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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탐방 및 안내.......♧ 스크랩 무자손쳔년향화지지 (聖母庵 진묵대사)
신기루 추천 0 조회 38 06.04.17 22:13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성모암  선효문 任午


 성모암 대웅전  ( 불기 2550년 석탄일 이후 현 대웅전을 뜯어내고 신축 불사 예정이라고 ! )

 회주스님의 법문을 ~  !

 

 주련  震默大師의 글                     ( 道傳寂莫三更月    愁送江山萬里風 )

 

 주련 法隱스님의 글                    ( 聖母宮殿香雲開     靑雲衲子雲集來 )

 

 성모암 대웅전  삼존불

 성모암  극락보전

 

 성모암 극락보전  아미타여래좌상

 

  성모암   고시례전

 

 성모암 고시례전 삼존불      ( 본존 석조석가여래좌상 )

 

 성모암 진묵대사각영

 

 聖母庵  大聖靈母調意氏眞影

 

 성모암  九龍池  (진묵대사 탄생 440주년, 蓮花浮水의 의미를 담아 한반도의 지도형으로 조성 )

 성모암      진묵조사 모친 사십구제 祭文

 

 성모암 산신각

 

 성모암  산신

 

 진묵대사의 모친 묘소

 진묵대사의 모친묘소에서 우요삼잡으로 예를 올리는 참배객들 !  고시내 ~

 

 震默祖師尊비之墓

 

 고씨례 ~  ~ ~   고시래 ~  ~  ~      고시내 ~  ~  ~

 

 無子孫千年香花之地   진묵대사의 모친 묘소에서 소원을 빌면 한가지 소원은 꼭 ~~~ ?

 

 전북 김제 만경  유양산 聖母庵   


 진묵대사(震默大師)  조선 중기의 고승(高僧) : 1562 - 1633(명종 17-인조 11년).

 전라도 萬頃懸 佛居村 출신으로 ,태어난 뒤 3년 동안 초목이 말라 시들었고, 비린내가

 나는 음식과 마늘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성품이 지혜롭고 자비로워서 사람들이

 "불거촌에 부처님 났다." 고 하였다고 전한다.
 7세에 출가하여 전주 봉서사(鳳棲寺)에서 불경을 읽었는데,

 한 번 읽으면 곧 암송하고 내용을 통달 하였으므로 따로 스승을 두지 않았다.

 

 봉서사 주지는 어린 진묵에게 조석으로 신중단에 소향예배(燒香禮拜)하는 소임을 맡겼다. 
 어느날 신중들이 그 주지 승에게 현몽하여 이르기를 우리 소신들이 어찌 감히 불(佛)의

 예를 받겠는가 ,  원컨대, 다시는 아침 저녁으로 소향하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한다.

 

 ◈초의(草衣)가 지은 <진묵조사유적고 震默祖師遺蹟攷>에는 18가지 이적(神異)中

   1.늙은 어머니를 왜막촌(倭幕村)에서 봉양하고 있을 때, 여름 날 모기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고 산신령을 불러 모기를 쫓게한 뒤로는 이 촌락에 영영 모기가 없어졌다.

   2.곡차라고 하면 마시고 술이라고 하면 마시지 않는 것이 계행(戒行)이었는데,

      어느 날 한 중이그것이 무엇이냐 ? 고  세 차례나 물었으나,중이 대사를 시험하기 위하여

      모두 술이라고 대답 하였으므로 금강역사(金剛力士)가 그 중을 타살 하였다.

   3.대사가 길을 가는데 소년들이 냇가에서 생선을 끓이고 있으므로 탄식하면서,

      이 무고한 고기들이 확탕의 고생을 하는구나 ? 하니, 한 소년이 희롱하여 말하기를

      "스님도 먹고 싶지 않은가 ? " 하였다. 나도 잘 먹는다. 하면서 그 고기를

      몽땅 먹은 뒤  냇가에 가서 뒤를 보니 무수한 고기가 살아서 헤엄쳐 갔다.

   4.합천 해인사에 화재가 나자 입으로 물을 뿜어 껐다.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 千年 香火之地)

  진묵대사는 그가 출가하면 대를 이을 손이 끊기어, 그의 어머니 묘에 성묘할 사람이

  없을 것을 예견하여 풍수설에서 말하는 무자손 천년향화지지(無子孫 千年香火之地 =

  자손이 없어도 제사를 지내줄 사람이 천년 동안 이어지는 명당 유양산)에  안장 하였다.
 
  이 무덤에 고사를 드리면 병이 낫고 부자가 된다고 하여 400 여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잘 보존 되어 내려오고 있으며 ,  오늘날에도 많은 참배객이 줄을 잇는다.

 

 ◈고시래의 유례
    진묵대사는 불거촌에 어머니의 묘소를 정하고 후손이 없으므로 지속적 관리를 위해

    진언으로, 제사 지내는 방편을 삼아 들에 나가 음식을 먹을 때  "고시래" 라 하여

    제사를 대신 하였다 한다.
   고시래의 고시는 제주 고씨인 성모님의 고씨(高氏)에서, 례는 예도예(禮)를 써서

   고시래라하여 간편하게 신행할수 있게 한 것에서 유례 된다고 전한다.
 
 ◈ 진묵대사모친49제문
   열 달 동안 태중의 은혜를 무엇으로 갚으리오
   슬하에 삼년 동안 길러주신 은혜 잊을 수 없습니다.
   만세 위에 다시 만세를 더하여도 자식의 마음에는 그래도 부족하온데
   백년 생애에 백년도 채우지 못한 어머님의 수명은 어찌 그리도 짧습니까 !
   표주박 하나 들고 길거리에서 걸식하는 이 스님은 이미 말 할 것이 없거니와
   비녀를 꽂지 못하고 출가하지 못한 누이동생이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단에 올라 불공을 마치고 단을 내려와 제사를 파하니 스님들은 제각기 방을 찾아 들어가고
   앞산 뒷산만 첩첩한데 어머님 영혼은 어디로 떠나시렵니까! 아 ! 애달프고 슬프도다.
 
  이 묘소가 퇴락될 즈음 丁巳年 (1917년) 5월에 고(故) 이순덕화의 현몽에 의하여 진묵대사

  어머니의 묘소를 알게 되었다 한다,
  부인이 영험의 놀라움에 기의(己疑)하여 묘소에 정성껏 시묘를 하는 동안 지방 유지 및

  인근의 신도들이 진묵대사의 약력과 이순덕화 부인의 공덕 비문을 세우고 묘 아래 재각을

  건립하고 삼존불을 위시하여 진묵대사 모자 분의 영정을 봉안하고 , 己巳年 (1989년)

  성모암으로 중창 .

  당우로는 대웅전,고시례전,극락전, 종무소 요사 등.


◈주련
  진묵대사의 글
   道傳寂寞三更月(도전적막삼경월) : 도를 위한 마음은 삼경의 마음처럼 적막하기만 하다. 
   愁送江山萬里風(수송강산만리풍) : 근심, 걱정, 번뇌의 마음은 만리 밖으로 날리어 보낸다.

   

  法隱스님의 글
   聖母宮殿香雲開(성모궁전향운개) :성모궁전의 향내음은 구름따라 만리에 퍼지고 
   靑雲衲子雲集來(청운납자운집래) :청정한 수행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수행 정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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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4.20 23:05

    첫댓글 진묵대사님의 유적이 남아있는 사찰입니까?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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