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세봉(梁世奉) 장군(1896~1934)】 " ① 난세에 태어난 혁명가의 어린 시절 ⑴"
☞ 안병호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초빙교수
● 양세봉, 그는 누구인가?
양세봉(梁世奉:1896년~1934년) 장군은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걸쳐 중국 남만주 일대에서 치열하게 항일무장투쟁(抗日武裝鬪爭)을 전개한 민족해방운동사(民族解放運動史)의 큰 영웅이다. 국민부(國民府) 산하 무장 조직인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의 총사령관에 취임한 후, 중국인 반일운동 지도자들이 조직한 요령민중자위군(遼寧民衆自衛軍)과 연합작전을 펼쳐 1932년 영릉가성전투(永陵街城戰鬪), 1933년 흥경성전투(興京城戰鬪) 등에서 일본군을 무찌르고 수십 차례에 걸쳐 국내진공작전(國內進攻作戰)을 벌여 나감으로써 1930년대 항일독립운동(抗日獨立運動)에 하나의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양세봉 장군은 중국인들 사이의 고조된 반일 감정에 부응하여 중국인 명망가들의 주도 아래 결성된 요령민중자위군 등과 적극 연대함으로써 중국인들과 한국인들의 항일연합전선(抗日聯合戰線)을 결성하였다. 그 후 양세봉 장군은 공세적인 항일무장투쟁에 나서 영릉가성 전투, 흥경성 전투 등에서 일본 군대에 맞서 승리함은 물론, 강화된 조직적 역량을 기반으로 국내진공작전에도 적극 나섰다.
양세봉 장군의 민족주의 이념에 기초하면서도 진보적 이념의 색채에 눈감지 않는 ‘개방적 민족주의 이념’과 항일독립운동이라는 공동의 대의를 위해 중국의 여러 반일 세력과 연대해 나가는 ‘유연하고 현실성 있는 투쟁 방략’은 민족 내부의 갈등 요소를 최소화하고 급변하는 국제정세에서 평화와 민족적 통합을 추구해야 하는 현 시대의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사실 양세봉 장군은 1945년 8·15광복 이후 정치적 주도 세력들에 의해 애써 외면당했던 역사 인물이었다. 좌우대립에 뒤이은 퇴영적 형태의 민족주의의 득세, 그리고 이로 말미암은 경직된 시대 분위기에서는 전통적 민족주의에 기초하면서도 진보적인 사회적 조류에 눈을 감지 않는 개방적 자세를 견지한 국민부와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의 정치적 지향성은 그 진가를 인정받기 어려웠다. 아울러 서울의 국립묘지와 평양의 애국열사릉 양쪽에 다 묘소가 있는 그의 독특한 위상은 그간 남북대립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양세봉 장군과 그가 지휘한 조선혁명군의 활약상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이제 이와 같은 상황은 타파되어야 한다. 편협한 퇴영적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진취적으로 평화와 민족적 통합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양세봉 장군이 실천한 ‘개방적 민족주의’와 ‘유연하고 현실성 있는 투쟁 방략’의 길에서 많은 시사점을 찾아내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양세봉 장군과 그가 몸담은 국민부·조선혁명당·조선혁명군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새로운 조명 작업이 절실하다 할 것이다.
양세봉 장군, 그는 한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영웅으로 비록 중국이나 남한에서는 그의 이름 석 자가 다소 생소하지만 북한과 중국내의 조선족 사회, 그리고 일본의 역사학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의 빛나는 활약과 뛰어난 전공(戰功)은 중국 동북 지역에 사는 소수민족들에게, 특히 압록강 연안 지역과 연변 지역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대륙 침략의 우선적 단계로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滿洲事變)을 도발하여 1932년 3월 1일 괴뢰정권인 만주국(滿洲國)을 세우고 본격적인 대외팽창정책(對外膨脹政策)을 전개할 때에 수많은 한국인들이 항일유격대(抗日遊擊隊)를 구성하여 중국의 의용군과 함께 만주국을 무너뜨리기 위한 투쟁을 벌였다는 사실은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양세봉 장군이 이끄는 조선혁명군은 이러한 무장 조직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부대로서 일본의 군사력에 매우 효과적인 타격을 주었던 용맹스러운 독립군이었다. 앞으로 양세봉 장군과 조선혁명군의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많은 관심과 논의가 이뤄지고 그 관심과 논의가 앞으로 우리 민족이 아나갈 평화와 민족적 통합의 길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기를 기대한다.
https://youtu.be/jGQQEF9dz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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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공부할 적에 독립군 쓰리봉 선생님 '원봉, 두봉, 세봉' 꼭 외워야 한다고 하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