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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발효차의 제다법에 대한 고찰
- 고려말, 조선시대 문헌과 증언을 중심으로 -
원광대학교 박사과정
장 효 은
Ⅰ. 서 론
우리민족 전통문화의 뿌리인 차와 차문화는 자주적 의식성이 매우 강하며 민중들의 생활 속에 깊게 자리 잡아 왔다. 고려와 조선의 왕실에서는 대소행사 및 제사에 차를 올리는 다례가 행해졌고, 문인들은 학문정진과 수행을 위해 필수적인 차를 마시며 소박한 차 생활을 즐겼으며 민중들은 기호음료와 약으로서, 또 기원의 수단으로서 차를 사용했다. 다산 정약용의 ‘술을 마시는 민족은 망하고, 차를 마시는 민족은 흥하리라’고까지 했을 정도로 차의 가치는 높게 평가 받았다. 더불어, 차와 차문화는 우리의 정신세계를 심화시켰을 뿐 아니라 주체적인 민족의 정서와 역사적 의지까지 포함하여왔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 민족에게 중요하게 자리 잡았던 차의 현 위치는 어떠한가? 우리나라 차의 유구한 역사와 그 다양성은 잊혀지고 왜곡되어 녹차 중심의 차와 차문화가 대세를 이루고 있고, 발효차 및 후발효차는 주로 외국에서 수입된 차가 대부분이며 발효차는 우리의 것이 아닌 외국의 것이라는 일반적 사고가 통용되고 있다.
또한 대중에게는 차와 차문화는 접근이 까다롭고 어려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고, 문화 산업적으로는 외국차와 차문화의 홍수 속에 우리의 차와 차문화는 신음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차와 차문화는 인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가까운 중국과 일본은 차에 대한 문화적, 산업적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나 우리는 우리 차를 알고, 발전시키려는 노력보다 양국의 주도권 다툼에 터전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차의 약80%가 강발효차의 일종인 홍차이다 녹차 중심권이던 동아시아권에서도 발효차와 후발효차에 대한 관심과 소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로 홍차를 포함한 발효차의 소비는 훨씬 확대되어 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잊혀지고, 왜곡되어왔던 우리 차의 세계를 발효차를 중심으로 그 유구한 역사성과 우수성, 다양한 종류와 제다법등을 증명하고 논하여보고자 한다. 즉, 문헌 속에 나타난 우리나라 발효차의 원형과 제다법의 자취를 찾아 분석하고 특징을 파악함으로써 그 기초를 확실히 하고, 현대적으로 복원, 재창조할 수 있는 부분을 모색하며 우리 발효차의 발전가능성과 경쟁력을 타진해보고자 한다.
II. 발효차의 개념과 우리나라의 발효차
1.발효차의 정의
1)일반적인 발효(Fermentation)
발효란 넓은 의미로는 미생물이나 균류 등을 이용해 인간에게 유용한 물질을 얻어내는 것을 말하며, 좁은 의미로는 산소를 사용하지 않고 에너지를 얻는 당분해 과정을 말한다. 또한 단백질로 이루어진 효소가 유기물을 분해하여 인체에 유익한 물질들을 발생시키는 과정을 말하기도 한다. 식품을 발효시키는 목적은 맛과 향, 저장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기원전부터 다양한 발효식품을 만들어 왔다. 여유와 기다림이 필요한 발효문화는 풍부한 자연물과 우리의 농경문화, 특유의 넉넉한 여유를 지닌 민족성이 어우러지면서 일찍부터 꽃피워진 것이다. 중국의 문헌은 고구려 사람들이 장, 젓갈, 술 같은 발효 식품을 잘 만들었다고 전한다.1) 특히 발효식품의 종류가 수천가지에 달하고, 오랜 세월 축척된 발효기술의 깊이나 다양성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깊고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그로 인해 우리는 발효식품의 종주국으로까지 불린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지구촌 사람들이 발효미를 알게 되리라 예견한 바 있다. 점차 발효가 음식문화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고, 특히 홍차, 보이차의 열풍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차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2) 제다법상의 발효의 의미
차에서 발효란 차 잎 속의 폴리페놀(주로 카테킨)이 산화효소(폴리페놀 옥시다아제)의 작용에 황색이나 홍색을 띄는 테아플라빈(theafIavin)이나 테아루비진(thearubigin)이라는 성분으로 바뀌면서 수색과 맛, 향 등이 변화되는 과정을 말한다.2) 그리고, 후발효차는 미생물의 번식을 유도해 다시 발효가 일어나게 하는 과정이다. 차의 효소 발효과정을 좀더 세분화면 시들리기(위조), 유념, 발효, 건조로 나눌 수 있다. 차잎은 생 잎 상태에서 수분 75~80%를 유지하고 있는데 위조 과정에서 수분은 50%대로 감소하고, 잎은 풀이 죽은 상태, 즉 연화가 된다. 화학적으로는 산화효소와 가수분해 효소가 활성화 되어 본격적인 발효가 진행되기 위한 준비 상태가 된다. 이 후 유념과정에서 차 잎의 세포가 파쇄 되면서 세포내질이 혼화된다. 이 때부터 본격적인 발효과정이 진행되는데 잎에서 발열반응이 생기면서 발효는 가속화 되며 카테킨의 산화 외에 단백질은 가수분해되어 아미노산이 증가 되고, 다당류는 가수분해 되어 배당제가 가수분해 되어 향기성 화합물 등이 생성되고 리놀산이나 리놀렌산 같은 지방산이 산화, 분해, 환원되면서 향기 성분이 생성되게 된다.
후발효에는 민황과 퇴적이 있는데, 민황은 잎속의 수분에 의한 열의 경도 작용으로 다량의 카페인이 감소하는 작용으로 황차의 제조에서 사용된다.3) 퇴적은 초기에는 야생 효모가 미생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다 퇴적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번식되는 미생물의 종류가 바뀌어 주로 국균에 의한 발효가 진행되는 것으로 흑차의 제조에 사용되는 과정이다.
차는 위의 발효과정의 정도에 따라 크게 비발효차, 발효차, 후발효차로 나눌 수 있다. 이를 다시세분화하면 비발효차에는 발효도 5%미만의 녹차가 있고, 발효차에는 발효도가 10%대인 백차, 민황을 거치지 않는 20-30% 전후의 황차, 30-70%의 청차, 80%이상의 강발효차인 홍차가 있으며 후발효차로는 민황을 거친 20-30% 전후의 황차와 발효도 100%의 흑차가 있다. 녹차, 백차, 황차, 청자, 홍차, 흑차는 색상에 따른 6대분류로 본 논문에서는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편의상 6대 분류명을 사용했으나, 용어에 대한 우리식 재정립은 추가로 필요하다고 보아진다.
2. 우리나라 문헌에 나타난 발효차
1)우리나라의 발효차 개념정의-제다용어의 재해석
문헌상에는 정약용의 『혜장상인에게 차를 청하며 부치다』란 시의 “焙曬須如法”란 문구처럼 蒸이나 炒의 살청과정이 없이 焙와 曬가 자주 언급되어 발효차가 우리 차와 차문화 속에 많은 부분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일반적으로 문헌상에 나타나는 제다 용어로는 크게 증(蒸), 초(炒), 배(焙), 쇄(曬)를 들 수 있다. 蒸이란 “찐다”라는 뜻으로 제다과정에서는 주로 증기를 이용해 찻잎을 찌는 살청과정을 의미한다. 炒란 “볶는다”라는 뜻이며 제다과정에서는 주로 솥에서 덖어 내는 살청과정을 의미한다. 焙란 “불에 쬐다, 말리다”라는 뜻이며 제다과정에서는 차 잎을 焙로 말리거나 온돌에 말리는 과정을 의미한다. 즉 서서히 간접적으로 불의 열기를 이용하여 말린다는 것을 말한다. 曬란 “햇볕에 쬐어 말리다”라는 뜻으로 차의 제조와 건조과정에서 불이 아닌 햇볕의 강한 열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蒸과 炒는 용어상 사용이 명확하여 별도의 논의가 필요 없다고 보아지나 焙와 曬는 문헌 해석상 많은 혼란을 노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焙와 曬의 의미는 문헌상의 정확한 해석 및 정의가 필요하다. 焙가 사용된 문헌상의 예를 보자. 다경의 造茶 過程을 보면
맑은 날 따서, 찌고, 찧고, 치고, 불쬐어 말리고 뚫어 봉해두면서 차는 마른다.
(晴埰之 蒸之, 檮之, 拍之, 焙之, 穿之, 封之, 茶之乾矣 )4)
에서 병차 제조시 찌는 살청과정을 거친 후 건조하는 방법으로 焙를 사용하고 있으며 좀더 미세한 의미는 “배로에 말리다”라는 것이다. 다경의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직화가 아닌 일종의 개방형 오븐의 구조를 보이는 배로에서 간접적인 불기운으로 말리는 것이다. 焙의 이런 사용례는 『대관다론5)』에서도 볼 수 있다. 製造장과 藏焙장 등에서 단차를 만들기 위해 살청과정 후 말리는 과정으로 焙가 사용되고 있다. 다만 약간의 다른 해석을 보이는 경우가 『다신전6)』인데, 여기서 焙는 두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첫 번째는 造茶장의 “곧 차 움 한 근반을 덖어 말린다.(將茶一斤半焙之)”에서 배는 덖는 炒와 불을 쬐어 말리는 焙가 통합된 “덖어 말리다”라는 뜻이다. 두 번째는 藏茶장의 “다시 약한 불에 쬐어 바짝 말리고(復以薇火焙㥛乾)”에서는 제조를 마친 차를 간직할 때 건조법으로서 ‘말리다’의 뜻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이를 종합 해볼 때 焙의 사용은 대부분 ‘약한불(배로, 온돌)에 말리다’로 볼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약한 발효가 진행된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문헌을 풀이할 때 焙를 ‘덖는다’로 해석하고 이를 일종의 살청과정으로 보아 이 과정을 거쳐 제조된 차를 녹차로만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
문헌에서 제다법이 언급될 때는 가장 중요한 과정 위주로 언급되는바 별도의 蒸이나 炒의 살청과정이 焙와 같이 언급되었을 경우에는 일종의 건조과정으로 蒸이나 炒의 살청과정이 없이 焙만 언급되었을 경우에는 焙는 서서히 발효가 되도록 말리는 것을 의미하므로 발효와 건조가 동시에 진행되는 약발효의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曬는 “햇볕에 쬐어 말리다”라는 뜻이고 이 과정에서 일광의 열로 인해 焙보다 빠른 발효가 진행된다. 제조과정에서 별도의 蒸이나 炒의 살청과정이 曬와 같이 언급되었을 경우에는 약간의 발효를 포함하는 일종의 건조과정으로 蒸이나 炒와 살청과정이 없이 曬만 언급되었을 경우 焙보다 강한 발효를 포함하는 일광위조와 일광건조가 결합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우리나라의 발효차의 종류
(1) 백차
일반적인 의미의 백차는 솜털이 덮인 차의 어린 싹을 따서 덖거나 비비기를 하지 않고 실내나 실외 위조과정만을 거친 후 건조해 차 잎이 광택을 내는 차로 10%정도의 발효도를 갖는다. 향기가 말고 맛이 산뜻하며 탕색이 맑다. 문헌상 이 백차에 해당하는 차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정약용의 글 중 유배가 끝나고 고향에 돌아온 후 강진의 제자들에게 쓴 편지에서
다산 : 올라올 때 이른 차를 따서 햇볕에 말렸느냐
제자 : 미처 못하였습니다.7)
((다산) 來時 摘早茶付曬否 (제자) 曰未及)라고 하였다.
이 글에서는 덖거나 찌는 과정에 대한 언급이 없으므로 어린잎을 따서 曬했다는 것은 차의 제조에서 살청과정에 없었으며 유념 없이 일광위조과정을 거쳐 발효와 건조가 동시에 진행됐다는 것을 의미하며 일종의 백차라고 볼 수 있다.
曬라고 했으므로 강한 발효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으나, 여기서 우리는 유념과정이 없다는 것과 차 잎이 이른 차 즉, 어린잎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유념과정에서 차 잎의 세포가 파쇄되고 세포내질이 혼화되어 자체 발열과정을 통해 발효가 급속히 진행되므로 유념이 없을 때에는 발효의 속도가 현저하게 느릴 수밖에 없다. 또한 차 잎속의 산화효소는 큰 잎일수록 일조량이 많아지는 여름에 가까울수록 많은 함유량을 보인다. 그러므로 늦게 딴 잎일 경우에는 그 크기가 클 뿐만 아니라 많은 일조량 때문에 산화효소가 많아 발효되기가 쉬우나 일찍 딴 즉, 조차(早茶)일 경우 잎의 크기가 작고 적은 일조량으로 산화효소가 훨씬 적어 발효가 더디게 나타난다. 즉 같은 시간의 曬과정을 통하더라도 유념이 없는 이른 차는 약발효가, 늦은 차는 강발효가 되기 때문에 여기서 언급된 차는 발효가 약한 백차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익재 이재현(1287-1367년)의 『松廣和尙寄惠新茗』란 시에서
가을 감[柿]먼저 따서 나에게 부처주고 봄에 말린 작설 여러번 보내왔네
(霜林 虯卵寄會先 春焙雀舌分赤屢)
안시문중 춘배작설(春焙雀舌)이란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말한 春焙란 봄에 말렸다는 표현으로 청이나 蒸의 살청과정을 거치지 않고 봄에 딴 잎을 배로나 온돌에 말려 제다했다는 뜻으로 이 또한 백차제조과정으로 볼 수 있다.
(2) 황차
황차는 두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약발효차로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인 의미의 황차는 여린잎이나 거친 잎을 햇볕과 그늘에 번갈아 시들린 후 유념하여 약발효시킨 차(20-30%)를 말하며 맛이 순하고 차잎의 색상과 우려낸 수색 모두 황색을 띠며 투명하다. 다음은 후발효차로 보통 녹차처럼 살청한 후 따뜻할 때 민황을 시킨다. 일회의 처리량이 적으므로 포대나 상자에 넣어 위에서 습한 천을 씌워 수 시간에서 수일간 정치한다. 황차는 녹차와 오룡차의 중간에 해당되는 차로써 쓰고 떫은 맛을 내는 카테킨 성분이 약 50-60%감소되므로 차의 맛이 순하고 담백하다.
우리나라산 황차가 나타난 문헌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김해읍지』(金海邑誌, 1630년편성, 순조때 증보, 1929년 속간)에서는 “토산)황차가 극강곡에서 나는데 일명 장군차라고 한다.((土産)黃茶在金剛谷一名將軍茶)”라며 황차를 언급하고 있으며, 『물명고』(物名攷, 유희(1773-1837)에서는 “황차는 노엽을 딴 것이다.(黃茶 採老葉)”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황차가 크고 늙은 잎을 채엽하여 발효시키며 문헌과 전승민요8)에서 나타나듯이 이른 차는 주로 양반들을 위해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는 일반적인 백성들이 음용하는 생활 속의 차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序)중 「도다변증설」(道茶辨證設) (이규형(1788-?))에서
황차는 매번 우리나라에 많이 유입되는데 일용으로 마신다. 그러나 오직 사대부 집안이나 부호들이 쓰는 것이어서 중원지방에서 항상 쓰는 것과는 다르다.
(黃茶蔿第四. 而黃茶每多流入栽東, 爲日用所飮, 然性在士大付家及富豪者所用, 而不如中原之以爲恒用之.)했으며,
『송남잡지』(宋南雜識, 조재삼(1808-1866)에서는
또한 해남에는 예부터 황차가 있는데 세상에서는 아는 사람이 없다. 오직 정약용이 알뿐이어서 정다(丁茶)라고 이름한다. 라고 했다. 『가오고략』(嘉梧藁略), 이유원(1814-1888)에서는 “정은상공이 밀양 황차를 준 것에 감사함(謝貞隱相公贈密陽黃茶二首)”이라고 하며 “심양과 사천의 차보다 정은상공이 보내준 밀양황차가 휄씬 더 좋다.”고 해 국산 황차의 품질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만국사물기원역사』(萬國事物基源歷史, 1909, 황성신문사, 장지연(1864-1921))에서도, “차(중략)남해 강진의 동청차와 황차와 동귤차를 사용하니라.”라고 황차가 나타난다.
이외에도 빙허각 이씨부인(1759-1824)이 “타색 황차는 고련근을 달여 백져포에 드리면 빗히 고은 뵈 갓다.”라며 황차에 의한 염색법9)을 연구할 정도를 문헌상 많은 언급을 보이는데, 이는 “황차”라는 용어 자체가 빨리 정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만큼 일반적으로 생활 속에서 기호음료로 약용으로 염색용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3) 홍차(강발효차)
홍차는 잎을 햇볕과 그늘에 번갈아 시들린 후 유념하여 80%이상 강발효시킨 차로 맛이 상쾌한 떫은 맛을 내며 차잎의 색상과 우려낸 수색이 동홍색과 갈색의 혼합색을 띤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문인들이 이 강발효차인 홍차를 비유적으로 붉은 자주빛 안개란 뜻을 가진 자하(紫霞)라 표현하기도 했다. 정약용의 『다합시첩』(茶盒試帖)에서
연꽃이 물 위로 솟아났을 때 홍소를 마실 줄도 모르는데
온몸이 녹색인 작은 개구리가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 있네.
(蓮葉初穿水 紅酥未解擧 小蛀通體繕 終日坐端燃)
했는데 소락, 제호 등과 함께 차를 뜻하므로 홍소는 붉은 차탕을 뜻한다.10) 즉 홍차를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연종이 쓴 『차를 주신 박치암에게 사례하며』11)에서
봉함 뜯어 자용을 보기도 전에 종이에 배인 향내 벌써 코를 찌르네
구리쇠 화롯가에 차의 운치가 행여 깍일까 염려되지만 한창 타는 불로 끓이기를 손수 시험했네.
(未假開緘見紫茸 巳覺透紙香墨鼻 銅灰雖恐損標格 活火煎烹手自試)
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자용은 자줏빛으로 발효된 차, 즉 홍차를 말하며 그 음용법이 차를 끓여서 마시는 팽다법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동다송』에서
돈대 아래 칠불선원이 있는데 좌선하는 자가 늘 늦은 잎을 늦게 따서
햇볕에 쬐고, 말려 나물국을 삶듯이 솥에 넣고 섶나무로 달이니
색이 붉고 짙고 탁하며 맛은 매우 쓰고 떫다.
(臺下有七佛禪院 坐禪者常晩取老葉 曬乾然柴煮鼎 如烹菜羹 濃濁色赤 味甚 澁)12)
이라고 해 칠불선원에서 강발효차인 홍차를 만들어 마셨던 것을 알 수 있다.
만취(晩取)와 노옆(老葉)이라 했으므로 차잎을 이른 봄이 아닌 늦은 봄이나 여름을 전후로 채옆을 했다는 것과 또 그 잎의 크기가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쇄건(曬乾)이라 했는데, 이는 그 잎을 강한 볕에 발효 및 건조시켰다는 것을 말한다. 차잎이 클수록 산화효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발효되기가 쉽고, 채엽시기가 늦을수록 이른 차에 비해 산화효소를 많이 포함하여 발효되기가 쉬우며, 기온 및 일광의 세기는 강해져 그 온도로 인한 발효의 속도가 가속화 되어 세가지 조건이 충족되었을 경우 강발효가 된다. 그리고 초의는 삶는 팽다법을 이용하여 마시는 차의 탕색이 푸르거나 누런 것이 아니라 붉고 진했다고 한다. 적(赤)과 농(濃)은 바로 홍차의 색이다. 그러므로 칠불선원의 차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일쇄형 홍차이다. 실제로 양력 5월 말에서 6월의 햇볕에 유념한 차 잎을 두엇을 경우 3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에도 강발효가 일어나고 강한 맛과 붉은 색을 가진 홍차가 되는 것을 여러번 경험할 수 있었다.
(4) 후발효차(떡차)
후발효차의 특징은 산화효소가 파괴되어 일정기간은 녹차상태를 유지하며 그 후 자연상태에서 수분이 흡수되어 미생물, 주로 누룩균에 의한 후발효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떡차에 대한 언급은 『다신계절목』의 “입하 전 늑차를 따서 떡차 두근을 만든다.(立夏之前 取晩茶 作餠二斤13))”부분과 『도다변증설』에서 볼수 있다.
교남 강진현에는 만불사에서 나는 차가 있다.
정다산이 귀양가 있을때, 쪄서 불에 말려 덩이를 지어 작은 떡으로 만들게 하고, 만불차라 이름지었다. 다른 것은 들은 바 없다. 우리나라 사람이 차를 마시는 것은 체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다.14)
조선의 떡차가 후발효차로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일제 때 일본인 모로오까 박사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마시는 법은 이 단차를 불에 쬐어서 통병에 넣고 달여서 그 빛깔이 홍차처럼 된 것을 알맞은 정도로 삶는 것이어서 우리들이 알고 있는 『다경』의 처방에 의한 단차의 마시는 법과는 상당히 취향을 달리하고 있다.”15) 자다법으로 끓여 마시며 그 색이 홍차처럼 붉은 후발효차의 특성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떡차는 일상적으로 음용 되었을 때, 호남지방에서는 호열자(콜레라의 일종)를 예방하는 상비약으로 일반가정에 비치됐을 정도였고, 음용법은 탕관에 물을 끓인 다음 떡차(돈차) 두서너 개를 집어넣어 차가 활짝 퍼질 때까지 더 끓여마셨다고 한다.16)
Ⅲ. 우리나라 발효차의 제다법
1. 종류별 제다법
1) 백차
앞의 문헌에서 살펴보았듯이 백차는 아주 어린 잎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덖거나 찌는 과정을 생략하고 햇볕에 시들리는 曬과정이나 온돌이나 약한 불에 말리는 焙과정을 통해 발효와 건조를 동시에 진행하여 약발효차인 백차를 제조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조를 할 때 생잎을 겹쳐지지 않게 하여 대나무 등으로 만든 채반 위에 올린 후 햇볕이 있고 바람이 잘 부는 조건하에서 일광 위조와 발효가 동시에 진행되어 아주 약한 발효도를 유지한다.
2) 황차
① 찻잎을 따서 햇볕이나 음지에 널어 시들리면서 발효시킨 후에 녹차와 같이 찌거나 덖어 산화효소를 없앤 후 비벼 말린 차로 화개, 구례, 사천, 죽곡차가 있다.17)
② 찻잎을 따서 살짝 찌거나 살짝 데친 후 비비고 말리는 도중에 발효시킨 황차이다. 근세에 경남 사천군 다솔사에서는 찻잎을 슬쩍 쪄서 압착하여 물기를 빼고 찻잎을 치대어 매주덩어리처럼 뭉치면서 진이 나오면 뭉친 덩어리를 삼베보에 싸서 솥에 넣고 뭉긋한 불에 1시간가량 띄운 다음 또 치대어 온돌방에서 비비면서 말린다.18)
③ 찌거나 덖지 않고 시들어진 찻잎을 두손으로 비빈 후 발효시켜 온돌에 말리거나 그늘에 말린 차로 옥과차와 정동차가 있다.19) 비빌 때는 두 손바닥에 찻물이 촉촉이 배일 정도로 비빈다. 이것을 백지를 깐 채반에 모아 상보로 덮은 후 따뜻한 곳에 한 참 두어 발효가 되면 채반에 널러 말린다.
④ 봄에 어리고 부드러운 잎을 채엽해서 멍석에 널러 그늘에서 말린다. 차잎이 시들해지려고 하면 차잎에서 물이 촉촉이 베어 나올 정도로 손바닥으로 비빈다. 손바닥을 대봐서 뜨겁지 않고 그냥 따끈할 정도로 온돌방에 불을 지핀다. 방 위에 흰종이를 깔고 종이 위에 비빈 차 잎을 널어 말린다. 1시간 정도면 찻잎은 흑갈색을 띄며 건조된다. 이 제다법은 순천시 정묘현 할머니의 증언에 의한 것이며, 고향인 전남 곡성에서 내려왔던 제다법이라고 한다.20)
3) 홍차
위에서 언급했던 『동다송』의 23송 부분에서 晩取老葉 曬乾이라고 했다. 이는 산화효소가 많아 발효가 손쉬운 늦은 잎을 따서 햇볕에 발효시키고 말린 전형적인 일쇄홍차 제다법을 말해주고 있다. 늦은 잎이라 했으므로 대략 5월 하순 이후로 추정되며 이 시기의 화개의 찻잎들은 대작에 속하는데 이 잎을 햇볕에서 위조하면 수 시간 내에 찻잎은 유념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유념 후에 차 잎을 두껍게 쌓아 햇볕 속에 노출시키면서 찻잎 자체의 발열과정과 높은 기온으로 인해 급격한 발효가 일어나면서 띄우는 발효과정이 된다. 띄우는 발효를 통해 만들어진 차는 만들어진 직후에는 향이 좋지 않고 탕색도 흐리며 맛도 쓰지만 수개월의 숙성을 거치면 본연의 우리나라 홍차의 향과 부드러운 맛을 갖게 된다.
다음으로 하동군 악양면에는 4월말, 5월초순에 새잎을 따서 온돌방에서 말려 손으로 비빈 후 음지에서 말리는21) 홍차 제다법이 있다. 악양 일대의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런 제다법이 아주 옛날부터 내려왔었다고 하며 시들이는 과정은 온돌이 아닌 그늘에서도 행해졌다고 한다. 현재 일부 제다원에서는 이 발효법으로 홍차를 생산하고 있다. 하동의 악양과 화개는 타 지역보다 아 잎이 일찍 피는 지역으로 4월말에서 5월 초순의 차 잎은 중간엽에 해당한다. 위조는 차잎이 부드러워지고 풀냄새가 줄어들면서 좋은 사과꽃향기가 날 때 멈추는데 보통 18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충분한 위조 없이 유념을 할 경우 찻잎이 파쇄 될 뿐만 아니라 발효가 고루 진행되지 않게 된다. 이 후 그늘에서 3cm 정도로 쌓아 발효시키는데 이 시기의 기온은 25℃ 이내여서 최근 선호되는 저온발효가 자연적으로 진행된다. 이 홍차는 제조 직후부터 좋은 향과 맛을 갖는다.
4) 후발효차(떡차)
떡차의 제조법은 우리나라 문헌, 근세에 백운옥판차를 만들었던 이한영씨의 손자 이관묵씨의 증언과 「조선의 차와 선」을 통해 알 수 있다. 다산이 69세 되던 때 이대아(李大雅)에게 보낸 편지22)에는 자세한 떡차의 제조법이 나타나 있다. 곡우 즈음의 어린 잎을 채엽해 여러번 찌고 발리는 고정을 반복함으로써 곱고 찰진 떡차를 만드는데 찌고 말리는 횟수는 삼증삼쇄 이외에도 「가고오략」에서 말한 구증구포까지 다양하다.
이제 곡우 때가 되었으니, 다시금 이어서 보내 주기 바라네.
다만 지난번 부친 떡차는 가루가 거칠어 썩 좋지 않더군.
모름지기 세 번 찌고 세 번 말려 아주 곱게 빻아야 할 걸세
또 반드시 석천수로 고루 반죽해서 진흙처럼 짓이겨 작은 떡으로 만든 뒤라서 찰져서 먹을 수가 있다네.
두 번째로 근세에 만들어지던 백운옥판차 제조법은 다음과 같다. 5월에 차잎을 시들이고 그 것을 시루에 찐다. 그 다음 찻잎사귀가 부드러워지면 절구에 찧는다. 차 잎사귀가 찐득찐득해지면 다식판에 넣어 일정한 형태로 만든다. 그 크기는 곶감의 반쪽만하다. 이렇게 다식판통에 찍어낸 것들을 대소쿠리에 담아서, 활짝 개인 날씨에는 햇볕에 말리고 흐린날이면 온돌방에서 말린다.23)
세 번째로는 1920년대 전남 장흥군 죽천리와 봉덕리의 청태전차와 나주군 다도면 불회사의 떡차 제조법이 있다. 찻잎을 시루에 찌다 김이 나면서 푸른 색이 없어지고 누르스름해질 기미가 보이며 물러지면 꺼내어 절구에 곱게 찧는다. 돌이나 나무 떡판에 천을 깔고 둥근 모양의 나무테나 죽륜 혹은 쇠로 만든 틀에 박아낸다. 틀에서 뺀 차는 멍석이나 대나무 소쿠리에 놓고 햇볕이나 바람으로 말려 1차 건조되면 구멍을 뚫어 햇볕이나 온돌, 차배롱이나 배로를 사용해 2차 건조시킨다.24)
이를 통해 떡차의 제조는 4월의 이른 잎을 사용하여 여러번 찌고 말리는 고운 떡차와 5월의 늦은 잎을 사용하여 비교적 거칠게 만드는 떡차가 있었으며, 크기는 건조하기 쉽게 비교적 작은 크기로 많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배로를 사용한 경우도 있지만 자연적으로 햇볕에 말리거나 배로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온돌방에서 손쉽게 건조를 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2. 우리나라 발효차의 우수성
위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예부터 다양한 종류의 발효차가 존재했고, 계급에 상관없이 발효차는 제조되고 음용되었다. 많은 문인들이 우리 차의 우수성을 찬양했다는데 그들 또한 녹차와 발효차를 모두 즐겨 마셨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우리나라 차는 녹차와 발효차를 모두 포함한다. 초의 의순의 동다송에서 우리 차의 우수성을 동다기를 인용하여 반복 강조해 표현하고 있다. 중국의 명차로 소문난 몽산차와 육안차보다 조선차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동다기에 이르기를 혹자는 우리차의 효험이 월산차에 미치지 못한다 하나 내가 보기에는 색, 향, 미가 조금도 차이가 없다.
다서에 이르기를 육안차는 맛이 뛰어나고 몽산차는 약효가 뛰어나다 했는데, 우리차는 둘다를 겸했느니라.25)
김정희는 「희증만호(戱贈晩虛)」란 시에서 다음과 같이 쌍계사에서 만허가 만든 차를 극찬했다. 만허에게 희증하다. 만허가 쌍계사 육조탑(六祖塔)아래 주거하는데 차를 만드는 솜씨가 절묘하였다. 그 차를 가지고 와서 맛보이는데 비록 용정의 두강으로도 더 할 수 없으니 향적두 중에는 아마도 이러한 무상의 묘미는 없을 듯하다.26)
그의 청과의 교류를 통해 각종 중국의 차를 섭렵한 사람이기도 했는데 그런 그가 조선에서 만들어진 지리산 쌍계사의 차를 중국 명차로 지금까지도 이름 높은 용정차도 더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고 한 것이다. 또한 그는 초의가 만든 차에 대해서도 “차 꾸러미는 과연 훌륭한 제품이라 능히 차의 삼매를 통달한듯하이.”27)라며 칭찬했다. 김상현 교수는 “1872년 이유원이 사시향관에 있으면서 고경선사와 함께 보림차를 마셨고, 보림차가 보이차보다 낫다는 평가를 내렸다.”28)라고 하였다. 보림차는 후발효가 된 죽로차 떡차이다. 위 문헌들에서 우리는 많은 문인과 다인들이 중국차보다 좋다고 한 우수한 발효차들이 조선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Ⅳ. 결 론
이상에서 고려말부터 조선시대까지 전승되어 왔던 우리나라 발효차의 다양한 종류와 제다법 등을 고찰하여 보았다. 우리조상들은 고려시대 뿐만 아니라 차와 차문화가 쇠퇴하였다고 보는 조선시대와 근세까지도 생활속에서 우리의 발효차를 많이 음용하였고, 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여 널리 그 우수성을 인정하고 찬양했다. 이에 우리는 우리차에 대한 유구한 역사와 다양성을 이해하고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 발효차 제다법은 생활 속에서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까다롭고 복잡한 제다법이 반드시 좋은 차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제다법을 고수하는 것은 차의 가격과 다양성을 해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필자가 우리 발효차의 종류와 그 제다법에 대해 고찰한 것은 발효차가 현대인의 기호와 문화에 훨씬 적합하고 또한 특성상 녹차에 비해 손쉬운 제다가 가능하며 색, 향, 미에서 많은 변주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평상시 차를 평가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항목을 묻는 질문에 대하여 68.2%가 맛, 28.1%가 향기, 3.4%가 탕색을 선택하였다. 이것은 우리나라 차를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향이나 색보다는 맛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우리나라 소비자가 좋아하는 차맛을 살펴보면, 부드러운맛 24.9%, 맑고 개운한 맛23.9%, 고소한맛 22.6%, 쌉쌀한맛 14.9%, 단맛 13.8%, 상쾌한맛 10.5% 등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발효차는 외국산 발효차에 비해 부드럽고 맑은 맛을 지닌다. 이는 소비가가 가장 선호하는 맛으로 우리 차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될 것이다.29)
우리나라의 발효문화가 세계적으로 뛰어난 것은 여러 축척된 기술과 함께 기후변화가 뚜렷하기 때문에 감은 곳의 찻잎으로 발효를 시켜도 시기에 따라 다른 발효도와 다른 맛이 나온다. 찻잎의 특성과 발효의 조건이 자연적으로 풍부해지는 것이다. 이를 이용해서 역으로 표준화시킨다면 다양한 기호성을 충족시키는 발효차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우리 차의 제조는 대부분이 복차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최근 발효차에 대한 여러 가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 시도들과 함께 문헌이나 증언을 통해 알려진 전통 발효 제다법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및 과학화 노력, 그를 통한 기계화가 병행된다면 매우 뛰어난 맛과 다양성을 가진 발효차가 만들어질 수 있다. 더불어 가격 면에서도 경쟁력이 확보되면 우리나라 차에 또 다른 미래가 가져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