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제3장 표범머리를 가진 남자
제10편 창주 탈출 10-1🎈
임충은 세 사람의 머리를 베어 묘안에 던지고 달아났다.
밤길에는 눈발이 퍼붓고 있었다.
더 이상 추위에 견딜 재간이 없어질 때 초가집이 하나가 나타났다.
이젠 살았구나 싶어 그 집에 들어가니 4. 5명의 사내들이 모닥불을 쬐고 있었다.
"저는 노성영에서 온 사람이오.
잠시 쉬어가도 되겠소?"
임충이 그들의 허락을 받고 옷을 말리는데 문득 곁에 놓인 항아리에서 술 냄새가 풍겼다.
그가 돈을 주고 술 한 잔을 사려고 하자 사내들이 말했다.
"우리는 노적 곳간을 지키는 사람들이오.
이 추위에 우리 먹기도 술이 모자라는데 어림도 없는 말은 하지 마시오."
"딱 한 잔도 안 됩니까?"
"안 되오."
"그러지 말고 딱 한 잔만 주시오."
"허어, 이 양반이 불을 쬐게 해준것만도 인심 쓴 건데 술까지 달라구?
냉큼 안 나가면 다리 뼈다귀를 부러뜨릴 것이오."
임충은 그 말에 크게 노하여 창 끝으로 모닥불을 들쑤시자 불똥이 튀어 그 중 늙은 장객의 수염을 태웠다.
장객들도 크게 노하여 일제히 임충에게 달려들었으나,
그의 창이 한두 차례 움직이자 모두 놀라 앞을 다투어 도망 가버렸다.
임충은 혼자 항아리에 든 술을 반이나 마시고 밤길을 걷다가 취해서 눈밭에 쓰러져 잠들어 버렸다.
그러자 임충에게 혼쭐이 났던 사내들이 나타나 그를 묶어 끌고 갔다.
날이 밝아 임충이 눈을 떠보니 뜻밖에도 그는 장원에 묶인 채 누워있었다.
이윽고 수십여 명의 무리들이 달려들어 임충을 마구 패기 시작했다.
그때 장원 주인이 나와서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임교두께서 이게 웬일이십니까?"
장원의 주인은 다름아닌 소선풍 시진이었다.
그는 이곳 농장의 주인이었던 것이다.
임충은 겨우 살아나 그간의 경위를 낱낱이 얘기했다.
"형님의 운명도 참 기구하십니다.
그래도 이렇게 제 집에 오셨으니 참으로 불행 중 다행입니다."
시진은 하인에게 새 옷 한 벌을 가져오게 하고 음식을 크게 차려 대접했다.
임충은 시진의 집에 일주일을 묵었다.
그러나 관가에서 살인범을 그냥 둘 리 없었다.
창주 노성 관영에서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해 체포조를 내보내고 현상금 3천 관을 걸었다.
임충은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관영에서 날 잡으러 드니 대관인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소.
오늘로 이곳을 떠나겠소.
염치 없는 말씀이나 약간 노자를 주시면 이 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 은혜의 만 분의 일이라도 갚겠소."
시진이 말한다.
"이곳을 꼭 떠나시겠다면 제가 편지 한 장을 써드릴 테니 양산박(梁山泊)으로 가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양산박이 어딥니까?"
"양산박은 산동 제주(山東濟州)에 있는 곳으로 그 넓이가 8백여 리가 됩니다.
지금 세 명의 호걸이 그 산채에 있소.
첫째 두령은 왕륜(王倫)이요,
둘째 두령은 두천(杜遷)이요,
셋째 두령은 송만(宋萬)입니다.
그 휘하에 7, 8백 명의 졸개를 두고 노략질을 마음대로 하지만 그곳은 천하에 드문 험난한 요새인지라 관가에서도 감히 손을 대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 세두령과는 일찍부터 제가 잘 아는 사이로 이제 제가 편지를 써드릴 터인 그리로 가셔서 화를 피하시는 것이좋겠습니다."
"그래야 할까 봅니다."
그러나 임충으로서는 우선 창주를 빠져나가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창주에서 빠져나가는 길 입구에는 군관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으면서 검문이 엄격했다.
시진은 궁리 끝에 임충에게 호위 하나를 붙여 주고 수십 여 명의 일행들에게 모두 활과 창을 들게 하고 여러 마리 사냥개를 앞세우고 떠났다.
검문소에서 경비병들이 그들을 보고 말했다.
"대관인께서 사냥을 나가시는군요.
돌아오시는 길에 꿩이나 두어 마리 주십시오."
"오냐, 알겠다."
시진 일행은 무사히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임충은 곧 말에서 내려 옷을 갈아입고 허리에 칼을 차고 시진과 작별한 뒤 멀리 양산박을 향해 길을 떠났다.
십여 일이 지나 눈 내리는 어느 날 저녁에 임충은 호숫가 주점에서 술을 주문하고 양산박 가는 길을 물었다.
"여기서 양산박까지는 배를 타고 건너야 합니다."
"그럼 배를 좀 타게 해주시오."
"날이 저물고 눈이 오는데 어디서 배를 구하겠소."
임충은 하는 수 없이 술만 마실 뿐이었다.
이 세상 넓은 천지에 몸 하나 의탁할 곳이 없어서 이렇게 도적의 소굴을 찾는 신세가 된 것을 생각하니 불현듯 지난날 동경 거리에서 위세를 부리던 생각이 떠올라 애끓는 한숨만 새어 나왔다.
'팔십만 금군교두로 매일 동경 번화가를 활보하던 몸이 뜻밖에 고구의 흉계에 빠져 이렇게 집이 있어도 못 가고 기구하게 떠도는 신세가 되었으니 이 회한을 어디서 풀어 볼 것이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