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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 글은 소설입니다. 따라서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나 기관 혹은 단체명은
이해를 돕기 위해 편의상 사용한 것이며 실제와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2. 본 소설은 팩션입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깁니다.
3. 소설이라는 특성 상 등장하는 연도는 실제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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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9월. 여의도.
양 손을 깍지 끼고 그 위로는 턱을 괸 채 긴 생각에 잠겨 있는 윤여준은
책상 위에 복잡하게 펼쳐져 있는 종이 위로 시선을 던졌다.
종이 위에는 연필로 다양한 화살표와 동그라미, 사람 이름과 기타 여러 문장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미동도 없이 종이를 바라 보던 윤여준은 깊게 한 숨을 내쉬더니 인터폰으로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렸다.
“안철수 교수 연결해. 그리고 법륜 스님도 연결하고.”
지시를 마치고는 의지를 창가 쪽으로 돌려 창 밖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장기판이 차려졌으니 이제 말을 구해야지’
상왕 이명박의 부탁을 받고 두문불출한지 2주 동안 윤여준은 수 없이 많은 가능성과 수 없이 많은 대안 그리고 수 없이 많은 인물들을 떠올렸다 지우고 썼다가 폐기하기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마지막 전략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그려 놓은 판 위에서 열심히 춤을 춰줄 말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들이 거절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쉽게는 거절 못할 것이다.
그들이 거절하지 못할 약점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으니까.
이번에도 성공해야 한다라는 압박감이 가슴을 눌러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펼쳐지는 어둠은 이상하리만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겉으로 보면 우아해 보이지만 당에서 가장 지저분한 일을 도맡아 해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곤 하지만 그래도 이 일을 멈출 순 없다.
어찌 보면 숙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여당이어야 했다. 정치판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여당이어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당 쪽에서 권력을 잡고 있어야 함을 지난 10년 동안 뼈저리게 느꼈다.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많이 피우지는 못하고 한 개피의 반은 그냥 태우는 정도다.
벌써 30년이 넘게 이 일을 하고 있다니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다.
그 동안 꽤 많은 성공을 거뒀다.
대표적인 것이 노태우 당선과 삼당 합당을 통한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이었다.
헌정사상 최초로 국민 직선제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그의 임무는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든 노태우를 당선시키라는 것이 전두환의 명령이었고 장세동에 의해 그 내용이 전달되었다.
그 때는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일했다.
만약 노태우가 당선되지 않으면 서슬퍼런 군사정권의 권력이 자신의 목을 겨눌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때 윤여준이 취한 전략은 이간질이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을 이간질시켜 최대한 표를 분산시키는 것이었다.
김영삼과 김대중 모두 자기가 야권에서의 대통령 적임자라며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처럼 언론을 조작했다.
당시 언론 조작은 지금보다 몇 배는 쉬웠다.
뿐만 아니라 유세장에서의 폭력도 조작했다.
김대중이 부산에 유세를 가면 김영삼 지지자들이 김대중 일행과 지지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김영삼이 호남으로 유세를 가면 또 그 반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지역 조폭에게 용돈 좀 쥐어주면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두 사람의 사이는 악화되었고 서로 포기를 몰랐다.
결국 힘을 합치지 못한 그들은 노태우에게 권력을 넘겨줘야 했다.
그리고 나서 몇 년 후 윤여준은 삼당 합당을 유도했다 노태우 이후 여당에는 대통령이 될만한 인물이 없었다.
다들 고만고만 했거나 대통령이 되어 주목 받기 보다는 뒤에서 드러나지 않고 돈 챙겨 먹는 걸 더 좋아했다.
그래서 외부 수혈이 필요했다.
마침, 김영삼은 대통령이란 자리에 대한 욕심이 굉장했기 때문에 삼당 합당에 대해 발생할
부정적인 여론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을 것처럼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김종필은 충청도 표를 위한 구색 맞추기였다.
그는 박정희의 이른바 똘마니 정도였기 때문에 어차피 대통령감이 아니고
대통령 후보가 된다 해도 대통령이 되지는 못한다고 판단했다.
김종필 스스로도 어느 정도 권력만 가질 수 있으면 굳이 대통령이 되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을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김영삼은 달랐다.
민주주의고 뭐고 간에 그의 대통령에 대한 욕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그랬기 때문에 살살 꼬드기자 넘어올 수 있었고 삼당 합당은 성공했다.
거물 김대중을 무너뜨리고 또 한 번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영삼 이후가 문제였다.
김영삼이 나라를 부도 내는 바람에 어떻게 손을 써도 역부족이었다.
모든 언론을 동원해 빨갱이 올가미를 씌워봤지만 승리는 김대중이었다.
그것은 인정했다.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는 충격이었다.
노무현한테도 패하자 그는 당 내에서 위기에 몰렸다.
첫 번째는 여러가지로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 내에서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악조건 속에서도 박빙의 승부로 안타깝게 패한 것에 대해서 아쉬워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두 번째는 달랐다.
무조건 이겼어야 하는데도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며 화려하게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또 다시 권력을 저 쪽에 넘기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본인의 존재 이유니까.
“제가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청담동의 어느 고급 일식집의 가장 안 쪽에 마련된 방.
웬만큼 중요한 손님이 아니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방에 윤여준이 안철수와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럼, 내가 준비한 시나리오대로 움직여 주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안철수의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며 윤여준은 이상득의 반응을 떠올렸다.
그 역시도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철수의 이런 반응을 미리 예상했기에 그의 약점을 미리 조사해 둔 것이다.
“자네 말이야, 포스코 사외 이사로 있을 때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걸로 아는데.
카이스트하고 서울대로 임용됐을 때도 그렇고.”
윤여준이 안철수의 빈 잔에 술을 따라주며 직격탄을 날리자 안철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안 사람하고 아이는 유학 잘 하고 있지? 유학에 돈 많이 드는 걸로 아는데. 거기 집도 꽤 비싼 돈 주고 샀다지, 아마?”
“대체 저한테 원하시는 게 뭡니까? 왜 조용히 잘 살고 있는 저에게 이러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족 얘기까지 나오자 안철수는 불안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역시, 사람은 약점을 잡으면 다루기가 쉬워진다.
이러니 저러니 힘들게 설득할 필요가 없어진다.
반면에 며칠 전 이상득을 설득할 때는 탈진할 뻔했었다.
이상득은 쉽게 동의하질 않았다.
굳이 그렇게 복잡하게 갈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검찰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고 필요하면 국정원도 동원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복잡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안철수가 과연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이 있느냐가 불만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박근혜의 당선입니다.
어차피 이번에 우리 당에서 대선후보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달리 없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당선을 시키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무조건 표를 많이 가져와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표를 많이 가져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쪽 지지자들은 집결하게 하고 상대편 지지자들은 분열시켜야 합니다.
표를 흩어놔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저쪽에서는 누가 후보가 될지 모르겠지만 누가 돼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이제는 사람들이 식상해 하는 기존 정치판에 있던 사람일 테니까요.”
윤여준의 생각은 이랬다.
기존의 정치인이 아닌 전혀 새로운 인물이 대안으로 제시된다면
현재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국민들은 열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야권에 지지자들은 분산될 것이다.
물론 단일화 과정을 거치겠지만 누가 되도 상관없다.
어차피 그 과정에서 한 쪽 지지자들은 단일화 결과에 불복해서 선거 자체에서 이탈하도록 단일화 과정을 만들면 되니까.
가장 좋은 그림은 안철수가 단일 후보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지만 그건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다.
안철수가 후보가 되어도 상관없고, 그렇다면 이쪽에서 조종하기는 더욱 쉬워진다.
“그런데 안철수가 그럴 능력이 있는 거야?”
“지금부터 만들면 됩니다. 이미지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쉽게도 어렵게도 만들 수 있습니다.
안철수는 완전히 새로운 정치적 인물로 기존의 신문과 같은 언론이 아닌 TV 토크쇼, 인터넷
그리고 젊은이들과 현장에서의 만남 등으로 접근할 예정입니다.
대중은 무지몽매하니까요. 그냥 그들이 기대하는 것을 채워주는 시늉만 해주면 됩니다.”
이상득은 아무 말 없이 생각에 빠졌다.
조금 복잡하긴 하고 안철수란 인물에 대한 신뢰가 지금은 없다고 해도 윤여준이 몇 달을 고민해서 가져온 결과물이다.
대안이 없는 지금으로서는 믿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넣을 건 넣고 뺄 건 빼면 된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좋아. 진행하지.”
이상득의 대답을 닫고 윤여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아, 그리고 이 내용은 이명박 대통령께는 비밀로 하는 겁니까?”
“그게 좋을 거야. 걔는 알아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
안다고 해도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아이도 아니고. 우리끼리만 알고 있자고.”
Legg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