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화포천에서
오월 둘째 금요일 아침이다. 근교 들녘으로 나가기 위한 교통편을 열차로 이용하기 위해 창원중앙역으로 가려고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따라 퇴촌교로 향하니 도민의 집으로 가는 가로수길은 메타스퀘이어가 연초록 잎이 돋아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구쳤다. 갈색으로 물들던 늦가을 단풍도 그랬지만 오월 신록도 원뿔형으로 줄지은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퇴촌삼거리에서 창원천 천변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니 냇바닥은 꽃창포가 무성하게 자라 노란 꽃을 피웠다. “비음산 꼭뒤에서 용추골 빠져나와 / 창원대 앞을 거쳐 퇴촌교 다다르자 / 잦은 비 냇바닥 식생 시퍼렇게 자랐다 // 집집이 정화조로 오염원 없는데도 / 흐린 물 맑게 해줄 창포가 무성해서 / 시냇물 한 번 더 걸러 맑디맑게 흘렀다” 보행 중 즉석에서 읊조린 ‘창원천 꽃창포’다.
창원중앙역에서 이른 아침 진주를 출발해 동대구로 가는 무궁화호를 타 진례를 지난 진영역에서 내렸다. 짧은 구간을 이용한 승객은 나와 젊은 병사 한 명으로 그는 향토사단이 소재한 군북역에서 타고 온 듯했다. 역사를 빠져나가 화포천 아우름길로 향하니 철길 건너 먼발치 봉하마을은 뒷동산 사자바위가 드러났다. 야트막한 언덕에서 단감과수원을 지나자 화포천 습지가 펼쳐졌다.
진례에서 흘러온 냇물에 놓인 징검다리로 향하니 머리 위로는 진영휴게소에서 분기한 부산 기장 외곽 고속도로가 높은 교각으로 걸쳐 지났다. 눈앞에는 경작지로는 활용되지 않는 꽤 넓은 저지대 습지가 나왔다. 큰비가 내릴 때만 황토물 내수가 고였다가 비가 그치면 초지로 바뀌는 저지대다. 초목이 시든 겨울이면 철새들이 날아와 먹이활동을 하기 좋은 곳인데 녀석들은 모두 떠났다.
물억새와 갈대가 세력 좋게 자라는 덤불에는 찔레나무도 무성했는데 꽃이 피어 절정이었다. 꽃과 함께 새 움으로 솟는 순을 하나 꺾어 껍질을 벗겨 입에 넣으니 달짝지근한 맛이 느껴졌다. 어릴 적 하교 후 꼴망태 매고 쇠꼴을 베러 나간 밭둑에서 찔레순은 삘기에 이은 천연 간식이었다. 찔레순이 쇠어서 꺾어 먹지 못할 때면 뽕나무에서 까맣게 익은 오디가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추억을 떠올리며 산책로를 걸어 화포천 생태학습관에 다다랐다. 몇 차례 들린 학습관은 오르지 않고 벚나무가 줄지어 자라 녹음이 우거진 둑길을 걸었다. 숲길이 입소문으로 퍼졌는지 어디선가 차를 몰아 왔을 몇몇 산책객이 스쳐 지났다. 메깃국이 알려진 맛집까지 가지 않고 도중에서 냇바닥으로 내려서 갯버들이 자라고 물웅덩이가 고인 습지를 지났다.
물총새를 비롯한 여름 철새가 찾아와 둥지를 틀어 새끼 칠 화포천 습지였다. 인적 없는 산책로에는 갯버들 숲에서 간간이 새소리만 들려왔다. 습지가 끝난 국궁 활터에 이르자 안전모와 유니폼을 갖춰 입은 사내들이 다가왔다. 어디선가 차를 몰아온 그들은 ‘건설품질연구원’ 직원들로 철로 구조물 안전 진단을 나온 듯했다. 화포천 천변으로는 KTX 선로가 여러 개 다릿발로 지난다.
한림정에 닿아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받아들고 한림정역 광장 쉼터에 앉아 마셨다. 이후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들길을 더 걸어 배수장에서 술뫼 지인 농막을 찾아도 되겠으나 그럴 틈은 나질 않았다. 모정에서 오는 57번 버스를 타고 진영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려니 진말에서 봉하를 둘러서 갔다. 버스가 봉하에서 돌아 나올 때 노 대통령 15주기 추도식이 가까워진 무렵인가 싶었다.
진영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산 상리까지 하루 서너 차례 다니는 3번 마을버스를 탔다. 신도시 아파트단지를 벗어난 들녘 비닐하우스단지를 거쳐 유등으로 내려간 버스는 우암에서 가술로 되돌아왔다. 나를 국도변에 내려준 기사는 상리 종점으로 떠나고 식당으로 들었더니 식사를 마쳐 가는 손님들이 그득했다. 강변 파크골프장에서 여가를 보내는 동호인들이 월례회를 하느라 왁자했다. 24.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