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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 482? ~ 565]는 비잔틴 황제(527∼565)입니다.
유고슬라비아 니시근교 타우레시움 출생으로 소년시절에 콘스탄티노플의 근위군사령관이던 숙부 유스티누스 1세의 양자로 들어가 교육을 받았습니다. 성장하여 군인의 길을 택했다가 518년 숙부가 황제로 선출된 뒤 정계로 진출하였습니다.
그 후 집정관·육군원수·부황제로 순조롭게 승진하면서 연로한 숙부를 도왔습니다. 숙부가 사망한 뒤 명실상부한 황제로 군림하였습니다. 18년간의 치세 동안에 많은 공적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로마법대전》의 편찬, 옛 서로마제국 서방령의 탈환, 정통신앙의 확립이 있습니다. 법학자 트리보니아누스에게 로마법의 개정·재편을 명하였습니다.
① 하드리아누스황제 이후의 칙법을 다시 정리, 편집한 《칙법집(유스티니아누스법전, 12권, 529년)》 ② A. 파피니아누스·J. 파울루스·우르바누스 등의 고전법학자들의 여러 학설들을 정리해 현행법으로서 사용이 가능한 형태로 재편집한 《학설집(50권, 533년)》 ③ 법률학교용 교과서로 만들어진 《법학제요(法學提要, 4권, 533년)》, 그리고 여기에다 유스티니아누스법전 이후 565년까지의 칙법 158편을 모은 《신칙법》을 더하여 4개의 법률전집을 편찬하였습니다.
이어 그는 옛 로마제국의 부흥을 위한 서방 대원정에 착수하여 534년 북아프리카의 반달왕국, 554년 에스파냐의 서고트왕국 일부, 555년 이탈리아의 동고트왕국을 다시 제국의 영토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격렬했던 과거의 그리스도교 정통·이단논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다시 니케아 신경을 정통으로 재확인하고, 로마교회와의 우호관계 유지를 확인하기 위해 553년 제 5차 니케아 공의회를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하였습니다. 이때 그리스도 단성설을 주장하는 동방속령과의 타협을 도모하기 위해 네스토리우스파의 혐의가 있는 3주교의 학설을 거부해 삼장논쟁까지 야기시켰습니다.
그는 이교배척에도 열심이어서 529년 이교도 학자들이 모여 있던 아테네철학원의 폐쇄를 명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통신앙 확립의 움직임은 이집트의 콥트교회, 아르메니아교회, 시리아의 야고보파 교회가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의 감독을 피하여 동방분리교회로서 독립해 나가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내정에서는 여러 해에 걸친 전쟁과 그 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무거운 세금, 그리고 이교·이단에 대한 억압정치 때문에 시민들 사이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수도에서는 그 불만이 폭발하여 532년 <니카의 반란>이 일어났지만 황비 테오도라, 장군 벨리사리오스의 도움으로 이 폭동을 진압하였고, 그 후 이 난으로 타서 무너진 하기아소피아의 재건, 대궁전 증축 등 국내 각지에서 왕성한 건축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또 중앙아시아로부터 명주의 생산방법을 도입하고 이를 국영산업화해 상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등 안정된 정권을 유지하였습니다. 또 이를 배경으로 그의 치하는, 역사가 프로코피오스·말랄라스, 신학자 시메온, 동방의 성프란체스코라고 불렸던 수도사 요하네스모스코스 등 다수의 학자·문인·역사가·신학자가 나온 문예 융성기였습니다.
아래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그를 따라는 군인,관료,성직자들의 그림입니다.(라벤나 산비탈레교회 내부에 장식된 모자이크화) |
첫댓글 정말 12제자와 같이 있네요~ 마치 예수님인듯.. 황제교황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