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최고 헌법기관 권위·신중함 실종"
헌재, 이례적 선고 연기 이유는?
헌법재판소가 3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보류 관련 권한쟁의·헌법소원 사건 선고를 당일 연기한 것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 대리인단은 “최고 헌법 해석 기관으로서의 권위와 신중함은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법조계에서도 헌재가 이 사건을 급하게 심리하다가 ‘청구인 적격’ 문제를 빠뜨리고, ‘여야 합의’ 등 핵심 쟁점을 제대로 짚지 못해 선고를 미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헌재, ‘청구인 적격’ 쟁점 빠뜨렸나
권한쟁의 사건의 청구인 적격 문제가 선고 연기의 중요한 이유였다는 게 법조계 해석이다.
우원식은 지난달 3일 최 권한대행이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자 국회를 대표해 권한쟁의를 청구하면서, 국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
이에 최 권한대행 측은 1일 “우원식의 단독 심판 청구는 부적법해 각하해야 한다”는 서면을 헌재에 제출했다. 청구인을 ‘대한민국 국회’로 하면서 의결을 거치지 않은 것은 청구인 자격이 안 된다는 것이다.
국회 대리인단은 “의결 없이도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헌재는 이날 국회 측에 “6일까지 청구인 적격 문제에 대한 입장을 추가로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헌재 고위 관계자는 “오늘 선고하기로 합의가 돼 있었는데, 최 권한대행 측 의견서가 접수돼 추가 심리를 위해 변론을 재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헌법학자들은 “헌재가 선고 전 당연히 조사했어야 하는 청구인 적격 문제를 빠뜨린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이인호 중앙대 교수는 “우 의장이 권한쟁의 심판을 낼 수 있는지는 피청구인 측 신청이 없었어도 재판부 직권으로 조사했어야 하는 사항”이라며 “재판부가 논점을 놓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헌재 관계자는 “청구인 적격은 재판부가 논의 중인 문제”라고만 했다.
◇“후보자 ‘여야 합의’도 확인 안 된 듯”
최 권한대행은 작년 12월 31일 여야 합의가 안 된 점을 문제 삼아 마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보류했다. 최 권한대행 측은 “여야 합의가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전현직 원내대표 등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러나 헌재는 지난달 22일 첫 변론에서 이를 기각하고, 이틀 뒤 선고일(2월 3일)을 잡았다.
최 권한대행 측은 “합의 여부를 더 따져봐야 한다”며 변론 재개를 신청했지만, 헌재는 이조차 3시간 만에 기각했다.
그런데 선고 사흘 전인 지난달 31일 헌재는 오후 1시쯤 갑자기 최 권한대행 측에 “여야가 후보자 추천서를 국회의장에게 낸 경위를 오늘 중 정리해달라”고 했다.
최 권한대행 측은 “긴박한 요청에 응하기 어렵다”며 재차 변론 재개를 신청했다. 이후 아무런 답이 없다가 결국 선고 당일 변론 재개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여야 합의 문제는 처음부터 핵심 쟁점이었다. 애초에 증인 신청 등을 받아줘 심리를 충실히 했어야 한다”며 “헌재가 재판을 서두르는 바람에 괜한 논란을 자초했다”고 했다.
◇“재판부 내에서 의견 첨예하게 갈린 듯”
‘정치 편향’ 논란이 있는 마 후보자 임명 문제를 두고 재판관들 사이 이견이 충돌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헌재가 이번 권한쟁의 심판에서 “최 권한대행의 마 후보자 임명 보류는 잘못됐다”고 선고하려면 재판관 과반(5명)의 찬성이, 헌법소원에서 “임명 보류가 위헌”이라고 선고하려면 6명 이상의 찬성이 각각 필요하다.
한 법조인은 “재판관 중 일부가 선고에 반대하거나, 핵심 쟁점에 대한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 같다”고 했다.
황도수 건국대 교수는 “‘8인 체제’에서도 충분히 대통령 탄핵 사건의 심리와 선고가 가능한데, 굳이 마 후보자 임명 문제부터 먼저 처리해야 하느냐는 문제에 재판관들 의견이 갈렸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