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경기는 후반전만 봐서 총평은 못하겠네요. 어쨌든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양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약간 옆으로 새는 얘기를 하자면, 우리나라는 70년대부터 프레스와 속공 농구를 참 좋아했습니다. 아.. 물론 아시아의 전설적인 센터들을 배출해 온 여자농구가 아닌 남자농구 얘기입니다. 지난 해에 최부영 감독이 동아시아 대회 우승 직후 "앞선 프레스라는 새로운 전술을 세운게 주효했다"고 했는데, 바로 전날 중국에서 "30여 년째 경험했던 한국의 똑같은 수비방식인데, 왜 이번엔 이렇게 참패했나"라는 식의 분석 기사가 떴다고 합니다.
이런 오랜 전통(?) 때문인지, 아직도 우리나라 프로팀이나 아마농구에서는 전면 강압수비와 속공을 주요 전술로 삼는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두 가지인데, 우선 그 전술 이외의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승진이라는 역대 최고의 하드웨어를 가진, 쉽게 쉽게 골밑 포지셔닝이 가능한 자원을 두고도 프레스와 속공 위주의 경기를 합니다. 두 번째 문제는 첫 번째 것과 연결선상에 있는 것인데, "속공과 프레스를 하려면 단신의 빠른 선수를 다수 기용하는게 효과적이다"라는, 현실에서 수차례 어긋난 고정관념을 고집합니다.
2009년 동아시아 대회 앞선이 평균 187cm였다는건 다들 아실겁니다. 센터 신장은 평균 2미터를 가까스로 넘었고, 포워드 신장은 191cm이었습니다. 센터나 포워드의 활약으로 이긴 경기는 거의 없고요. 이번 대회 중대 앞선을 볼까요? 정성수(175)라는 예외가 있지만, 유병훈(187), 김선형(186), 박병우(184)를 기본으로 하고 있고, 프레스 할 때 오세근(200)이 제일 앞에 섰습니다. 최현민(193)과 함누리(195)가 중간 라인에서 패스 길을 차단했고 임동섭(194)과 이대성(190), 장재석(200)도 거들었습니다. 반면, 속공일 때는? 김선형이 볼을 주도하면서 혹여나 공격이 실패하더라도 2,3명이 동시에 달려들어 오면서 풋백 득점을 했습니다.
중대가 하프코트 오펜스 조직력을 잘 짰을까요? 컷인이나 스크린 후 2대2 플레이는 거의 없이, 돌파 혹은 3점 혹은 골밑 공격으로 매우 단조로운 운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포지션의 사이즈 우위로 성공률을 높였습니다. 어제, 오늘 상대 팀의 사이즈를 볼까요? 박경상(178), 권용웅(184), 김지완(187)으로 1,2번을 세운 연세대... 김민구(188), 김우람(183), 이지원(189)은 그럭저럭 괜찮았으나 3,4번 라인업이 서성광(192), 배병준(189), 박정훈(194), 최지훈(193)인 경희대... 비슷한 속공 찬스에서도 성공률이 현저히 차이나는 것은 조직적인 움직임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이즈 열세 때문에 수비를 벌릴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압도적인 신장 차이는 없어 보이나, 평균 3,4cm 큰 선수들이 2,3명 이상 속공의 공, 수에 가담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중대는 공들고 뛰는 선수가 수비를 앞에 두고 억지로 밀고 올라가도 세컨 리바싸움이 되는 선수가 뒤에 따라오는 반면.. 연대, 경희대는 메이드 못시킬 경우 역습을 맞을 가능성이 높고, 그것 때문에 슛의 부담까지 생겨나게 됩니다.
단신 선수가 볼핸들링이 좋고 낮은 드리블을 하기 때문에 프레스에 잘 대처한다??
박경상의 드리블 높이나 안정성은 장재석보다 훨씬 좋습니다. 그러나 장재석이 하프라인에서 속공의 다리 역할(패스 받아서 짧은 드리블 후 다시 패스)을 하는게 속공 성공률이 훨씬 높았습니다. 어제도 후기에 썼지만, 박경상이 드리블로 치고 나오는걸 알고 있던 중대는 미리 오세근과 함누리 등을 프레스 최전방에 세웠습니다. 수많은 턴오버가 양산되었죠. 역대 최강이라던 90년대 중국 남자농구가 우리나라 호빗 프레스에 대처하는 방식도 똑같았습니다. 장신 선수 위주의 간결한 패스... 수비가 가까이 붙을 때 단신 선수는 드리블을 현란하게 하거나(이것도 2명이 붙으면 무용지물) 스피드로 압도해야 하는데, 그 사이 다른 수비수가 더블팀을 붙을 시간이 생겨납니다. 반면, 장신 선수들은 몸을 등지고 수비를 묶은 후 머리 위로 패스할 수도 있죠. 한번 더블팀 들어갔는데 공이 빠져나오면 그만한 리스크도 없습니다. 어느 한 곳은 아웃 넘버 상황이니까요. 그래서 확실히 묶을 수 있는 찬스가 아니면 장신 선수에게는 속공시 더블팀을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어제 연대의 필살기 존 프레스가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너진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여튼 중앙대의 높이를 이용한 속공은, 한국 특유의 프레스 농구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높이의 효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키 큰 놈들(?)이 무지막지하게 달려들어가서 메이드 아니면 파울을 얻어내거나 풋백 득점. 수비시에는 단신 선수에게 무한 압박을 가하며 턴오버 만들어 내기;;; 근데 이번 국대도 단신 가드의 향연은 이어지겠죠?^^
첫댓글 예전 같았으면 단신 선수들이 민첩함이나 드리블 스킬등에서 앞서기에 프레스, 속공에 강점이 있었겠지만 지금같은 경우는 좋은 신장과 좋은 운동능력, 장신임에도 중요시 되는 볼핸들링등.. 그 경계가 많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점점 위너들의 세상이 오네요.. 저 같은 루저는 설곳이 없네요.. ㅠ,.ㅠ
다양한 능력을 가진 장신이 많아진 것도 하나의 요인이지만, 예전에도 단신 선수의 메리트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단신 중에 매우 뛰어난 선수가 가끔 있었던 것 뿐이죠. 그리고 그 뛰어난 선수들도 단신의 핸디캡을 항상 감수했고요. 그런데 이것을 단신 선수가 더 잘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해 온게 문제라고 봅니다.
작아도 너무 작죠.... 180짜리밖에 없는데..... 그래도 속공과 프레스는 우리가 주무기로 삼아야 할 전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공시 하승진을 철저히 이용해야 겠지만............
작지 않은 선수들로는 프레스, 속공을 해야겠지만 큰 선수들을 쓴다면 정공법이 가능해지겠죠. 문제는 190대 김승현, 210 넘는 김주성을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90년대 중국도 그렇고 신장을 높이려는 팀은 간결한 패스웍 위주의 패턴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줬습니다. 결코 같은 플레잉 패턴에서 키만 커진게 아니죠.
평균적인 개인 기량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음.. 동의합니다. 근데 제가 쓴 글과는 다소 무관한 의견인거 같은데요^^;;
농구에 있어서 어중간한 높이, 기술, 스피드, 힘을 놓고 제게 택하라면 당연히 높이를 제일 먼저 고를테죠. 어지간히 뛰어난 기술, 스피드, 힘이 아니고선 농구라는 스포츠만큼은 높이의 위력이 대단한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예전엔 단신이 더 많았던 시대이고 많은만큼 잘할 선수가 나올 확률도 그나마 많았기에, "단신 선수들이 잘한다."라는 통념이 받아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요샌 대체로 사이즈들도 좋아진데다가 그 신체에 걸맞지 않은 보디 컨트롤을 해낼 수 있는 선수들이 등장하는 마당에, kr3456님의 말씀대로 앞선의 장신화가 이제는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택 가능한 것이 크게 두가지라고 봅니다. 푸에리토 리코처럼 세계최고급 기술을 가진 낮은 앞선으로 가드의 영역을 넓히든지, 아니면 2000년대 초반 이후 아르헨티나나 대부분의 유럽국가, 90년대 중국처럼 1~5번의 신장을 모두 비슷하게 해서 몸싸움을 기본(스크린, 컷인 등)으로 모든 플레이를 하든지... 개인적으로는 전자가 훨씬 어려운 것이라고 봅니다. 후자는 우리나라도 3,4개월의 훈련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