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검색창에서 좋은 글
한편을 읽고 이를 회람합니다.
(페데리코 페리니 감독, 안소니
퀸 주연의 길(La Strada) (유인호 제공)
※ 맛보기는 바로 아래에, 전체 영상은 이 글의
끝에 따로 첨부하였습니다.)
길고 뜻있는 글을 잘 읽지 않는
세태입니다마는 삶의 뜻을 찾아
해매는 영혼들에게 이 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 khc
길 (La Strada) 맛보기 - khc
https://youtu.be/IYyqazXIrIs?si=9uaYSgF_eksVRGlx
<길>
‘길’이란 일정한 장소에서 특정된 장소로 이동하는 통로, 즉 이동하기 위해 낸 일정 너비와 길이의 공간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길’이란 땅 위로 사람이 걸어서 다니는 통로를 지칭하는 순수 우리말이고, 자전거나 우마차, 자동차가 통행하는 통로는 ‘도로(道路 : ~로路라고 표기)’라 말합니다. 물론 둘을 혼용(混用)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요. 배가 지나는 길(뱃길=항로 航路), 비행기가 지나는 길(하늘길=항공로 航空路)도 있고 기차나 전차가 지나는 길(철길=철로 鐵路)도 있습니다. 자동차가 다니도록 새로 닦은 길, ‘신작로(新作路)’도 있습니다.
‘길’의 다른 뜻으로는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이나 방향, 또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한 방안이나 수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보통 한자 “道”로 표기합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따라야 할 바른길이란 의미의 하늘이 마련한 도리라는 천도(天道)나 노장(老莊)이 주장하는 ‘도덕(道德)’에서 이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삶이 다양하듯, 땅 위로 사람이 다니는 ‘길’에도 여럿이 있습니다. 평지에 난 길도 있고 산이나 숲속에 난 길도 있고, 곧은 길도 있고 굽은 길도 있으며, 좁은 길도 너른 길도, 희미한 길도 확실한 길도 있습니다.
- 뒤안길 : 늘어선 집들의 뒤편으로 좁게 난 길
- 고샅(길) : 마을의 좁은 골목길
- 오솔길 : 산이나 숲에 난 폭이 좁은 호젓한 길
- 논틀길 : 논두렁 위로 꼬불꼬불하게 난 좁은 길 (논두렁길이라고도 함)
- 벼룻길 : 강이나 바닷가의 낭떠러지에 나 있는 길
- 자드락길 : 낮은 산기슭에 비스듬히 난 좁은 길
- 후밋길 : 구석지고 으슥한 길
- 가르맛길 : 똑바로 올라가게 난 언덕길
- 둘레-길 : 산이나 호수, 섬 따위의 둘레를 걷기 좋게 조성한 길
- 푸섶길 : 풀과 잡목이 무성한 길
- 돌너덜길 : 돌이 많이 깔린 비탈길
- 자욱길 : 사람이 다닌 자국을 찾기가 힘든 희미한 길
- 숫눈길 : 눈이 와서 쌓인 뒤에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길
- 에움길 : 반듯하지 않고 굽어 있어 멀리(에둘러) 돌아가는 길
- 지름길 : 가깝게 질러가는 길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을 ‘인생’이라거나 ‘인생길’이라고 표현합니다. 자신도 알지 못한 예정 없는 출생으로부터 기약 없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시작과 끝을 모른 채 가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적인 삶의 과정, 또는 흐르는 세월을 따라 동행하는 삶, 이것을 ‘인생(人生)’ 또는 ‘인생길’이라 부르는 것이지요.
사람이 걷는 땅 위의 ‘길’은 쉬거나 멈췄다가 다시 갈 수도 있고,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고, 가던 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길로 바꿔 갈 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대신 가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지만, 인생이란 길은 쉬거나 멈출 수도, 되돌아갈 수도, 바꿀 수도, 대신할 수도 없습니다.
‘인생길’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길입니다. 빨리 가고 싶다고 ‘지름길’을 택할 수 없고, 험한 ‘돌너덜길’을 피해 평탄한 너른 ‘큰길’을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도중(途中)에 걸림돌을 만나면 치우고 산야(山野)의 굽이를 지나, 높은 산을 만나면 산을 넘고, 너른 강을 만나면 강을 건너, 앞이 보이건 보이지 않건 끝 모를 길을 생(生)을 다할 때까지 가야만 합니다.
‘인생길’은 사랑하는 아내나 친구와 같은 길을 갈 수 없는 「나홀로 길」입니다. 결국 같은 시대, 같은 세월의 풍파를 겪지만, 각자의 길을 걸어갈 따름이지요. 또한 ‘인생길’은 선인(先人)들이 지나간 길을 따라 뒤쫓아 가거나 훌륭한 성인(聖人)들이 갔던 길을 답습할 수도 없는 「나만의 길」입니다. 이 세상에 똑같은 인생(길)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지요.
‘인생길’은 힘들고 어렵다고 속도를 늦추거나 멈출 수도 없으며, 다음 생(生)에 다시 태어나 나머지 길을 갈 수도 없는, 시작(出生)하면 끝(죽음)까지 갈 수밖에 없는 단 한 번의 「외곬의 길」이며, 단 하나의 「유일(唯一)의 길」입니다.
‘인생길’에도 여러 가지 형태의 길은 있습니다. 좁은 길이나 너른 길도 있고, 굽은 길이나 곧은 길도 있고,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고, 뻥 뚫린 탄탄대로가 있는가 하면 막다른 길도 있습니다. 물론 길을 가다가 의외의 사고로 중단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길이나 즐거운 길보다 괴롭고 힘든 길이 많다고 해서 ‘인생을 고행(苦行)’이라 말하는 것이겠지요.
서양에서도 ‘길’은 ‘way’와 ‘street’로 어감을 달리합니다. ‘way’는 우리의 ‘길’과 같은 의미로, ‘street’는 ‘도로’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가 봅니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그의 명곡 ‘My way’에서 자신만의 방식대로 걸어왔다고 노래합니다(I did it my way). 서양인들도 way(길)는 인생(길)을 연상하는가 봅니다.
이탈리아 1954년 영화 ‘길(La Strada)’에선 거칠고 투박한 잠파노(앤서니 퀸)와 바보 같고 순박한 젤소미나(줄리에타 마시나) 커플이 황폐한 도시와 고달프고 공허한 빈민의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힘들다고 바꾸거나 멈출 수 없는 숙명적인 ‘인생길’을 표현한 ‘네오 리얼리즘’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지요. 영화 내내 애절한 사랑도, 애증도, 그리운 만남이나 이별도 없이 하녀를 부리듯 젤소미나를 대하는 잠파노의 모습은 바뀔 줄 모르는데, 두 사람이 헤어지고 몇 년이 흐른 뒤 우연히 젤소미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잠파노가 술에 취한 채 바닷가에서 울면서 절규하는 ‘라스트 신’은 오래도록 관객의 뇌리에 남을 영상입니다.
‘길’이란 말은 왠지 모르게 추억을, 고향을,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그리움의 여운(餘韻)이 담겨있습니다. 고샅길을 떠올리면 어린 시절 동무들이 생각나고, 술래잡기하던 뒤안길이 눈에 선하며, 둘레길은 함께 걷던 연인과의 추억에 잠기게 합니다. 숫눈길에 첫 발자국을 내며 우쭐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길’은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도 존재하지만 떠나기 위해서도 존재합니다. ‘길을 떠난다’는 말이 주는 이별의 아픔, 떠난 이나 떠나보낸 이나 서로를 그리는 감정이 ‘길’이란 말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우리네 인생이 곧 ‘길’이란 거지요. 우리는 평생 ‘길’ 위에 있습니다. ‘길’ 위에서 ‘길’을 물으며 사는 셈입니다. 그 ‘길’이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길이거나, 고행(苦行)의 길이거나, 득도(得道)의 길이거나, 산티아고 길이거나, 바이칼 호수(湖水)의 자작나무 숲길이거나, 동네 둘레길이거나, 동무들과 함께 걷는 오솔길이거나 ·····
아름다운 이름이 붙은 ‘길’도 있습니다. 히말라야 고산준령을 넘는 교역로 ‘차마고도의 길’도 있고, 아피아 가도(via Appia)처럼 로마로 향하는 잘 닦여진 길 ‘로마 가도(via Romana)’도 있으며, 구도(求道)의 길을 따라가는 ‘산티아고 순례길’도 있고,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제주 올레길’도 있으며, 3498km 하이킹 코스인 ‘애팔래치아 트레일’도 있습니다.
제 가슴을 울리는 길은, 중학교 통학시절의 7km 산골길 ‘학교가는 길’과 살고 있는 집과 가까이 있어 자주 오르는 ‘서울숲~남산 둘레길(일부 구간 : 대현배수지↔매봉)’이 정답습니다. 아직도 가고픈 희망의 길은 무릎이 아파 잠시 미루고 있는 ‘남미(南美)로 가는 길’입니다. 가게 되든 못 가게 되든 마음에 ‘길’을 품고 있을 때가 설렘이고 행복입니다.
고등학교 문학동아리 모임 이름이 ‘오솔길’입니다. 좁고 호젓한 길을 걸어가듯, 졸업 후 삶의 길이 다를지라도 문학동아리를 잊지 말고 사뿐사뿐 함께 걸어가자는 뜻으로 지은 이름입니다.
원래는 여섯이 오솔길을 걸었으나 하나가 먼저 천국으로 올라가고, 하나는 일본 도쿄에서, 둘은 천안에 작은 농원을 장만해 노후의 안락을 즐기고 있으며, 서울에 남겨진 둘은 잡문이나 끄적거리며 남은 세월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오솔길’을 걸으며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시름과 원망을 저버릴 줄도 알며, 배려하고 사랑하는 법도 깨우쳤음이 커다란 축복입니다. ‘길’은 고달픔도 겪게 하지만 대화와 소통을 가능케 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사색의 장소도 제공하고, 분(憤)을 풀 시간의 흐름도 겪게 하며, 앞으로의 삶의 계획도 마련하는 은덕을 베풉니다. 사람의 삶은 ‘길’ 위에서 엮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詩, [가지 않은 길]의 한 부분입니다.
“두 갈래 길이 숲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서산대사의 선시(禪詩) [답설(踏雪)] 한 수(首)에서도 길에 대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걷는 이 발자국이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홀로 또는 함께 수많은 걸음으로 다져야 새로운 ‘길’이 납니다.
갑진년 2024년에도 우리는 불확실한 ‘길’을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지름길이 될지 에움길이 될지, 험한 길이 될지 평탄한 길이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뚜벅뚜벅 걸어갈 뿐입니다. 그것이 ‘나의 길’이니까요.
“I’ll have to go My Way~!”
사랑하는 님들, 올 한해 평탄한 지름길로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발걸음마다 기쁨과 행복을 누리시는 ‘인생길’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1월 5일
큰돌 이종현 올림
최희준의 ‘길’을 띄웁니다. 감상해 보시지요.
https://youtu.be/3RCDPn_MKLA?si=kxVT2xObUF_tNe8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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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니 감독, 안소니 퀸
주연의 길(흑백영화)(자막)을
보냅니다. 영화사에 남을
명작입니다. 위의 글을 읽으시고
보시면 감회가 새로울 것입니다.
- khc
길( La Strada)
[1954년 이탈리아]
[필링박스]
[한글자막]
출처 : 네이버TV
https://naver.me/F9NMCTP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