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본 글은 소설입니다. 따라서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나 기관 혹은 단체명은
이해를 돕기 위해 편의상 사용한 것이며 실제와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2. 본 소설은 팩션입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깁니다.
3. 소설이라는 특성 상 등장하는 연도는 실제와 다릅니다.
=========================================================================
# 2012년 6월. 부다페스트
“마틴, 드디어 자네가 날 도와줄 일이 생겼네.”
15평은 되어 보이는 넓은 사무실, 최고급 가죽 소파와 최고급 테이블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있는
콘래드는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어떤 일입니까?”
수화기에서 마틴이라고 불린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내가 너를 왜 스위스에 있는 학교에 보냈는지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콘래드는 고풍스럽고 단단해 보이는 갈색 책상 위에 천천히 두 팔을 올렸다.
이 자리에 앉을 때 제일 먼저 구매한 것이 이 책상이다.
“조만간 북한으로 가야겠다. 자세한 얘기는 5분 뒤 팩스로 보낼 테니 확인하고. 보는 즉시 파기하고.”
“알겠습니다.”
통화가 끝나자 콘래드는 컴퓨터 화면에 보이는 문서의 출력 버튼을 눌렀다.
곧바로 책상 옆에 있는 팩스 탁자 위에 설치된 레이저 프린터에서 부드럽게 문서가 출력되자
콘래드는 그 문서를 팩스를 통해 보냈다.
팩스가 전송되는 사이 오래 전부터 북한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밟아온 자신의 혜안에 스스로 감탄해마지 않았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행동거지를 봤을 때 3대째에는 연결고리가 있다면 어떻게든 써 먹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 많은 돈을 들여가며 김정일의 모든 아들들에게 친구를 가장해 사람들을 접근시켜 두었고 후계자 싸움에서
승리한 김정은에게 접근 시켜 놓은 마틴이 이제 내가 베푼 은혜에 보답할 차례다.
오갈 데 없는 그를 거두어 먹이고 재우며 고등교육까지 시켜준 것이다.
사실 할 수 있는 한 최소한의 노력만 들였지만 콘래드 입장에서는
생면부지의 가난하고 꾀죄죄한 동양 고아에게 할만큼은 했다는 입장이었다.
자리로 돌아온 콘래드는 ‘파일을 저장하시겠습니까?’라는 안내 창의 ‘아니요’를 누르고는 문서를 화면에서 지워버렸다.
이런 문서는 저장하거나 보관할수록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하기가 힘들어진다.
저장하지 않을수록 유리해진다는 뜻이다. 불리한 것이 없다는 것은 유리하다는 것이니까.
“저에게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어떤?”
콘래드가 보낸 팩스 문서를 손에 든 채 마틴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빠르면 이 달, 늦어도 다음달에는 북한엘 다녀와야 할 듯 합니다. 김정은을 만나라는군요.”
“역시 예상대로 흘러가는군.”
“당장 다음 주에 전화를 먼저 해야 할 듯 합니다.”
“알겠네. 중국에 가기 전에 전화 한 번만 더 부탁하네. 그 문서는 당연히 파기해야겠지?”
“네, 아무래도 지속적으로 그들과 연락하려면 후환은 미리 없애야 할 듯 합니다.”
“잘 부탁하네.”
전화를 끊은 마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 긴 한숨을 내 쉬고는 일어나 천천히 창가로 갔다.
다뉴브 강 위로 천천히 지나가는 유람선의 불빛이 반짝인다.
“드디어.”
마틴은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꾹 눌러 보았다.
그의 본명은 박태신, 증조부는 박열이고 증조모는 가네코 후미코라는 일본인이라고 했다.
증조부가 일본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면서 만나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는데 증조부는 당시 일본 황태자의 결혼식에 터뜨릴 폭탄을 밀반입하다 적발되어 투옥되었고 1945년 10월 22년 2개월의 옥살이를 마쳤다고 하고
증조모는 1926년 의문의 죽음을 당해 증조부의 고향인 문경에 묻혔다고 한다.
증조부는 이후 1949년 귀국한 뒤 한국전쟁 때 납북돼 북한에서 재북 평화통일촉진협회장을
지내다가 1974년 숨졌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조국 독립의 가치보다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이념이 더 중요했던
이승만,박정희 정권아래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해야 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써 누려야 할 권위와 행복보다는 빨갱이라는 올가미가 씌워진 채
언제나 누군가가 감시하듯이 따라다녔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아저씨가 나타나서는 아버지와 긴 이야기를 하고 어린 나이의 자신을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며. 박태신은 그 말만을 믿고 그를 따라나설 수 있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배고픔을, 수년 째 이어지는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는 약속을 지켰고 언제나 친절했다. 그리고 그가 왜 자신에게 이렇게 해주는지 늘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콘래드에게 접근시켰다.
한 번, 두 번은 우연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러 번 반복되면 인연 혹은 필연이라고 하는 것처럼
마틴은 콘래드의 집, 회사 앞 등 콘래드의 동선에서 계속 출물하며 북한 출신이라는 고아라는 거짓말을 하며 계속 도움을 요청했고 다행이 그의 작전대로 콘래드는 그를 거두어 먹여주고 재워주고 교육을 시켜주었다.
물론 집 안의 허드렛 일을 시키고 식사도 하루 한 두끼 정도 밖에 주지 않았지만
그 분의 도움으로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는 스위스의 고등학교에서 김정은을 만났다.
김정은과는 증조부 얘기를 하면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증조부의 월북 때문에 남한에서 받았던 대우를 얘기할 때는 김정은이 눈에 쌍심지를 켜면서 열변을 토했었다.
그리고 이제 자산의 단 한 가지 존재이유였던 김정은을 만나러 북한을 가야 한다.
어쩌면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북한 전문가로 활동할 운명을 타고 났는지도 모르겠다,라고 마틴은 생각했다.
마틴과의 짧은 만남 동안 많은 얘기를 주고 받은 김정은의 지시로
북한은 매일 같이 이명박의 독도 발언에 대한 비난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쏟아냈다.
일관된 내용은 이명박을 나라 팔아 먹은 민족 반역자에 비유하면서 남한은 정통성이 없는 국가가 되었다는 내용과
반면 북한은 고 김일성 주석이 독립운동을 했던 민족투사로써 정통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민족반역자의 국가를 북한이 공격하겠다는 내용까지 있었으며 실제로 미사일을 발사하기도 했었다.
사실 김정은으로서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명박 망언의 진위여부를 떠나 그런 얘기가 나왔다는 것 자체에 대해
북한의 통수권자로써 뭔가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이명박은 아직 김정은을 대등한 관계의 국가지도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굉장히 기분이 나쁘던 때였다.
역시 나이 어린 김정은은 콘래드의 계획대로 움직여 주었다. 이제 중국만 남았다.
# 2012년 6월. 중국
“걱정 하실 것 없습니다.”
미국에서 급하게 날아 온 왕유삼이 중국의 전인대 상무위원장인 오방국에게 말했다.
차를 마시던 오방국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북한은 완전히 계륵이야. 이제는 우리하고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들이 조금씩 늘어난다니까.”
“김정은이 아직 어려서 그럴 겁니다. 자체 세력도 아직 정립되지 않았고요. 권력 기반이 약할 때, 시선을 외부로 돌리는 것은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흔한 일 아닙니까?”
그랬다. 도요토미 히데오시가 일본을 통일한 후 확고한 권력을 잡기 위해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도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다, 국민들은 단결해야 한다라는 것을 외침으로써 국민들을 응집시키고
그 국민들의 최상부에 있는 권력자에게 자연스럽게 복종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도 말이야. 꺼떡하면 미사일 발사 실험한다고 쏴 대고, 무기도 마음대로 수출하고 최근에는 마약까지 만들어 판다는군.”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럴 겁니다. 이럴 때 우리가 먹을 거라도 지원해주면 좋을 텐데요.”
“먹을 건 우리 국민들 것도 부족하니 어렵고, 돈을 좀 주면 조용해지려나.”
먹을 거나 돈이나 뭐가 다른가, 라고 생각하며 왕유삼은 덧붙였다.
“누군가를 길들이는 것은 간단합니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정기적으로 주는 겁니다.
그러다 한 번 두 번씩 필요한 것을 안 주기 시작하면 말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필요한 것을 조건으로 무언가를 요구하면 그 필요한 것 때문에 말을 듣게 되는 것이지요.”
왕유삼은 중국 국가 안전부 (MSS) 소속으로 미국에서 얻은 정보를 MSS에 전달하는 임무를 띄고 파견되었으며 미국에서는 금융업자의 신분으로 활동하는 중이다.
그러다 북한이 미사일을 쏴대자 급하게 중국으로 건너가 오방국에게 북한의 움직임에 동요하지 말 것을 얘기하는 중이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한 두뇌와 예의 바름, 윗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 같은 모습을 보인 덕에 MSS에서도 승승장구,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오방국의 신임을 얻어 그의 오른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 자네 말대로 돈도 돈이지만 필요한 것을 줘야겠지. 조만간 김정은을 한 번 만나야겠어.”
사실 왕유삼의 얘기가 아니었어도 중국은 북한이 움직인다고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중국이 움직이는 순간 미국이 움직일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며
미국이 움직이면 중국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굳이 미국이 아니더라도 중국은 북한의 움직임 정도에 대응하기 위해 무슨 군사적 활동을 할만한 국가가 아니다.
정말로 비상사태가 되면 모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방국이 왕유삼을 미국에서까지 불러들인 건 최종적인 자기 확신을 위해서다.
후진타오 주석에게 보고 하기 위한 방점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MSS의 최고 요원으로부터 확보된 이야기라고
덧붙이는 것이 신뢰성 있는 보고를 만들기 때문이다.
“후진타오 주석께 보고를 해야겠군. 지금 비상시국이라 상당히 예민하시거든.
그나저나 미국은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특별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늘 있는 일본과 한국과의 마찰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독도를 둘러싸고 수 십 년 째 이어져 온 갈등이니까요.
거기에 북한이 엑스트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냥 그런 정돕니다.”
“그래? 일본이나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움직일 일은 없겠지?”
“아무리 미국이라도 그건 쉽지 않습니다. 북한은 과거의 베트남이나 이라크 또는 아프간과 다릅니다.
북한이 허공에 대고 미사일 몇 번 쏜다고 쉽게 움직이지는 않을 겁니다.”
“알겠네. 역시 자네라니까.”
오방국은 만면에 웃음을 띈 채 왕유삼을 바라보았다.
Legg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