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 가방
석야 신웅순
여느 때보다 일찍 일어났다. 깜짝 놀랐다. 어제 잘 때는 없었는데 탁자 위에 예쁜 가방이 놓여있었다. 앙증맞은 것이 틀림없는 손녀의 가방이다. 아내가 새벽녘에 짜 놓은 것이다. 끈과 가방 위쪽은 베이지 색, 가방 아래쪽은 빨간색, 방울은 초록색 가방이다. 색감도 잘 조화되어 있었다.
“가방 누구 거요?”
“큰 손녀 거요.”
큰 딸이 보면 예쁘다고 할 것 같다. 할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겨있는 가방이다. 큰 딸이 그런다. 그것은 작은 손녀 주고 자기 딸은 다시 떠달라는 것이다. 의외이다. 큰 딸이 색깔을 엄마에게 지정해 준 것이다.
위에는 빨간색, 아래는 베이지 색, 끈은 빨간색, 방울은 초록색으로 해달라는 것이다. 작은 애는 좋다고 하는데 큰 딸의 전공이 미술이라서 그런지 좀 유별나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없다. 전화해보니 백화점으로 실 사러 왔다고 한다. 손녀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은 참으로 못 말린다.
가게 주인에게 뜨개질 가방을 보여주었더니 잘 짰다고 서로 수군대더라는 것이다. 연세 든 사람이 단시간에 짠 것을 보고 놀란 것이다. 젊은 사람이 짰다면 그냥 넘어갈 일인데 할머니가 그것도 깜찍하게 떴으니 그럴만도 할 것이다. 건망증이야 더러 있으나 젊은이보다 나을 때도 있으니 참으로 신통방통하다. 여전한 것을 보니 아내에겐 기억력보다 솜씨가 더 우선인 것 같다.
“아빠, 이 옷 참 예쁘지? 엄마가 사줬어.”
백화점에 같이 간 딸이 내게 자랑한다. 집사람이 손녀 옷 한 벌 사 준 모양이다. 할머니의 손녀에 대한 사랑이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전에는 백화점에 가면 앙증맞은 아기 옷들이 걸려있어 아내는 늘 아쉬워했다.
“언제 저 예쁜 옷을 손주한테 사주지?”
그랬었다.
하루가 지났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또 하나의 가방이 놓여있었다. 큰 딸이 주문한 가방이었다. 내 잠든 사이 뚝딱 뜬 모양이다. 역발상이랄까 또 다른 패션의 맛이 있었다.
예쁘게 짠 애기 가방을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떠 준 뜨개질 가방을 메며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손녀의 뒷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커봐, 중학교 때쯤 되면 할머니, 할아버지 다 떠나. 거기까지야.”
인생 선배들이 그런다. 떠나도 어찌 마음까지야 떠나겠는가.
만남과 이별은 둘이 아니다. 분별이 없고 차별이 없는 세계 이를 불이不二라 하지 않는가. 모든 게 고정된 것이 아닌 근본이 하나라는 것이다. 가방이 미리 내게 불이라는 숙제를 주었다. 어찌 이를 풀 수가 있으랴. 아마도 시작도 끝도 없는 배움의 연속. 이것이 인생인가 보다.
- 여여재, 석야 신웅순의 서재.2022.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