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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2. 7. 26. 화요일.
날씨가 맑다.
무더운 여름철로 자꾸만 다가온다.
내가 1950년대 ~ 60년대 초중고교를 다닐 때에는 여름방학은 7월 24 ~25일쯤부터 시작하였다.
방학이 되면 대전역에서 경부선 완행열차를 타고 충남 천안역까지 올라갔다가 천안역에서 장항선 기차로 바꿔탄 뒤에 충남 서부쪽으로 자꾸만 내려갔다.
많은 것을 떠올리는 여름철이다.
1.
2022년인 지금은 만73살.
나는 많이도 늙었다. 당뇨병을 오랫동안 앓고 있기에 더욱 그러할 게다.
기억력도 가물거리고.
방금 전 지갑 속을 확인하다가는 깜짝 놀랐다.
지갑 속의 현금이 턱없이 부족하기에.
도대체 어디에다가 돈을 썼지?
내가 돈 쓸 일이 어디에 있다고?! 아니면 돈을 흘렸나?
7월 초순에 서울 잠실농협지점에서 현금을 인출하고는 그 돈을 가져오지 않은 채 그냥 집으로 되돌아왔을까?
하는 의구심이 자꾸만 든다.
방금 전에 어떤 일을 했는데도 이에 대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어쩌다가 문득 생각이 나기도 하고...
성깔이 급한 내가 화가 나니까 아랫배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추가 :
날마다 쓰는 일기장을 오후에 펼쳐보고서야 생각이 났다.
지난 7월 8 ~ 9일 시골로 내려가서 웅천장례식장에 문상 다녀왔던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이틀간의 자동차 왕복 유류비, 문상비, 기타 잡비 등으로 사용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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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한국국보문학카페>에 오른 글 하나를 보았다.
이헌 조미경 님의 '달콤한 미숫가루의 힘'
내가 아래처럼 댓글 달았다가 오늘은 이를 퍼서 '세상사는 이야기방'에도 올린다.
남의 글에 댓글 달고는 내가 까맣게 잊는 사례가 제법이나 많다.
때로는 글 쓴 이가 독자의 댓글을 임의로 삭제하는 경우도 있었다.
댓글도 하나의 소중하기에 함부로 없애서는 안 될 것이다.
아래는 내 댓글 :
엄마는 집 앞마당에 있는 펌프로 뿜어 올린, 시원한 지하수에서 막 담아온 맑고 시원한 물에
사카린을 녹여서 미숫가루를 타 주셨다.
위 글에서 '사카린'이란 낱말을 보았습니다.
예전에는 숱하게 사다가 물에 타서 마셨지요.
내가 기억하는 1960대, 70년대에는 사카린(saccarin), 당원, 뉴슈가, 아스파탐 등이 있었다.
사카린은 설탕보다 300배 달고, 뉴슈가와 당원도 설탕보다는 10 ~20배 달았지요.
사카린은 하얀 모래알 크기였고, 당원은 하얗고 동그란했다. 물론 사카린보다 덜 달았다.
이들은 물에 타서 밀가루 찐빵에 넣거나 물에 타서 마셨다.
지금도 이런 식품자료를 시장에서 판매할까? 하는 의문조차도 든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원기소, 삼성당, 올리고당'의 용어도 나온다.
벌써 수십 년 전의 과거시대의 조미료이다.
미숫가루.
물에 타 먹으면 뱃속도 든든하고, 맛도 좋지요.
밥쌀을 볶아서 멧돌로 갈아서 만든 가루.
미숫가루를 타 마신 지도 오래됩니다.
당뇨병 환자이기에 많은 음식물을 자제했더니만.. 지금은 이름조차도 기억나지 않는군요.ㄷ
덕분에 과거의 기억을 잠시 떠롤렸습니다.
글맛 좋아서 엄지 척!
미숫가루와 사카린에 대해서 옛 기억이 조금은 떠오른다.
나중에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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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서울 송파구 잠실에 있는 비뇨기과에 한 달만에 들렀다.
아랫배를 내보이니까 보조원이 사진기로 뱃속을 촬영했다. 오줌보에 오줌이 얼마나 찼는지를 검사한다고.
나는 의사한테 말했다. 지난번 한 달 전에 약을 세게 처방했는데 그 약을 먹은 직후부터는 왼쪽 아랫배가 은근히 아팠다고.
지난 번의 다른 의사와는 달리 이번에는 과거처럼 약하게 처방했다.
늙으니까 별것이 다 속을 썩힌다.
병원비 약값도 제법 많이 들어가고.
대장염, 위내시경 촬영도 검사받아야 하는데도 종합병원에 가기를 꺼려했다. 그 놈의 코로나-19에 혹시나 감염됄까 싶어서. 사람 많은 장소에는 으레껏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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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화분용 흙을 뜨겁게 삶았다.
화분 속의 벌레와 병균이 겁이 나기에. 아파트 실내에 크고 작은 화분 100여 개를 올려놓고는 날마다 들여다보는 내가 ... 나를 보아도 지나치다는 느낌이 든다. 화분에 대한 욕심이 지나친 탓일 게다. 시골집 바깥마당에서 화분을 다룬다면 화분 흙이 아무 데나, 아무렇게나 떨어져도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파트 베란다에 붙어 있는 수돗가에서 화분을 다루자면 왜그리 흙이 잘 떨어져서 주변을 더럽히는지. 물걸레로 일일히 닦아내려면 이것 또한 많은 스트레스가 생긴다. 별것이 다 속상하게 한다. '화분 모두 없애버리면 간단할 것을.'
시골에서 살다가 서울 올라왔더니만 무엇이라도 꼼지락거리면서 일하는 체를 해야 하기에 화초 가꾸기를 한다. 숱하게 죽였고, 더러는 성공해서 식물-새끼가 자꾸만 늘어나는 화초도 있다. 하나의 예다. 알로에-사포나리아는 아마도 화분 20개쯤 됄 게다. 뿌리에서 자구(새끼)가 잘 생기니까.
몸은 서울에 있어도 마음은 시골에 내려가 있는 나.
서울에서는 할일이 없어서.. 날마다 백수건달이다.
2022. 7. 26. 화요일.
첫댓글 입맛이 없을때도 좋지만
어린시절 학교에 다녀오면 미숫가루를 많이 타서 먹었습니다'
그시절에는 지금처럼 콩이나 검은콩 없이 그냥 보리를 볶아서 미숫가루를 만든것 같아요
댓글 고맙습니다.
조 선생님 덕분에 옛 기억을 떠올려서 위와 같은 글 하나를 썼지요.
사카린.... 그거 하얀 가루인데도 무척이나 맛이 달았지요.
지금은 음식물에 넣어서 단맛을 더 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살 때 미숫가루를 만들려고 멧돌을 돌렸지요. 큰 멧돌... 돌학구에 넣고 짓찧기도 하고...
멧돌, 돌학구 등은 민속품 수집상이 울안에 몰래 들어와 많이도 훔쳐 갔지요.
마을안길 차를 돌릴 곳이 하필이면 제 마당끝이기에 외지의 차가 와서 차를 돌리는 체하면서... 빈 집에 들락거리며...
다 필요로 해서 훔쳐갔겠지요.
미숫가루에 검정콩가루도 섞고...
예전의 식품 맛이 아직도 제 기억속에 남았군요.
조 선생님 덕분에 글감 하나 얻었기에 거듭 꾸벅 꾸벅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