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등대교회...
나랑 참 인연이 많은 곳이다.
20대 후반부터 인연이 있어 다녔으니 벌써 20여년이 다 되었나보다.
그러나 이곳, 등대교회...
예나 지금이나 같은 분들 뿐이었다.
며칠전 '시드니 사랑방 모임'에 들어와 있었는데 어떤 분이 쪽지를 날렸다.
"혹시 예전에 등대교회 한번 나온적 없나요?" 뭐 이런 내용...
그분은 그 등대교회 전도사라고 소개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났다.
세월이 십수년 흐른후 전국을 떠돌다가 먹고 살기 위해 다시 울산으로 8년전 이사를 왔었다.
바쁘게 살다가 몇년이 지나서야 생각나 등대교회를 한번 가본적이 있었다.
그때 한번 갔었는데 상황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교인이 더 늘지도 않고 더 줄지도 않은 채 언제나 그대로였다.
그때 참석후 다시 바빠 참석 못했었다.
또, 사실 난 교회에 별 흥미를 못느낀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이 참 좋다. 다른 곳에선 못느끼는 진실함이 엿보인다.
그래서 짬 나면 가끔 자식들이랑 가본다.
울산 등대교회...
이번이 세번째 사역자가 바뀌었다.
처음 울산에 전도사로 와서 울산등대교회를 만든 분은 멀리 강원도로 가신거 같다.
근황을 잘모른다.
전도사로 울산등대교회를 만드시고 목사 안수 받고 계속 사역자로 계시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홀연히 떠나셨다.
두번째로 오신 사역자님은 목사님인데 울산등대교회에 사역을 보시다 어린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는 불행을 겪으셨다.
그분 또한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울산등대교회 사역을 그만 두셨다.
몇년전 새로 오신 전도사님이 울산등대교회 세번째 오시는 사역자님이시다.
지난번에 이어 두번째 그분이 하는 예배에 참석했다.
사역자가 하는 일은 교인들에게 성경이 전하는 올바른 가르침을 주는 것이리라.
거기엔 사역자마다 배운 성경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가미하여 말씀을 선포한다.
이번에 오신 사역자님도 기존 보수 교회랑은 차별화되는 인간적인 해석으로 성경에 대해 말씀하심을 느꼈다.
예배 끝나고 같이 점심을 차려 먹었다.
그 교회는 제정이 어려운 상태다. 교인도 예나 지금이나 20여명 안팍이고 모두 직장 관계로 바쁜지라 10여명 안팍으로
예배를 본다. 그래서 아마도 각자 집에서 반찬을 마련해와서 밥상을 차리는게 아닌가 싶다.
그 교회 특성은 바로 같이 밥상머리 맞대고 앉아 밥먹는 것이다. 밥상머리에 앉아 밥먹으며 대화하는 것이다.
난 그것이 참 좋다.
오늘 점심은 뭐라더라? 캘리포니아 김밥이라나?
손바닥 만하게 자른 김에 밥과 김밥 재료를 준비해 즉석에서 싸서 간장에 찍어먹는 것인데 독특했다.
그 김밥은 그곳에 이민간 조선사람들이 여건상 간단히 허기를 채우는 방법으로 해먹던 먹거리 였다고 하는데 확실한건 잘 모른다. 재밌어 많이 먹었다. 또한 해물파전과 생 굴과 묵은 김치 등이 푸짐하게 한상 차려졌다.
너무 많이 먹어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까지도 배부르다.
교회 제정도 좋지 않고 1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교인 수가 줄지도 증가하지도 않는 교회다.
얼마전까지 지역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 공부방을 해왔다. 그러나 그 마저도 독립해 나가 버렸다.
그래서 교회가 너무 쓸모없는 공간이 많은지라 축소가 불가피 할거 같다.
게다가 건물주가 건물 사용료까지 올려 달라니 걱정이다. 현재도 월 몇십만원씩 들어가는 월세 때문에 힘들어 하는데...
나 또한 없이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라 도와 줄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안타깝기만 하다.
오늘 가서 보니 교회 규모를 작게 해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려 하고 있었다는데
아직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인간성 좋은 분들은 항상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거 같다.
오늘 가서 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10년도 훨씬 넘은 그 교회가 기도원으로 하고 있어 공식 교회로 단체 등록이 안되어 있다가 이번에 정식 교회로 등록하고 부임 했다고 한다.
난 교회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는 몰라도 뭔가 복잡한 사연이 있는듯 했다.
이야기 나누다 사역자를 자청한 전도사님께서 한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 교회는 특성상 교인 늘리기 보다 지금 함께 하는 분들과 지속적으로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는...
맞다.
그 교회는 기존 보수적 신학이랑은 뭔가 차별화가 되어 있어 보인다.
그 교회 역사는 이 땅에 고난받고 힘들어하는 민중과 함께 해왔다.
87년 이후 노조운동이 치열하게 이어질때 투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고, 광주 항쟁과 뒤틀린 정치 권력 역사에 대해
바로 잡는 일에 함께 해 왔다.
나도 지난 90년대 중반 노조활동 하면서 그 교회를 알게 되었고 주일마다 참석하기도 했었다.
한때 '민중교회' 해방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적 조직으로 활동했던 회원 교회이기도 했다.
그때 세상의 흐름에 혼란을 겪고 있던 때 울산등대교회를 통하여 나는 세상을 올바로 보고 올바로 사는 방식을 많이 터득한거
같다. 정말 울산등대교회는 내겐 잊지 못할 삶의 한 부분으로 남아있다.
그 교회의 영향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지성수 목사님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첫댓글 허허허허 오래살고 볼일일세 그려. 생활명상님이 교회를 다 가시고. ㅎㅎㅎㅎㅎ 전 생활명상님이 교회는 전혀 관심도 발길도 없으신줄 알았는디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