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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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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찰 스크랩 계룡산 동학사
현림 추천 0 조회 282 17.08.09 07:12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망향휴게소에서)


계룡산 동학사

참으로 오래 만에 동학사를 찾았다.

생각해 보니 옛적에는 주로 산악회를 따라 다녔기에 몇 번 들리기는 했지만

이제는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나이가 되다 보니 계룡산 갑사는 들리면서도

동학사는 지금까지 뜸해져나 본다.

오늘은 산행을 하지 않고 단지 동학사 쪽 사찰만 둘러보기로 했다.

세월이 흘러서인지 사찰입구는 상가들이 즐비하고 주차장까지 조성되어 있었다.

허긴 거의 반백년 세월이 흘렀는데....


 

동학사의 들머리는 다른 사찰과 달리 홍살문으로 시작한다.

홍살문(紅箭門)은 홍문(紅門)이라고도 하며 유교적 윤리규범에 따라

효자·순손(順孫의부(義夫절부(節婦) 등 그들의 선행을 장려하고

표창하는 정표(旌表)로 세운 문을 말하는데 일명 정려문(旌閭門)이라고 한다.

또한 궁궐, 관아, , , 원에도 세웠는데 사찰과는 거리가 먼 문이지만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정조대왕이 세운 화성 용주사와 같이

왕족의 위패를 모시거나 위령 전각 등을 세울 때는

따로 이렇게 사찰 입구에 홍살문을 세우는 모양이다.

동학사의 홍살문은 경내에 동계사, 삼은각 숙묘전이 있기에 이에 연계된 것인가 보다.

홍살문은 둥근 기둥 두 개를 세우고 위에는 지붕이 없이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워 놓았고,

그 중간에는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태극 문양 위의 지창(枝槍)2지창과 3지창의 두 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동학사 일주문)


@ 동학사의 역사

동학사(東鶴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비구니사찰이다.

창건역사를 보면 신라 성덕왕 23(724)에 상원(上願)조사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수행하던 곳에 회의(懷義)화상이 창건 하였다.

당시에는 문수보살이 강림한 도량이라 하여 절 이름을 청량사라 했었다.

고려 태조 3(920)에 도선국사가 왕명을 받아 중창하여 태조의 원당(願堂)이 되었다.

936년 신라가 망하자 대승관(大丞官) 유거달(柳車達)이 이 절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초혼제(招魂祭)를 지내기 위해 동계사(東鷄寺)를 지었고

사찰을 확장한 뒤 절 이름도 동학사(東鶴寺)로 바꾸었다.

이 절의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동학사(東鶴寺)라 하였다는 설과,

고려의 충신이자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조종(祖宗)인 정몽주(鄭夢周)를 이 절에 제향하였으므로

동학사(東學寺)라 하였다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그 후 영조 4(1728) 신천영의 병화로 사원이 전소되어 80여년동안 빈 절터가 되었다.

그후 이조 순조 14(1814)에 금봉화상이 옛 원당터에 실상암을 짓고

절을 중건하여 절 이름을 <진인출어동방(眞人出於東方)>이라하여 ""자를 따고

<사판국청학귀소형(寺版局靑鶴歸巢形)>이라 하여 ""자를 따서 동학사라 명명했다는 설도 있고,

또 계룡산 동쪽 사찰 입구에 청학이 깃들었다는 학암(鶴岩)을 위주로 하여

동학(東鶴)이라는 절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그 뒤 고종 원년(1864)에 만화화상이 개창하였고,

그의 제자인 경허성우 스님이 고종 8(1871)에 강의를 열었으며

1879년에는 이 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한국의 선풍을 드날렸다.

근대에서는 1950년의 한국전쟁으로 절의 건물이 전부 불타 없어졌다가

1960년 이후 서서히 중건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삼성각·동림당·조사전·숙모전·육화당·염화실·강설전·

화경헌·범종각·실상선원·동학강원(東鶴講院)등이 있다.

이 중 동학강원은 운문사의 강원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강원으로 손꼽히고 있다.

 

산내암자로는 관음암·길상암·문수암·미타암·귀명암·상원암 등이 있다.

이 절이 소유하고 있는 중요 문화재로는 삼성각(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7)

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8)이 있다.


동학사는 비구니 사찰이기 때문에 조형물 역시 여인상을 상징하는 것이 많다.


작품명: 생각하는 여인


작품명: 자연과 인간


작품영: 계룡의 얼굴


동학사 입구는 역사가 긴 만큼 몇백년 된 고목이 많다.

무더운 여름, 낮더위를 피하기 위해 나들이 나온 사람들도 많은 곳이 동학사다.


바위를 감싸않고 솟은 고목


긴 역사를 ?라는 듯 옹이를 품은 고목


거대한 괴수 모양을 한 고목


엉킨 세월만큰 세월을 함께한 연리지같은, 부부를 상징한 고목


동학사가 비구니 사찰이기 때문이지 여인상을 닯은 고목이 많다.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를 뽐내는 고목

일주문을 조금 지나면 3개의 동학사 소속 암자들이 일렬로 나온다.

그 첫번째가 문수암이다.


동학사 암자들의 금당들은 단순하다. 문수암은 본당인 관음전과 요사체 분이다.

현재 불사중인 전각도 보인다.


문수암의 본당인 관음전이다.



석가모니 현시불로 관음불과 지장보살을 모셨다.


두번째 암자 길상암이다. 금당 지붕을 보니 가장 최근에 불사를 한 모양이다.






동학사 세번째 암자 미타암이다. 동학사 소속 암자 중 제일 규묘가 크다.




미타암 본당.


미타암 본당도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 좌우에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로 모셨다.


법당에 비구니 스님 두분이 계셨서 사진을 담겠다고 양해를 구하니 혼쾌히 허락하신다.

사진을 다 찍은 다음 나갈려는 데 차나 한잔 마시고 가라고 청하신다.

법당 옆 요사채에서 스님이 내어주신 차를 마시면서 한담을 즐기다가 나왔다.

아뿔사, 미처 그 비구니 스님의 법명을 묻지 않았다.  

허긴, 스님이나 나나 사바에서는 나그네이니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하랴.

아마도 레몬차로 기억나는데 더운 날이라 목이 시원했다.

비구니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 남기고 동학사로 오른다. 


동학사 금당으로 가는 초입에 정자가 눈에 들어 온다.

편액을 보니 세진정이다. 세속의 육진을 씻는 정자라는 의미인데

계울물이 없어서 정자다운 운치를 더하지는 못했다.



동학사의 상징인 숙모전의 입구다.


입구에 들어서면 좌로부터 삼은각, 동계사 그리고 숙모전이 배열되어 있다.




< 동계사 >

원래 동계사(東鷄祠)는 신라 눌지왕 때 왜국에 잡혀간 왕의 아우 미사흔을 몰래 구출해내고

 회유와 고문 끝에 죽임을 당한 충신 박제상을 모신 곳이라고 한다.

그후 신라 멸망 후 고려 개국공신 유차달이 태조19(936)에 이곳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박제상의 충렬을 기리기 위해 동계사(東鷄寺)를 짓고

제사를 지내다 병화를 만나 전소되었다가 1956년 다시 중건되었다.

 

<삼은각>

삼은각(三隱閣)은 고려 말기의 충신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고려가 망하고 3년 후인 1394, 이태조 3(1394)에 고려의 유신(遺臣) 길재(吉再)

동학사에 와서 박제상을 모신 동계사(개명전 동학사) 전에 단을 설치하여

동학사의 승려 운선(雲禪)과 함께 고려태조를 비롯한 충정왕·공민왕의 초혼제와 정몽주의 제사를 지냈다.

1399(정종 1)고려 유신 유방택(柳芳澤)이 이 절에 와서 정몽주·이색(李穡길재 등의 초혼제를 지냈으며,

다음해 이정한(李貞翰)이 공주목사로 와서 단의 이름을 삼은단(三隱壇)이라 하고,

또 전각을 지어 삼은각(三隱閣)이라 하였다.

삼은(三隱)은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제의 호에서 비롯된 것이다.



<숙모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되어 있는 숙모전(肅慕殿)<숙모(肅慕)>란 말은

  '엄숙하고 정중하게 그리워함'을 뜻하며 조선의 6대 왕 단종을 기리는 사우(祠宇).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참형을 당한 사육신과

생육신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김시습이 단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1456년 김시습이 처음 이곳에 단을 모아 사육신을 초혼 제사하자,

1457년 세조가 동학사에 들렀다가 초혼단을 보고 감동하여

팔폭비단에 억울하게 죽은자들의 명단을 적어 유교와 불교가 함께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단종이 죽은 후에는 김시습, 조상치 등 향사7신이 엄홍도와 만나 단종의 초혼제사를 지낸 곳이다.


@@엄흥도 (嚴興道)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강원도 영월(寧越) 호장(戶長)으로 있을 때,

세조의 명을 받은 금부도사에 의해 사사된 단종의 시신을 매장해 주신 분이다.

단종이 세조에 의해 영월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하자,

사람들은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단종의 시신을 돌보지 않았는데

엄흥도는 관을 비롯한 장례 기구 일체를 혼자서 마련하여 정중하게 장사를 치른 후,

벼슬을 내놓고 아들을 데리고 숨어 살았다.

현종 때 송시열의 건의로 그의 자손이 등용되었고,

영조 때 그의 충성심을 기념하는 정문(旌門)이 세워졌고 공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사육신과 함께 영월의 창절사(彰節祠)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그러나 1728(영조 4)신천영(申天永)의 난으로 이 절과 초혼각이 모두 불타 없어졌고,

1785(정조 9)정후겸(鄭厚謙)이 위토(位土: 묘에서 지내는 제사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경작하던 논밭)

팔아버리자 제사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1864(고종 1) 봄에 금강산에 있던 만화 보선(普善)이 이 절에 와서 옛 건물을 모두 헐고

건물 40칸과 초혼각 2칸을 지었는데, 초혼각은 1904년 숙모전(肅慕殿)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뒤 만화에게서 불교경론을 배운 경허(鏡虛, 18491912)9년간의 수학을 마치고

1871(고종 8) 동학사에서 강의를 열었고,

1879년에는 이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한국의 선풍을 드날렸다.

@1904년 초혼각에서 숙모전(肅慕殿)이라고 개칭된 전각 등은

6·25전쟁 때 소실되고 1960년 이후에 중건된 것이다.

 

현재의 숙모전은 1963년에 발족한 사단법인 숙모회가 봉안 인물과

의례절차를 정비해 해마다 두 차례 제향을 올린다.

음력 315일에 지내는 춘향은 김시습이 단종의 원혼을 불러 최초로 제사한 날이고,

음력 1024일에 지내는 동향은 단종이 영월 청령포에서 17세의 나이로 죽임을 당한 날이다.



대웅전 가기 전에 범종각이 있다.. 아래는 기념품 판매점이 너무 요란스러워

 비구니 사찰의 그 고즈늑한 분위기와는 너무 동떨어진다. 옛적에는 그렇지 않았는 데...




범종각 바로 뒤 대웅전 동쪽에 동학사(東鶴寺)’ 사액이 붙어 있는 이 전각이 실상선원이다.

근대의 선풍을 일으킨 경허(鏡虛)[1849~1912] 선사가 견성한 토굴자리에 세운 선원이라고 한다.



실상선원 안에서 본 범종각


더운 날씨라 길 옆에 조성한 수각이 제대로 운치를 더한다.


수각 바로 옆에 대웅전이란 석비와 함께 대웅전 가는 돌계단이 나온다.


동학사 대웅전이다. 좌우에 석등이 있다.

대웅전 마당 앞에는 삼층석탑이 있다.








대웅전은 1980년에 지어진 건물이며, 석가여래를 주존으로 아미타여래, 유리광여래가 안치되어 있다.

유리광여래는 약사여래의 이명이다. 

후불탱화로 근래에 제작된 목각삼불탱화1898년에 조성된 탱화가 동과 서쪽에 안치되어 있다.













@동학사 삼성각 (문화재자료 제 57)

대웅전 서편에 있는 위치한 삼성각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1818년에 지어진 것인데, 중앙의 칠성탱화좌우에 산신탱화, 독성탱화가 모셔져 있다.

칠성은 북두칠성을 말하는데 별나라의 주군으로 인간의 복과 수명을 맡고 있으며,

독성은 인연의 이치를 홀로 깨닫고 성인이 되어 말세 중생에게 복을 내리는 존재이다.

산신은 우리 민족 고유의 산악 신앙의 토속신으로, 호랑이와 더불어 나타나는데 재물을 담당한다.

각각 도교, 불교, 토속신앙의 한 표현으로, 불교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신앙요소가 합쳐진 형태이다. 불교 이외의 신앙대상을 모셨으므로

건물이름을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이라 하였다.








대웅전 앞의 좌측석등


대웅전 앞 우측석등




대웅전을 내려와 비구니 선원쪽으로 올라가 본다.


벽을 뚫고 나온 나무. 그 위용이 대단하다.

불교의 업이란 결국 이 장벽을 뚫고 나오는 것이 아니련지.

그런데 어디로 가는거지?

해탈? 극락?

그건 모르겠다.



비구니 사찰이라서 그런가. 닫혀져 있는 문이 너무 많다.




@강설전이다. 비구니들의 대학강단인 셈이다.

동학사승가대학은 운문사의 강원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수련 도량으로 손꼽히고 있다.

문이 닫혀져 있어 멀리서 외곽만 담았다.

사실 안에 들어가 보았자 아무 것도 없지만..


동학사의 금당들은 단조롭기도 하지만 그나마 열린 전각보다 닫혀져 있는 전각이 더 많다.

비구니 사찰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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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7.08.09 13:41

    첫댓글 고맙습니다.

  • 17.08.09 14:32

    _()_
    나무 아미타불
    감사 합니다,

  • 17.08.09 15:39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 17.08.09 18:14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 17.08.10 05:13

    감사합니다.
    잠시 머물다 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고,행복하소서

  • 17.08.14 14:39

    감사합니다.나무대자대비 관세음보살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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