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 하나가 중국 황제의 합주단에 끼어 있었다. 그 합주단이 연주할 때면 그 사람은 입술에 피리를 갖다 대곤하였으나 다른 음을 불까 두려워서 약하게 조차 불어 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는 똑같은 봉급을 받고 편하게 생활을 하였다. 하루는 황제가 그 악사의 독주를 듣고 싶어 했다. 그 피리 주자는 절망적이었다. 전문가에게 속성 강의도 받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는 음악이란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이다. 아픈 척도 해봤으나 그를 진찰한 황제의 의사를 속일 수도 없었고 점점 더 걱정이 되었다. 바로 그가 독주를 하는 날, 연주하지 못하고 독약을 마셨다. 이 일이 있은 후 오래된 중국 속담이 생겼는데, "그는 감히 음악을 연주할 수 없었다” 라는 것이다.
월간 무디(Moody Monthly)과거 글에서 조지 스위팅(George Sweeting)은 우리 문화 속에서의 정직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에 대하여 언급했다. 수 년 동안 밴더빌트대학(Vanderbilt)에서 수학을 가르친 매디슨 새럿트(Madison Saratt)교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교수는 시험에 앞서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훈계를 하곤 했다. "오늘 나는 두 개의 시험을 보게할 것인데 하나는 삼각법이고 다른 하나는 정직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두 시험 모두 통과하기를 바랍니다. 만일 둘 중 하나를 그르치게 되면 삼각법을 포기하십시오. 왜냐하면 세상에는 삼각법 시험에 실패한 사람 중에는 선한 사람이 많이 있으나, 정직이란 시험에 실패한 사람 속에서 선한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정직이란 시험에 실패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신 21:9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7월 6일(주일)에 목포에 있는 주소망교회에서 총동원주일을 가지는데 제가 가서 사역으로 돕고자 합니다. 5일에는 지역에서 찬양하며 전도하고 6일 예배 때에 교회에서 찬양하고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거짓 선지자의 출현 본문 : 요일4:1-6
스스로 선지자로 자처한다고 해서 그들 모두들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모든 시대에 걸쳐서 거짓 선지자들이 활동했음을 알게 해줍니다. 그들은 선지자처럼 주의 이름으로 예언도 하고 기적도 행했습니다만, 문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 근거를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는 이런 유혹이 존재하므로 깨어 분별하는 지혜가 요청됩니다.
1.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함(요14:6)
1)길과 진리되신 주님 거짓 선지자들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는 예수의 존재를 인정치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잘못 행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가리켜서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예수이시고,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유일한 진리가 예수이십니다. 다른 길, 다른 진리는 없습니다. 생명의 근원도 예수이십니다. 다른 종교나 인물들을 통해서는 어느 누구도 생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가 빠진 복음은 일개 도덕에 불과하며 예수를 결한 기독교는 미신과 다를 바 없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그의 언행과 삶 속에 주님을 모시지 않은 자입니다.
2)하나님과의 평화를 위한 유일한 방편 인류가 풀어야 할 최대의 과제는 하나님과의 평화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 유일한 해답이 되십니다. 다른 어떤 시도도 이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아닌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음에 대해 분명하게 증거 했습니다(행4:12).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방편은 예수뿐이십니다. 바울이 구원의 길을 묻는 빌립과 감옥의 간수에게 준 대답은 영원히 불변하는 진리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이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이 되기 때문에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거짓말하는 자요, 하나님과 무관한 사람들임에 분명합니다. 구원의 길은 '예수를 믿는 것'(행16:31)입니다. 희랍 철학에 귀의하는 것도, 율법의 자구들을 지키는 것도 소용없습니다. 예수만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합니다.
2. 세상에 속한 자들임(요일2:15-17)
1)자기 욕심을 좇아서 행함 거짓 선지자들은 세상에 속한 자들이어서 자기 욕심을 좇아서 행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주된 관심 사항은 영혼의 구원이나 하나님의 뜻의 성취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아예 안중에도 없습니다. 이리가 자기의 욕심을 채우고자 양의 옷을 입고 접근하듯이 거짓 선지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탐욕을 채우기 위해 경건을 가장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분깃과는 전혀 무관하면서도 이에 대해 역설합니다. 주의 말씀을 받은 적이 없으면서도 주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거짓말을 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물질을 탐하는 사람들,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 모두가 경계의 대상입니다. 욕심의 끝은 멸망임이 자명합니다.
2)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음 세상에 속한 거짓 선지자들은 욕심을 좇아서 행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분에 대한 외경심이 도무지 없으므로 거짓말을 지어내며, 탐욕을 채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분입니다. 사람은 몸은 죽일 수 있어도 영혼은 죽이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그 전형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권력의 시녀가 되고, 사람들의 귀에 아첨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에는 관심이 없고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데만 급급한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상에 속한 자들은 그 정체가 쉽게 드러납니다. 그 행위가 이를 증거하고, 불경건한 삶의 태도가 이를 나타냅니다. 이런 사람들을 부단히 경계해야 합니다.
3. 미혹케 하는 영(요8:44)
1)본래 거짓말쟁이임 거짓 선지자들은 미혹케 하는 영을 받아 마귀의 기적을 행하여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는 다 영혼들을 미혹하여 그릇 가게 하려는 마귀의 전술일 뿐입니다. 진리에 대해 아직 어리고 귀가 엷은 사람들은 거짓말을 잘 듣습니다. 이단 종파에 넘어가거나 잘못된 교리에 빠지는 사람들이 이러한 경우에 속합니다. 주님은 마귀에 대해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였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는 에덴 동산에서 하와에게 거짓을 말함으로 그가 범죄하도록 이끌었습니다. 거짓의 아비답게 그는 사람들을 미혹하는데 아주 능수능란합니다. 열심 있는 사람들이 미혹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열심은 있으되 지식이 없어서 거짓말을 진리로 받아들입니다.
2)진리가 그 속에 없음 마귀의 특징은 그 속에 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하수인인 거짓 선지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물론 그들은 바울이 증거했듯이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고 접근합니다. 가장 의로운 사람, 경건한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함정입니다. 짐승을 잡기 위해 함정을 만들 때는 능히 분별할 수 없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적을 이룰수가 없습니다. 마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속에 진리가 없음에도 진리의 일꾼인 것처럼 자기 일꾼들을 꾸며서 내보내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미혹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자들이 부지기수로 많은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진리 가운데 서도록 힘써야 합니다. 경건을 가장한 사단의 일꾼들, 즉 거짓 선지자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결론 거짓 선지자들의 위협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들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이 준비하고, 또 약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뿐입니다. 주의 나라가 임하기까지 그들의 활동은 계속됩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더욱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활동할 것이나 성도를 이기지는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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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상담과 지혜와 능력과 유모와 기도와 찬양과 전도와 겸손과
성결과 제자양육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합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존재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