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약관화(明若觀火,
불을 보듯이 확실하게 살자)
심완 박전상환
1.
우리는 늙지 말자(不老)
익고 익어(日久月深)
성숙(歲月成熟)하자
노인(嫌老人)이 되지 말고
어른(大丈夫)이 되어 가자
긍지(矜持 보람)와
자부심(自尊心)으로
우리의 삶(人生) 채우자
2.
영혼(靈魂)이
담긴 말(言語)과
진심(眞心) 열심(烈心)
담긴 행동(行爲 動作)
따뜻한 배려(配慮) 격려(激勵)
열정(熱情passion)이 묻어나는
모범(模範)이
되는 노후(老後)를
보여주자(明若觀火)
후세(後世)에
3.
나이(歲壽)가 들었음을
노인(老人)이라
하지마라(言稱)
책임감(責任) 의무감(義務)의
우리는 젊어(過去靑春)보았다
너희(젊은이)는
늙어(年老)보았냐
한번 묻고(質問) 싶구나
ㅡ 마음그릇 心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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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약관화(明若觀火)
마음그릇 心椀 박 찬
우리의
지혜(智慧)롭고
현명하신 선조(先祖)들께서
남겨 주신
옛말(고사성어) 중에
《명약관화(明若觀火)》라는
말(문구 경구)이 있다.
불을 보듯 뻔하다는 뜻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한자(漢字)를
풀어서 설명하면
명(明 : 밝을 명)
약(若 : 같을 약)
관(觀 : 볼 관)
화(火 : 불 화)
그대로
직역(直譯)해서
해석(解釋)하면
"
밝기(明)가
불(火)을 보는 것(觀)과 같이
뚜렷하고 분명(若)하다.
즉,
어떠한 일(事物)이나
사람(人物)에 대해 궁금하고
의심(疑究心)할 만한
그 어떠한
남겨진 여지(餘持)없이
매우 확실(確實)하고
마치
불을 보는 것(觀火)처럼
분명(分明 명명백백)하고
뻔하다.
”
라고 하는 뜻과
의미(意味)이다.
어떠한 사건(事件)이나
사실(事實)이 너무 분명하고
확실(確實 확인된 사실)하여
삼척동자(三尺童子)도
능히 알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자꾸만
이런 저런 중언부언(重言復言)
온갖 핑게(이유)를대거나
자기 변명(辯明)을 하며
잡아 뗄(否認) 때 흔히 쓰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명약관화(明若觀火)
그 밝기가 마치(明若)
불을 보듯 뻔하다(觀火)고 하는
이 말(문구 문구)은
뻔히 들통 날 일을
억지를 부려가며 잡아떼거나
너무나
뚜렷한 증거(證據)가 있는데도
오리발 내는 뻔뻔한 사람에게
잘 들어맞는 말이다.
줄여서
약관화(若觀火)라고
하기도 한다.
이처럼 귀에 익은
자주 사용하는 말이라도
그 유래(流來)와
기원은 아주 오래 됐다.
중국
고대의 요순(堯舜)과
하은주(殷周)시대의 기록
서경(書經)에 처음 나오는
고사성어(故事成語)이다.
항상(恒常 언제나)
받들고 숭상(崇尙)해야 한다고
상서(尙書)라고도 하는 책인데
삼경(三經)이라 할 때도
오경(五經)이라 할 때도
반드시 꼭 들어갈 정도로
매우 중요시했다.
《명약관화(明若觀火)》는
서경(書經)
제3편 상서(商書) 제9장
반경상편(盤庚上篇)에 있는
이야기이다.
서경(書經)
3편인 상서(商書)의
반경(盤庚) 상편에는
"
予若觀火(여약관화)
나는(반경왕 般庚王)
불을 보는 것(觀火)처럼
잘 알고 있다.
"
라고 표현한 것을
송(宋)나라
채심(蔡沈)이 쓴 주석인
집전(集傳)부터
바꿔 썼다고 한다.
다시 한번 정리해서
명약관화(明若觀火)를
설명하면
명약(明若)은
밝게 보임의 뜻이고
관화(觀火)는
불을 보다의 뜻으로
불(火)을 보듯이
분명히 알 수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밝기가
마치 불을 보는 것과 같이
아주 뚜렷해서
도무지 의심할
남겨진 여지(餘知)가 없다는
말이다.
원래의 표현인
여약관화(予若觀花)에 대한
채심집전(蔡沈集傳)의
주석(註釋)에서 유래를 보면
기원전 14세기
상(商)나라의
19번째 임금(19代 君王)인
반경왕(盤庚王)은
폭군(暴君)
주왕(紂王)을 쫓아내고
상(商)나라를 세운
탕왕(湯王)의
9대손(九代孫)이다.
반경왕(盤庚王)이
통치(統治)하던 시기
19대로
왕위(王座)에 오른
반경왕(盤庚王)은
당시
국력이 쇠퇴해져
분쟁이 잦았고
거기에 더해서
자연재해가 발생하여
백성들의
사회적으로 동요(動搖)와
불안(不安)이 가중되었다.
여기에
귀족(貴族 권문세가)들은
사치(낭비)를 일삼았고
제후(帝侯)들이
궁궐에 입조(참가)하지도 않는
혼란한 상황이 계속됐다.
반경(盤庚王)은
이 혼란한 상황을 벗어나
자신의 통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하여
도읍(都邑 수도)을
종엄(從奄 산동 곡부)에서
은(殷) 지방(地方)
(지금의 하남의 안양)으로
옮기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많은 대신(신하)들의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다.
반경(盤庚王)은
조정 대신(제후군신)들의
반대 여론을 설득하기 위해
여러 차례
그들을 설득(說得)하고
훈계(訓戒)하였다.
"
지금(至今 현재)
하늘의 뜻(天命)을
따르지 않으면
하늘이
명을 끊을지 모르는데
무조건 반대하는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予若觀火 予亦拙謀 作乃逸.
여약관화 여역졸모 작내일
나는(반경왕 般庚王)
불을 보듯 훤히 알고 있으나
졸렬(拙劣)하게
일(國事)을 처리하여
그대(제후신하)들을
안일(무사안일)하게 했소.
"
결국
반경왕(般庚王)은
설득(說得)에 성공하여
수도(도읍지)를 옮겼는데
이후
은(殷)나라로
국호(國號 나라 이름)를 바꿔
부르게 됐다.
수도(도읍)를 바꾸고 부터
신뢰(信賴,
믿음)를 바탕(根本)으로
국정을 안정(國政安定)시킨
반경왕(般庚王)은
이후(以後)
200여 년(二百年) 동안
번성(繁盛)을 이루었다.
한 때의
위기(危機)를 벗어나
모면하기 위해
거짓(假實)을 둘러댄다면
언젠가
반드시 들통 나고
신뢰(信賴, 믿음)는
깨어지고 만다.
사람과 사람 사이
각각(各各)
개인 간의 관계(關係)도
모두 믿음(信賴 신뢰)으로
이뤄지는데
하물며
한 국가(國家 나라)의 정책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언제나
옳은 바르며
정의(正義)로은 일을
밀고 나가는데
성공(成功)을
뒷받침할 신뢰(信賴, 믿음)가
근본 바탕(根本)에 없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은(殷)나라
반경왕(般庚王)이 말하기를
“
임금(君王)인
내가(般庚王) 와서
이미 이곳에
정착하고 있는데
우리 백성들을
모두 아끼고 소중히 여기어
누구도 죽거나 잃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서로가
서로를 바로 잡아 주며
살 수 없게 되었소.
여러분(제후대신)들은
사사로운 마음을 물리치기에
힘쓰고
오만하게
자기 자신의 편(안락)함만을
따르지 마시오.
내가(반경왕)
스스로 이 덕치(德治)를
버린 것이 아니라
그대(제후대신)들이
덕치(德治)를 버리어
나(반경왕) 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소.
나는(般庚王)
불을 보는 것처럼
잘 알고 있으나(予若觀火)
나(반경왕도
어리석고 졸렬(拙劣)하게
일(政事 나라 일)을 계획하여
그대(제후신하)들에게
허물(虛物 잘못)이 되었소.
그물(網)에
조리(笊籬)가 있어야
어지럽게 문란(紊亂)해지지
않게 되는 것과 같이
(若綱在綱, 有條而不紊)
농부(農夫)가
밭(田畓)에서 일하고
힘들여 농사를 지어야만
또한
풍성한 가을(豊年 태평성대)이
있게 되는것과 같은
일이오.
”
라고 훈계(訓戒)했다.
바로 이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라는
말의 유래(流來)이다.
명약관화(明若觀火)라는
표현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명약관화(명명백백)한 일을
가지고 발뺌(편명)하려 하거나
뻔히
들여다 보이는 것을 가지고
자기 자신만 알고
남(他人)들은
절대 모르려니 생각하여
남(타인)을 속인다는 뜻의
말이다.
동약관화(洞若觀火)
라고도 이야기하기도 하며
불을 보는 것처럼(觀火)
분명함(明若)이라는 뜻이다.
참고적으로
명약관화(明若觀火)와
비슷한 뜻의 한자성어
유사한 표현으로
일목요연(一目瞭然)
명명백백(明明白白)
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즉,
의심(疑究心)할 여지없이
분명하고 명확하다는 뜻과
의미(意味)이다.
여시아문(如是我聞)
나는 이와같이
보고 듣고 배웠다.
- 終 -
강원도 정선 동강 변
별빛총총한
초가삼간두옥
묵우당(墨友堂 글벗터)에서
우바새(優婆塞)
마음그릇 心椀 박 찬
(박전 상환)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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