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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령 피레네 산맥의 정상에 가면 좀처럼 붙잡기 힘든 산양들의 아름다운 장관을 볼 수 있다. 이 산양들은 언제나 사정거리 밖에만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근처에 적이 어른거릴 때면 신호를 해주며 따라다니는 젊은 양이 있기 때문이다. 코뿔소는 시력이 매우 약하다. 그렇지만 코뿔소의 단단한 등에는 진드기들이 모여 있어서 이를 즐기는 이름모를 작은 새들이 항상 날아와 앉아 있다. 이 새들은 등의 벌레를 먹기도 하지만, 코뿔소에게 위험이 있으면 이를 알려주기도 한다. 오소리의 일종인 라텔과 허니 가이드 새는 꿀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 둘은 항상 같이 나돌아다닌다. 작은 새의 예리한 눈은 꿀이 든 벌집을 금방 정확하게 찾아내고 라텔의 강한 발톱은 벌집을 찢어서, 서로에게 꿀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당신은 다른 이들과 혐력을 통해 자신의 약한 부분을 도움받고 계십니까? 빌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7월 6일(주일)에 목포에 있는 주소망교회에서 총동원주일을 가지는데 제가 가서 사역으로 돕고자 합니다. 5일에는 지역에서 찬양하며 전도하고 6일 예배 때에 교회에서 찬양하고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 목: 아름다운 만남 성 경: 출18:1-26 / 행11:1-48 <서론> 사람은 만남으로 살아갑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적 섭리의 손길을 만남으로 한 인생의 생명이 시작됩니다. 부모라는 끈끈한 사랑의 관계를 만남으로 온갖 보호와 관심과 사랑을 받아 누립니다. 자라면서 가족들과 친척들을 만나며 이웃과 친구들을 만납니다. 선배와 스승을 만나며 후배와 제자를 만납니다.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만남이 있고 우리를 파멸로 인도하는 만남이 있습니다. 성도와의 만남이 있고 불신자와의 만남이 있습니다. 주안에서의 만남이 있고 주밖에서의 만남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집니다. 여기에는 의미있는 만남이 있는가 하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무의미한 만남과 무표정한 헤어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진실로 아름다운 만남을 보게 됩니다. 그 만남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와 그의 장인 이드로의 만남입니다. 이들의 만남은 참으로 아름다운 만남이었습니다. 여기서 아름답다고 한 것은 단순히 절하고 입맞추고 문안하는(7절) 예의바름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제 이들의 만남이 왜 아름다운 만남인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고 우리의 만남에 있어 교훈으로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본론> 1. 복음이 전파되는 만남이기에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본문 1절에 모세의 장인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가 모세의 처자를 데리고 모세를 방문하게 됩니다. 모세가 언제, 어디서,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미디안으로 되돌려 보내었는 지는 성경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추측으로는 모세가 하나님게 소명을 받고 그의 처와 두아들과 함께 애굽으로 귀환 하던중 아들의 할례문제로 인하여 하나님에 의해 죽을뻔한 위험을 겪은 이후에 가족을 다시 장인에게 보낸 것으로 생각합니다.(출4:24) 이같은 결정은 앞으로 모세가 애굽에서 직면하게 될 여러 난관을 예상하고 가정으로 인해 결단력이 약해질 것을 피하기 위한 현명한 조치였습니다. 이처럼 사역자들은 모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부름에 나설때 결연한 행동을 취해야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눅18:29-30)에서 예수님께서 이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모세가 가족과 이별하는 이러한 결단이 곧 가족과의 모든 관계를 청산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별거는 잠시동안 이었으며 사역을 마쳤을때,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결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족과의 별거는 사명을 위한 특별한 경우이고 결합은 하나님의 일반적인 법이요, 명령입니다. (벧전3:7) 에 "남편된 자들아 이와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게 받을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출애굽의 사명을 달성한 후 하나님의 인도로 가족들과 다시 합하였던 것입니다. 가족과의 재회는 출애굽 이후 하나님게서 모세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이었습니다. 헤어진 가족과의 상봉은 인간의 어떠한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격적인 사건 입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이러한 가족 상봉에 대해 극히 간략하게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인간적인 정리나 회포를 풀기에 앞서 자신을 지켜주신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전역사를 주관 하셨던 하나님을 증거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8절) 특히, 이방인이며 미디안 이방종교의 사제인 장인 이드로에게 당대 최대 강국이었던 애굽을 굴복시킨 여호와의 능력과 구원을 간증하며, 전했습니다. 출애굽 직전에 애굽에 내려졌던 여호와 하나님의 열가지(피,개구리,이,파리,악질, 독종,우박,메뚜기,흑암,장자의 죽음)재앙의 대 역사와(7:14-12:30), 홍해를 육지같이 당당히 걸어서 건넜을때 추격해온 바로의 정예부대 병거 600승과 그외 많은 바로의군대가 홍해의 물속 깊히 수장되고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감격적인 홍해도하 사건(14장), 마라 에서는 쓴물이 변하여 단물이 되는 기적을 체험하는 마라 사건(14장), 하늘에서 메추라기와 만나가 내려 먹게된 만나와 메추라기 공급사건(15:22-26), 반석을 쳐서 물이 나게 만든 르비딤 사건(17:1-7),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이 피곤하여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아론과 훌이 모세 양편에 서서 종일 해가 저물도록 손을 붙들고 기도 하므로 이스라엘이 승리한 생생한 하나님의 역사(17:8-16)를 모세는 침이 마르도록 전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 만이 인류역사의 주인 되시며, 인간의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주시는 참 신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방 우상의 사제였지만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시는 엄연한 현실을 보고 들으므로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와같이 모세와 이드로의 만남은 하늘의 비밀과 복음이 전파되는 아름다운 만남 이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이 전파되는 만남은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창12장)에서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만남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믿음으로 축복의 근원이 되는 아름다운 만남이 됩니다. (행10:42-)에는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남으로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임하며 구원을 받게되는 놀라운 축복이 나타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수많은 이방인들을 만남으로 주님의 복음과 구원이 전파되어 졌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이웃과의 만남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무었입니까? 우리가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여러 사람들과 만납니다. 이같은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대부분이 세상화제로만 일관한다면 그 만남들은 궁극적으로 우리와 우리 이웃들을 유익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토록 많은 대화가 우리들사이에 오고감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문제투성이 미며, 사람들은 여전히 영적기갈로 고통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적으로 우리들의 대화속에 복음이 빠져있음을 보여줍니다. 복되고 아름다운 만남은 모세와 이드로의 만남처럼 복음이 전파되는 만남입니다. 2.모세와 이드로의 만남은 찬양이 있는 만남이기에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본문 8-11절에 "모세가 여호와게서 이스라렐을 위하여 바로와 애굽 사람에게 행하신모든 일과 길에서 당한 그들의 모든 고난과 여호와게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다 그 장인에게 고하매 이드로가 여호와게서 이스라엘에게 모든 은혜를 베푸사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너희를 애굽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 내시고 백성을 애굽사람의 손 밑에서 건지셨도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히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하고" 이드로는 모세의 간증과 이야기를 듣고서 여호와 하나님게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역사를 소문으로만 들었던 것을 이제 생생한 사실 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드로는 이방종교의 제사장 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을 단지 평범한 이방신과 다를 바 없는 신으로 이해 했으나 모세의 간증을 듣고서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이야말로 참 신임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단지, 소문으로 들어 아는 단계를 벗어나 이제는 하나님게 영광을 돌리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길수 있는 벅찬 기쁨을 경험하게된 것입니다. 본문 10절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라는 말씀에서 찬송하다는 말은 히브리어 [바라크]로서 '무릎을 꿇다, 송축하다'는 뜻으로서 겸손한 마음으로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방 제사장 이었던 이드로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부르며 찬양한 것은 이제 여호와 하나님 만이 유일하신 지존자 이심을 깨달았다는 증거 입니다. 이렇게 모세와 이드로의 만남은 참 하나님 안에서 참 믿음을 가지게 하므로 기쁨이 충만하여 놀라운 새로운 발견과 구원을 찬양 했습니다. 여러가지 만남이 있지만 그 만남들 중에서 아름다운 만남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와 찬양이 드려지는 만남입니다. (창14:19-20)의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의 만남처럼, (눅2:20)의 아기 예수와 시므온의 만남처럼 그 만남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님게 찬양이 드려지는 만남은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웃과 만나서 남을 비방하고 헐뜯으며, 마음에 상처를 주는 내용을 주된 대화로 삼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것은 결코 아름다운 만남이 아닙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헛된 자랑과 거드름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자랑하는 말을 은연중에 자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Ex.)시이저는 어느날 친구들과 귀족들을 위해 성대한 잔치를 준비했다. 그런데, 잔치를 베풀기로 한 날씨가 너무 좋지않아 그만 모든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몹시 화가 난 시이저는 활 가진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의 주신인 주피터를 향해 활을 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나쁜 날씨를 준데 대한 도전 이었습니다. 그래서 병사들은 명령대로 하늘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겼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조금있으니 하늘에서부터 화살이 떨어 지는게 아닙니까? 그것은 조금전에 병사들이 쏘았던 화살 이었습니다. 그 화살들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활 쏜자들의 머리에 도로 떨어지고 있는 화살 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자고나, 교만이나, 상처를 주는 말의 화살은 자기 머리위로 쏘아올린 화살과 같습니다. 결국은 조심성없이 마구 쏘아버린 무성한 말의 화살이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와 치명상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추구해 야할 대화는 헛되고 무익하며 어리석은 말이 아닙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통해 추구해야 할 바에 대해 말씀하기를; (시33: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웃과의 만남을 통해 헛된 자랑과 교만과 비방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만남이 될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3.모세와 이드로의 만남은 사랑과 신뢰가 있는 만남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만남입니다.(18-23절) 이드로는 모세에게 진실한 충고를 합니다. 비합리적이고 비능률적인 모세의 행정을 이드로는 보고 느낀 대로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직무를 지켜 본 이드로는 무리하게 과중한 일을 혼자 처리하고 있다고 느겼습니다. 그래서 이드로는 부장제도의 확립을 조언 합니다. 이스라엘은 더이상 야곱의 가족으로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하나의 민족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거대한 집단이 되었습니다. 소그룹은 지도자의 개인 능력 여하에 따라 그 앞날이 좌우 되지만, 한 국가는 개인의 능력으로 이끌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격무에 시달린 모세나, 모세의 지도력이 미치지 못하는 백성들 모두 에게는 불만이 깃들수밖에 없었습니다. 변화된 사회를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 체제는 반드시 무너진다는것은 역사의 교훈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위기의 순간이 다가왔으며, 이러한 위기를 포착한 이드로의 통찰력은 정확한 것이었습니다. 한편, 이러한 시점에서 모세는 이드로의 사랑과 진실이 담긴 제안을 바로 수용여 이스라엘 행정체계의 정비라는 일대 개혁을 단행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힘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히 양보할 줄 아는 모세의 포용성과 겸손의 정신을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변화의 시점을 바로 깨달아 이를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줄 아는 지도자의 기지를 알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오늘날 교회가 폐쇠된 세계관 속에 답보하는 이유는 변화된 세계에 복음의 문을 닫아 버리려는 독단적 순백주의 때문입니다. 과거 교회역사에서 철저하게 잘 믿어 보려는 정신으로 출발했던 에세네파나 은둔주의자들이 그들의 높은 경건성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력을 사회에 미치지 못했던 것은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구시대적 관습에 머무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새 시대에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기 원하는 자라면 자신의 몸에 베은 낡은 구습에서 변화시켜야 합니다. 모세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조직체계를 구성함으로써 장차 가나안에서의 생활을 위한 체제정비를 꾀하는 한편 험난한 광야 여정에 대한 순조로운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모세가 이드로의 의견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것은 둘 사이에 사랑과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즉, 장인 이드로는 모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의 어려움에 관해 조언했고 사위 모세는 장인의조언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믿었기에 그 충고를 순순히 받아 들일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만남은 두 사람을 모두 유익하게 하는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만날때 이웃을 통하여 내가 얻을 이익이 무었인가하는 것에만 몰두 하면서 만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익이 없고 도움이 되지 않으면 헌신짝 처럼 외면해 버리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만남에는 삭막함과 삐뚤어진 오기만이 남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을 위해 내가 무었을 할수 있는가 하는 것에 집착하는 참 사랑과 신뢰에 근거한 대인 관계를 추구해 나가야할 것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므로 내가 사랑과 신뢰를 보낼때 상대방은 그것을 확실히 감지하고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은 더 나은 사랑과 신뢰를 나에게 되돌려 보내게 될 것입니다. <결론> 성도여러분! 우리는 사랑과 인정이 메마른 거치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건조하고 딱딱한 세상이 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우리들의 대인 관계에 문제가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대의 조류에 따라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만남, 속 알맹이가 없이 습관화 되어버린 만남을 우리는 지양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진솔한 만남, 아름다운 만남을 이룰 수 있도록 우리의 대인 관계에서 복음과 찬양과 신뢰와 사랑이 넘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때에 비로소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가 사는 주변이 복되고 아름답게 바뀌어 질 것입니다. |
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상담과 지혜와 능력과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오늘도 복된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