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봄날, 미산령 산채
오월이 중순에 접어든 둘째 일요일이다. 간밤에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가 내리다가 날이 밝아오자 바람이 잦아들고 비는 그쳤다. 일전 주말을 앞둔 일기 예보는 일요일 점심나절까지 강수 시간대였는 비가 당겨 그쳐주었다. 예보대로 오전에 비가 온다면 도서관으로 나갈 참이었는데 휴일 일정을 변경했다. 어제는 작대산 트레킹 길을 걸었는데 오늘은 여항산 미산령을 넘을 생각이다.
이른 아침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마산역 앞에서 내렸다. 역 광장으로 오르는 노점은 토요일보다는 덜해도 일요일도 저자가 서는데 비가 온 영향으로 빈자리가 보였다. 비가 그침을 예상해 비가림막이 될 파라솔을 펼치지 않은 노점에는 상추를 비롯해 흙이 묻은 채 밭에서 바로 뽑아온 채소들이었다. 그 가운데 제철을 맞은 마늘쫑이 흔하게 펼쳐졌다.
정한 시각 진전면 둔덕으로 가는 76번 농어촌버스를 탔다. 어시장을 거쳐 댓거리를 지날 때 시장을 봐 가던 한 할머니의 짐보따리를 자리 곁으로 옮겨다 주었다. 할머니는 댓거리 일요 장터에서 시장을 본 듯했는데 밤밭고개 못 미친 아파트에서 내려 그 짐을 다시 내려준 일까지 마무리 지었다. 현동교차로에서 동전터널을 지나 진동 환승장에 잠시 들렀다가 진전면 오서로 향해 갔다.
2호선 국도 옛길 따라 양촌과 일암을 거쳐 대정에서 둔덕골로 드니 지방도 확장 공사는 수년째 걸쳐 진행 중이었다. 기사는 골옥방에서 시동을 끄고 20여 분 멈췄다가 종점 둔덕으로 몰아 나를 마지막 손님으로 내려주고 차를 돌려 나갔다. 평소는 대기 승객이 드문 편인데 이번엔 한 할머니가 건고추 포대를 힘들여 실으려고 해 올려다 주었다. 방앗간에 가루로 빻으러 가는 듯했다.
차량은 다니질 않고 인적이 없는 군북 오곡으로 가는 고갯길로 올라 미산령으로 가는 임도로 들었다. 들머리에서 땅두릅이 쇠긴 해도 보드라운 부분만 가려 따 모았다. 올봄에 임도 물 빠짐이 잘되도록 포클레인이 배수로 흙을 파내서 식생이 달라져 그곳에 자리 잡은 산나물은 사라져 아쉽다. 참취와 영아자가 간간이 보였는데 생태계가 예전처럼 복원되려면 몇 해 걸려야 되지 싶다.
장비가 스치지 않은 언덕에서 광대싸리와 등골나물을 비롯해 눈에 띈 산나물을 뜯었다. 도중에 작년 여름 산사태를 복원하는 장비가 멈춰 있었는데 일요일이라 인부들이 쉬는 날인 모양이었다. 공사 구간을 지나자 길섶을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찾는 아낙이 둘 있었다. 아까 임도 들머리에 보이던 차를 몰아온 여인들인가 싶었는데 미산령을 찾아올 정도면 현지 식생을 잘 아는 듯했다.
두 아낙은 취나물을 뜯으러 나온 걸음으로, 그들이 먼저 숲으로 들기를 기다려 느긋하게 뒤따랐다. 임도를 계속 나아가면서 나대로 뜯을 산나물이 기다렸다. 웬만한 사람은 산나물인지도 모르는 야생초 자생지가 나왔다. 취나물은 종류가 여러 갈래로 나뉘는데 거기는 버들분취가 군락을 이룬 곳이라 수월하게 배낭을 채울 수 있었다. 서덜취도 간간이 보여 놓치지 않고 뜯어 보탰다.
버들분취와 서덜취를 따고는 응달에 자라는 참반디가 보여 더 뜯어 모았다. 참반디도 깊은 산중 자생하는 고급 산나물로 시기가 조금 늦어 넓게 펼친 잎이 쇠어가도 끄트머리 부분만 가려 땄다. 미산령 고갯마루에 올라 마산역 번개시장에서 마련해 간 김밥으로 소진된 열량을 벌충했다. 정자 쉼터에서 전방으로 산이 겹겹이 쌓이니 골은 V자로 이루어진 둔덕 골짜기 지세를 조망했다.
아직 나아갈 여정이 상당한 거리라 발걸음을 서둘렀다. 고개를 넘어 응달로 내려서니 산딸기나무 덤불 속에서 영아자를 찾아내 멱을 꺾어 모았다. ‘비타민나물’이나 ‘미나리싹’으로도 불리는 생채로 먹기 좋은 산나물로 잘린 줄기 부분에 하얀 유액이 스며 나왔다. 석간수가 흐르는 계곡에서 이마의 땀을 씻고 미산마을 동구에서 가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나와 국도를 더 달려왔다. 24.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