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단풍
개미떼들이 집회를 하는지 분주한 블록 포도 줄기 문양의 돌앞에서 발길이 멎는다.
무심한 대리석 앞에 외롭게 피어 있는 하얀 꽃 한 송이.
우울하다.
때 이르게 떨어진,
절반은 아직 짙푸른 초록빛으로 남고, 절반은 빨갛게 타다 끝머리에서 갈색으로 마르면서 돌돌 말린 낙엽이 눈에 띈다.
낙엽 한 장에서도 치열했던 삶의 흔적이 보이면서 마음이 서글퍼진다.
저런 잎들을 사람에 비유하자면, 아... 잠시 숨이 멎는 듯하다.
묵직한 돌덩이가 내리누르는 듯하면서 또 위로 치받는 이 느낌의 실체는?
오늘은 때 이르게 저문, 한 생명을 배웅한 날.
그리고 그 신호를 받아 들인 내 몸이 아픈 날이다.
아니, 가슴으로부터 통증이 올라와 전신에 퍼졌다 해야 맞다.
그 통증은, 육신이라는 껍데기에 의존하고 있는 정신이라는 것이 얼마나 알량한 것이냐를 냉소하며
더욱 아파오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길가의 돌과 꽃들을 향해 나직한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그리고 덩쿨나무의 꽂송이가 드리워진 푸른 하늘과 흰구름을 올려다 본다.
통증이 또 다시 발끝에서부터 올라온다.
솜뭉치 같은 뭉게구름을 보면서 나는 바닥을 발끝으로 꾹 눌렀다.
타의에 의해 부풀려진 풍선처럼, 끈을 놓는 순간 하염없이 올라갈 것만 같았다.
하늘, 구름, 그리고 천국이라는 곳...
머리속이 어지럽고, 허기가 마술을 부리는지 현기증 비슷한 느낌이 서늘한 바람의 감촉과 함께 뻥 뚫린 가슴을 통과한다.
아니 벌써, 이 가을의 느낌을 내 몸이 알아차린 걸까.
관절의 통증이 그렇다고 반갑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레이저 수술을 받은 발가락도, 근육주사의 통증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느새 내 발길은 '온스타일'이라는 헤어샵을 향하고 있다.
작년부터였나, 흰 머리가 많이 생겨서 새치를 감출 때 써왔던 4대 6의 왼쪽 쓸어 넘기기도 별 효과가 없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그래도 기어이 숨기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건 새치였다(이젠 새치 수준을 넘었지만).
탤런트 문숙, 힐링 품의 정덕희 선생을 떠올리며
나도 용맹하게 두피를 뚫고 비온 날의 목이버섯처럼 빠른 속도로 솟아 오르는
하얀 머리카락을 그대로 둬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했지만,
상상해보니 조용한 성격의 나에게, 그건 더욱 음울한, 심지어 환자의 느낌마저 주는 을씨년스러운 초상화였다.
그런 과감한 '자연주의'가 나에게는 뭔가 발칙한, 여물지 못한 곡식알의 느낌일 것이다.
서늘한 바람, 더욱 구슬픈 풀벌레 울음 소리,
건조한 공기가 사르락거리는 기척을 내면서 내 가슴을 두드린다.
방금 길가에서 보았던,
빨갛게 타다 떨어진 나뭇잎(일찍 진 생명을 단풍이라 하기에는 잔인한 느낌마저 든다)은
오늘 한 생명을 저 세상에 배웅한 나에게 결코 무심한 풍경일 수 없다.
모든 생명이 저 지평선처럼 끝이 보이지 않으면 좋으련만... 슬픔이 마음에 고인다.
수천 마리도 넘을 개미떼들이 군집해 있는 보도 블록을 보면서,
위에서 보시기에 우리 인간 군상이 저 모양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개미떼들의 모습은 너무 징그러워서 끝내 찍지를 못했다)
첫댓글 이춘희 선생님 벌써 가을 타세요? 저도 여름이 지나고 살짝 아침저녁으로 선선해 질때쯤 몰려오는 서늘함이 두려워요. 이번 가을엔 둘이서 손잡고 가을 탑시다.
예전엔 봄도 가을도 심하게 탔었는데 이젠 아무것도 안타요.
이&안 샘보다 인생을 더 살아낸 저력이라고나 할까. ㅎㅎ
@민혜 추녀가 되버렸어요ㅠㅠ
네, 둘이서 함께 ㅎㅎ
때 이르게 저문 한 생명을 배웅한 날?
혹시 말말의 주인공이?
아니면 그 새끼?
그랬나요?
많이 아팠을 것인데
춘희 씨 역시 감정 절제가 대단하십니다.
역시
자아가 강해 절제의 필요성을 항상 느낍니다. 한 마디로 수행이 필요한, 두 끗 정도는 모자라는 사람.. 친척이 간암으로 일찍 가셨어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