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룡의 무림외사 ( 제1권 )
1 - 이상한 소년
눈보라가 거세게 휘몰아쳐와 천지의 초목을 말라죽게 하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망막한 평원이 모두 백색의 눈 뿐이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기증을 불러 일으키게 했다.
이때 휘날리는 눈꽃 속을 뚫고 두 마리의 말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려오고 있었다. 앞서 달려오고 있는 말 위에 탄 사람은 다 해진 누더기
옷을 걸쳐 입고 있었고, 두 손은 소매 속에 집어넣은 채 말 고삐는 방치해
두고 있었다. 말은 상당한 준마였으나 그 위에 탄 사람은 아주 초라한
모습이었다. 다 해진 가죽모자를 눈썹 위까지 푹 눌러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다.
그와 약간의 간격을 두고 따라오는 말 위에는 이미 뻣뻣하게 굳은 시체 한
구가 실려 있었다. 그러나 날씨가 차가운 탓인지 죽은 사람의 얼굴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입가에는 약간의 미소조차 띠고
있었다. 그는 매우 화려한 의상을 걸치고 있었는데, 마치 새옷을 단정하게
해입은 것 같았다. 또한 이 죽은 사람의 전신에는 아무 상처자국도
없었으며, 보건대 아주 편안히 죽은 모습이었다.
이 두 마리의 말이 어디서 오는지는 모르나, 그들이 가는 방향은
개봉성(開封城) 밖에 있는 아주 이름난 장원이었다.
이윽고 말을 탄 사람이 눈을 들었다. 그는 멀리 장원의 모습을 몽롱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장원은 호성하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수백
개의 집들이 이어져 있어서 그 기상이 웅장하게 보였다. 높이 솟은 대문은
일 년 내내 닫힌 적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며, 그 문 앞에는 수많은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장원 담장 아래로는 어지럽게
공고문이 붙어 있었는데, 붙여진 지 오래된 듯 비바람에 시달려 그
공고문의 내용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장원 안으로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사랑채 같은 조그마한 집이 있었다. 이
집 앞 대청에는 십여 개의 새 관들이 놓여 있었는데 텅텅 비어 있는
관들이 주인을 기다리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마치 죽은 사람들이 와서
그 속에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엄동설한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청에는 불도 피워놓지 않은 채 두
명의 흑의인이 관을 탁자 삼고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관 옆에는
이미 비워진 술통이 세 개나 있었으나 두 사람의 얼굴에서는 술기운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무척 마른 체구였으며, 얼굴은 아주 냉혹하고 엄숙하게 보여
마치 돌부처 같았다. 왼쪽에 앉은 사람의 오른팔은 팔꿈치 밑에서부터
잘려나가 있었고, 이 잘려나간 팔에 검고 거대한 쇠갈고리를 달아매었는데
적어도 십여 근은 될 듯이 보였다.
그가 그 갈고리를 한 번 휘두르자 마치 관 뚜껑에 큰 구멍이 뚫릴
듯했으나 그 갈고리가 떨어진 곳에서는 아주 작은 땅콩이 튀어올라왔을
뿐이었다. 이 땅콩을 담은 접시마저도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른쪽에 앉은 사람은 얼핏 보기에 사지가 멀쩡해보였으나 한 잔 들이킬
때마다 허리를 굽히고 쉼없이 기침을 해댔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계속
술을 마셔대고 있었다. 마치 기침을 하다 죽을지언정 술을 마시지 않을
수는 없다는 듯이.......
담장의 왼쪽으로 나 있는 긴 계단과 회랑을 지나면 바로 대청이 있었는데,
대청 안에는 화롯불이 활활 타고 있었으며 여덟 개의 주안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술상마다 술과 안주가 풍성하게 차려져 있었는데 일곱 사람만이 앉아서
술과 안주를 먹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일곱 사람은 같은 주안상에 앉지
않고 모두 각기 다른 주안상들의 상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아랫자리에 앉는 것을 싫어한다는 듯이.......
이 일곱 사람의 나이는 많아야 서른한두 살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기세는
당당했으며 표정 또한 거만하기가 이미 극에 이른 듯이 보였다. 이들
중에는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으며, 중도 있었고 속인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허리에 장검을 차고 있었으며 어떤 사람은 가죽 주머니를 비스듬이
차고 있었다. 이들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어서 비록 나이는 젊지만
무림에 이름을 날리는 고수들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가 아는 듯도 하고 모르는 듯도 했지만 절대로 한 곳에서 온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들이 같은 시간에 이곳에 온 까닭이
무엇인지는 그들 자신도 모르고 있는 듯했다.
대청을 지나서 다시 회랑을 지나면 또 하나의 집이 있었다. 이 집의
울타리 안은 적막하여 사람의 소리가 없었고 왼쪽 사랑방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는데 은은한 약 냄새가 풍겨나오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머리를 늘어뜨린 동자 한 명이 약탕을 들고 나왔다. 열린 문 사이로 세
명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삐쩍 마른데다 얼굴은 납황(蠟黃)색이었으며 이불을
감싸안고 긴 침상에 앉아 있었다. 병상에서 이미 오랜 세월을 지낸
사람처럼.
다른 한 사람은 키가 훌쩍하게 크고 위풍당당했으며, 두 눈썹은 비스듬히
치켜올라가 있었다. 그의 눈빛은 형형한 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손은 백설
같았다. 이 사람은 청년 시절에는 널리 이름을 날린 미남자였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또 한 사람의 몸체는 굉장히 거대했는데, 수염이 마치
송곳처럼 솟아 있었으며 한쌍의 둥근 눈은 부리부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옷을 풀어 헤쳐 앞가슴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이 사람의 수염과 머리가 희지 않았다면 아무도
노인이라고 보지 않았을 것이다.
세 노인은 병상을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병상 앞에는 조그마한 탁자가
하나 있었는데, 이 탁자 위에는 몇 권의 장부와 색깔과 재질이 서로 다른
수십 개의 허리띠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때 둥근 눈에 수염난
노인이 허리띠 하나하나를 풀어 헤치고 있었으며 그럴 때마다 그 속에서는
단정하게 접힌 종이쪽지들이 나왔다.
키 큰 노인은 둥근 눈의 노인이 주는 종이쪽지를 받아서 거기에 적힌
글들을 다른 곳에 옮겨 적고 있었다. 이 세 노인의 안색은 매우 침중하게
보였고 이맛살을 찌푸린 모습이 자못 심각해 보였다.
차를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키 큰 노인이 길게 탄식하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얻어낸 것이 겨우 이것에
불과하다니......."
그는 가볍게 기침을 하면서 말을 멈추었다. 그의 미간에는 아쉬워하는
빛이 역력히 드러났다. 병색이 짙은 노인이 잔잔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 정도의 수확도 결코 적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어떻든 우리들이 모든
힘과 노력을 다해서 했던 일이니 언젠가는 성공할 날이 있겠지."
이때 수염난 노인이 손바닥을 치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큰형님 말씀이 맞아요."
키 큰 노인이 가볍게 웃으면서 그 말을 받았다.
"최근 십 년 동안 무림에서 가장 이름을 날렸던 칠대고수(七大高手)들이
모두 대청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의 무공이 그들의 이름 만큼
뛰어나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은
이들 일곱 사람이 모두 젊은 나이에 명성을 얻었기 때문에 서로 상대에게
양보를 하지 않아 오히려 분열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이때였다. 두 마리의 말이 장원 앞에 멈춰섰다. 말 위에는 다 해진 옷을
걸치고 낡은 가죽모자를 쓴 사람이 타고 있었다. 그는 말 위에서 몸을
훌쩍 뒤집으며 뛰어 내렸다. 그리고는 다른 말 위에 실려 있는 시체를
내려서 껴안고는 장원 안으로 들어왔다. 흐느적흐느적 걷는 모습이 곧
주저앉아 버릴 것처럼 보였으나 한 손으로 시체를 껴안고도 조금도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올려 낡은 가죽모자를 벗었다. 이때야 비로소 그의
얼굴 모습이 나타났다. 짙고 굵은 검미(劍眉)와 별처럼 반짝이는 눈을
가진 영민하고 준수하게 생긴 소년이었다. 양쪽 끝이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간 입은 웃지 않을 때도 웃는 듯한 모습이었다. 표정은 아주 나태해
보였는데 그렇게 방관하는 듯한 표정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친근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다만 허리에 비스듬히 차고 있는 장검이 사람들을 약간
두렵게 할 수 있는 정도였으나, 검집 또한 상당히 낡아 있어서 그
날카로운 검이 비록 살인의 흉기임에는 틀림없었으나 그가 차고 있으니
그렇게 두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담장에 어지럽게 붙어 있던 것은 모두 현상금을 내걸고 사람을 잡아들이는
공고문이었다. 공고문에는 각각 한 사람의 성명과 내력, 그리고 그가 범한
악행 및 현상금의 액수가 적혀 있었다. 여기에 이름이 올라 있는 사람들은
모두 흉악한 악행을 저지른 흉악범들이었다. 공고문은 모두 십여 장에
달하였고 이를 통해서 최근 강호에 흉악한 무리들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공고문의 아래에 서명한 것은 관가(官家)가
아니었다. 단지 '인의장(仁義莊)' 주인이라고만 씌어 있었다. 이 인의장
주인은 많은 현상금을 자신의 돈으로 충당하면서 강호를 위해 흉악한
무리들을 잡아들이고 있었으니, 인의라는 두 글자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다.
그 초라한 소년은 눈을 들어 그 공고문을 훑어보다가 마지막의 가장 낡은
공고문 위에 시선이 멈췄다. 그 공고문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뢰추황(賴秋煌), 삼십칠 세, 그의 무공은 공동(共同)파에서 나왔으며
쌍편(雙鞭)을 아주 잘 사용함. 그가 차고 다니는 주머니에는
칠십삼구상문정(七十三口喪門釘)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무림계 열아홉
종류의 가장 독한 암기의 하나임. 이 사람은 계략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음탕하고 흉악한 무리로서 재물을 빼앗고 여자를 겁탈하는 등 어떠한
악행도 서슴지 않음. 최근 칠 년 동안 매달 적어도 한 가지 악행을
범했음. 만약 이 사람을 죽은 채이든 산 채이든 잡아오는 사람에게는 은
오백 냥을 보수로 지불함. 이 말은 절대 식언이 아님.
인의(仁義)장주 백.
초라한 소년은 이 공고문을 읽고 나서 그것을 찢은 다음 몸을 돌려서
오른쪽에 있는 작은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마치 여러 번 이곳에
왔던 것처럼 지리에 아주 익숙한 모습이었다. 돌부처처럼 앉아서 술을
마시던 두 명의 흑의인은 들어오는 모습을 보더니 서로 눈짓을 교환하며
일어섰다. 초라한 소년은 그가 끼고 들어왔던 시신을 바닥에 내려놓고
허리를 편 다음 손을 벌려서 은자(銀子)를 요구했다. 한쪽 팔을 가진
흑의인이 갈고리로 시신을 집어들어서 살펴보았다. 그의 냉혹한 눈빛
속에서 약간의 만족스러운 기색이 뻗쳐나오고 있었다. 그는 시신을
겨드랑이에 끼고서 큰걸음으로 뛰어나갔다. 다른 흑의인은 술을 따라서
소년에게 건네주었다. 초라한 소년은 머리를 뒤로 젖히고 단숨에 입 안에
술을 털어넣었다. 그가 들어와서 세 사람이 서로 상면하고부터 지금까지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치 모두 벙어리인 것처럼.......
그 한 팔 밖에 없는 흑의인은 소로(小路)를 통해 두번째의 집들이 모여
있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다. 마침 키 큰 노인이 문을 열고 나오다가
그가 온 것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또 어떤 사람이지?"
한 팔의 흑의인은 시신을 눈이 쌓인 땅 위에 내던지며 오른손 손가락을
들어서 가리켰다. 키 큰 노인이 몸을 굽혀 살펴보더니 기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아, 뢰추황이로군."
수염난 노인이 뛰어나와 기쁜 소리로 말했다.
"뢰추황이 죽었어."
"진짜 하느님도 눈이 있구만. 어떤 사람이 그를 죽였지?"
한 팔의 흑의인이 말했다.
"사람."
둥근 눈에 수염난 노인이 웃으면서 욕을 했다.
"나도 사람이 죽인 줄은 알지. 사람이 죽이지 않았다면 쥐새끼가 죽였단
말인가? 늑대가 기른 자식아! 한 마디 더 정확하게 말해주면 혀에 쥐가
나나?"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 한 팔의 흑의인이 갑자기 갈고리를 휘둘러
공격해왔다. 갈고리가 일으키는 바람은 강했으며, 그 공격하는 기세는
맹렬했다. 갈고리가 닿기도 전에 차가운 기운이 미간으로 엄습해
들어왔다.
둥근 눈의 노인은 크게 놀라 몸을 비틀면서 옆으로 날아갔다. 키는 크고
둔해보였으나 몸놀림은 경쾌하고 가볍기 이를 데 없었다. 재빠르게
위험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앞가슴의 옷은 이미 갈고리에 의해 구멍이 나고
말았다. 한 팔의 흑의인은 일초를 공격한 후 더이상 추격해 들어가지는
않았다. 둥근 눈의 노인은 화가 나서 욕을 퍼부어댔다.
"이 망할 자식. 또 손을 써. 내가 만약 약간만 늦게 피했다면 너의 그
갈고리에 몸이 두 조각 날 뻔했잖아."
이때 병상에 앉아 있던 노인이 가볍게 질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셋째 동생, 입을 닥치게. 자넨 냉삼(冷三)의 성격을 모르는가? 알면서도
그를 욕했으니 스스로 싸움을 건 게 아니고 무엇인가?"
수염난 노인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다만 그와 장난을 했을 뿐인데. 어쨌든 그는 나를 이기지 못할
테니까. 냉삼! 만약 나를 이긴다면 너도 참 대단한 놈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
그러나 이러한 빈정거림에도 냉삼은 얼굴색도 변하지 않았으며 더이상
그와 상대하지도 않았다. 그는 곧바로 병든 노인이 앉아 있는 침상 앞으로
걸어가서 말했다.
"오백 냥."
말을 함과 동시에 갑자기 그는 몸을 돌리면서 곧장 수염난 노인의 어깨를
공격해 들어갔다. 이번에는 갈고리를 사용하지 않고 손을 사용했다.
수염난 노인은 그의 일격에 격중당하여 곧장 날아가 벽장에 '펑' 하고
부딪혔다. 그는 곧 몸을 비틀면서 뛰어 일어났지만 견고한 돌로 쌓은 벽은
거진 부서져내렸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는 크게
노하여 소리쳤다.
"망할 자식! 진짜로 때려?"
그는 소매를 걷어 붙이면서 싸울 준비를 했다. 키 큰 노인이 가볍게 몸을
날려 그들 사이에 들어서면서 말렸다.
"셋째, 어린애처럼 이게 무슨 짓인가?"
"나는 다만 그에게 물어보려고 했던 것뿐인데......."
"물을 필요없다. 뢰추황이 죽을 때의 표정을 봐라. 이미 그를 죽인 사람이
이상한 소년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은가?"
병든 노인이 말했다.
"그 소년은 도대체 어떤 내력을 가진 자인가?"
키 큰 노인이 말했다.
"누구도 그의 성과 이름을 모릅니다. 그리고 또 아무도 그의 무공이
얼마나 깊은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최근 일 년 동안 그는 일곱 구의
시체를 보내왔는데 그 일곱은 모두 다년간 우리가 현상을 걸었으나 잡을
수 없었던 악적들로 이들의 악행이 아주 다양할 뿐만 아니라 아주
간사하고 흉악하고 무공 또한 아주 높은 자들입니다. 이 소년이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죽였는지 그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병든 노인은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가 이미 일곱 번이나 왔는데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단 말인가?"
키 큰 노인이 말했다.
"그는 올 때마다 절대 열 마디 이상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름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다만 '히히' 하고 웃으면서 고개를 내저을 뿐입니다."
수염난 노인이 실소하면서 말했다.
"그 황소 고집은 냉삼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다만 그 소년은 적어도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어서 냉삼의 죽은 사람과 같은 차가운 면과는 다를
뿐이죠."
냉삼이 차가운 눈빛으로 힐끗 바라보자 수염난 노인은 크게 웃으면서
옆으로 삼보나 비켜섰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병든 노인이 실소하면서
입을 열었다.
"자네는 어떻게 그 소년이 뢰추황을 죽였다고 생각하는가?"
키 큰 노인이 그 말을 받았다.
"그 소년이 죽여서 데리고 온 사람들은 얼굴에 기이한 웃음을 띠고
있는데, 이 동생이 이미 자세히 살펴보니 뢰수황 역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수법으로 그들을 죽였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병든 노인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수염난 노인과 키 큰 노인은 그 옆에
서서 병든 노인의 생각을 방해할까봐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이때였다. 냉삼이 다시 손을 벌려서 말했다.
"오백 냥."
수염난 노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은자는 네가 가질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급해......."
이 두 사람이 다시 입씨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병든 노인은 여전히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비로소 병든 노인은 천천히 말을
했다.
"그 소년은 틀림없이 아주 깊은 내력을 갖고 있을 거요. 오늘 일에 그
소년도 참석하게 해서 같이 있을 수 있도록 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오.
냉삼. 자네는 그에게 가서 대청에 자리를 잡고 같이 술을 마실 것을
청하도록 하게."
냉삼이 다시 말했다.
"오백 냥."
병든 노인이 실소하면서 다시 말했다.
"이런 태도가 바로 냉삼을 믿을 수 있는 점일세. 그는 무슨 일을 하든간에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철두철미하게 하지. 어떤 사람이든 그에게 융통성을
발휘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걸세. 그의 말 한 마디는 벽에 못을 박는
것보다 더 단단하게 믿을 수가 있지. 심지어 나마저도 그의 생각을 바꾸게
할 수는 없을 것일세. 둘째 동생은 빨리 그에게 은자를 주도록 하게.
그렇지만 냉삼, 자네는 그 은자를 그 소년에게 준 후에 그를 그냥
돌아가게 해서는 절대 안 되네."
냉삼은 은자를 받은 후에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돌아가버렸다.
수염난 노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저처럼 주인보다 더 흉악한 종복은 드물거요."
병든 노인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냉삼 형제의 무공으로 만약 그가 그들의 부친과 나와의 양대에 걸친
정분을 생각하지 아니한다면 어떻게 그가 허리를 굽히고 이곳에 있겠는가.
셋째 동생, 자네는 어떻게 그를 종복으로 본단 말인가?"
수염난 노인이 그 말을 받아서 말했다.
"내가 말한 것은 장난말에 불과해요. 내가 냉삼의 손자라면 그를
종놈이라고 보겠죠."
키 큰 노인이 병든 노인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셋째 동생이 말을 할 때 좀더 우아하게 말하도록 바란다는 것은 냉삼이
말을 많이 하게 하기보다 더 어려울 것입니다."
한편, 초라한 소년과 흑의인은 여전히 말을 하지 않고 있었으나, 마주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번갈아
마시고 있었다. 흑의인은 술잔이 차면 곧 마시고 나서 계속 기침을
해댔다. 초라한 소년은 흑의인보다 더 통쾌하게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 관 옆에는 빈 술통이 하나 더 늘었다.
냉삼이 한쪽 손엔 은자를, 한쪽 손엔 시체를 끼어들고 큰 걸음걸이로
들어와서 은자를 관 위에 팽개쳤다. 그리고 관뚜껑을 열어젖히고
쇠갈고리를 한 번 휘둘러서 시체를 관 속으로 쳐넣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의 동작을 정확히 알아볼 때쯤 그는 이미 땅바닥에 앉아서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의 동작은 번개같이 빨랐다.
초라한 소년은 연속 세 잔을 마시고 은자를 집어든 다음 포권을 하고
웃으면서 일어서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냉삼이 몸을 번쩍 날리면서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초라한 소년은 두 눈썹을 찌푸렸다. 마치
그에게 '왜 내 앞을 막는 거요?' 하고 묻는 것처럼.......
냉삼은 마침내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장주께서 대청에 가서 술을 드시기를 원하오."
초라한 소년이 말했다.
"제가 어찌 감히 대청으로 올라가서 술을 마시겠소."
냉삼은 계속해서 몇 마디를 더하고 나서 이미 말을 너무 많이 했다고
느꼈는지 더이상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소년의 앞을 가로막고서
소년이 좌측으로 한 걸음 움직이면 그도 좌측으로 한 걸음 움직여서
가로막고, 또 소년이 우측으로 한 걸음 움직이면 그도 또한 우측으로 한
걸음 움직여서 가로막고 할 뿐이었다. 그러나 초라한 소년이 미미하게
웃는 순간 그 소년의 모습은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냉삼의 몸 뒤에 있었다. 냉삼이 몸을 돌려 쫓아가려고 했을 때 그 소년은
이미 바람막이 장벽 밑에 이르러서 냉삼을 향해 웃음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냉삼은 그를 추격할 수 없음을 깨닫고 갑자기 쇠갈고리를 쳐들어 자기의
정수리를 향해 곧바로 내려찍으려 했다. 초라한 소년이 크게 놀라서 눈
깜짝할 사이에 달려들었다. 소년이 아직 도착하기도 전에 한 줄기의
장력이 이미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냉삼은 쇠갈고리가 한쪽으로
비켜나가는 것을 느꼈으나 쇠갈고리는 그의 왼쪽 어깨에 격중되어 상처를
냈으며, 그 상처는 거의 하얀 뼈가 보일 정도로 깊었다.
초라한 소년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물었다.
"당신 지금 뭘 하려는 거요?"
냉삼의 상처에서는 선혈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의 얼굴색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눈썹도 까닥하지 아니하고 냉랭하게 말했다.
"네가 가면 나는 죽을 뿐이야."
초라한 소년이 멍청해져서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내가 가지 않으면 당신도 죽지 않겠군요."
냉삼이 말했다.
"나를 따라오도록 해요."
냉삼은 몸을 돌려서 그 소년을 대청으로 인도해 갔다.
"앉으시오."
이렇게 내뱉듯이 말한 냉삼은 대청에 있는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 초라한 소년은 냉삼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씁쓸한 미소를 뜬 채 탁자 하나를 골라 아랫자리에
앉았다.
그 탁자의 윗자리에는 삼십 세 전후의 중이 한 명 앉아 있었는데, 그 중은
몸에 청색 승포를 입고 있었다. 그는 앞가슴을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었는데 상당히 위엄이 있어 보였다. 그 중의 두 손은 무릎 위에 놓여
있었으며,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움직인 적이 없는 듯이 보였다.
눈빛은 곧바로 전방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초라한 소년이 그의 맞은
편에 앉았으나 그 중은 보는 척도 하지 않았다. 초라한 소년이 그를 향해
살짝 웃어보였으나 그 중은 여전히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소년은 어쩔
수 없이 술병을 들고 잔에 가득 채운 다음 자작하려고 했다.
이때 청색 승복을 입은 중이 갑자기 무거운 소리로 말했다.
"술을 마시려면 이 탁자에는 앉지 말도록 하시오."
초라한 소년은 깜짝 놀랐으나 얼굴에는 웃음을 띠면서 .예.하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술잔을 내려놓고 다른 탁자로 옮겨 앉았다. 이 탁자의 상석에
앉은 사람은 아주 화려한 옷을 입은 미소년으로서 초라한 소년이 앉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먼저 냉랭하게 말했다.
"본인도 다른 사람과 같은 자리에 앉아서 술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소이다."
소년은 두말도 하지 않고 세번째 탁자로 옮아갔다. 세번째 탁자의 상석에
앉은 사람은 눈같이 하얀 옷을 입은 아주 예쁜 여자로서 그 초라한 소년이
건너오는 것을 보자 냉랭하게 그를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초라한 소년은 얼른 세번째 탁자를 떠나서 네번째 탁자로 옮겨갔다.
네번째 탁자에는 아주 삐쩍 마른 오잠도인(?箴道人)이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서면서 그 앞에 놓여 있던 모든 술과 요리들에 가래침을 뱉고
나서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다시 제 자리에 앉았다. 초라한 소년은 그
모습을 보면서 미미하게 웃고는 다섯번째 탁자로 옮겨갔다. 그 탁자에는
뚱뚱하고 아주 못생긴, 그리고 얼굴에는 큰 혹이 났으며 잡초처럼 누우런
머리가 헝클어져 있는 여자가 마치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와작와작
큰소리를 내면서 탁자의 요리들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 초라한
소년이 눈썹을 찌푸리면서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돌연 옆 탁자에서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술 좋아 하는 친구. 이쪽으로 와서 앉으시오."
초라한 소년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눈을 돌려보니 그곳에는 누더기 옷에
얼굴에는 때가 더덕더덕 낀 애꾸눈 거지가 웃음을 띠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탁자를 건너서 이미 거지에게서 풍겨나오는 시큼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초라한 소년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그쪽으로
걸어가서 웃으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애꾸눈 거지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귀하와 통쾌하게 한 잔 마시고 싶지만 이 술병에는 술이 다
떨어졌소. 이 안주를 술 삼아서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오."
그 거지는 젓가락을 들어서 누우런 이빨로 안주를 와작와작 씹기
시작했다. 아울러 그 젓가락으로 옆에 있는 기름덩이의 고기를 집어서
초라한 소년의 접시로 옮겨놓았다. 초라한 소년은 보지도 않고 그 거지가
옮겨놓은 고기를 살과 가죽이 붙어 있는 채로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그 고기가 비록 개나 돼지의 주둥이에서 뱉어놓은 것이라 했을지라도 그는
아마 그렇게 게걸스럽게 먹어치웠을 것이다.
일곱번째 탁자에 앉았던 자색(紫色) 얼굴의 대한은 모든 것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듯한 이 소년의 모양에 크게 흥미를 느껴 손에 들고 있는 술을
마시는 것도 잊고 있었다.
돌연 청색 옷을 입은 동자 오더니 손에 술병을 들고 오더니 이때 곧장
거지의 탁자 앞으로 가서 웃으면서 말했다.
"술이 너무 늦었습니다. 두 분 용서하세요."
그리고 두 사람의 술잔에 술을 가득히 따라놓았다. 초라한 소년이
웃으면서 말했다.
"고맙소."
그리고는 백 냥짜리 은전꾸러미를 꺼내서 그 동자의 손에 쥐어 주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맙습니다
말목정장사님도 새해에는 복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십시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즐감했습니다~감사합니다.
오랫만에 올라왔네요~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감사~ 즐감~
ㅎㅎ
감사하고 즐겁게 읽겠습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즐독!
즐겁게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얼시구~~뭔가 잘되 가는구나,,,
시작부터 재밌네요^^
재밌겠네요
잼납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고 즐감했슴다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즐독했습니다
즐감
ㅈㄷㄳ
줄독
즐독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했습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
감사 하고 사랑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