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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서신
2011년 6월 26일
안녕하세요. 그리운 얼굴들.
내일이면 벌써 연행 40일째, 구속 38일째를 맞는데요. 제주 교도소 여사동에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신용인 변호사님께서 오셔서 강정마을의 현황 등 많은 소식들을 친절하게 전해 주시면서 옥중 서신을 써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습니다.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간 서신과 면회를 통해 정치적으로 무거운 얘기만 한 것 같아 약간은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길지 않게 쓰려고 합니다.
최근에 도라씨가 20페이지 가까이 되는 제 모두 진술서를 모두 타이프 쳤다고 들었을 때, 제가 부탁한 것은 아니지만 무척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 글씨가 악필인데다 도라씨가 바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도라, 진심으로 고마워요.
옥중에 있는 저야 자유가 구속되었을 뿐이지만, 강정 마을에서 오전 6시부터 해군과 공사업체와 매일 살 떨리는 긴장 속에 대치를 벌이는 주민들과 평화 활동가들의 고초에 비하면 '호텔'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립 수도원'에 있는 것이지요(강미경 선생님 표현입니다.).
고권일 주민 대책위원장님께서 언젠가 저를 '투덜이 스머프'라 하셨는데 제 안달복달하는 성격이 어디 가겠습니까? 강정마을에선 쫑알쫑알거렸는데, 여기선 다른 동료들과 좁은 방을 공유하니 삼가 하기도 해야 되고 1, 2차 합쳐 24일 간의 단식에 기운이 없어 말로는 못 쪼고.. 애꿎은 도라씨에게 편지로 참 많이 부탁을 했습니다. 도라씨가 그 때마다 힘든 가운데도 도와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3명의 동료와 13.3m2의 방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1 사람당 1평 공간에서 숨쉬는 것인데요. 좁은 방에서 서로 부딪치지 않게 조심하다 붙박이 옷장에 머리를 부딪친 게 몇 번입니다. 늘 24시간을 서로 보면서 살아야 하다 보니 꼭 교도소 규율이 아니다 하더라도 자체 내 규율이 자율적으로 잘 지켜지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일어나는 시간은 오전 6시 25분, 하루 종일 핀 책상을 접는 시간은 오후 4시 25분, 이부자리를 까는 시간은 오후 7시 25분입니다. 청소도 아침, 저녁으로 정해진 시간에 꼭 하는 바람에 제 인생 통틀어 청소와 거리가 멀었던 저는 제 평생 가장 위생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견딜만하고. 적응을 잘 하는 편인 저는 나름대로 시간을 유용하게, 또 즐겁게 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50-60대가 많은 재소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젊은 30대의 여 교도소 직원들이 그들 직업 때문인지 약간 '권위'적으로 보여 불편했고 지금도 그러하긴 하지만, 그것보단 제 존재를 통해서 많은 직원들과 재소자들이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다시 생각하는 것 같아 의미 있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이전에 양윤모 전 영화 평론가 협회장님께서 이미 '장기간의 옥중 단식'으로 자국(trace)을 남기고 가셨지요.
저는 여기의 여성 교도소 직원들을 좋아합니다. 직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통제의식'과 '유니폼'만 없으면 어디에서든 그 상냥함과 배려로 사랑 받을 사람들입니다. 실제로 그들 중에는 올레 7코스를 걷다 공사 현장 앞에서 후드가 달린 코트를 입고 길을 가리키는 제 모습을 봤다는 사람도 있고 자신도 제주도인데 저의 해군기지 반대 싸움에 자극을 받고 부끄러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제 자신은 여기선 볼 수 없는 강정마을 카페 싸이트에 들어가 소식을 알려고 노력도 한다는군요. 그들이 저에게 대체적으로 호의를 보이는 것은 분명합니다. 제가 단식할 때 건강을 염려하기도 했지요.
저와 같이 있는 재소자 동료들을 저보다 다 나이가 많은 40대 후반~50대 분들이었는데 몇 주 전에 한 분이 옆 방으로 가고 최근에 저보다 나이가 세 살 적은 신입이 들어오면서 우습지만 서열(?)과 나이가 무리 없이 맞아 떨어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불운한 사정으로 구속된 경우들인데 개개인을 보면 모두 착하고 매력적인 사람들입니다. 아시다시피 큰 도둑들은 뻔뻔하게 권력을 휘두르고 힘없이 작은 범죄자들이 감옥을 메우고 있지요. 언젠가 재소자 동료들과 강정 해안에서 다시 만나 강정마을과 강정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왜 강정의 해안을 지켜야 하는지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자 네 명이 24시간 같이 한 방에서 생활하다 보니 서로 어느새 차이를 극복하고 같이 사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동료들이 저 때문에 괴로웠을 것입니다. 신입이 단식한다고 링게르 꽂고 비실대고 있으니.. 부려 먹기는커녕 돌보게 생겼으니. 그래도 참 다들 잘해주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음식 냄새를 맡는 것도 괴로웠고 하여 독방으로 옮겨 달라 부탁했지만 규모가 작은 여 사동이다 보니 남은 방이 여의치 않았지요.
그러나 어쨌든 제가 단식하면서 제주 도민일보를 구독하는 모습을 보더니 지금은 다 해군기지 찬성에서 반대로 되었고 또 강정마을의 소식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단식 중에 무슨 많은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냥 역사의 대세가 그런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그 중 한 분은 올레 7코스를 자주 여행했고 강정 마을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권술용 단장님, 김경일 신부님, 현애자 전위원님, 변연식 평통사 공동 대표님, 김종일 선생님, 홍기룡 공동대책위원장님, 강동균 마을 회장님, 개척자들의 송강호 박사님, 박윤애님, 박정숙 님, 맥그리거 에디와 신구범 전 도지사님, 고권일 주민 대책위원장님. 많은 분들께서 면회 오셔서 격려를 해 주고 가셨는데요. 영국, 독일, 미국 등 해외에서도 많은 격려 편지가 왔습니다. '우주의 무기와 핵을 반대하는 글로벌 넷워크'는 6월 17일-19일 메사추세츠 안도버 회담을 앞 두고 구속된 저를 위해 맥그리거 에디를 파견하기도 했으며 6월 10일 제 재판의 첫 심리 때 1,000여명 이상이 워싱턴 소재 남한 대사관에 전화를 해 강정 주민들을 탄압하지 말고 제주 해군기지 공사를 중단하라고 항의 집회를 하기도 했지요. 글로벌 넷워크의 사무 총장 브루스 개그논은 맥그리거 에디와 함께 미국과 세계의 많은 단체들에게 제주 소식을 알렸습니다. 그 중 'the Nuclear Resister'가 양윤모 교수님과 제 체포 소식 등 최근의 제주 소식을 국제 뉴스란에 올렸는데 Nuclear Resister는 핵 원전, 핵무기에 반대하거나 전쟁으로 수감된 미국, 국내 및 국제 소식을 실는 NGO 미디아입니다. 신문을 읽어 보니 핵무기 철폐를 외친 오바마 행정부 밑에서 사상 최고로 핵 반대로 수감된 사람의 수가 많다 하네요. 미국 활동가들 중에는 순수하고 헌신적인 분들이 많습니다. 짐승의 뱃속에서 싸우는 그들을 또한 격려하고 연대하는 것도 우리의 관심사가 되어야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것은 저의 어머니입니다. 처음에 제가 구속되었을 때 충격도 많이 받고 우셨는데 얼마 전에 강정마을 중덕 해안에서 열린 가톨릭 평화 미사도 갔다 오셨어요. 그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도 되셨다고 담담하게 면회 와서 말씀하시는데, 어머니만큼 자식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뭉클했습니다. 제 친구의 많은 어머니들이 자식 때문에 투사가 되거나 그렇진 않더라도 자식의 편에 서 이해하시게 되는 경우를 보아오긴 했는데 제 어머님이 저로 인해 또 조금이나마 강정 주민들의 투쟁을 이해하시게 되었다면 얼마나 감사드릴 일입니까! 저는 제 어머님을 위로 드리고 또 이해시키려 많은 노력을 기울인 제 동료와 선배들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얼핏 단조로워 보이는 교도소 생활에 예기치 않은 많은 즐거움을 주는 것은 월요일부터 토요일 매일 오전 20분 운동 시간 마다 보는 뒤뜰의 예쁜 꽃들입니다. 여 사동 울타리 안 쪽 전면을 차지한 벽화-. 시간이 없었는지 올이 안 그려져 아쉬운 초가집 지붕 2개가 있는. 한 쪽 편으로 여기 기결수이라 사동 도우미로 일하는 분이 심으신 백합, 칸나, 장미, 그리고 곧 피어날 해바라기들. 얼마나 마음에 위안을 주는지 모릅니다. 그 중에 재소자들과 교도관들의 눈길을 가장 끈 것은 다름 아닌 양귀비들. 개양귀비 꽃들이라 해야 되나요? 아편용이 아닌 관상용이랍니다. 마치 주황색과 빨간 수채화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은 얇고 하늘거리는 꽃잎.. 보드라운 잔털이 달린 가는 줄기와 봉우리를 보고 많은 이들이 그 아름다움에 충격을 받았지요. 그렇지 않으면.
김진숙씨가(60일 넘게 고공 농성을 하는 한진 중공업, 야간 교대제 철폐를 위해 공권력의 탄압을 감수하는 유성 회사 노동자들, 쌍용 노동자 가족을 위해 성금을 모은 과거의 고문 피해자들. 반값 등록금을 위해 거리로 나와야 되는 학생들의 얘기 등 뉴스에 관심이 쏟아지는 스프래틀리와 파라셀 군도를 둘러싼 미, 중 격화 갈등의 움직임이 한, 중 분으로 도로 오고 있지 않나 하는 불안이 한편으로 오는 6월입니다. 유엔평화학교로 긍정적 대안의 빛이 밝혀진 제주,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우뚝 서는 날, 제주도민은 동북아 역사의 자랑스러운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뵐 때까지 모두 건강하시길.
최성희 올림
첫댓글 참, 행복해 보이면서도 슬픈 글입니다. 근데, 악필...점점 편지 끝으로 갈 수록 악필!! ^^ 컴으로 다시 정리한 마음도 참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정리한 글에서 오타가 더 많은듯 ㅎㅎㅎ. 고맙습니다. 최성희씨 건강하시구요.
최성희씨 힘내시구요~~옥중에라도 건강 잘 챙기기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