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래 전 겨울이었다. 그때 나는 을지로 3가 지하철역에서 명동성당 쪽으로 난 지하도를 걷고 있었다. 매일 아침 지나는 길이었고 늘 그 자리에 앉아 손 벌리고 있는 걸인들에게 나는 무심 했었다. 하지만 그날 아침 처음 본 그 할머니에게만은 무심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할머니 곁으로 가면서 나는 주머니 속을 뒤적거렸다. 얼마를 드려야 할까. 어디 모시고 가서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라도 사드려야 하는 건 아닐까.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리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오고 갔다. “할머니 추우시죠.” 물어볼 필요도 없는 말을 지껄이며 나는 무안함을 감추려 애썼다. 할머니는 그냥 웃고만 있었다. “할머니 이거 얼마 안 되지만 따뜻한 밥 한 그릇이라도 사 잡수세요.” 기껏 5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며 생색을 냈다. 순간, 평화롭던 할머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젊은이, 그렇게 큰돈을 함부로 쓰면 못써! 나는 그렇게 큰 돈 필요 없으니까 5백 원만 줘.” “아니예요 할머니, 많지 않으니까 받으세요.” 나는 억지로 할머니 손에 돈을 쥐어 드리려 했다. 할머니는 매정하게 뿌리쳤다. “할머니, 잔돈이 없어서 그래요. 어서 받으세요.” “잔돈이 없으면 그냥 가!” 나는 끝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해 겨울 나의 적선은 무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그 자리에 할머니는 없었다. 을지로 일대 지하도를 다 뒤지고 다녔지만 할머니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강제윤 詩 ‘거지’)
(1) 부산역
밤 11시, 서울역에서 경부선 막차를 탔다. 열차를 타기 전에 마신 술 한 잔 때문이었을까. 잠이 드는가 싶었는데 눈 뜨니 열차는 어느새 밀양역을 지나고 있다. 꿈길인 듯 밤길을 달려왔다. 04시20분, 무궁화호 열차가 부산역에 도착한다. 첫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역은 새벽부터 분주하다. 서울역이나 영등포역에 비해 부산역은 단속이 더 심한 것일까. 대합실에는 노숙인들인지 취객인지 분간 할 수 없는 사람 몇몇만이 잠들어 있다. 계절 탓도 있을 것이다. 공안의 단속을 피해 쪽잠을 자던 사람들도 열차 개표 방송 소리에 서둘러 몸을 털고 일어선다. 방송 소리에도 깨어나지 않는 이들은 취객일 것이다.
계절은 이미 초여름으로 진입했지만 여전히 역 광장의 밤공기는 차다. 종이박스 한 장으로 는 스멀스멀 뼛속을 파고드는 냉기를 막아내기에 역부족이다. 겨울 추위를 견디고 살아남았다 해서 사람의 몸이 강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겨울 한철을 지날 때마다 몸속의 뼈는 물 먹은 철골처럼 부식되어 간다. 광장에는 아직 잠깨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지만 광장 바닥 한편에는 술판이 벌어져 있다. 밤새 달려온 술자리의 끝인지 다시 시작 되는 술자리의 처음인지 알 길이 없다. 이 나라에서 술은 집에 속한 자나 집에서 쫓겨난 자 모두에게 고통의 유일한 치료제이며 망각제인 듯하다. 어제 흡수한 알콜이 혈관을 타고 역류하는 것일까, 잠시 현기증이 인다. 아침 6시, 역 광장의 가로등이 꺼지고 광장의 노숙인들도 다들 일어나 각자의 침구를 들고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진다. 어떤 이는 멀리 가지 않고 역 광장 화단의 나무들 사이에 종이 박스를 숨긴다. 환경미화원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할 것이다.
화단에 박스를 숨기고 나오는 사내에게 말을 건다. - 밖에서 주무셨어요? 대합실에 자는 사람들도 있던데요? = 거기서는 잘 못자요. 공안들이 단속해서. - 부산이 고향이세요? = 아뇨. 원래 강원도 원주에요. 두 살 때 부산으로 왔고. 아버지가 군수사령부에 근무 했거든. - 두 살 때 왔으면 부산이 고향인 셈이네요.
사내는 올해 마흔 여덟. 딸린 가족이 없다.
- 부모님들은 아직 부산에 사시구요? =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셨어요. 98년엔가. 아버지는 올해 돌아 가셨죠. - 친척들도 전혀 없으신가요? = 친척이 있어봐야 안도와주고. 뺏기 묵을라고나 하지. 도와주지 않아요. - 여기 오기 전에는 무슨 일 하셨어요? = 부산 교도소에 있었어요. - 얼마나요? = 1년 6개월. 사내는 교도소에서 나온 뒤 아무데도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부산역으로 왔다. 아버지가 살던 집은 어떻게 됐는지는 물어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내는 화장실로 씻으러 간다.
마흔일곱, 사내는 구룡포가 고향이다. 3일을 굶고 어제 부산진역으로 밥을 얻어먹으러 왔다가 다시 부산역으로 와서 밤을 보냈다. 그전에는 연안부두에서 이틀 밤을 잤다.
- 부산 오기 전에는 어디 사셨어요? = 구룡포요. - 고향에서 쭉 사신건가요? =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쭉 운전을 했어요. 유통업체에서 직장생활 했었죠. - 그런데 직장은 왜 그만 두셨는데요? = 오른 쪽 눈이 많이 아팠어요. 안과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너무 아파 신경과엘 갔었죠. 근데 거기서도 이상이 없다 해요. 그래서 또 신경정신과엘 갔었죠. 거기서도 눈에는 이상이 없다 하고 우울증기가 좀 있다 그러더라고요. 미치겠더라고. - 치료를 받으셨어요? = 치료가 안 돼. 어딜 갔더니 내가 신기가 있다 해요. 약으로는 치료 못하니 어느 한쪽 믿음을 가져 보라 하데요. 그래서 믿어보자고 절에도 많이 다니고 그랬어요. - 그래서 나아지던가요? = 종교도 여러 가지 해봤는데 잘 안 나아요. - 가족들은요? = 부모님은 다 돌아가셨고. 누나들이 넷 있어요. 근데 사이가 별로 안 좋아요. - 어째서요? = 배가 달라요. 눈이 아파서 직장 생활 못하는데 일하기 싫어서 노는 걸로 오핼 해요. - 구룡포에서 올라온 지는 얼마나 됐어요? = 3개월. - 부산에는 왜 오셨는데요? = 직장 구할려고 왔는데 잘 안돼요. 돈도 다 떨어지고.
그래서 사내도 노숙인이 됐다. 사내는 눈만이 아니라 왼 손가락도 아파 힘든 노동을 할 수 없다 한다. 집에는 가고 싶은데 가 봐야 할 일도 없고 그래서 오도 가도 못한다.
사내는 서울이 고향이다. 쉰 넷, 부산역으로 ‘거처’를 옮겨오기 전까지 서울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었다. 집을 떠나야 했지만 서울에는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을 대면할 가능성이 없는 부산으로 왔다. 그것이 작년(2006년) 12월 말이었다.
-여기서 친하게 지내는 분들이 더러 계신가요? =여기 사람들은 서로 간에 이야기를 잘 안 해요. 마음이 닫혀서들. 뭐라 그러면 욕이나 하고. 다들 따로따로들 있어요. 술 먹을 때나 몰려 있지. 먹고 자는 것 말고 뭐 크게 생각 하는 게 있겠어. 그러니까들 마음을 안 열어.
그는 길바닥 생활이 여전히 낯설다. 그에게는 올해 스물여덟 살인 딸과 스물여섯인 아들이 있다. 아이들은 아내와 함께 산다. 자주 보고 싶다.
-어쩌다 집을 나오게 되셨어요? =사업하다 사채 썼어요. 동업하던 친구가 도망을 가는 바람에 신세가 이리 됐어요. 내가 집에 있으면 전셋집까지 뺏길 것 같고. 그러면 애들이랑 아내가 살집이 없어질 테니.
그래서 가족들 몰래 집을 나왔다. 가족들 모두 길거리로 내 쫓기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시죠? =여기 있고 싶어 있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집 있고, 가족 있으면 돌아들 가고 싶지. 나도 파산 신청인가 뭔가 해 보려고 민주노동당 사무실까지 가봤어요. 안되요. 사채는 그런 것도 안된데.
-부러 돌아가지 않는 분들도 더러 있나요? =거지 팔자로 타고난 사람들은 집이 있어도 안가고 그래요. 근데 그 사람들은 얼마 안 되고 대부분은 사업하다 망한 사람들이나 빚쟁이들이지.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어요. 한번 나오면 잘 복귀가 안되요.
노숙인들의 60% 이상이 금융채무자들이다. 금융권 빚이든 사채든 빚 문제가 해결 되지 않는 한 돌아갈 방법이 없다. 개인회생이나 개인 파산 따위의 정책도 제도 금융권에 빚을 진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사채를 쓴 사람들을 위한 정책은 전무 할 것이다. 그들은 평생 돌아가지 못하고 길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부산에서는 부산역보다 서면, 남포동, 중앙동 지하철 역 부근에 노숙인들이 많이 몰려 있다.
-다른데 보다 부산역이 생활하기가 나으신가요? =꼭 그런 건 아니고. 서면인가 거기서는 어떤 놈이 각목 갖고 아무나 패고 그런다해. 약간 맛이 간 놈이지. 그래서 거긴 안가요. 텃새도 심하다 그러고. -노숙인 쉼터 같은데 들어갈 생각은 없으세요? =시에서는 또 건물 하날 사서 쉼터를 만든다고 그러던데. 있어도 잘 안가요. 지금도 쉼터는 많아요. 규율이 있지. 술 못 먹게 하지. 조금 있다가 갑갑해서 다들 나와 버려요. 여기가 편해요.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부산진역이라고, 여기서 조금만 가면 지금은 폐쇄된 역이 있어요. 거기서 하루 두 번씩 밥을 줘요. 교회 사람들이. 장애인이나 교통 카드 있는 사람들은 지하철 타고 가요. 밥 얻어먹으러. 그도 없으면 훔쳐 타기도 하지. 근데 몸이 좀 아프면 그도 힘들어 그냥 굶어요. 컵 라면이나 먹고. 그냥 끼니 못 찾아 먹지. 깡 술 먹지. 그러니 사람이 안 죽어.
부산진역까지는 지하철 세 정거장 거리에 불과 하지만 몸이라도 많이 아픈 날에는 걷기도 힘들어 그도 자주 굶는다. 찬 바닥에서 잠을 자는 탓이겠지. 나이보다 몸이 많이 굽었다. 나날이 망가져 가는 몸처럼 그의 생애도 점점 허물어져 가고 있을 것이다. 새벽부터 이어져온 옆의 술자리는 아직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할 일은 없어도 할 말은 끊이지 않는 법이다. 언성이 높아졌다 낮아지길 반복한다. 평생을 가도 끝나지 않을 논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술자리에는 끼지 못하고 담배와 술심부름을 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 살면서 일 나가는 분들도 더러 계신가요? =힘 있는 사람들은 일용직이라도 나가지. 그래야 밥 먹고 살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힘이 없어. 일용직이라도 나가 노동이라도 하는 사람은 집에 빨리 돌아갈 희망이라도 있지. 희망이 없어. 희망이. 바삐 뛰어 다니는 사람, 버스 놓칠까봐 뛰어가는 사람 보면 얼마나 부러운지. 서울 토박이여도 나는 텔레비서나 봤지. 노숙이란 것 자체도 아주 모르고 산 사람이지. 근데 내가 이렇게 돼 버렸어.
바닥에 떨어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밥보다 희망인 것일까? 아무리 배불리 먹은 들, 희망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뱃속의 허기야 채울 수 있겠지만 삶의 허기는 어찌 채울 것인가. 길바닥만이 아니다. 아직은 방바닥을 지키고 있는 삶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냥 막막하네요. 말씀 들으니. =하루라도 빨리 복귀해야 하는데. 그게 언젠지. 이러다 때 놓치면 아주 못 들어가. 몸 망가지고. 하루하루 지나는 게 죽어가는 것이지. 메칠 전에도 저 자리에서 사람 하나가 죽었어. 예순 살 먹은 사람.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는 마음이란 어떤 마음일까. 집이 있어도 돌아가지 않고 밖으로만 떠도는 마음들, 그들도 마침내 돌아갈 수 없게 된 다음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노인 한분이 역 화장실에서 걸어 나온다.
“아침은 드셨어요. 역장님.” “아침에 한 그릇 했다.” “또 컵 라면 잡쉈어요.”
노인은 부산역 노숙인들 사이에서 ‘역장님’으로 통한다. ‘역장님’에게 인사한 뒤 그는 일어서 어디론가 가버린다. 어딜 가든 두 끼 밥 때 부산진역에 다녀오는 것을 제외하고 그는 부산역 주변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역장님’은 부산역에서만 꼬박 20년을 살았다. 일흔 다섯. 수십 년 풍찬노숙의 삶을 헤쳐 온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해 보인다. 일본 후꾸오까에서 나서 중학교 일학년 때 해방과 함께 한국으로 건너왔다.
-역장님은 가족들이 없으세요? =결혼은 했었어. 할멈은 진즉에 갔고. 딸 하나 있는데 외국에 살아. 술 먹고 지랄하다가 정신 병원에 수용 된 적도 있었지. 정신병도 아닌데. 지금은 술 안 먹어. 먹을 때는 좋은데 깡 술만 먹다가 위장 간장 다 버렸어. 이제는 겁이 나서 안 먹어. 지금이야 그저 얻어먹는 재미로 살지.
오랜 노숙 생활에도 불구하고 ‘역장님’의 행색이 좋아 보이는 것은 술을 끊은 탓이다. 길바닥에 살았으나 노인은 비루해 보이지 않는다. ‘역장님’다운 풍모다. 남루에도 격이 있다.
-술 끊으시니 좋으시죠. 저는 여전히 그게 잘 안 되네요. =여기서 굶어 죽는 사람은 없어. 다들 술 땜에 죽지. 가끔 행동 나쁘게 하다 칼에 찔려 죽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서도. 암튼 다들 괴로우니까 술을 먹어. 지 뜻대로 되는 일은 없지. 돈은 적지. 우선 잊어버리려고 술을 먹거든. 밥 사먹을 돈은 모자라고, 우선 술값이 싸니까 한잔 먹는 거지. 술 먹을 돈도 없는데 안주 사놓고 먹을 수 있겠어. 그래서 깡 술을 먹는 거야. 그러다 죽어. 술 이기는 장사가 없거든. 항우장사도 술에는 못 당한다잖아. 어느 부모가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살라고 낳지 못 먹고 못 살라고 낳았겠어. 근데 다 팔자 소관인데 누굴 원망하겠어. 도둑질은 못하고, 배는 고프고 얻어먹으러만 다니니 나태해 지는 거지. 하긴 젊은 놈들도 일자리가 없어.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으니 맨날 천날 술만 먹는 거지. 그래도 노숙 하는 사람은 도둑질 안 해. 얻어먹으면 먹었지 도둑질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사기 치는 것도 마찬가지고.
많은 노숙인들이 낮이나 밤이나 술에 취해 있고 행동은 거칠다. 비노숙인들의 눈에 비친 노숙인들의 이미지는 대게 부정적이다. 노숙인들은 알콜 중독자나 삶의 낙오자로 인식되기도 한다. 심지어 그런 노숙인들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비노숙인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노숙인들은 결코 삶을 포기한 알콜 중독자나 생의 낙오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알콜에 의존할망정 여전히 ‘삶 중독자’들이다. 삶에서 쫓겨난 뒤에도 결코 삶을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애착자’들이다. 세상은 삶을 포기하라 강요 하지만 삶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삶의 자녀들. 그런 노숙인들을 위험시 하고 피하는 것은 무자비한 일이다.
또한 비노숙인들의 오해처럼 노숙인들은 결코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한다. 노숙인들은 모든 것을 잃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미 무너진 건강으로 제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이 쉽게 남을 해칠 수 있겠는가. 보이는 위험, 피할 수 있는 위협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위험, 피할 수 없는 위험이야 말로 진정으로 두려운 것이다. 보다 무서운 존재는 비노숙인인 우리들 속에 숨어 있다. 위협적인 존재들은 결코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길바닥으로 내쫓기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비노숙인들은 노숙인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고 경원시한다. 실상은 노숙인들이 오히려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허다한데도 말이다. 노숙인 상당수가 비노숙인들에게 신분증을 도용당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기 범죄에 이용당하고 있기도 하다. 강자들이 약자들을 위험시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닌가.
-역장님은 계속 부산역을 떠나지 않을 생각이세요? =나는 이제 아무 것도 바라는 게 없어. 나이가 있는데 뭘 바라겠어. 살면 얼마나 더 살 거라고. 죽는 것도 이제는 겁 안나. 그날그날 얻어먹다 갈 때 되면 가겠지. 그냥 여기서 죽을거야.
‘역장님’은 달관한 것처럼 말하지만 그의 말은 고통스런 인간 삶에 대한 위로에 가깝다. 나는 그가 결코 삶이나 죽음 어느 쪽에도 달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한 사람은 결코 생사에 달관할 수 없다. 생사의 비밀을 알 수 없는데 어찌 달관이 있을 수 있겠는가. 죽음에 대해 안다고 호언하는 사람도 결국은 죽음에 대한 반쪽의 진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이 아는 것은 늘 타자의 죽음에 관해서다. 자신의 죽음까지 알아야 죽음에 대한 지식은 완전해 진다. 하지만 죽어보지 않은 자 누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안다 할 수 있겠는가. ‘역장님’ 만이 아니다. 사람은 결코 누구도 생사에 달관 할 수 없는 것이다. 달관은 초월자의 일이지 사람의 일은 아니다. ‘역장님’의 ‘위로’가 쓰린 속을 달래는 해장술처럼 위장을 타고 흐른다.
(2)서울역
새벽 4시 30분, 서울역은 노숙인들의 천국이다. 지옥에 등 대고 누운 자도 천국의 꿈을 꿀 수 있다. 저들은 모두 어느 별에서 온 것일까. 은하철도의 차표를 잃어버린 은하 여행자들. 매정한 검표원은 여행자들을 이 낮선 행성에 내 던져놓고 떠나버렸다. 열차는 지금쯤 어느 은하계를 달리고 있을까. 이 행성의 역에서도 차표를 가진 자들은 모두 개찰구를 빠져나가 다른 별로 떠나는 열차에 몸을 싣지만 저들은 끝내 플랫폼의 끝자리로도 진입할 수 없을 것이다. 지구 행성의 시멘트 바닥에 고단한 몸 누이고 죽음보다 깊은 잠에 떨어진 이들의 생애가 헌 신문지 한 장 보다 가볍게 펄럭인다.
이 새벽의 은하 철도역에는 떠나는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보다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노숙의 여행자 수가 더 많다. 사과 박스를 깔고 자든 맨바닥에 몸 누이고 자든 꿈 깨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집 없는 이들의 새벽잠은 울컥 서럽다. 늙은 남자 하나는 화장실 입구 벽 쪽으로 얼굴 돌리고 잠들어 있다. 배가 볼록한 여인은 불빛 환한 대합실 의자에 기대고 잠들어 가쁜 숨을 몰아쉰다. 여인은 아기의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를 것이다. 자신은 유린당했으나 아이만은 끝끝내 지키고 싶을 것이다. 빛의 보호 속에서 아기는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될까.
서울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나는 떠날 시간을 기다린다. 모두가 떠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면서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도시. 서울은 마약 판매상이다.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맨바닥에 누워 잠든 노숙인들을 벌레 보듯 움찔 하며 지나치기도 한다. ‘저들은 누구일까, 나와는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들이 분명할 것이다, 저들이 속한 세계는 내 세계와 다르다.’ 하지만 저들도 어제까지는 모두 우리와 같은 별에 살았었다.
서울역. 오래 지속될 수 없는 노숙인들의 천국. 마실 물이 있고, 비 가릴 지붕이 있고, 곳곳에 무료 급식소가 있고, 대형 텔레비젼과 등 기대고 앉을 의자가 있다. 그러나 이곳에는 삶이 없다. 삶의 희망은 간 곳 없고 삶에 대한 환멸만 가득하다. 희망 없는 세계에도 삶의 아침은 찾아오고 끝나지 않을 것처럼 지루한 하루가 시작된다. 서울역 광장을 걷는다. 옛 서울역사 처마 아래도 노숙인들의 잠자리다. 일찍 잠깬 노숙인들, 두런두런 둘러 앉아 소주를 마신다.
옛 서울역사, 서울역 광장에서 서부 광장으로 가는 통로 사이에 앉아 있던 사내 하나가 배낭을 메고 일어선다.
- 아침부터 어디 가세요? = 갈 데가 있겠어요. 평생이지 뭐.
아침밥이라도 얻어먹으러 가는가 물었더니 사내는 삶에 대해 말한다.
- 여기 산지는 오래 되셨어요? = 지금 이리 사는데 평생 이리 살지 뭐. - 전에는 무슨 일 하셨는데요. = 일 한 게 없어. 일 했으면 돈이나 벌었겠지. - 사업 하시다 망하셨나 보죠. = 너무 멋지게들 생각하지 말아요. - 그래도 무슨 일이라도 했을 것 아닙니까? = 그저 지금까지 얻어먹고 살았지 뭐. - 누구나 바라는 바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면서 사는 일. = 지금까지 살아 보니까 이건 어떤 개인적으로 시간 보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냐 생각되요. - 사람에 따라 삶의 한 방식이 될 수 도 있다는 말씀이군요? = 그쪽은 길바닥에서 얼마나 살았어요?
사내가 역으로 묻는다. 네가 노숙을 해 봤느냐는 힐난이다. 매일매일은 아니지만 어찌 길바닥에서 잠 자본적이 없겠는가. 그래도 그까짓 걸 노숙이라 할 수는 없겠지. 그러나 나 또한 거처 없는 떠돌이 유랑자.
- 한 2년 남짓 얻어먹고 얻어 자고 다닙니다만. = 노숙 일이년 해가지고 뭘 알아. 평생 했는 사람도 있는데. - 어려서부터 노숙하며 사신 모양이죠? = 내 자신이 살아갈 날이 오늘도 노숙이고 내일도 노숙이고. 평생 안 해 본 사람은 이해를 못해요. 애길 해도. 말 붙여줘서 고맙소. 다음에 봅시다.
사내는 초짜 떠돌이가 대화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는지 손을 흔들며 가버린다. 서울역 광장 성공회 진료소 ‘다시서기’에는 아침부터 진료를 받으러 온 노숙인 환자들로 북적인다.
-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 발목이 아파서 왔어요. 삔 것 같아요. 발바닥이 부어갖고 걸음을 못겠어요. - 서울역에 사세요? = 청량리에 살아요. 현대 코아 앞쪽에서. - 거기는 진료소가 없는 모양이죠? = 없어요. - 거기 생활 하신지는 얼마나 됐는데요. = 3개월 정도 됐어요. - 그전에는 무슨 일 하셨는데요. = 노가다 쪽 일. 공사판에 있었죠. - 어디서요? = 용현동. 인천 용현동이라고. 가족들이랑. - 저도 인천에서는 오래 살았었죠. 가족들은 아직도 인천에 사시나요? = 애들이랑 마누라는 서울 살아요. - 아이들은 몇 인데요? = 아들만 둘. - 어째서 집을 나오셨는데요? = 바람 좀 쐴려고 하다가. 그러다 인제 생각할 것도 좀 있고 해서.
사내는 더는 속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진료 대기석에 또 다른 사내가 와서 앉는다. - 어디가 아프세요? = 약 타러 왔어요. - 무슨 약이요? = 혈압약. - 자주 오세요? = 한 달에 한번씩 - 여기 사시는 분들 주로 어디가 많이 아프신가요? = 주로 위장병이죠. 술 때문에. - 다른 병은요? = 기관지나 천식. 바깥에서들 엎어져 자니까 잘 걸리지. - 여기서들 주로 치료 받으시나요? = 여기서는 임시 조치고 급한 환자는 다 병원으로 보내요. 위장약이나 감기 정도지. 여기서는 못 낫지. 큰 병원으로들 가. 주사가 있어 뭐가 있어. - 약은 얼마나 타가세요. = 보름치씩 타가요.
진료소에서 나오니 머리 희끗한 초로의 사내 하나, 옛 역 광장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 서울역에 사는 분들이 몇이나 됩니까? = 한 오백 쯤 되요. 겨울보다는 여름이 더 많아요. - 밥은 어떻게 해결 하세요? =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여기로 가져다 줘요. 교회 같은데서. 아침, 점심, 저녁까지 세 끼 다 얻어먹어요. 근데 한군데가 아니고 여러 군데서 주니까 찾아 다녀야 하죠. - 여기 사시는 분들 몸 성한 사람 별로 없죠? 저기 성공회 진료소에 아침부터 환자분들이 많더군요. = 주로 술병이지. 그거 아니면 갈 일이 뭐가 있겠어요. 거의가 술병이야. 여기는 다들 술에 놀아나는 거지. 나도 6개월 밖에 안 남았는데 술 먹고 돌아다니는데. 하루에 보통 소주 너덧 병씩은 먹어요. - 6개월밖에 안 남으셨다니요? = 의사가 그랬는데 많이 살아야 6개월 밖에 못 산데요. 나이 쉰도 안 되서 죽게 생겼어.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죽을 날을 받아놓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노숙의 삶과 집의 삶이 어떤 차이가 있을까.
- 치료는 받고 계세요? = 시립병원 가서 약만 받아다 먹어요. 간암은 입원해 봐야 소용없고 약이나 먹고 편히 쉬는 것 밖에 방법이 없데요. 그래봐야 조금 연장할 수 있겠지만. 다른 건 주사라도 주는데 이건 오로지 약이야. 그러니 머리가 안 아프겠어요. 제가. 아들은 중학교 다니는데 아빠는 이 지랄 하고 있으니 되겠어요. 살 수가 없어. 살 수가. - 자녀분들은 몇이나 되세요? = 아들만 둘이요. - 어디에 살고 있는데요? = 전주에 있어요. - 고향이 전주세요? = 원래 전라도 구례가 고향인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 암에 걸린 걸 안 지는 오래 되셨어요? = 한 열흘 밖에 안됐어요. 진단 받은 지. 하도 옆구리가 아프길래 저기 ‘다시서기’(서울 역 앞 성공회 진료소)에 부탁해서 시립 병원에 가서 진단 받았어요. 거기서는 국립의료원인가 하는데로 가보라는데, 가면 뭐 할 거야. 어차피 술에 다 녹는 걸. 그래도 술 안 먹으면 안 돼. 어차피 6개월 밖에 못 사는데 이거라도 먹고 죽어야지. 간이 줄어들어 간다고 그래. 나중 되면 아주 못 쓰게 돼 버린데. 수술해야 산다는데. 어디 돈이 있어야 수술을 하든지 지랄을 하든지 하지. 수술 받을라고 기다리는 사람만 몇 천 명 된다는데. - 집에는 알리셨어요? = 알려봐야 머리만 아프지. 지가 아들 둘 키우고 산다는데 놔둬야지. 나중에 죽을 때 돼서 한번 연락이나 할까. - 여기 오시기 전에는 무슨 일 하셨는데요? = 거제도 조선소에서 일 했어요. - 대우조선이요? = 아니, 삼성 조선. - 거기서 나온 지는 오래 되셨나요? = 아니, 얼마 안됐어요. 여기 오기 전까지 거기 있었어요. 겨우 너 덧 달 됐나. - 조선소에서는 무슨 일 하셨는데요? = 족장 짜는 일. - 비게(작업 발판) 만드는 일 말씀이죠? - 네, 비게, 도비라고도 하죠. 나는 그게 전문인데. - 직장은 왜 그만 두셨는데요? = 카드 빚 때문에. - 조선소는 월급도 제법 많을 텐데 어쩌다 카드빚까지 쓰셨어요? = 뭐 좀 하느라고. - 무슨 일이요? = 식당 좀 하다 말아먹고. 거제에서 식당도 해봤는데 멫 번 해 봤는데 안 되더라고. 나는 회사 다녔고 마누라가 했는데 안 되더라고. 나는 저녁에 도와주고 그랬지. - 무슨 식당 하셨어요? = 거제 장평에다 고깃 집 했지. 크게 했었어. 그게 딴 게 많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실내 장식 그게 많이 들어가니까. 나중에 장사 안 되면 다 빠지는 거지. 장사가 잘 되면 권리금이라도 받아먹을 수 있지만 안 되면 십 원 한 장 없어. 다 부셔버려야지. - 빚은 얼마나 지셨어요? = 1억 5천 정도. - 원금만? = 이자까지 하면 엄청나죠. - 식당 내는 데 다 쓰신 건가요? = 권리금만 한 오천 들어가고. 인테리어 하고 그러면 돈 그게 금방이지 뭐. - 그걸 다 카드빚으로 쓰신 건가요? = 대출도 받고. 사채도 썼어. 사채는 얼마 안 되요. - 무슨 캐피탈인가 뭔가 하는 대부업체에서 쓰신 거군요. = 그게 워낙 이자가 쎄서 그렇지 뭐. - 요즘 사채업자들이 개그맨이나 탈렌트들 내세워 텔레비전 광고 많이 하던데 그런 광고 보고 돈 빌리신 건가요? = 그런 셈이죠. 거제도에도 그런 곳 많은데 조선소 댕긴다면 출입증만 갖고 가도 바로 빼주거든. 한 오백 같은 거는 바로바로 빼주잖아. 이자에 이자가 새끼를 치니 엄청나죠. 이자가 한 오십 프로가 넘어요. 한 달 안에 못 갚으면 영영 못 갚게 돼 버려. 이자에 이자가 자꾸 늘어갖고. 엄벙덤벙 쓸 데는 좋지 뭐. - 식당 차리느라 대출금을 썼는데 식당이 장사가 잘 안 돼서 대출금 이자 갚느라 사채까지 끌어다 쓰고. 결국 일이 그렇게 돼버린 거군요? 그런데 회사는 왜 그만 두셨어요? =월급 타면 돈 30만원인가 밖에 안남기고 다 빼가버려. 딱 처먹고 살 정도만 남기고 빼가 버리는데. 그러니까 못 견디고 나오게 되잖아. 퇴직금도 다 뺏겨버렸지.
사내는 사채업자들의 덫에 걸려 가정이 풍비박산 나고, 직장까지 잃었다. 그리고 마침내 암까지 얻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사채업자들이 죽음으로 내 몬 사람들이 이 나라에는 얼마나 될까. 그러나 사내의 몰락에 대한 모든 책임을 사채업자들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사내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분명 사채업자들이지만 사내가 파산지경에 이르게 된 까닭은 월급에 만족하지 못하고 식당을 차려 더 많은 돈을 벌어 보겠다는 사내의 욕심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서울역뿐만이 아니라 이 나라 곳곳에 노숙인들이 널려 있다. 어느 시대에나 유민은 있었고 어느 시대에도 유민들은 압제와 굶주림을 피해 떠났었다. 밥 한 그릇 배불리 먹기 위해 목숨 걸고 길 떠났었다. 오늘 이 거리의 유민들, '노숙인'들은 더 이상 밥에 굶주려 길거리로 나서지 않는다. 밥에 굶주려 길 위에서 목숨 잃지 않는다. 이 시대, 이 나라에서는 밥에 굶주려 죽는 사람보다 욕망에 굶주려 죽는 사람이 더 많다.
한 시대가, 한 사회가 망하는 것은 부의 편중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개인이 망하는 것은 가난 때문이 아니다. 부에 대한 갈망 때문에 망하는 것이다. 부를 독점하는 자들을 영웅시하는 사회. 부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부추기는 시대가 이들을 병들게 했다. ‘노숙인’이라는 유민 집단에 대한 책임이 노숙인 개개인이 아니라 시대와 나라에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집과 가족을 잃고, 마침내 길바닥으로 내좇긴 사람들. 시대의 가장 가난한 이방인들. 나라가 이들에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
이 나라에서도 이제 노숙은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정착되어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제도화 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는 사회복지 시설을 종교단체의 손에 넘겼듯이 노숙인 문제 또한 종교단체들에게 떠넘기고 방관한다. 종교단체들은 노숙인 구제를 선교의 장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자선은 고마운 일이고 꼭 필요한 일이지만 자선 활동만으로는 결코 노숙인 문제가 해결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말을 핑계로 나라는 책임을 회피하고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지만, 나라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이 고통 받는 민중들을 구제하는 일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비참한 지경에 빠져 삶의 희망을 잃은 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바닥에서 일으켜 세우는 일 말고 무엇이 또 있겠는가.
삶의 희망을 상실한 이들에게 수용소를 만들어 잠깐 밥이나 먹여주고 잠자리나 제공해 주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이 나라의 정치, 경제 지도자라는 자들과, 언론들은 고통 속에서 드물게 빠져 나온 이들을 영웅시하며 길거리에 남은 노숙인들이 ‘갱생’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나태함과 의지 부족 때문이라고 비난하기만 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도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손 내밀지 않고 조롱하는 행위는 사악하다. 빠져 나가고 싶어도 빠져 나갈 수 없는 수렁도 있는 법이다. 고통을 당해 본 자라 해서 고통을 아는 것은 아니다. 고통은 늘 진행형이다.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만이 고통에 대해 온전히 안다.
대체 노숙인들을 집으로 돌아가게 할 방법은 아주 없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노숙인들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노숙인들은 단지 생의 패배자나 불운한 운명을 타고 난 불행아들이 아니다. 단순한 정책의 피해자만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난민들이다. 자본의 전쟁터에서 부상당하고 모든 것을 강탈당한 뒤 쫓겨난 전쟁난민들. 전쟁 피난민들인 것이다. 전쟁 피해자에게 부상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책임추궁이 아니라 긴급구호다. 부도난 재벌들에게는 수십조의 국민세금을 쏟아 부우면서 주권자들이 가진 소액의 채무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주권자들을 죽음으로 모는 제도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런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
밤 새 옛 서울 역사는 문이 꽉 잠겨 있었다. 더 이상 ‘역사’가 아닌 역 건물은 철도박물관 문패를 달고 역사가 되어버렸다. 산 사람보다 중요한 무엇이 있어서 저 건물은 그렇게 죽은 듯이 굳게 닫혀 있었던 것일까. 유물들은 박물관에서 소중히 보호되고 사람들은 박물관 밖 땅바닥에 뒹군다. 사람이 사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것은 이 나라 도처에 흔한 일이니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