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모처럼 뉴욕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마침 지난해 1월에 작고하신 고 임창영 박사의 추도식이 거행되어 참석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고 임창영 박사는 1930년 도미하신 이래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시고 4.19혁명이후 수립된 민주당 정부에서 주미대사를 역임하셨으며 5.16쿠데타로 제2공화국이 무너지자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미주동포사회의 원로이셨습니다.
이 자리에서 보스턴에 계신 박기식 선생께서는 임박사와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 선생의 관계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임박사께서 동향 2년 선배로 미국에도 2년 먼저 오셨기 때문에 안선생이 필라델피아에서 활동하는 동안 여러모로 편의를 돌봐주셨으나 미국에서도 계속 일본식으로 표기된 ‘애끼따이’(Ekitai)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나무라셨다고 합니다. 고 임창영 박사에 따르면 청년 안익태의 소원은 ‘어전 즉 일본천황 앞에서 첼로 독주를 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년전 박기식 선생께서 유럽 여행 중 안익태 선생이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여생을 마친 스페인 마욜타섬 팔마시를 방문해 확인한 바에 의하면 팔마시가 안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지정한 ‘안익태 거리’의 스페인어 표기도 일본식인 ‘애끼따이’(Ekitai)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환상곡> <애국열사 추도곡> 등을 작곡한 세계적인 작곡가, 지휘자로 57년 문화포장을 받고 65년 문화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된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 선생이 일본식 표기인 ‘애끼따이’(Ekitai)라는 이름으로 생을 마치셨다는 사실은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애국가의 작사자는 미상으로 알려져 있으나 윤치호 선생의 작품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윤치호 선생은 1881년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을 다녀온 후 미국에 유학해 신문학을 공부하고 서제필 박사와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 『독립신문』의 제2대 사장을 역임했으며 대한자강회 회장, 대성학교 교장으로 교육사업에 힘쓴 우리 민족 개화기 선각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일제 말기에 변절해 귀족원 의원을 지냈으며 해방 후 친일파로 규탄받자 46년에 자결하셨습니다. 생전에 윤 선생께서 “내가 작사자라고 하면 누가 애국가를 부르겠는가”라며 자신이 작사자임을 밝히지 말도록 당부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3·1절 제7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이글은 9년전에 쓰인글임) 우리의 선조들이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항거했던 고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우리는 각종 행사들을 거행하며 애국가를 부를 것입니다. 노래를 비롯해서 모든 예술작품들은 일단 창작된 다음에는 작가만의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공유하는 모든 이들의 것이라고 하지만 애국가의 작사자가 친일파이며 작곡가가 죽는 날까지 일본식 이름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1945년 우리 민족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3·1독립운동의 정신을 올바로 계승하지 못하고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져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습니다. 우리 민족의 현대사는 굴절된 채 아직도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분단국으로 남아 있습니다. 현대사가 이처럼 잘못된 것은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데서부터 비롯됐습니다. 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동시에 구성된 국회의 반민특위는 친일세력의 견제, 이승만정권의 외압, 친일파 경찰들의 반발 등으로 발족 1년만인 49년 8월 와해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른 국가들의 전후 청산작업과 비교하면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프랑스는 독일에 점령당한 기간이 3년 미만인데도 사형 2,071명, 징역형 3만9,900명 등 나치에 협력한 자들에게 무자비한 형벌을 가했습니다. 벨기에에서도 5만5,000여명, 네델란드에서 5만여 명에게 징역형이 내려졌습니다. 패전국인 독일도 전후 30년 동안 9만여 명을 기소해 5,000여명에게 유죄판결을 내렸으며 일본도 21만 명을 공직에서 추방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40년이 지난 85년 나치 게슈타포의 리옹 지역 총책 바르비가 프랑스 정보기관에 체포되면서 “과거는 과거다. 이제 과거는 역사 속에 묻어버리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법정은 수많은 레지스탕스와 유태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인간백정’을 용서하지 않고 법정 최고형인 무기징역을 선고했으며, 9년 뒤인 94년에도 게슈타포의 밀정이었던 투비에에게도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친일세력들은 청산되기는커녕 해방된 조국에서 오히려 출세가도를 달렸습니다. 정부수립 후 초기 행정부처의 과장급 이상 고급공무원 625명 중 47.5%가 일제 관료 출신들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일제 관료 출신 중 4명이 장관, 15명이 차관을 지냈으며 법을 집행하는 법무부의 경우 76.2%에 달했습니다. 이승만정권의 친일파 등용은 일제에 기생했던 대 지주와 상업자본가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일본 육사출신인 박정희의 장기집권으로 이어져 우리 민족은 친일잔재를 청산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결코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일제에 항거했던 3·1정신을 올바로 계승함으로써 친일잔재를 청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분단 반세기를 극복하고 통일된 새 나라를 건설해 친일파 작사, 작곡이 아닌 통일조국의 자랑스러운 애국가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1997.3.1>
송병준의 외손자이자 구연수의 아들은 일본은행에 다니다 해방 후 초대 한국은행 총재와 자유당 정권에서 상공부장관을 지냈으니 이승만 정부가 정통성이 살아 있는 정부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는 우리는 아직 완전한 해방을 맞이했다고 할 수가 없겠습니다.
친일 부역자 김모는 건국훈장 2등급인 대통령장,,, 유관순 열사는 건국훈장 3등급인 독립장... 민족 반역자의 후손들이 아직도 나라을 좌지우지하며 떵떵거리는 동안, 독립조국의 어느 한구석에서 하나 둘 말없이 죽어가는 한많은 애국지사들,, 너무도,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길 벗님이 말씀하시는 "친일 부역자 김모씨"는 동아일보 사주였던 김성수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친일 부역자가 2등 건국훈장을 유관순 열사가 3등 건국훈장을 받는 나라가 어떻게 정통성이 살아 있다고 보겠습니까.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인지도 모릅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아야 한다는 경각심을 심어주는 글입니다. 그래서인지 이완용에 견줄만한 친일 매국노 1호인 송병준이 떠오르네요. 송병준은 고종황제에게 일본의 메이지 천황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폐하를 죽이고 자신도 죽겠다며 협박했던 역적 중에 역적이지요.
조선의 녹을 먹으면서도 일제의 ‘합방청원서’를 통감에게 제출하도록 지령 받아 그대로 행했던 송병준은 이완용과 경쟁적으로 친일을 했던 자이기에 부관참시를 해도 시원치 않은 개라고 표현해야 합당할 것 같습니다.
송병준은 친일의 공으로 일제로부터 받은 작위와 재산으로 영광을 누리다 죽은 후에는 작위와 재산을 모두 자식에게 물려줍니다. 또한 명성황후 시해사건 때 석유를 뿌리며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구연수는 송병준의 사위입니다.
송병준의 외손자이자 구연수의 아들은 일본은행에 다니다 해방 후 초대 한국은행 총재와 자유당 정권에서 상공부장관을 지냈으니 이승만 정부가 정통성이 살아 있는 정부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는 우리는 아직 완전한 해방을 맞이했다고 할 수가 없겠습니다.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엊그제는 길가에 쌓일 정도로 함박눈이 내렸습니다..고르지 못한 일기에 건강,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친일 부역자 김모는 건국훈장 2등급인 대통령장,,, 유관순 열사는 건국훈장 3등급인 독립장... 민족 반역자의 후손들이 아직도 나라을 좌지우지하며 떵떵거리는 동안, 독립조국의 어느 한구석에서 하나 둘 말없이 죽어가는 한많은 애국지사들,, 너무도,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위안부 할머님들의 처절한 절규는 우리 사회에 공허 하게만 느껴지는것은 저만에 생각일까요,....그리고 박정희도 일본군 생활을 했으면 그 호색한이 혹시 ,우리 할머니들을 범하지 안았는지....아니면 말고 ,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길 벗님이 말씀하시는 "친일 부역자 김모씨"는 동아일보 사주였던 김성수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친일 부역자가 2등 건국훈장을 유관순 열사가 3등 건국훈장을 받는 나라가 어떻게 정통성이 살아 있다고 보겠습니까.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