오히려 더 못 해요.
도파민 회로가 리셑된 상태에서는,
가령, 한 권의 독서나 밀린 집안일 하기, 잠자기 전에 쓰는 일기 같은 것으로도
충분할 만큼의 성취감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노력→보상의 인과 관계를 충분히 경험하고 나면,
이후에는 노력을 할 때 일종의 달콤한 기대감이 묻어나게 됩니다.
'이걸 다 하면 엄청 기분이 좋겠지?'
기대감이 동반되는 노력이라면, 당연히 그 과정이 한결 쉬워지기 마련이겠죠.
현대인들이 노력을 버거워하는 이유는,
노력 없이도 얼마든지 즐거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노력이라는 고통을 인내할 필요가 없는 삶에 너무나도 길들여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분명 우리도 어렸을 때는 사소한 노력,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충분할만큼 기뻐하고 성취감을 느꼈을 거예요.
다만, 지금은 도파민 과잉으로 인해 그 느낌을 잊어버렸을 뿐,
도파민 디톡스와 사소한 자기계발거리들을 통해 얼마든지 그 감각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원시인처럼 심플하게 살기와 노력이 동반된 성장의 달콤함을 맛보는 것
이는 도파민 과잉 시대에 우리의 건강한 웰빙을 지켜줄 소중한 루틴이 되어 줄 것입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인류 역사가 얼만데 아직 원시인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니 참 ...
운동 하기 싫은데 나이들 수록 해야함을 느끼긴 함,,
빚이라는거 진짜 공감 일정수준 이상이 되면 자극을 위한 자극만 추구하게 돼서 나이들면 걷잡을 수 없어지고 자극이없는 상태가 무력함과 우울로 변하는 것 같음...
좋은 글이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