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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04
S#1. 의원의 집 / 낮
홍도(소리) : 어찌되는 겁니까?
윤복, 잠들어 있고,
윤복을 뒤로하고 앉아 이야기 나누는 의원과 홍도 보인다.
작고, 낡은 의원의 집.
약재들과 작두 보이는 작은 방에 앉은 의원과 홍도.
홍도 : (나지막하고 진지한) 생명에 지장이 없겠습니까?
의원 : (장죽 떨며) 죽을 정도는 아니야. 걱정 말게.
홍도 : 그럼, 다시 붓을 잡을 수는 있겠습니까?
의원 : 굳어버리기 전에 움직이면, 붓자루는 어떻게 쥘 수 있겠지. 지 하기에 달렸어.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뭘.
홍도 : (안도하며) 다행입니다..
의원 : 대체 누군가? 누구길래 그렇게 전전긍긍이야?
윤복 : (세상 모르고 자는데)
홍도 : (윤복 보고)
S#2. 이인문의 집 앞 길 / 낮
이인문의 집으로 향하는 홍도.
윤복이 홍도를 따라가다가 멈추고,
홍도 : 손이 나을 때 까지 밖에 나갈 생각 말고 여기서 지내거라.
윤복 : ... 제 손이랑 스승님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싫습니다.
홍도 : 그래서, 어딜 가려고? 그 손을 하고 일재 어른 앞에 나설 생각이냐? 영복이가 그 손을 보게 할 요량이야?
윤복 : 이게 다 무슨 소용인데요? 선생님도 선생님 갈 길을 가시죠. 아-, 이제 도화서에 돌아가지 않을테니,
스승님이라고 할 필요도 없겠네요.
홍도 : 뭐야?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윤복 : 몰랐습니까? 저 원래 이런 놈입니다. 김형.
홍도 : 뭐? 김형? 이 놈이, 갈 수록!! 아무튼, 두 말 말고 여기서 지내거라.
윤복 : 제가 왜 여기 있습니까, 김형. 전 가겠습니다.
홍도 : 그래서, 어딜 가려고? 그 손 가지고 도화서 가면 누가 받아주기나 한 대냐? 응? 넌 단청소도 못 간다. 신군.
윤복 : (멈춰서면)
홍도 : (윤복 보다가, 아무렇지 않게) 뭐하네? 어서 들어오잖고.
윤복 : (이인문의 집 보면)
윤복 이인문의 집으로 가고, 홍도, 윤복 보는데..
홍도 : 일재어르신께는 내가 얘기해 놓겠다.
S#3. 도화서 / 신한평의 방 / 낮
신한평, 바둑판 앞에서 바둑돌 들고 생각에 잠겨 있고..
홍도, 서안 앞에 앉아있다.
서안에 걸린 고급 붓들 보는 홍도. 붓 끝을 만져보는데..
신한평 : 그 아이는, 내아들이지만..한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절대로 꺾을수가 없네. 정말 붓을 다시 잡게 할수 있다는 말인가?
홍도 : (붓 하나 꺼내들고 모필 만지며) 그거야 자기 의지에 달렸지요.
신한평(소리) : (바둑돌 만지며) 어찌한다.. 저 자는 모를거야... 모르겠지... (홍도 보면)
홍도 : 걱정 놓으시지요. 일재 어르신. (식- 웃으며) 반드시 그 아이가 다시 길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S#4. 이인문의 집 / 홍도의 방 / 낮
말라붙은 상(음식이며 약에 손도 안 댄) 한 쪽에 놓여있는 방.
윤복 모로 누워있는데,
문 열리고, 정숙의 손이 들어와 옷을 조심스럽게 들여놓으며,
정숙 : 깨어나셨으면, 입성(=옷)을 갈아입으시라고..
윤복 : (누운 채) 필요없소.
하는데, 문 벌컥! 열린다.
윤복 : (이불 덮어쓰며) 필요 없다잖소!
영복(소리) : 윤복아..
윤복, 눈 번쩍 뜨고 일어나면, 문 앞에 서 있는 영복.
윤복 : 형!!
영복 뒤로, 곤란해 하는 정숙의 모습 보이고, 그 뒤로 홍도 보인다.
cut to
윤복, 영복을 외면하고 앉았는데,
영복 : (윤복의 다친 손 보고, 애써 외면하고) 얼굴이 수척해 졌다.
윤복 : ..(고개 돌리면)
영복 : (품에서 안료 꺼내 보여주며) 이것 봐라.
윤복 : (안 보며) 뭔데?
영복 : (윤복의 다치지 않은 쪽 손에 안료 쥐어주며) 봐.
윤복 : (손에 든 종이 보면)
영복 : (종이 펼쳐 노란 안료 만지며) 치자로 만든 안료다.
윤복 : 이게 왜?
영복 : 잘 봐. 의궤를 그릴 때 조금씩 쓰던 그 안료보다.. 훨씬 따뜻한 느낌이 감돌지?
윤복 : (안료 자세히 보다가 눈 반짝이며) 의궤에 쓰던 안료보다 훨씬 부드러운 감이 도는데.. 어떻게 된 거야?
영복 : 이건 청국에서 온 게 아니야. 조선에서 만든 안료다. 조선의 치자로 만든, 조선의 색이지.
윤복 : 조선에서 만들었다고? 이걸 어디서 가져온 거야 형?
영복 : 단청소 조색실.
윤복 : 단청소에? 그런 데가 있어?
영복 : 그래. 단청소 조색실에 가면, 구경하기도 힘든 안료들이 가득하다.
도화서에서도 쓸 수 없었던 뇌록색도 단청소에서는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윤복 : 뇌록색? 정말?
영복 : 그래. 정말이라니까? 뿐이냐? 조색실 백백(주 : 허심의 호) 선생께서, 청국에서 들여오는 안료로는 조선의 색을 칠할 수
없다고, 조선의 색을 만들고 계시는데, 내가 그 일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니, 새로운 색을 만들 수도 있어!
윤복 : (안료 보고, 영복 보며 눈 반짝) 그게 정말이오?!!
영복 : 그래. 단청소라고 다 힘든 줄 알았는데, 다행히 조색일을 하게 되어서 나는 도화서에 있을 때 보다 훨씬 할 일이 많다.
다음에 색을 만들면 또 가져올테니까, (윤복의 다친 손 보지만, 외면하고) 넌 그걸로 그림을 그리거라. 할 수 있겠지?
윤복 : (영복 보며) 형...
S#5. 이인문의 집 밖 / 마당 / 낮
홍도와 영복, 집 밖으로 나오고,
영복 : 스승님. 윤복이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손을 다시 쓸 수 있는 것입니까?
홍도 : 봐야디.
영복 : 부탁드립니다. 스승님. 저 때문에 저 아이가 손을 쓰지 못하게 되면, 저는, (홍도 손 잡고) 부탁드립니다.
홍도 : 지 마음이 동하기 전엔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디. (영복의 거친 손 보고) 너는.. 괜찮느냐?
영복 : (손 감추며) 전 괜찮습니다.
마조치(소리) : 아교!
S#6. 궐 일각 / 저녁
영복 : (아교 들고 비계 올라가며) 예!
비계 위, 단청에 아교를 칠하는 단청공들. 걷어붙인 팔뚝의 근육이 불끈거리는데,
영복, 올라가다가 발 미끄러져 떨어질 뻔 하고.., 그 사이 아교가 바닥에 떨어진다.
떨어지는 아교통 보자, 아찔해져 눈 감는 영복.
마조치 : 뭐하는 짓이냐!!
영복 : 죄송합니다!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영복, 비계를 내려가면,
S#7. 단청소 마당 / 밤
콰당! 소리가 들리며, 영복이 의자에서 넘어진다.
영복이 앉아있는 의자를 발로 찬 마조치, 영복 옆에 서는데,
영복, 얼른 의자 다시 놓고 앉아서 아교를 저으면..
마조치 : (쭈그린 영복의 어깨를 누르며) 도화서에서 온 되련님이라고 대충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영복 보며 식- 웃으면) 똑바로 하거라.
영복 : 예.
마조치와 단청공들 나가면, 산처럼 쌓인 도구들 정리하는 영복 보이고,
영복, 도구들 정리하다가, 단청용 붓 만지면,
(insert : 도화서 생도청, 영복과 윤복의 방에서.. 붓으로 얼굴을 쓸어보는 윤복의 모습)
영복 : 그림을 그려다오, 윤복아. (이인문 집 쪽 보면)
S#8. 이인문의 집 / 홍도의 방 / 밤
윤복, 한 쪽에 누워서 다친 손 보고, 손을 따라 방을 보는데..
방문 열리고 정숙이 들어온다.
윤복, 돌아누우면,
정숙,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약그릇을 놓고 식어버린 약그릇 가지고 나간다.
김 모락모락 나는 약 보는 윤복.
S#9. 이인문의 집 / 부엌 / 밤
정숙, 약을 가지고 부엌에 들어오며,
정숙 : 귀한 걸, 아깝게.. (하며 홀짝 맛을 보는데)
홍도 : 아직도 약을 입에 대지 않느냐?
정숙 : (놀라며 얼른 약 내려놓고) 예. 한 모금도 마시지 않습니다 오라버니.
홍도 : 알겠다. (가다가) 괜시리 우리 정숙이만 고생시키는구나.
정숙 : 오라버니도 참.
홍도 : 고맙다.
정숙 : (홍도 보며) 오라버니..
홍도 가면, 정숙, 얼굴 감싸며 부엌으로 들어가고.. 쪼그리고 앉아 윤복이 남긴 약 쪼르르 따라버리는데..
S#10. 모화관(=청나라 칙사를 맞이하는 곳) / 누각 / 낮
술잔에 쪼르르 따라지는 술.
정조와 태감, 술잔 드는데,
정조 : 황제께서 주신 선추용 나침반을 왕대비마마께 드렸더니, 늘 곁에 두고 몹시 아끼고 계시오.
청국에서 좋은 선물을 받았으니 우리 조선에서도 응당 좋은 선물을 보내야 할 터인데..
태감 : 망극합니다. 전하. 황제께서는 주상전하의 높은 안목을 익히 알고 계십니다. 하여 조선에서 무슨 선물을 보내실지,
사신단이 돌아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계신다 하옵니다. 혹.. 신에게 알려주실 수 없으신지요?
정조 : 꽃잎을 벌린다고 꽃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소? (웃으며) 황제께서도 예악을 아끼신다 들었으니,
황제의 안목에 합당한 선물을 준비하고 있소.
태감 : 돌아갈 날이 몹시 기다려집니다. 전하.
정조 : (술잔 들고 웃으며 도화서쪽 보면)
S#11. 도화서 / 화원회의실 / 낮
화원회의실에 모인 원로들 보이는 가운데...
장벽수 : 지난번 춘화 문제로 도화서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으니, 이번 기회에 주상전하의 마음에 쏙 드는 그림을 그려
확실히 만회를 해야 하네. (신한평 보며) 그렇지 않은가?
김덕성 : 말미가 언제까지입니까?
장벽수 : 화원시험 사흘 전까지네. 정진들 하시게.
원로들 : (일어서며) 무얼 그린다.../ 본을 떠놓은 것이 있으니../ 아무래도 청국의 기호에는 화려한 것이..
장벽수, 손 안에서 호두알 굴리는데..
S#12. 정조의 처소 뒤 / 낮
정조, 활을 하나 쏘면, 홍도가 옆에서 화살을 하나 준다.
정조 : 자네 그림을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
홍도 : 망극합니다.
정조 : (활 만지며) 무엇을 그릴 생각인가?
홍도 : 글쎄요.. 무엇이 주상전하와 청국 황제폐하의 마음을 움직일지..
정조 : (활을 시위에 걸며) 한 사람의 마음이 천하의 마음 아니겠는가? (홍도 보다가.. 식- 미소 지으면)
홍도 : (같이 미소짓고)
정조 : 하하하-
홍도 : (정조와 함께) 하하하-
정조 : (갑자기 정색하며) 기대하고 있겠네. (활 시위 당기면)
홍도 : (함께 정색하며) 분부 받잡겠습니다.
정조, 화살 쏘면, 과녁 중앙에 명중한다.
S#13. 도화서 전경 / 낮
생도들 우루루 몰려서 교육장으로 향하고, 화원들 종이를 들고 바삐 오가는 모습 보이는 가운데,
홍도가 안으로 들어간다.
홍도(소리) :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인가?
S#14. 도화서 / 김홍도의 방 / 낮
한종일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원, 가 분주하게 짐을 꾸리는데, 홍도 문으로 들어선다.
한종일 : 예. 별제 어른께서 단원선생님 떠나실 짐을 싸는 것을 도와드리라 하셔서 짐을 꾸리고 있습니다.
홍도 : 짐을 싸?
한종일 : 예.. 평양에 돌아가실 짐을 꾸려야 하니 도와드리라 하셨습니다.
홍도 : 평양? (밖으로 향하다가) 그대로 두거라. 아무것도 손대지 말고.
화원 : (짐 싸다 멈춘 채 홍도 보고, 한종일 보면)
한종일 : (‘그대로 두라’는 듯 눈짓하고) 가자.
화원, 빠져나가고, 한종일도 홍도에게 인사하고 나가면,
장벽수 방쪽 보는 홍도.
홍도(소리) : 갑자기 평양이라니요!
S#15. 도화서 / 장벽수의 방 / 낮
홍도, 방에 들어와 앉으면,
장벽수, 빙긋 웃고 있고, 옆에는 원로가 앉아있다.
홍도 : 이것이 어찌된 경우입니까?
장벽수 : 어찌되긴? 생도청 일도 마무리가 되었으니.. 이제 자네를 평양으로 돌려보낼 일만 남은 것 아닌가?
내 자네 손이라도 덜어주고자 수종화사를 보냈네만, 그것이 그리 서운하던가?
홍도 : (장벽수 보고) 또 시작된 것입니까?
장벽수 : 무엇이 말인가?
홍도 : (장벽수에게 다가가 눈 똑바로 보다가) 무엇을 그리 두려워하십니까? 별제 어르신.
장벽수 : (홍도 보며) 두려워한다? 무슨 말인지 당췌 모르겠군. 아무튼, 곧 교지가 내려올테니, 도화서 일은 걱정 말고,
푹 쉬면서 몸조리도 하고, 벗님들도 만나고 그러게. (서류 꺼내며) 그만 나가 보게.
홍도 : (물러서서 장벽수 보다가) 저는 다릅니다. 스승님과는.
장벽수 : 그래서.. 어찌하겠는가? 응?
홍도 : 전, 그냥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
장벽수 : (홍도 보다가).. 기대하고 있겠네.
홍도 : (돌아서면)
장벽수 : 아- 그 소식 들었는가?
홍도 : (장벽수 보면)
S#16. 도화서 입구 / 낮
홍도, 도화서 문 밖으로 나서다 멈춰서서 도화서쪽 보면,
장벽수(소리) : 윤복이 말이네. 며칠째 생도청에 보이질 않더군.
홍도, 걱정스런 얼굴로 돌아서면, 그 위로,
장벽수(소리) : 알고 있겠지? 멋대로 생도청을 뛰쳐나간 자에게는, 화원 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홍도, 이인문 집으로 향하고..
S#17. 이인문의 집 / 홍도의 방 / 낮
윤복 이불 덮어쓰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린다. 윤복 보면,
홍도 : 아직도 퍼져 있느냐? (윤복의 붕대 감긴 손 보고, 모른척)
윤복 : 왜 그러십니까 김형.
홍도 : 김형? 그래. 신군아. 그동안 축낸 밥값을 하러 가자.
윤복 : 밥값이요?
S#18. 저잣거리 입구 길 / 낮
홍도 앞서가고, 윤복이 뒤따르면,
홍도 : 이제부터 군선도를 그릴 것이다. 군선도가 무엇인지 아느냐?
윤복 : 군선도.. 신선들을 그린 그림 말입니까?
홍도 : 그래. 서왕모의 생일잔치에 가는 여덟 신선을 말하는 것이다.
윤복 : 도석 인물화를 그리는데, 저자에는 왜 가는 것입니까?
홍도 : 자네 참 말이 많군, 신군. 그럼 한 번 대답해 봐라. 그림을 그리려면 우선, 뭐가 필요하냐?
S#19. 저잣거리 / 지전 / 낮
하얀 종이들 펼쳐져 있는 지전.
홍도와 윤복 들어서면, 지전 주인(‘문창’의 모델) 얼른 뛰어나오는데,
윤복 : 우선 종이가 필요하지요.
홍도 : 그래? (높은 곳에 있는 종이 가리키며) 저 종이를 보여주시오.
지전 : 저 종이 말이오?
지전, 종이 꺼내서 좍- 펼치면, ([군선도]의 문창과 같은 모습),
홍도와 윤복이 종이 보고,
지전 : 보는 눈이 있군!! 이게 바로 엊그제 전주서 온 종이요. 최상품 종이라 이거요.
홍도 : (지전 흘끗 보고 종이 보며) 그렇소?
S#20. 저잣거리 / 문구점 / 낮
먹, 붓, 벼루 등 문구들이 들어찬 문구점.
윤복, 종이뭉치 들고 홍도 뒤 따르면, 문구점 주인([군선도]중 노자의 모델)이 뒤돌아 앉아있는데,
홍도 : (붓 만지며) 또, 뭐가 필요하냐?
윤복 : 종이는 있으니, 붓, 벼루, 먹 아닙니까?
홍도 : (붓 골라 꺼내며) 언제 좀 똘똘한 소릴 할 테냐? (책 보고 있는 주인 보고) 얼마요?
S#21. 저잣거리 / 길 / 낮
홍도 앞장서고,
윤복은 종이, 붓, 벼루, 목에는 정숙이 줄 짐인 듯, 닭, 짚신, 등에는 배추, 파까지 짊어지고 끙끙거리며 따라가는데..
윤복 : 어딜 또 가는 겁니까?
홍도 : 아직 멀었다.
윤복 : (짐 들고 낑낑거리며) 미치겠군- (윤복의 손, 짐 잡으려고 저도 모르게 손가락에 힘 들어가 구부러져 있고)
홍도 : (그런 윤복의 손가락 놓치지 않고 보고)
S#22. 저잣거리 / 배첩장 / 낮
홍도 : (배첩장 안쪽 두리번거리면) 어디, 새로 들어온 그림이 있나?
배첩장 : (구석에서 조롱박에 술 마시다가, 다 비었는지 눈에 대고 안을 들여다보다가, -[군선도] 중 이철괴의 모델-
얼른 뛰어나오며) 아니 이거, (홍도와 윤복 보고) 화공! 송하취생도 그린 꼬마 화공 아니오? 이쪽으로 오시오.
단원 선생 그림이 하나 또 들어왔으니.
윤복 : (홍도 보고) 이제 그런 그림에는 관심없소.
홍도 : 아니, 단원 선생 그림이 좋다고 침 질질 흘리던 때가 언젠데, 갑자기 왜 그러시오 신군?
S#23. 저잣거리 입구 / 다리 / 낮
사람들 다니는 모습 보이고,
그 앞에 선 홍도와 짐을 가득 든 채 뒤따라와 바위에 걸터앉는 윤복.
홍도 : (다리 위로 지나다니는 사람들 보며) 아후, 한양 기생들 다 죽었군.
윤복 : 곱기만 하던데 뭘 그러오 김형?
홍도 : 끝까지 김형이군. 그래, 신군. 그림을 그리려면 진짜로 무엇이 필요한가?
윤복 : 말하지 않았습니까? 지필묵이라고.
홍도 : 땡. 틀렸다. 그림을 그리려면, 제일 먼저, (자기 눈을 손가락 두 개로 가리키며) 화가의 눈이 필요하다.
(윤복의 눈 손가락으로 찌를 듯 가리키며) 화가의 눈.
윤복 : 눈 없는 자가 어디있습니까 김형.
홍도 : 어허, 신군. 자넨 화가의 눈을 가졌는가? 응? 그래, 보이느냐? (사람들 보며) 이게 바로 살아있는 그림이다.
홍도 보는 곳.. 다리 위를 지나는 사람들.
훤칠한 키의 미남([군선도]중 종리권의 모델), 주황색 옷을 입은 자그마한 꼬마애([군선도] 중 동자)가
사람들 사이를 휘젓고 뛰어가는 모습 보이며,
윤복 : 뜬구름 잡는 소리, 누가 못 합니까 김형? 예?
홍도 : (가뿐하게 일어서며) 가자 신군아. 이제 신선들은 다 찾았으니, 붓질을 해야지.
윤복 : 붓질이요?
S#24. 이인문의 집 / 작업실 / 낮
하얀 종이 펼쳐져 있는 작업실.
홍도와 윤복 종이 앞에 앉아있고...
홍도 : 보이느냐?
윤복 : 뭐가 말입니까? 그냥 종이 아닙니까?
홍도 : 그냥 종이가 아니지 이 놈아. 필요한 것은 다 들어있으니, 이제 다 그려진 것이다.
윤복 : (빈 종이 보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
홍도 : 모르겠냐? 여기 다 들어있지 않느냐? 그리는 자의 마음, 그림 속에 들어올 자의 마음.
홍도, 붓을 들어 먹을 묻히고 종이에 슥슥 닦으며,
홍도 : 잘 보거라. (손가락으로 종이 가리키며) 여기.
홍도, 손으로 가리켰던 곳에 붓 가져다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사람의 얼굴과, 그 사람이 들고 있는 조롱박(가장 오른쪽에 있는, 이철괴) 그리고 윤복 보면,
윤복, 그 그림 보는데..
홍도 : 잘 보라지 않네?
홍도, 그 사람 옆자리, 손으로 그림 그리는 모양을 하면, 윤복 그 곳 보는데...
홍도, 다시 붓을 적셔 붓선을 긋기 시작하면.. 대머리 여동빈의 윤곽이 그려지는가 싶더니, 종이를 좍 펼치는 문창이 자리잡고,
홍도 : 잘 보거라.
홍도, 그 옆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그림 그리는 시늉 하고, 붓선 이어가면,
홍도의 붓선을 따라 보이는 종리권, 동방삭, 여동빈의 모습.
윤복, 하나 하나 살아나는 사람들의 모습 보며 놀라고!!
홍도 보는 윤복.
윤복, 다시 그림 보는데... 그림 속, 조롱박 든 남자(이철괴)를 보자,
윤복 : 이것은,
(플래쉬 : 배첩장, 조롱박을 들여다보던 배첩장)
윤복, 그림 속 문창 보면, (플래쉬 : 지전, 종이를 좍 펼치던 지전주인)
윤복, 그림 속 종리권 보면, (플래쉬 : 다리 위, 사람들 사이에서 목을 죽 빼고 걷는 미남자)
윤복 : 이 자들은!!
홍도 : (씩- 웃고)
홍도, 붓을 들어 문창 아래쪽에 주황옷 동자를 그려넣자,
문창과 여동빈, 종리권의 동자가 주황옷 동자쪽으로 고개를 틀고..
윤복, 그림 속 동자 보면, (플래쉬 : 다리 위, 사람들 사이를 휘젓던 주황색 옷의 꼬마)
그림 속 사람들, 작업실 가득 들어차면, 윤복, 그 사람들 보는데,
윤복 : 이들은.., 저자에서 본 자들 아닙니까?!
홍도 : 이제 알겠느냐?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것이지.
윤복 :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린다....
홍도 : 너는 있는 것을 지나치리만치 그대로 묘사하였다.
(insert : [기다림]속, 정순왕후의 모습, 귀에 찍힌 붉은 점!)
홍도 : 허나, 그것은 종이에 사물을 그대로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없는 것을 그리되, 그 참모습을 그리는 것.
그 경지를 알게 되면, ..
윤복 : 그리하면.. (손 맞대고 생각에 잠겨) 군선도와 같은 도석 인물화도, 저자의 인물을 그리듯 살아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홍도 : 그래. 그것이다. 그렇게 되면, 네가 풍경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너에게 사로잡힐 수 있어.
윤복 : (감탄해서 홍도 보며, 저도 모르게) 김형!
홍도 : 뭐이? (손 올리면)
윤복 : (피하며) 아니, 아니아니, 스승님! 스승님!
홍도 : (등잔 들어 그림자 만들며) 마치 하나의 빛이 수많은 그림자를 만들어내듯이,
그 순간, 윤복의 귓가에 스치는 목소리.
S#25. 서징의 집 / 밤 - 회상
서징, 등잔을 서서히 이동하며 윤복의 그림자를 만든다.
벽을 타고 이동하는 윤복의 그림자.
윤복, 홀린 듯 그 그림자 보고,
서징 : 하나의 상은 셀 수 없이 많은 모양을 가지고 있다.
어린윤복 : (서징 보고)
서징 : 그 그림자를 볼 수 있다면,
S#26. 이인문의 집 / 작업실 / 밤
홍도/서징(소리) : 삼라만상 모든 것을 네 화폭 속에 담을 수 있다.
윤복 : (놀라.. 홍도 보며) ... 그 말을 어찌..
홍도 : (윤복에게 붓 건네며) 그려 보겠느냐?
윤복, 붓 잡다가 붕대를 풀어버리면, 손등에 남은 흉터 보인다.
윤복, 손에 붓 놓고, 고통을 참으며 손가락 구부려 붓 잡으면... 윤복의 손 안에 고정되는 붓!!
윤복, 홍도 보면.. 홍도, 고개를 끄덕인다.
종이 위에서 망설이는 윤복의 붓.
윤복, 홍도 보면, 바로 코 앞에 보이는 홍도의 얼굴.
홍도 : 겁먹지 말거라.
홍도, 더할 수 없이 부드러운 얼굴로 윤복 보면..
윤복, 긴장해서 침 꿀꺽 삼키고..
홍도와 윤복의 손이 겹친 붓.. 조심스레 종이로 다가가면, 드디어 첫 선이 천천히 그어진다.
마치 영원인 듯... 그어지는 선보이고..
홍도, 손을 떼고,
홍도 : (자리 비켜주며) 응?
윤복 : (끄덕이고)
윤복, 붓을 놓고, 커다란 붓을 집어 들어 벼루에 푹 담근다.
붓을 들고, 호흡을 멈춘 후... 종이에 선을 긋기 시작하는 윤복.
신발을 벗고, 바닥에 놓인 커다란 종이 위를 휘저으며 먹선 긋기 시작하면,
하얀 종이 위에 그어지는 선, 선, 선들..
홍도, 어느새 윤복과 함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윤복의 얼굴과 손, 먹물이 조금씩 늘어가고,
그림에 집중한 윤복, 입을 앙다물고 실룩거리고...(윤복의 독특한 그림 습관)
윤복과 홍도의 몸짓 점점 빨라지며, 춤을 추듯 종이 위를 날아다니는데...
순수하게 그림에 몰입한, 윤복과 홍도의 희열에 찬 얼굴, 손, 붓선 보이는 가운데...
S#27. 이인문의 집 / 작업실 / 아침
부드러운 햇살이 작업실 안에 들어와 있다.
작업대 옆에 쭈그리고 자던 윤복, 문득 눈을 뜬다. 돌아보면,
대자로 누워 윤복에게 다리 한 짝을 올리고 자는 홍도.
윤복, 버둥거리며 홍도 다리에서 겨우 빠져나와 앉는다.
물감, 먹이 여기저기 묻은 홍도의 손과 얼굴.
깊은 잠에 빠진 무방비상태의 홍도를 보자 괜히 미소가 번지는 윤복.
윤복, 파지 끌어다가 홍도에게 덮어주는데.. 먹물 묻은 홍도의 손을 보자 멈칫 한다.
(insert : 장파형 틀에 넣어져 있던 홍도의 손. 홍도의 모습 보이고..)
윤복, 말없이 그 손 잡고 홍도 본다.
윤복 : (작게) 고맙습니다. 스승님.
정숙(소리) : 오라버니, 기침하셨습니까?
문 열리며, 상을 든 정숙 들어오는데.. 정숙, 홍도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있는 윤복 보자 멈춰서고,
윤복도 정숙 보자 놀라고... 얼른 홍도의 손 내팽개치는 윤복.
S#28. 이인문의 집 / 마당-평상 / 아침
윤복, 마치 걸신이 들린 듯 밥을 입에 꾹꾹 넣고, 지지미도 손으로 뜯어서 입에 넣고, 김치도 먹고..
정숙, 놀라며 윤복 보고.. 윤복 가리키며 ‘괜찮으냐?’는 시늉 하자,
'괜찮다‘ 끄덕이는 홍도.
홍도 : 천천히 먹어라. 누가 뺏어먹냐? (자기 밥그릇에서 한 숟갈 크게 떠서 윤복에게 얹어주면)
윤복 : (밥 푹! 퍼서 먹는데)
홍도 : 이제 돌아가야지.
윤복, 입안 가득 밥 물고 김치 한 줄기 길게 늘어뜨린 채 홍도 보면.
홍도 윤복 보고. 그 위로,
정조(소리) : 이런 그림을 어찌 보낸단 말인가!!
S#29. 규장각 내 회의실 / 낮 / 몽타주
넓은 회의실 바닥에 화원들의 그림이 죽 널려 있고,
원로 화원들 각자 자기 그림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서 있다.
정조 뒤로는 내관 둘과 사관이 머리를 조아리고 정조의 말을 받아쓰고 있고,
. 첫 번째 그림 보이고,
장벽수 : (그림 앞에서 머리 조아리며) 조선 그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진채를 사용하여,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청국 사람들이
가히 좋아할 듯합니다.
원로들 : (기대감에 찬 눈으로 정조 보면)
정조 : 화폭 하나에 지나치게 색을 가득 채워, ‘주’ 보다 ‘객’이 두드러지는 꼴이니, 어찌 좋은 그림이라 할 것인가?
. 두 번째 그림 보이고,
장벽수 : (그림 앞에 서서) 강한 필선이 생생하게 살아있어 가히 생동하는 봄철을 적절히 (묘사했다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정조 : (자르며) 필법이 졸렬하다.
. 세 번째 그림 보이고,
장벽수 : 이 그림은 종자기와 백아의 아름다운 우정을 그렸으니, (청국과 우호를 다지는 데)
정조 : (자르며) 포치(주 : 일종의 구도. 여백과 구도, 원근을 합친 개념임)가 맞지 않다.
. 의자에 털썩 앉는 정조.
정조 : 도대체 무엇을 보내야 한단 말인가?
원로들 : 송구하옵니다. 전하-
정조 : (머리 조아린 원로들 지그시 보다가) 김홍도의 그림은 왜 보이지 않는가?
장벽수 : ..전하, 그 자는... 곧 평양으로 떠날 자입니다. 하여, 화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정조 :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장벽수 보며) 화사를.. 하지 않았다?
장벽수 : 예 전하..
S#30. 궐 일각 / 낮
여덟 개의 두루마리를 들고 규장각으로 향하는 홍도.
내관(소리) : 화사 김홍도 입시요!!
S#31. 규장각 / 회의실 / 낮
원로들과 장벽수, 놀란 얼굴로 입 벌리고 있고...
홍도, 고요히 읍하고 있는 앞으로, 한 폭씩 펼쳐지는 그림. 김홍도의 [군선도]다.
드디어 여덟 개가 모두 펼쳐지고,
정조 : 중국의 고사를 그린 군선도에서 어찌 조선의 향취가 느껴지는가?
홍도 : 중국의 고사를 그리되 인물은 조선의 인물을 보고 그렸기 때문입니다.
정조 : 여덟 폭 중 한 폭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빈 종이다. 연유가 무엇인가?
홍도 : 여백이 없으면 화폭 속에 조밀함이 과하여,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을 줄 수 없어 그리 하였습니다.
정조 : 사람들의 의습(주 : ‘옷선’을 일컫는 말)이 마치 바람이 불 듯 한 쪽을 향하고 있으니, 그 연유가 무엇인가?
홍도 : 각자 다른 곳을 보고 있지만, 이들의 마음은 이미 서왕모의 집으로 달려가고 있으니,
그 마음이 바람이 되어 옷깃을 움직인 것입니다.
정조 : (그림 보며) 서왕모의 집으로 향한다...
장벽수 : 전하.. 감동(주 : 그림을 보고 평함)을 하시지요.
화원들 : (쥐죽은 듯 정조 보면)
정조 : 마음이 곤륜산 너머 서왕모의 집으로 먼저 달려간다..그로 인해, 화폭 속에 생동하는 바람마저 끌어들였으니,
놀라운 재주로다. 슬프도다.. 이 그림을 오래두고 보지 못하고 청국에 보내야 하다니.
장벽수 : (인상 쓰고)
원로들 : (숨 죽이고 정조 보면)
정조 : (홍도 보고) ‘통’이네.
원로들, 단원 노려보고..
사관이 서책에 글씨를 적어넣는다. ‘通’
정조 : 내, 별제만 기다렸다가 자칫하면 크나큰 곤혹을 치룰 뻔하였다.
장벽수 : (엎드리며) 전하- 송구하옵니다.
정조 : 다행히 김홍도가 이 곤경에서 과인을 구했으니, 홍도에게 포상을 내림이 옳을 듯 하다.
화사 김홍도. 말해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홍도 : 주상전하. 이 그림은 신 혼자 그린 것이 아닙니다. 이는 도화서 생도 신윤복이 수종을 하여 완성한 것입니다.
장벽수 : (홍도 보고)
홍도 : 신은 도화서에 남아 이 생도가 화원 시험을 보아 한 명의 화원이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지도하고 싶습니다.
정조 : 도화서의 일이니, 별제의 의견을 들어야 겠군. 별제, 어찌 하겠는가?
장벽수 : (인상 긁는 것 감추며) 전하. 생도 신윤복은 스스로 도화서에서 뛰쳐나간 자입니다.
또한 김홍도는 평양에 화사비장으로 있다가 도화서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잠시 들른 자입니다.
스스로 도화서에서 나간 생도를 받아들이는 것도, 임무가 끝난 김홍도를 도화서에 계속 머무르게 하는 것도
모두 도화서의 기강을 흔드는 것입니다.
정조 : (장벽수 보다가) 허면, 이렇게 하면 어떻겠는가?
장벽수, 홍도 : (정조 보면)
S#32. 궐 일각 / 낮
줄줄이 도화서로 향하는 원로들. 손에는 두루마리를 하나씩 들고 있다. (불통이 된 그림들)
원로들 지나가면, 맨 뒤에 홍도가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앞서 가는 장벽수의 한없이 불쾌한 표정. 그 위로,
정조(소리) : 만일 그 생도가 화원 시험에서 ‘통’ 하여 스스로 화원이 될 자격을 입증한다면, 그 생도와 김홍도가 도화서에 남아
화사를 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장벽수, 입 씰룩거리며 홍도 보면,
만면에 미소 띤 홍도의 모습 위로,
장벽수(소리) : 만일 그 생도가 화원 시험을 ‘통’ 하지 못한다면, 단원 또한 평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까?
홍도(소리) : 그리 하겠습니다.
장벽수, 홍도 보다가 가버리는데..
길에 서서 기다리던 신한평, 홍도 앞에 선다.
신한평 : 자네가 우리 윤복이를 살렸네. 허나,
홍도 : (신한평 보면)
신한평 : 이제 윤복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 자네는 관심 끊게.
홍도 : 글쎄요.. 그게 그리 될지 모르겠습니다. (빙긋 웃으며) 제 명운이 걸린 일 아닙니까? (도화서쪽 보면)
S#33. 도화서 / 김홍도의 방 / 낮
왔다갔다하던 윤복, 문 열리는 소리에 보면, 책꽂이 너머로 보이는 홍도의 모습.
윤복 : 어떻게 되었습니까? 화원 시험은...
홍도 : 이제 너와 나의 명운은 네 붓 끝에 달렸다.
윤복 : 된 것입니까?
홍도 : (끄덕이며)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거라.
윤복 : (홍도 보면)
홍도 : 네가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 그림을 그린다면, 나는 너를 끝까지 지켜주겠다.
윤복 : (홍도 보고...)
S#34. 도화서 전경 / 낮 / 몽타주
. 도화서 마당에 쳐지는 차양.
. 도화서 마당을 죽- 둘러 놓여지는 의자들.
. 차곡차곡 쌓인 하얀 종이들을 나르는 분주한 손길들.
. 도화서 마당, 각 자리마다 돛자리가 펼쳐져 있고, 벼루, 먹, 안료, 천 등이 가지런히 놓여진다.
그렇게 시끌시끌, 부산한 정경 펼쳐지고...
S#35. 생도장 기숙동 / 윤복의 방 / 낮
깨끗이 정돈된 윤복의 방.
윤복, 단정하게 앉아, 붓(영복이 준 붓, 붓대에 문양이 새겨진 귀한 담비 붓)을 만진다.
윤복 : 형..
관리(소리) : 지금부터 도화서 화원 취재를 시작하겠다!!
S#36. 도화서 / 마당 / 낮
도화서 마당에 향시계 탁! 놓이고,
북소리 들리고, 두루마리 주루루 펼쳐지면, 거대하고 화려한 의궤 반차도가 보인다.
관리 : 첫 번째 화제는 병무년에 있었던 진연을 그린 여덟 폭 짜리 영조병무진연도 중 한 폭 이다. 다음!
관리, 북을 치자 둥! 울리며, 하급관리가 오른쪽 두루마리의 끈을 푼다.
좌르륵! 열리는 두루마리에 쓰여진 글자.
관리 : (막대로 한 줄 가리키며) 그넷줄 발 굴러 허공 중에 솟구치니(劈去秋千一頓?) (다음줄 가리키며) 바람 머금은 두 소매
휜 활등 같구나(飽風雙袖似彎弓) (다음줄) 높이를 다투다 치마 타진 줄 모르더니(爭高不覺裙中綻)
(다음줄) 꽃신코가 드러나 눈을 붉게 수놓네(?出鞋頭繡眼紅)
(생도들 보며) 이 문제는 주어진 시를 해석하여 화제에 맞는 그림을 그려내는 문제다.
(향시계 가리키며) 이 향시계가 다 타는 익일 오시 까지, 두 화제 중 하나를 선택해 제출하도록 한다.
그럼, 시험을 시작하도록 하시오!
술태 : (만보에게) 저걸 내일까지 어떻게 그리란 말이오?
만보 : (나직이) 어차피 이제껏 화제를 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었어. 매-번 그 문제가 그 문제니까,
저- 위엣 분들이 보기에 우습게 보이지 않으려고 하나 끼워넣는 거지.
술태 : 그럼 화제를 선택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단 말이오?
만보 : 너라면, 저 문제를 풀겠냐?
술태 : (고개 젓고)
만보 : 거 봐라. 니 맘이 내 맘이고, 내 맘이 (팔 뻗으며) 천하의 맘이다-
하다가, 도화서 담 너머에서 고개 삐죽 내밀고 히- 웃는 만보처 보더니 쓴 웃음으로 보답하고 얼른 고개 돌려 정색,
만보 : 어서 시작하자. 향시계는 우리를 기다리지 않네.
술태 : (황급히 붓질 하고)
도화서 마당에는 붓질하는 소리만 고요히 들려오는 가운데, 한 사람만 똑바로 앉아 있다. 윤복이다.
윤복이 눈 감은 위로.... 주변 소리 잦아들며 화면 어두워진다.
홍도(소리) :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거라.
S#37. 암전 / 몽타주
어두운 가운데, 조금씩, 조금씩, 빛이 움직인다.
어둠 속에 번쩍 떠오르는 정향의 옆모습, / 소맷자락, / 하얀 속치마, / 둥근 어깨, /
그리고, 멀리서 여자들 웃음소리 조금씩 들려오며...
S#38. 도화서 / 마당 / 낮
윤복, 눈을 번쩍 뜬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윤복을 보고 미소짓는 홍도.
윤복, 벌떡 일어난다.
생도들, 윤복 보면, 윤복, 화구들을 챙긴다.
관리 : 어디에 가는 것이냐? 시험을 포기하려는 것이냐?
윤복 : (화구 챙겨 일어서서) 화폭 속에 살게 할 자들을 찾으러 갑니다. (달려가면)
장벽수 : (큰 소리로) 내일 오시 까지다!!
생도들 : (일제히 장벽수 보면)
장벽수 : 그 후로는 촌각도 기다려주지 않겠다.
윤복, 화구 챙겨들고 달려가는데, 화구 속에서 붓(영복이 준 것)이 떨어진다.
윤복, 붓에 묻은 흙 털어내고 일어선다.
달려가는 윤복의 모습과 윤복을 보는 홍도의 모습 보이며,
장벽수, 뒷짐진 손 안에서 호두 굴리며 도화서 안쪽으로 향하는데,
도화서 중간문 쪽으로 오는 홍도와 벽수, 마주친다.
장벽수 : 화사가 끝날 때 까지 자네는 도화서에 얼씬도 해서는 아니되네. 알고 있겠지?
홍도 : 여전히 자상하시군요. 잘- 숙지하고 있습니다 별제 어르신.
홍도, 장벽수에게 목례하고 방으로 향하면,
홍도 보는 장벽수 얼굴 위로,
S#39. 도화서 / 장벽수의 방 / 밤 - 회상
어두운 방, 등잔 하나만 켜진 가운데, 장벽수 보이고,
앞에 앉아있는 누군가(한종일)의 실루엣만 보이는 가운데,
장벽수 : 허니, 윤복이 그 아이가 화사를 완성하지 못하도록 하여라. 은밀히. 알겠느냐?
한종일 : (그림자 속에서 보이는 모습) 예.
장벽수, 손 안에서 호두 굴리고,
S#40. 도화서 / 장벽수의 방 / 낮
서안 앞에 앉아 손 안에서 호두 굴리고 있는 장벽수 보이고...
장벽수, 손에서 굴리던 호두 멈추고 창 밖 보면,
S#41. 정조의 개인 집무실 / 낮
정조, 보고된 서류들 보고 있고, 홍국영은 정조 옆에서 서류를 건네주고, 건네받는데,
정조, 보던 서류 놓고,
정조 : 금일이군. 화원 시험이 치러지는 날이..
홍국영 : (정조가 건넨 서류 정리하다가) 전하께서는 한낱 화공들의 일에 어찌 그리 관심이 많으십니까?
정조 : 한낱 화공이라? 도승지.. 자네가 말한 ‘한낱 화공’만이 해낼 수 있는 일도 있는 법이네.
홍국영 : 그것이 무엇입니까?
정조 : ..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네. 때가 되면...
정조, 서류 보면,
홍국영.. ‘무슨 생각일까’ 궁금한 듯 정조 보고...
S#42. 도화서 앞 / 길거리 / 낮
밖을 나서는 의관 정제한 홍도의 뒷모습 보인다.
이인문이 그 뒤를 쫓아오는데...
이인문 : (발 맞춰 걸으며) 올 해 단오절 마당놀이 춤꾼은 팔도에서 제일 잘 논다는 치가 왔다지? 그 구경을 가는 길인가?
홍도 : 이 골칫덩이가 무얼 그리려 하는지, 내 눈으로 확인해야 할 것 아닌가.
이인문 : 자네, 그 아이에게 너무 각별한 것 아닌가? 우리 정숙이한테 그런 관심을 좀 쏟아주게.
그 아이가 아주 배싹배싹 마르지 않나?
홍도 : 이 사람, 다 낫지도 않은 그 조막손에 내 명운이 달린 것을 모르는가?
홍도, 앞서 걸어가 단오선 들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섞이면...
이인문, 멈추어 서서 고개 갸웃 하며 홍도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S#43. 저잣거리 복판 / 낮
저잣거리 가득 북적이는 사람들 보인다.
사람들 너머로 남사당패 놀음을 노는 모습이 보인다.
줄을 탄 광대가 뛸 때 마다 ‘어머나!’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그들 뒤로 화구통을 짊어진 윤복이가 나타난다.
윤복, 사람들 사이를 뚫고 들어간다.
줄을 타고 붕붕 뛰어오르는 광대를 보는 사람들을 보는 윤복.
윤복, 광대 보고 웃다가 어딘가로 향하면,
윤복이 사라진 곳에 슥 나타나는 누군가(한종일)의 뒷모습. 윤복이 간 쪽으로 따라간다.
S#44. 저자 / 남사당패 놀이터 / 낮
한종일, 살금살금 윤복을 따라가다, 윤복이 멈추자 얼른 모퉁이에 숨어 보면...,
남사당패 놀이터 옆, 떡 찧는 아낙 옆에 가는 윤복.
윤복 : 이보오. (아낙 어깨 톡톡 치며) 이보.
아낙 : (떡 찧으며) 말씀하시오. 귀 열렸으니.
윤복 : 추천(주 :그네타기)을 하는 곳이 어디오?
아낙 : (떡 찧던 손 놓고 윤복을 아래우로 훑어보며) 보시오. 규중에 갇힌 아녀자들이 유일하게 속살을 말릴 수 있는 날이
바로 오늘이라오. 그런데 그것마저 봐야 시원하시겠다? 사내들이란 어쩜 이리 뻔뻔할까?
같이 있던 여자들, 까르르 웃고,
같이 떡 만들던 아낙들, 윤복을 보며 서로 뭐라 하고.. 무슨 음탕한 말을 하는지 귓속말을 하고는 킥킥 웃는다.
윤복, 돌아서서 두리번거리는데..
S#45. 저잣거리 / 방물점 앞 / 낮
홍도, 두리번거리며 사람들 헤집고 다니는데,
모퉁이에 숨어있던 한종일, 자기 쪽으로 오는 홍도를 보자.. 낭패라는 얼굴로 주위 둘러보고 얼른 골목 사이로 달려가고,
홍도 : 어디로 간 거지?
홍도, 윤복이 있는 골목쪽을 보지 않고 그대로 지나는 위로,
노는애(소리) : 무슨 일이신가요?
S#46. 저자 / 남사당패 놀이터 일각 / 낮
한껏 멋을 내고, 전모까지 집어쓴 노는애가 기둥에 기대 고름을 배배 꼬며 윤복을 보고 있다.
노는애 : 무슨 일이신가요, 잘생긴 화공. 나도 아는 게 참 많은 여자라우.
윤복 : 부탁할 일이 있는데.. 들어주겠는가?
노는애 : (포즈 잡으며) 날 그려주면 들어주지?
윤복, 흥미 떨어진 듯 다른 곳으로 가다가, 뭔가 생각난 듯 멈춘다.
노는애, 윤복을 보면,
윤복 : (돌아보며) 난 옷 입은 여자는 그리지 않아.
몸을 배배 꼬며 빙글 웃는 노는애.
S#47. 나무그늘 / 낮
외진 곳, 운치 있는 커다란 고목 뒤에 노는애가 있고, 고목 이쪽으로 윤복이 서있다.
노는애, 고목 뒤에서 저고리, 치마, 하나씩 고목 앞 윤복에게 건네며,
노는애 : (저고리 건네며) 예쁘게 그려주셔야 하오~
윤복 : (저고리 받아 걸치며) 서두르시오. 해가 짧으니.
노는애 : (치마 풀며) 이래도 되나 모르겠네.. (치마 건네며) 외간 남자 앞에서..
윤복 : (치마 받아 걸쳐입으며) 싫으시면 지금이라도, (자기 저고리를 허리춤에 질끈 묶으며) 싫다고 하시오.
(치마 척! 내리며) 그, 모자도 이리 건네시오.
노는애 : (자못 아쉬운 듯) 전모까지요?
윤복 : 얼굴을 보아야 화사를 할 것 아니오.
노는애 : (몸 꼬며, 모자 벗어 건네고) 화공도 참,
윤복, 전모 비스듬히 쓰고 끈 묶으면, 완연한 여인이다....
윤복, 전모 한 번 만져 얼굴 살짝 가리고는 그 자리를 떠난다.
노는애 : (윤복 간 줄 모르고, 속치마만 남긴 채 부끄러워 얼굴 가리며) 곱-게 그려주셔야 하오... 화공...
(건너편쪽으로 고개 뽑고) 화공??
속치마만 입은 채 고목 앞쪽으로 고개를 삐죽 내미는 여자. 윤복도 없고, 벗어서 건넨 자기 옷도 없다!!!
노는애 : (얼른 가슴팍 가리고 고목 너머 보며) 화공!!
S#48. 저자 일각 / 낮
여장을 한 윤복, 화구통 맨 채 급히 가다가 단오선으로 얼굴 가린 홍도와 부딪힌다.
윤복 : 죄송...(하다가 홍도 보고, 얼른 고개 돌리며) 합니다.
홍도 : (옷 털며) 조심하시오.
윤복, 화구통 얼른 뒷춤에 숨기고 꾸벅꾸벅 인사하며 멀어진다.
홍도, 두리번거리며 걸어간다.
홍도 : 그리 멀리 가진 않았을 터인데...
두리번거리며 가는 홍도와, 홍도 뒤쪽으로 사라지는 윤복의 모습 보이며,
S#49. 저잣거리 / 지지미집 앞 / 낮
남사당패 앞에서 떡을 만드는 아낙. 떡을 찧으면서 멀리 남사당패 구경을 하고 있는데,
윤복 : (과장된 여자 말투로) 추천하는 곳이 어디-어-요?
아낙 : (여장한 윤복을 흘끔 보고는) 추천이라면 구천계곡서 한다지, 아마?
윤복 : (일부러, 여성스럽게) 고마워요- (가면)
아낙 : (갸우뚱거리며) 어디서 본 사람 같은데?
S#50. 계곡 입구 / 낮
여자들이 장옷을 머리꼭대기까지 올려 쓰고 계곡 입구로 몰려간다.
윤복, 그들 뒤를 따르는데.. ‘금남’을 표시하는 금줄이 계곡 입구에 쳐져 있다.
계곡 입구를 지키는 나장 둘 사이를 윤복이 지나가는데...
나장 : 잠깐!
윤복 : (긴장해 돌아보면)
나장 : (화구통 잡으며) 무거운데, 여기 맡아주랴?
윤복 : (화구통 뺏으며, 저도 모르게 남자 말투) 됐소.
윤복, 총총 걸어간다.
나장, 남자 말투에 윤복을 잠깐 봤다가, 금세 잊고 뒤에 오는 여자들 보고 웃음 흘리고..
윤복 뒤로 여자들 줄줄이 들어선다.
S#51. 계곡 / 낮
계곡 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고, 저고리를 벗어던진 여자들이 창포물이 담긴 대야에 머리를 담궈가며 머리를 감고 있다.
여자들,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팔을 씻고, 목을 씻으며 자유롭게 있는데..
윤복이 침을 꿀꺽 삼키며 들어선다.
계곡을 따라 걸으며 여자들의 모습을 보는 윤복.
계곡 근처 소나무에는 그네가 하나 묶여 있고, 그네 앞에는 방울이 하나 달려 있다.
힘껏 그네를 구르며 방울을 차려는 여자. 그러나 실패한다.
(이것은 단오절 놀이 중의 하나인 ‘방울차기’ -주; 그네 앞에 장대를 세우고 장대에 방울을 달아놓아 발로 차도록 하는 것-이다.)
윤복, 그곳을 지나 그들이 잘 보이는 언덕 쪽에 쭈그리고 앉아 여자들을 보는데,
가채를 길게 늘어뜨린 여자([바람의 화원] 권 페이지 ‘단오풍정’중 오른쪽 위에 앉은 여자)가 윤복을 본다.
여자 : 얘, 넌 머리 안 감니?
윤복 : 아, 예..
여자 : 더운데 저고리는 벗고 있으렴?
윤복 : 아, 아뇨..
여자 : (그네쪽 보고) 저거 보게! 꼭 소싯적 나 같네. 곱다, 고와.
윤복이 보면, 정향이 붉은 치마에 노란 저고리를 입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그네 쪽으로 온다.
정향, 도도하게 서서 그네뛰는 것을 본다.
윤복, 정향을 보고 식- 웃더니 여복을 여미고 슬그머니 정향 옆에 가 선다.
정향 : (그네뛰는 것 보며) 참 시원도 하겠다-
윤복 : (과장된 여자 말투) 그럼 한 번 뛰어보시지 않으시고요?
윤복 흘끗 보는 정향.
윤복, 모른 척 눈을 깜빡이고..
정향, 아는지 모르는지 윤복을 보고 미소 짓고는 고개 돌린다.
윤복, ‘못 알아 보는구나’ 싶어 안심하고 웃고.
그네를 높이 뛰는 여자 보는 정향.
윤복도 그 여자 보는데,
정향 : 그넷줄 발 굴러 허공중에 솟구치니 바람 머금은 두 소매 휜 활등 같구나
윤복 : (‘이것은 화제가 아닌가!!’ 놀라며) 높이를 다투다 치마 타진 줄 모르더니
정향 : 꽃신 코가 드러나 눈을 붉게 수놓네.
정향, 윤복 보고 웃는다. 그 순간, ‘딸랑’ 방울 소리가 들리며, 여자들이 ‘어머나’ ‘저것 봐’ 소리를 지른다.
방울치기에 성공한 여자, 그네를 늦추며 환하게 웃는다.
여인(소리) : 방울차기는 승자가 나왔습니다! 이제 쌍그네뛰기를 하겠으니, 뛸 자는 앞으로 나오십시오~
정향 : (윤복 보고) 그네를 뛰어볼까?
S#52. 저자 일각 / 낮
홍도, 자기 눈앞에 손 가져다대고,
홍도 : 요만한 남자 말입니다.
아낙1 : (홍도가 맘에 드는 듯, 아래위로 뜯어보며 떡 찧고)
아낙2 : (떡방아 찧을 때 마다 손으로 떡 반죽 만지며) 글쎄, 모르겠으니 먼지 날리지 말고 고만 가시오.
홍도 : (가며) 요 놈이 어딜 가버렸지?
아낙1 : 고만- 한 남정네라면,
홍도 : (돌아보면)
아낙1 : (떡 찧으며) 아까 추천하는 델 찾던 그 화공 말인가 본데? 아니오?
홍도 : 추천? (하며, 어딘가 보면)
관리(소리) : 그넷줄 발 굴러 허공 중에 솟구치니-
홍도 : 그래, 화제가 추천이었지, 그렇군! 고맙소.. (미소 날리고 돌아서면)
아낙1 : (떡매 들고, 홍도 가는 뒷태 보며) 아유, 만-날 단오절이면 좋겠네-
아낙2 : 아, (떡 잔뜩 묻은 손 흔들며) 안 찧어?
아낙 보면.. 홍도, 도포자락 휘날리며 저만치 멀어지고..
S#53. 계곡 / 그네터 / 낮
그네에 조심스레 올라타는 발. 윤복이다.
윤복 앞에 휙 올라서는 정향.
윤복과 정향, 코앞에서 마주보고 있다.
정향 : 처음인가 보구나?
윤복 : 그런, 당치도 않은..하하.. (정향 보다가) .. 맞소.
정향 : (윤복의 손 잡으며) 긴장하지 말고, 줄을 잡으렴.
윤복 : (괜히 울컥 해서 정향의 다른 쪽 손 자기가 와락 잡으며, 남자 말투) 걱정도 팔자로군! 갑니다-
정향 : (씩 웃으며) 꼭 잡으시지요, 화공.
윤복, 놀라며 주변 둘러보고, 정향이 ‘비밀인 것 안다’는 듯 눈을 찡긋 한다.
정향 : 처음이 중요하지요. 언제나..
정향, 발을 힘껏 구른다. 조금씩, 높이 떠오르는 그네.
정향이 발을 구르는 데 따라, 펄럭이며 나부끼는 치맛자락.
바람이 시원하게 지나가고, 사람들 소리가 멀어지며 꽃무더기가 가득한 계곡 속에 풍경처럼 박힌 사람들이 휙휙 지나간다.
시원스레 정향의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정향, 윤복을 보며 웃는다.
정향의 미소 뒤에서 반짝이는 햇살,
윤복의 얼굴에 반짝이는 햇살,
그리고 바람을 따라 하나로 얽혀 힘차게 펄럭이는 두 사람의 치맛자락.
윤복의 시야 넓어지며, 계곡 여기저기에 있는 여인들의 모습이 하나씩 눈에 들어와 박힌다.
그네를 한 번 뛸 때 마다 <단오풍정>에 나오는 여인들의 모습이 하나, 하나 정지되어 포착되면...
윤복 : 되었습니다! 되었습니다!
그네 탄 채 하늘 보는 윤복.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윤복의 시야를 가득 채운다.
꽃이 만발한 계곡, 따뜻한 공기, 반짝이는 햇살, 그리고 아름다운 정향의 미소...
이 모든 것을 벅차게 보던 윤복의 눈가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는데..
S#54. 계곡 입구 / 낮
홍도, 계곡 입구에서 나장 둘에게 가로막혀 있다.
홍도 : 글쎄, 저 안에 아는 사람이 있다니까?
나장1 : 내가 아는 사람도 부지기수요.
나장2 : 뿐이오? 알고 싶은 사람도 부지기수요.
나장1 : 큭큭..
홍도 : (계곡 안쪽 기웃거리며) 분명 들어갔을 텐데...
나장들. 홍도에게 관심 쓰지 않고 있을 때,
홍도 아낙들 틈에 껴서 자연스럽게 안으로 슬쩍 들어가려하는데...
나장. 홍도의 뒷목을 덥썩 낚아챈다.
나장1 : 허허... 이 사람 참!! 그렇게 들어가고 싶다면 양물부터 떼고 오시오.
홍도 : (놓으라는 듯 몸 비틀고 천연덕스럽게) 알겠소. 내년에 내 꼭 다시 오리다.
홍도 계곡 입구 반대편으로 방향 트는데, 한종일이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는 모습 보이고..
노는애(소리) : (다 죽어가는 소리) 이보시오~
S#55. 나무그늘 / 낮
별감, 커다란 고목 위에 돌을 하나 얹어놓고, 좌우 살핀 후 고목 옆에 앉는다.
(주 : 나무에 돌을 얹는 것은 단오절에 하는 세시풍속으로 ‘나무 시집보내기’이다)
별감 : (소매에서 수레떡 꺼내며, 타령조) 늙어빠진 이 나무도 자기 짝을 찾았는데, 이내몸의 고운짝은 (수레떡 한 입 베어물며)
어디메나 퍼져있나-
별감, 우물우물 떡 씹으며 눈 감는데.. 별감 뒤쪽으로 고개를 빼꼼 내미는 노는애.
노는애가 팔을 뻗어 별감의 볼따구를 쿡 찌른다.
노는애 : (거의 귀신 소리) 이보시오!
별감 : (떡 먹다 벌떡 일어나다가 속옷만 입은 노는애 보고 더 놀라) 으악!!
노는애 : (얼른 나무 뒤에 숨어 고개만 내밀고) 날 좀 도와주세요.
별감 : 아후.. 넌 왜 여기서 깨벗고 있느냐? (하며 은근히 노는애 뜯어보고)
cut to
별감이 입었던 홍철릭(주 : 별감의 겉옷)을 걸친 노는애, 별감은 하얀 바지저고리만 입은 채 입맛을 쓰게 다신다.
노는애 : 가요. (앞장서고)
S#56. 도화서 / 마당 / 낮
신중히 붓질을 하고 있는 장효원의 모습.
의궤 반차도의 아랫부분에 들어가는 사람을 다 그리고 허리를 편다.
장효원, 일어서서 그림을 본 후 왕실쪽으로 경건하게 절을 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절을 하고 그대로 무릎을 꿇고 다음 부분의 붓질을 시작한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는 장벽수.
장벽수, 어딘가 보면,
S#57. 계곡 일각 / 낮
바닥에 펼쳐진 종이에 휙휙, 자유롭게 그려지는 선들.
윤복이 화구통을 펼쳐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정자세로 앉아 그림을 그리는 장효원과는 대조적으로 자유롭게 기대고 앉아 리듬감 있게 목탄을 슥슥 그어나간다.
그 위로,
여자1 : 어마, 나네?
여자2 : 어머머머.. 저게 어찌 너니? 나지?
여자1 : 저것 보렴, 이 (눈 깜빡이며) 눈빛이 똑같지 않니?
여자들 까르르 웃는 가운데..
윤복 주변에는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고, 바로 옆에는 정향이 보고 있다.
자유롭게 목탄을 움직이는 윤복의 손 보는 정향.
(insert : 계월옥에서, 정향 앞에 손 내밀며, ‘익일이면 이 손이 사라진단 말입니다’ 하던, 윤복의 눈물 그렁한 눈.)
(insert : 술잔 들고 ‘이제 그림을 그리지 않겠소’ 하던 윤복의 모습)
정향, 그림을 그리고 있는 윤복의 반짝이는 눈빛 본다.
그림에 몰입한, 화가의 눈빛..
S#58. 계곡 일각 / 낮
바위 위로 머리 하나가 빼꼼 올라오면, 홍도다.
홍도, 바위 너머 한 중년 부인이 너른 바위 위에 돗자리를 펴 놓고 속치마, 속저고리만 입고 자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옆에 저고리, 치마, 장옷이 널려져 있고...
홍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긴 장대를 뻗어 옷을 낚으려 하는데...
S#59. 계곡 일각 / 낮
중년 부인의 치마와 저고리, 장옷까지 갖춰 입고 눈만 내민 홍도. 과하게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부인 흉내를 내어 걷는데...
계곡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그쪽으로 가면...
사람들로 둘러싸인 가운데,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그만 등이 보인다.
홍도, 그 쪽으로 다가가는데...
휙휙 그어지는 선을 보고 감탄하는 홍도. 저도 모르게 그 사람 옆에 붙어 서서 그리는 것을 보고 있다.
목탄을 들어 맵시 있게 치맛자락을 그리는 모습을 보는 홍도.
그것을 보다가 ‘이것은... 윤복이의 필치인데?’ 싶은 얼굴로 그림 그리는 사람의 얼굴을 휙 보는데...
여인의 얼굴을 보자 그대로 멈추는 홍도. 고운 옆선, 가느다란 목, 반짝이는 눈....
홍도, 그대로 멈춘 듯 그 여자 보는데.. 그게 윤복이인 줄 모르고 빤히 보는 홍도.
홍도, 여인이 고개를 살짝 들자, 얼른 고개 숙인다. 그러자 여인이 그리는 그림 보이고, ...
앉아있는 사람의 버선코를 그리는 윤복.
홍도, 그림을 유심히 뜯어보더니, 다시 보니, 그림을 그리느라 실룩거리는 윤복의 얼굴.
(insert : [군선도]를 그리며, 입을 삐죽거리는 윤복의 얼굴)
홍도, ‘윤복이 놈이었군’ 싶어, 실망하는 얼굴, 피식 웃으며... 윤복 옆에 바싹 붙어선다.
홍도 : 윤복아-
윤복 : (그림 그리며, 본능적으로) 예.
하다가, 놀래 돌아보면, 홍도가 윤복을 보고 있다.
윤복, 여장한 홍도 보고는 깜짝 놀라 당황하면,
홍도 : (다 안다는 듯 고개 끄덕이며) 어서 그리거라.
윤복, 다시 그림을 그려나간다.
윤복이 선을 그을 때 마다 감탄하는 사람들.
계곡 아래 여자들, 위에 있는 여자들도 다 그리고 가운데 그네를 타는 여자는 그리지 못한 윤복. 목탄을 놓는다.
목탄이 묻은 손으로 이마를 슥 닦는 윤복.
얼굴에 검댕이 묻는 것도 모르고 그림을 뚫어지게 보는 윤복.
홍도 : 무엇이 (주변 의식하고 다시 여자 목소리로) 무엇이 문제냐?
윤복 : 그것이.....
홍도 : 어서 완성을 해라, 그 자리에 누가 들어올지 몹시 궁금하다.
윤복 : 그게..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홍도 : 뭐라고?
윤복 : (정향 보며) 저는 아직.. 이 여인의 마음속을 보지 못했습니다.
노는애(소리) : 저기 있소!
윤복, 소리 나는 곳 보면, 노는애가 별감을 대동해서 오고 있다.
노는애 : 저 사람이예요! (윤복에게 달려오며) 내 옷!
홍도 : (윤복에게) 무슨 일이냐?
윤복 : (그림 챙기며) 그럴 일이 좀 있습니다.
노는애 : (윤복에게) 내 옷 내놔!
홍도 : (끼어들며) 무슨 일이십니까?
노는애 : 내 옷 훔쳐 갔다구요! (옷 잡으며) 어서 내놔!
홍도 : (장옷을 확 걷으며 윤복의 어깨 감싸고) 여보 부인, 그게 사실이오?
순간, 주변에 있던 여인들. 아연실색하며 몸을 가리거나 비명을 지르기 바쁘고...
정향 또한 홍도 보고 깜짝 놀란다.
별감 : (말 더듬으며) 이! 이런 발칙한!! 백주대낮에 아녀자들을 희롱해도 유분수지!!! 사내로서 부끄럽지도 않소?
홍도 : 무리하면 곧잘 쓰러지는 부인이 계곡까지 나와 그림을 그리겠다 하는데, 아니, 어느 남편이 그냥 보고만 있겠소?
여장을 해서라도 곁을 지켜주겠다 한들 누가 욕하리오. (모두 들으라는 듯) 아니 그렇소?
좌중 또한 홍도의 말에 동의하는 표정인데...
노는애 : 아니라니까요! 이 사람은 남자예요.
별감 : (윤복 들여다보고, 노는애에게) 꼭 여잔데? 잘못 안 것 아니냐?
노는애 : (윤복의 옷 잡고 늘어지며) 벗겨봐! 그럼 알 거 아냐!
홍도 : (노는애 떼어내며) 무슨 짓인가? 안 그래도 심약한 사람에게! (윤복에게 눈짓)
윤복 : (머리 잡고 ‘휘청’) 아~
홍도 : (윤복 부축하며, 사람들 들으라는 듯) 아이구!! 내 그리- 무리하지 말라 했는데!! (윤복 데리고 가며) 어서 가십시다.
윤복과 홍도 가는데,... 윤복 허리에 감겼던 남자 복장이 툭 떨어진다.
노는애 : 저것 봐요!
윤복, 얼른 옷 집어들자, 홍도가 윤복의 손목을 잡아채고, 윤복이 홍도 보면,
홍도 : 뭐하네? 뛰잖고!
홍도, 윤복을 끌고 달리면, 윤복, 달리면서 화구들 보는데,
정향 : 화공! (붓과 도구들 들어보이며) 이것은 제가!!
노는애 : (따라 달리며) 거기 서!!
하다가, 넘어져 뒹구는 노는애.
별감, 짜증이 가득차 노는애 일으키는데, 노는애 보다는 자기 철릭에 묻은 흙을 터느라 바쁘고..
별감 : 칠칠맞잖게!!
노는애 : (윤복과 홍도쪽 보다가 털썩 앉아 다리 뻗고) 내 옷! 내 모자! 새로 해 입은 옷이란 말이오- 힝-
하는 사이... 윤복과 홍도, 모퉁이를 돌아간다.
S#60. 계곡 입구 / 낮
한종일. 계곡 입구 쪽 바위에 앉아서 윤복을 기다리고 있다.
이 때, 계곡에서 윤복과 홍도 신나게 달려 나오고...
나장, 옆으로 윤복과 홍도가 번개처럼 쌩하고 지나가면...
나장 : (홍도 알아보고) 저! 저! 저 놈이 기어이!!!
나장, 눈 휘둥그레져서 쳐다보고...
한종일도 일어나 홍도와 윤복이 달아난 곳을 향해 쳐다보는데...
S#61. 냇가 / 저녁
냇가의 커다란 바위 뒤.
먼저 여자 옷을 벗은 홍도가 냇가 쪽으로 앉아, 윤복의 그림 보며 윤복의 남자 저고리를 등 뒤로 건넨다.
윤복 : (조심스레 그 옷 받고 고름에 손 가져가다가) 보지 마십시오.
홍도 : 안 본다. 안 봐. 뭘 볼 게 있다고 남자끼리 그렇게 깔깔하게 구느냐? 보래도 안 본다 이놈아. (하면서, 휙 돌아보면)
윤복 : (얼른 돌아서며) 스승님!
홍도 : 거 참, 뭘 볼게 있다고! (하늘 보고) 어서 입어라. 해 넘어간다. 근데 너 말이다..
윤복 : (조심스럽게 고름 풀다가 홍도 쪽 흘끔 보고, 한껏 웅크린 채) 예?
홍도 : 뼈마디가 어찌 그리 잘아? 아니, 허허, 여자라고 해도 믿겠다 이놈아.
윤복 : (치마 밑으로, 바지 꿰어입다가.. ‘여자’소리에 당황해 쿵 넘어졌다가) 여, 여자라니요!
홍도 : 하마터면..
(insert : 그림을 그리던 윤복의 얼굴선)
홍도 : 깜빡 속을 뻔 했다 그거지. 네놈 같은 망둥이가 여자면, 아이구, 그걸 누가 데려간다고?
윤복 : 아, 그렇습니까? 스승님이 여자면, 누가 데려가구요?
윤복, 남자 저고리 입고 고름 묶으며 홍도 옆에 와 앉으면,
홍도는 윤복이 초를 잡은 그림을 뜯어보고 있다.
홍도 : (그림 넘겨주며) 어서 완성해서 보여다오. 몹시 궁금하다.
윤복 : (받으며) 객만 가득하고 주가 빠졌습니다.
홍도 : ...내일 오시까지다. 완성할 수 있겠느냐?
윤복 : (끄덕인다)
홍도 : 그럼 어서 주인을 찾아 채우거라. 나도 다녀올 곳이 있으니.
윤복 : (일어서며) 다녀오겠습니다.
S#62. 도화서 / 마당 / 저녁
도화서 마당에 초가 환하게 켜져 있고, 모퉁이에는 횃불도 환하게 밝혀져 있다.
엎드려 앉아 그림을 그리는 놈들, 조는 놈들 있는 가운데,
화원 하나가 죽비를 들고 조는 술태의 어깨를 내리친다.
얼른 눈을 뜨고 붓을 잡는 술태. 반도 끝내지 못한 의궤 반차도가 보인다.
/정도 완성을 한 그림의 /부분을 손질하고 있는 장효원.
김덕성, 기록장부를 들고 옆에 서서 흐뭇하게 웃으며 효원이 붓질을 할 때 마다 ‘옳지! 옳지!’하다가...
졸거나 심드렁한 다수의 생도들 보며...
김덕성 : 끝까지 집중하거라! 너희들이 쓰는 종이, 붓, 벼루, 안료 모두 백성의 피와 땀으로 만든 것이니
한 순간도 게을리 하지 말거라. 알겠느냐?
생도들 : 예!
이인문 : (도화서로 들어서며) 복헌(주 : 김덕성의 호) 어르신.
김덕성 : 유춘, 왔는가?
이인문 : (인사하며) 고생하셨습니다.
김덕성 : (기록장부 건네며) 그럼 수고하게. (가면)
이인문, 기록 장부 들고 가다가 장효원 옆에 멈춰선다.
효원, 이인문 보면,
이인문 : (장효원 그림 들여다보다가) 과연 누대로 내린 치밀함이 있구나. 끝까지 정진하거라.
장효원 : (칭찬받아 으쓱 하며) 예.
고봉 : (옆에서 장효원 보며 ‘최고’라는 듯 엄지손가락 올려보이는데) 근데, (둘러보며) 윤복이 놈은 아직도 안 온 것이냐?
(효원에게 은밀히) 그 놈이 돌아오지 못하면, 네가 화원이 되는 건 따 놓은 당상이군, 그렇지?
장효원 : 무슨 소리냐?
고봉 : 그렇잖냐? 그 자식이 생긴건 기집애같아도, 우리 중에 유일하게 너랑 맞붙을 실력이,
장효원 : (끊으며) 조용히 못하겠냐?!
고봉 : (효원 눈치 살피며) 알았다. 알았어. 조용-히, 조용-히 (붓 들면)
이인문, 고봉과 효원 보다가 어딘가를 본다.
S#63. 공씨의 집 앞 / 밤
홍도, 작은 초가집 앞에서 좌우를 살피고 들어가면,
S#64. 공씨의 집 / 방 / 밤
홍도, 방문 열고 들어서면.. 벌떡 일어서는 화공.
화공 : 살아 있었군요! 단원 선생님!
홍도 : (화공의 손 잡으며) 잘 지냈는가?
공씨 : (홍도에게 은밀히) 어찌나 겁이 많은지, 여기까지 데려오느라 아주, (진저리치며) 욕봤소 내가.
홍도 : (공씨에게, 은밀히) 자넨 꼭 잘해놓고 공치사를 해서 김을 새게 하는군 그래. 어서 나가 보게.
공씨 : 흠! (화공에게 친절한 미소 던지며) 그럼 얘기들 나누십시오. (나가고)
홍도 : (화공 보며) 살아 있었어... 그간.. 혹, 일월당(주 : 서징의 호)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는가?
화공 : (주변 둘러보고) 살아 있다 합니다.
홍도 : 누가 말인가?
화공 :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다른 사화서를 구하지 못하고 전전할 때, 은밀히 알아본 바가 있습니다... 헌데.. (주변 살피고)
이리 와 보십시오.
화공, 홍도 귀에 대고 속삭이면,
홍도 : (충격 받아) 그것이 정말인가?
화공 : 그렇습니다. 허나, 어디서 무얼 하는지, 아무리 뒤져 보아도 알 수가 없어요. 하늘로 사라졌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홍도 : 내 꼭 찾아내겠네!! 그 아이가 살아있다니.. 내 꼭 찾아내겠어!
화공 : 허나, 조심하십시오. 그 일을 저지른 자들이 조정이며 도화서며, 모조리 휘어잡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단원 선생님..
홍도 : (화공 어깨 잡고) 조심하게. 이제 내가 왔으니, 한 시름 놓고. 응?
화공 : (끄덕이면)
S#65. 계월옥 전경 / 밤
불빛이 은은하게 퍼지는 계월옥 전경이 보인다.
S#66. 계월옥 / 안채 방 / 밤
예조판서, 조영승, 김귀주, 등 고관들이 모여앉은 방 안.
젊은 기생들, 고관들 사이사이 앉아있고... 계월도 긴 곰방대를 들고 조영승 뒷쪽에 앉아있다.
고급스런 방 내부와 안주들 보이고,
사람들 뒤쪽 구석진 자리에 부채 펴들고 앉아있는 김조년이 보인다.
김조년 보면, 조금 젊은 관리 하나가 그림을 들고 있다. (김홍도의 [화묘롱접도])
고관 : 또한 (손가락이 고양이를 가리키면) 고양이 ‘묘’ 자는 한자로 노인 ‘모’ 자와 ‘먀오’ 하는 중국 발음이 같습니다.
을 뜻하는 고양이가 을 뜻하는 나비를 보고 있으니 이는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이 아닙니까.
예조판서 : 오라! 과연 그렇군!
김귀주 : 그렇구 말구요.
고관 : 자, 그럼, 예판어른의 만수무강을 위해 잔을 듭시다!
사람들 : (잔 드는데)
김조년(소리) : 또 있습니다.
사람들, 보면, 김조년이 얼굴을 가렸던 부채를 접으며 일어선다.
예조판서 : 아직 더 읽어낼 것이 남았는가?
김조년 빙긋 웃으며 부채를 탁! 치면, 그림이 화면 가득 들어온다.
김조년의 말에 따라 부채가 패랭이꽃, 제비꽃을 가리킨다.
김조년(소리) : 이 꽃은 패랭이 꽃입니다. 이것은 ‘청춘’이란 꽃말을 가졌지요. 그리고, 이 아래, 이 꽃을 보십시오. 제비꽃입니다.
그런데 (패랭이꽃 가리키며) 이 꽃은 초여름에, (제비꽃 가리키며) 이것은 이른 봄에 피는데,
어찌해서 두 꽃을 같이 그렸을까요?
김조년, 사람들 슥 둘러보면,
사람들, 홀린 듯 김조년을 보고 있다.
김조년 : 그것은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들은 제비꽃을 ‘뜻대로 된다’고 하여 여의초라 불렀습니다.
그러니, 이 그림은 예판 어른께서, 노인이 되도록 오래오래 장수하시되, 청춘인 양 건강하고 곱게 늙으시기를 바라고,
그 밖에 (부채로 제비꽃 탁! 치며) 모든 일이 다 뜻대로 되시길 바란다-- 이런 뜻인 겁니다.
일동 : (감탄하고)
김조년 : 마지막으로...
김조년의 말을 따라 그림 속의 나비가 날개짓하고, 바람에 꽃이 흔들리며, 고양이가 나비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위로..
김조년(소리) : 이 그림 속의 모든 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꽃대 훑어내리는 손을 따라)
꽃이 그리는 사선의 흐름을 따라서, 우측에 자리잡은 고양이와 나비 역시 호응을 하고 있습니다.
무심한 듯 자리잡았으나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솜씨며, 그림 전체를 감도는 생동감이며...
이것은 과연 천하의 단원의 솜씨입니다!
사람들 : (웅성이고)
고관 : 단원이라? (그림 보며) 이것이, 그 유명한 단원이라? 허허, 몰라볼 뻔 했군.
조영승 : (‘단원’이란 말에 찡그리면)
김귀주 : (조영승 기색 살피고, 예조판서 보며) 그렇습니까?
그림을 들고 있던 관리, 서명을 가리고 있던 종이 떼어내자 ‘단원’이라는 글자가 드러난다.
놀라는 화원들.
예조판서 : (웃으며) 대단한 안목이군.
김조년 : 과찬이십니다. 금일 제 조촐한 재주를 뽐내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자리 술값은 제가 내도록 허락하여주심이 어떨는지요?
계월 : 행수께서는 참으로 고운말만 하십니다. 시전의 대 행수께서 온갖 보화를 손에 넣더니 이제 옥같은 말도 입에 담으시는군요.
(잔 들며) 그렇지 않습니까?
고관들 : (김조년 달리 보며) 대 행수라.. / 저 치가 대행수 김조년이군 / (고까운 듯 보며) 제법 양반 꼴을 내고 왔군 /
우상대감한테까지 돈줄을 댔다는 그 장사치로군.../
예조판서 : 헌데, 금일 이 자리에 모이라 하신 연유는 무엇입니까?
김귀주 : 별다른 것 있습니까? 그저 나랏일 보는 사람들 끼리 서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고자 청한 것 뿐이지요. 그렇지 않은가?
김조년 : (잔 들며) 고매하신 어른들께서 나랏살림을 잘 살펴주셔, 이 장사치가 맘편히 장사를 하도록 해 주시니,
그저 고마운 마음 표현하고자 조촐한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허니, 편히 드시지요.
웃으며 잔을 드는 김조년. 술잔이 얼굴 가리자 싸늘한 표정 나오는데...
자리에 앉아있던 계월, 조용히 밖으로 나온다.
S#67. 계월옥 / 복도 / 밤
계월, 문을 조심스레 닫고 나와 물잔을 가져가는 막년을 본다.
계월 : 막년아. 정향이는 어디 있느냐? 고관대작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 물색없이!
막년 : (허리 푹 숙이고 엎드려) 저기...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계월 : 귀한 손님? (정향방 쪽 보면)
S#68. 계월옥 / 정향의 방 / 밤
고요한 정향의 방. 정향과 윤복이 마주앉아 있다.
그들 앞에는 윤복이 초를 뜬 그림이 펼쳐져 있다. 그 위로,
윤복 : 이 화폭 속에 들어와 주시오....
정향 : (윤복 보면) 어찌해야 합니까? 화폭 속에 들어가려면.
윤복 : ..모든 것을 보여다오. 옷으로 둘러싸인 그 자태 안에 감춰진 모든 것..
너의 마음과, 너의 기개와, 너의 굳건함, 그 속에 숨겨진 음율..
정향 : (눈 내리깔고 가야금 만지며) 마음을 보려면,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요?
윤복 : 너의 눈이다.
정향 : (윤복 보며) 기개를 보려면, 무엇을 보아야 하나요?
윤복 : 너의 어깨.
정향 : (고름 천천히 풀어 저고리 스르르 벗으면, 하얀 어깨 드러나고) 굳건함을 보려면,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요?
윤복 : 너의 이마.
정향 : (가채 조심스레 내리면, 고운 이마 드러나고) 숨겨진 음율을 보려면..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윤복 : 치맛 속에 있는.. 너의 자태.
정향, 윤복을 보다가 일어선다.
방안을 밝히던 초를 하나씩 끄는 정향. 작은 등잔 하나만 남기고 모두 끈다.
일어서서 겉치마 끈을 천천히 푸는 정향.
툭, 치마가 바닥에 떨어지고, 하얀 속치마만 입은 정향, 곱게 앉으면..
윤복, 등잔을 들고 정향의 얼굴, 정향의 몸이 그리는 선을 하나씩 비춰 본다.
등잔을 따라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정향의 고운 자태.
윤복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번쩍이며 새겨지는 어깨선, 목, 입술, 손목, 발...
S#69. 계월옥 / 복도 / 밤
복도를 지나가는 조년.
다른 방들은 형형색색 불이 밝혀져 있고, 음악소리와 웃음소리가 시끄러운데,
한 방만 불이 꺼져있고 고요하다.
조년, 그 안에서 움직이는 불빛을 보고 멈춰선다.
문을 살짝 미는 조년...
S#70. 계월옥 / 정향의 방으로 가는 길 / 밤
정향의 방 쪽으로 가는 계월의 모습. 손에는 장죽을 들고 있다.
계월, 신을 벗고 마루에 올라서고,
S#71. 계월옥 / 정향의 방 / 밤
어두운 방 안에 등잔의 희미한 불빛을 받고 있는 여인의 하얀 뒷태를 보는 조년.
숨이 턱! 막히는데...
S#72. 계월옥 / 정향의 방 앞 툇마루 / 밤
계월, 정향의 방으로 오는데... 조년의 옆모습 보는 계월.
계월, 조년을 보고 미소짓는데, 조년이 넋을 놓고 무언가 보는 모습 본다.
계월, 조년이 본 곳 보면, 정향의 방이다.
‘걸려 들었군’ 하는 표정으로 슥 미소짓는 계월. 장죽을 입에 문다.
S#73. 계월옥 / 정향의 방 밖 / 밤
조년이 있는, 문틈으로 보이는 모습.
여인의 어깨 너머로 웅크리고 엎드려 무언가를 그리는(혹은 글을 쓰는) 남자의 모습이 얼핏 보이고(윤복),
조년, 애타게 정향의 모습을 보려고 고개를 빼는데,
정향이 고개를 살짝 틀어 조년을 본다.
정향과 눈이 마주치는 조년. 조년, 넋을 잃은 듯 정향을 보는데,
정향, 조년의 눈을 그대로 보는 채 몸을 조금 돌린다. (방문을 닫는 것이다)
S#74. 계월옥 / 복도 / 밤
조년, 정향을 보는데, 방문이 스르르 닫힌다.
문을 다시 열지도 못하고, 떠나지도 못하고, 닫힌 문 앞에 한동안 서 있는 조년. 아쉬움에 닫힌 방문을 보는데...
계월(소리) : 무엇을 보셨기에 넋을 놓으셨습니까?
조년 : (계월 보고, 이내 냉정한 표정) 잠시 길을 놓쳤을 뿐이네. (계월 옆을 비껴가는데)
계월 : 탐이 나는 물건을 본 얼굴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조년 : 어찌 주제넘은 소리를 하는가?
계월 : (빙긋 웃으며) 주제넘었다면 응당 사죄를 해야지요. (고개 까딱 하고) 허나, 행수어른과 이 년은, 남들에게 없는 눈을 하나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조년 : (계월 보고) 무엇인가?
계월 : 가장 가치있는 것을 단번에 알아채는 눈 말입니다.
조년 계월 보고, 계월, 빙긋 웃는데..
계월 : 언제라도 제게 기별을 주시지요. (스쳐가다 조년의 코앞에 멈춰 은밀히) 만일 행수께서 저 방에 있는 아이를 손에 넣는다면,
(조년 올려보며) 행수의 손에 넣은 것 중 가장 향기로운 물건이 될 것입니다.
계월, 목례 까딱 하고 유유히 가면,
조년, 복잡한 심경으로 그 쪽 보고..
S#75. 계월옥 / 방 / 밤
정향의 하얀 어깨. 그리고, 그 너머 윤복의 얼굴이 보인다.
정향 : 이제 이 년... 화공의 그림 속에 살게 된 것입니까?
윤복 : (고개 끄덕이고)
정향 : 허면.. 시험에 ‘통’하시면, 이 년.. 화공의 마음속에만 살아도 되겠습니까?
윤복 : 마음(하다가, 당황해 정향 보며).. 속에?
정향 : (윤복 보면)
윤복 : (정향의 저고리 걸쳐주며) ..어떤 남자가, (정향 눈 보며) 너를 거부할 수 있겠느냐?
윤복, 정향 보면,
정향, 윤복의 마음을 알아내려는 듯 윤복의 눈 들여다보며, 천천히 저고리 입으면,
윤복 : 그리고, 어떤 남자가... (정향 고름에 손 가져가며) 너를 함부로 할 수 있겠느냐?
윤복, 정향의 저고리 고름 천천히 묶어주는데...
S#76. 정조의 처소 / 밤
정조, 서안 위에 올려놓은 작은 상자에 묶인 끈 스르르 풀면, 그 안에 들어있는 무언가 보인다.
정조, 그 속에서 뭔가 꺼낸다.
등잔불에 보이는 그 물건의 정체, 작은 활이다.
그 활을 만지는 정조. 만감이 교차하는 듯...
정조, 작은 활 들고 시위를 당기면,
S#77. 궐 곳곳 / 낮 - 회상 - 몽타주
. 궐 일각 / 낮
활 날아가 과녁에 꽂히면, 활짝 웃는 어린 정조 보인다.
어린 정조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
어린 정조 : 아바마마..
. 영조의 처소 / 낮
곤룡포 자락 조금 보이는 남자의 모습(영조). 그 옆에 정순왕후 앉아있고,
그들 앞에 엎드린 어린 정조.
어린 정조 : (눈물 범벅이 되어) 할바마마, 아바마마를 살려주시옵소서-
영조 : (서안 위에 올려진 주먹 떨리며) 어서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어린 정조 : 할바마마! 할바마마!!
어린 정조, 도움을 청하는 눈으로 옆에 앉은 정순왕후 보는데..
무표정하게 정조 보는 정순왕후.
어린 정조, 눈물 가득한 눈에 원망이 차오르고...
. 동궁전 / 낮
하얀 상복 입고 동궁전에 들어오는 어린 정조. 벽에 걸린 자그마한 활 꺼내 만지는데...
S#78. 정조의 침소 / 밤
(앞 씬의) 활 만지는 정조.
정조 : (활 만지며)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정조, 활 만지다가 창 밖 보면, 달 보이고..
S#79. 계월옥 밖 / 밤
달빛 아래, 계월옥 풍경 보이고.
윤복, 초 뜬 종이를 접으며 옷자락을 휘날리며 나오면,
윤복이 지나간 곳에 나타나는 남자.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얼굴, 한종일이다.
한종일, 윤복의 뒤를 슥 따라간다.
S#80. 우물가 길 / 밤
한 쪽으로 우물이 보이는 길. 윤복, 길을 걸으며,
윤복 : (웅얼웅얼) 그넷줄 발 굴러 허공 중에 솟구치니 바람 머금은 두 소매 휜 활등 같구나
(insert : 그네를 뛰는 정향의 모습)
윤복, 그 모습 눈 앞에 보이는 듯 미소짓는데..
윤복 뒤로 다가서는 그림자.
퍽! 소리와 함께 윤복 정신 잃고 쓰러지면,
S#81. 우물가 / 밤
와그르르 쏟아지는 화구통.
한종일, 우물가, 우물 옆에 붙어 화구통 뒤집어 붓, 먹 등을 쏟아내면, 윤복이 그림을 그린 종이가 나온다.
종이 펼쳐보는 한종일.
한종일 : 됐다.
한종일, 그림을 품 속에 넣고 주변 둘러본 후 사라지면..
달빛 아래 음산하게 보이는 우물.
S#82. 서징의 집 / 밤
달빛 아래, 서징의 집 툇마루에 앉아있는 홍도. 마루 쓸어보는데,
S#83. 서징의 집 / 낮 / 회상
마루 쓰는 손 이어지며, 홍도, 손 보면 먼지 하나 없는 마루.
홍도 : 어찌 먼지 한 올 없소? 자네, 명이를 너무 혹사시키는 것 아닌가?
서징 : (문 옆에 기대앉아 뭔가 만들다가) 부러우면 자네도 어서 짝을 찾게. 예서 툴툴대지 말고.
명 : (나물 소쿠리 들고 지나치며) 또 눙을 치시어요? (치맛자락 잡은 어린 윤복 떼어내며) 아저씨랑 놀고 있으렴.
어린윤복 : (명 따라가려 하면)
홍도 : (어린 윤복 번쩍 안아 올리며) 우리 윤이! (윤복 얼굴에 볼 비비며) 무얼 하고 놀까, 응?
어린윤복 : (홍도의 수염 따가워 피하며, 웃으면)
S#84. 서징의 집 / 밤
어린 윤복의 웃음소리 이어지다 사라지고, 텅 빈 서징의 집 마루 보인다.
홍도, 먼지가 가득 묻은 손 털며 일어서서 가다가,
홍도 : (달 보며) 어디 있느냐... 윤아..
S#85. 우물 속 / 새벽
윤복, 마른 우물 속에 쓰러져 있다가 눈 부스스 뜨는데,
둥근 우물 모양 밖으로 보이는 달.
윤복, 달 보다가 벌떡 일어나는데, ‘아!’하며 주저앉는다.
윤복 보면, 오른쪽 발목이 부어 있다.
윤복 : (발목 만지며 주변 둘러보고) 여기가 어디지? (하다가, 자기 몸을 더듬는데.. 화구통도, 그림도 없고) 그림! 내 그림!!
윤복, 절망적인 표정이 되어 우물 위쪽 보며,
윤복 : 여보오!!! 누구 없소!!! (바닥에서 돌멩이 주워 위로 던지며) 여보시오!!
하는데, 던졌던 돌멩이가 윤복 쪽으로 다시 떨어지자, 윤복 얼른 피하고..
윤복 : 여보오!!! (벽 두드리며) 누구 없소!!! 여보오!!!
S#86. 우물가 / 밤
순라꾼, 지나가는데, 조금 떨어진 곳 우물 속에서 ‘우-’ 귀신소리같이 울린다.
순라꾼, 그 곳을 잠깐 봤다가 다른 곳으로 향하며,
순라꾼 : 저 우물에 귀신이 나온다더니, 정말이군 그래?
S#87. 우물 속 / 밤
순라꾼들 말소리 멀어지고..
윤복, 곤란한 얼굴 되는데...
윤복 : 스승님.. 형.. (안타까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텐데..
S#88. 도화서 마당 / 밤
향시계 툭! 떨어진다. 이제 남은 것은 네 개 뿐.
향시계 너머로 보이는 시험장 전경.
생도들 시험보고 있는데, 홍도, 갑자기 들어와 생도들 면면을 보면,
자비대령화원 : 무슨 일인가?
홍도, 생도들 보고, 윤복 찾으려 다시 한 번 죽 보고는,
홍도 : 이거, 고생이 많으십니다. (나가고)
S#89. 도화서 앞 / 길 / 밤
도화서 앞 길로 나와서 왔다갔다 하다가, 계월옥쪽에서 오는 방향을 보는 홍도.
(insert : 정향 : (화구 챙기며) 이것은 제가!)
홍도 : 설마... (발길 돌리며) 안되겠다.
홍도, 길을 돌아 가는데, 도화서로 들어서는 한종일과 부딪힌다.
한종일 : (깜짝놀라 돌아보면) 다, 단원 선생님?
홍도 : 밤이슬 밟으며 어딜 다녀오는가?
한종일 : 심부름을 잠시 다녀오는 길입니다. 시간이 촉박하여 이만.. (안으로 들어가면)
홍도 : (계월옥 쪽으로 향하고)
S#90. 도화서 / 장벽수의 방 / 밤
윤복의 그림(초) 펼쳐져 있고, 한종일 장벽수 앞에 서 있다.
장벽수, 윤복의 그림 보고, 천천히 찢으며,
장벽수 : 수고했네. 이제 단원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군. (미소 지으며 어딘가 보면)
S#91. 계월옥 / 정향의 방 밖/ 새벽
정향(소리) : (정향의 그림자 위로) 떠나신 지 두 식경이 다 되었습니다.
홍도 : 알겠소. 내 더 찾아보겠네.
홍도, 마당을 가로질러 달려 나가면,
방문 열리고, 정향, 자리옷 입은 모습으로 걱정스레 보는데..
S#92. 계월옥 근처 / 새벽
홍도, 앞까지 왔다가 돌아서며,
홍도 : 시간이 없다.. 윤복아.. 어디에 있느냐?
홍도, 둘러보다가 다른 길로 가는데,
S#93. 우물 속 / 새벽
윤복, 웅크리고 있는데.. ‘윤복아-’소리 작게 들리고,
윤복, 고개 번쩍 들면.. 더 선명하게 들리는 소리.
윤복 : (벌떡 일어나) 스승님!!! 스승님!! (주변 둘러보다 돌맹이 주워서 우물 벽 두드리며) 스승님!!!
S#94. 우물가 길 / 새벽
홍도, 주변 둘러보며,
홍도 : 윤복아!! 윤복아!! 어디 있느냐!!
홍도가 지나가는 길 뒷편으로 우물 보이고, 홍도, 그 주변까지 두리번거리는데...
S#95. 우물 속 / 새벽
홍도(소리) : 윤복아!!
윤복 : (돌 마구 두드리며) 스승님!!! 여기 있습니다!! (우물 바깥쪽 향해) 스승님!!!
뎅- 뎅- 통금을 해제하는 종소리 들리고,
S#96. 길 / 새벽
뒤쪽으로 우물이 보이는 길.
한종일이 떨어뜨린 윤복의 붓이 하나 보이고, 그 붓 옆으로 지나가는 홍도의 발.
붓을 밟을 듯, 밟을 듯 하다가 지나치며,
홍도 : 윤복아!!
S#97. 우물 속 / 새벽
홍도의 소리 들리고,
윤복 : 스승님!! 여기입니다!! 우물 속입니다!!
하는데, 홍도 소리 멀어지고..
S#98. 길 / 새벽
홍도, 우물 지나치는데, ... 순라꾼이 딱딱이 치며 온다.
순라꾼 : 이 새벽에 뭘 하고 있소?
홍도 : 혹, 자그마한 화공 하나 못 봤소? 오는 길에, 가는 길에, 이 근방에서 말이오!
순라꾼 : 못 봤소. (홍도 아래위로 살피고) 밤새 뭘하다 들어가시오?
윤복(소리) : (작게) 여보시오!
순라꾼 : 어서 돌아가시오. 마누라쟁이 깨기 전에.
순라꾼, 큭큭 웃는데, 작게 들리는 윤복의 목소리. 홍도, 주변 둘러보는데,
윤복(소리) : 스승님!
홍도, 주변 둘러보다가 우물쪽 보는데! 바닥에 떨어져 반짝이는 벼루 보인다.
홍도 : 윤복아!!
S#99. 우물가 / 새벽
홍도 옆으로 붓, 붓발, 화구통 등 떨어져 있는 것 보이고, 홍도, 우물 속으로,
홍도 : (우물 속 보며) 윤복이냐!!
윤복(소리) : 스승님!!!
홍도, 순라꾼이 든 불 빼앗아 우물 속 보면, 우물 안에서 윤복이가 올려보고 있다.
윤복 : 스승님!!
홍도 : 어쩌다 거길 들어가 있느냐? (주변 둘러보고, 순라꾼에게) 좀 도와줘야 겠소!
(insert : 툭! 떨어지는 향시계. 이제 네 개가 남았다)
S#100. 우물 안 / 새벽
우물 속에 툭 떨어지는 홍도의 발. 옆으로 홍도가 잡고 내려온 끈 보이고..
홍도 : (윤복 보고) 괜찮느냐?
윤복 : (홍도 보자 갑자기 눈물 후루루- 떨어지며) 스승님! (홍도에게 푹 안기는데)
홍도 : (당황하다가, 사시나무 떨듯 떠는 윤복의 어깨 보자 팔 둘러 안아주며) 괜찮다. 괜찮아.
윤복 : (흑흑- 무방비상태로 울다가 갑자기 홍도 밀어내고 떨어져 서면)
홍도 : (윤복의 얼굴 손으로 꼭 잡고 이 쪽 저 쪽 돌려보면, 긁힌 자국 보이고) 괜찮느냐?
윤복 : (홍도 손에 볼이 눌린 채, 끄덕끄덕)
홍도 : (윤복 보다가) 시간이 없다. 일단 나가자.
하며, 윤복 팔 잡아끌어 줄 잡게 하려면, 윤복, ‘아!’ 소리 지르고...
홍도, 얼른 윤복의 버선 훅! 벗기면, 부어오른 윤복의 발목.
홍도 : 안되겠다. (엎드리며) 업히거라. 어서.
윤복 : 스승님..
홍도 : 어서!!
윤복, 조심스레 홍도 등에 업혀 홍도의 목에 팔 두르고..
홍도 : (돌아보며) 꼭 잡거라.
홍도, 줄 잡고 올라가면,
윤복, 진지한 홍도의 옆얼굴 새삼 보다가.. 괜히 기분 이상해 저도 모르게 고개 푹 파묻고..
S#101. 우물가 / 새벽
순라꾼들, 줄 잡아당기면 윤복 업은 홍도가 우물에서 나오고.
홍도 : 고맙소. (윤복에게) 가자. 시간이 없다.
윤복 : 소용 없습니다.
홍도 : 뭐?
윤복 : ...이제 다 끝났습니다.. 초(주 : 스케치)가 없어졌습니다.. 그림이 없어요...
홍도 : 뭐?
윤복 : (눈물 핑 돌며) 어떡하면 좋습니까?
홍도 : 일어나거라.
윤복 : 예?
홍도 : 어서 일어나라는데!! (윤복 일으켜 세워, 어깨 잡고) 눈을 감거라.
윤복 : 스승님..
홍도 : 어서!
윤복 : (눈 감으면)
홍도 : 떠올려 보거라. 그네를 타는 여인들과,
윤복 : (눈 움찔거리고) 스승님..
홍도 : 계곡, 웃음소리, 햇빛, 소리, 냄새... 무엇이든 좋다, 떠올려 보거라! 어서!!
윤복 : 냄새.. 요?
홍도 : 오감은 통해 있다. 귀. 눈. 냄새. 맛. 느낌. 하나를 끌어내면, 다른 것도 따라오게 되어 있다. (윤복 보며) 어서!!
윤복, 눈 감은 위로, 사람들 웃음소리 들리고, 휙- 휙- 스치는 바람에 머리카락 움직이고,
따뜻한 햇살 보이며, 그 것을 느끼듯 손 움직이면... 윤복의 입가에 슥- 미소 떠오른다.
윤복 : (눈 번쩍 뜨면)
홍도 : 응?
윤복 : (끄덕이고)
홍도 : (절뚝이는 윤복 보다가, 등 내밀며) 가자.
윤복 : 스승님..
홍도 : 어서! 시간이 없어! (윤복 업히면) 꼭 잡거라.
윤복 : (홍도의 목 꼭 끌어안고)
S#102. 도화서 앞으로 난 길 / 새벽
헉, 헉, 숨소리 들리는 가운데, 윤복을 업고 달리는 홍도의 모습 보인다.
윤복, 무서운 기세로 달리는 홍도의 목에 매달려 가며, 마치 그림을 그리듯, 움직이는 손..
그림을 그리듯, 움찔거리는 윤복의 입..
S#103. 도화서 / 장벽수의 방 / 아침
장벽수,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문 열리고 한종일 들어온다.
한종일 : 윤복이놈,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장벽수 : (창 밖 공기 마시며) 참으로 상쾌한 아침이로군. (하늘 보는데)
화원(소리) : 돌아왔다!! 윤복이가 돌아왔어!!
장벽수, 도화서 마당쪽 보고,
S#104. 도화서 / 마당 / 아침
도화서 문 앞에 서 있는 홍도. 헉헉 숨을 몰아쉰다.
홍도, 향시계쪽 보면, 다 타서 툭! 떨어지는 향시계. 이제 세 개만 겨우 남아 있다.
그 향시계를 보는 윤복.
생도들, 모두 홍도와 윤복 보는 가운데, 홍도가 윤복을 업고 와서 내려놓고,
홍도 : (헉헉..) 할.. 수.. 있겠지?
윤복 : (끄덕이고)
생도들과 화원, 일제히 윤복을 보는데...
윤복, 자리에 있는 종이를 좍 펼친다. 하얀 백지...
김덕성 : 시간 안에 끝낼 수 있겠느냐? 만일 늦으면, 촌각도 기다려주지 않겠다.
홍도 : (윤복 보고) 아직 향이 세 개 남았다.
윤복, 홍도를 본다. 초롱초롱한 눈빛.
윤복, 붉은 안료를 툭! 풀어놓고 개기 시작한다.
붓을 빠르게 놀리며 손등에 발라 발색을 보는 윤복. 하얀 종이를 보면... 종이 위에 슥슥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람들.
심사위원들, 윤복의 그림을 보기 위해 하나 둘 일어서고..
윤복이 드디어 붓을 들고 종이 앞에 앉는다.
침을 꿀꺽 삼키는 사람들.
일필휘지 그려나가는 윤복. 있어야 할 자리에, 하나씩 들어서는 사람들.
생도들, 붓을 든 채 하나 둘 일어서서 윤복을 둘러싼다.
비어 있던 그네 앞에 자리잡은 아리따운 여인의 노란저고리가 칠해지자,
그림에 푹 빠진 윤복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돈다.
화폭 속에 자리잡기 시작하는 여인들 보자 원로들, ‘망종’이라며 수군대는데,
툭! 떨어지는 향시계. 이제 두 개 남았다..
윤복, 그 향시계 보고 붓질 더욱 서두르는데, 윤복의 붓 잡은 손을 들어올리는 발.
윤복, 보면... 장벽수다.
장벽수 : 네 이놈! (뒷덜미 잡으며) 지 형이 춘화를 그려 내쫓기더니, 동생놈은 여인을 떼거지로 그리다니!!
도화서를 능멸할 요량이냐!! 썩 일어나 나가거라!
윤복 : 그것이 아닙니다! 춘화가 아닙니다!
장벽수 : 그럼 무엇이냐!
윤복 : 이것은 웃고, 이야기하고 소리치는 인간입니다! 단옷날에만 잠시 볼 수 있는, 살아있는 여인의 모습일 뿐, 춘화가 아닙니다!
장벽수 : 그깟 말장난은 저자에 내쳐진 후에 하거라. (윤복 끌어내려 하면)
홍도 : (장벽수 가로막으며) 이는 주상전하께서 지켜보고 계시는 시험입니다.
별제께서 멈추시면, 그 아이는 시험을 치루지도 못하고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장벽수 : (홍도 보다가) 향시계 둘이다. 그 이후, 저 아이의 명운은 엄정한 심사에 따라야 하네. 알겠는가?
홍도 : (끄덕 하고, 윤복 보고는) 어서 화사를 마치거라!
윤복 : (끄덕! 하고 그림 그리고)
그 순간, 두 개 남았던 향 중 하나가 다 타들어가 꺾어지고, 마지막 향에 불이 옮겨진다.
생도들 모두 화사 마치고 윤복 옆에 모여 있고,
원로들, 화원들, 도화서 마당에 있는 사람들 모두 윤복을 둘러싸고 윤복의 붓질에 홀린 듯 보고 있는데..
윤복, 진지한 표정으로 붓 들면..
주변 소음 작아지며.. 마치 물 속에 있는 듯 멀리서 들리는 가운데...
붓을 들어 여인의 젖가슴 근처에 어른거리자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긴장이 이어지고...
윤복, 한 여인의 가슴에 점을 찍을 듯- 하다가 안 찍자,
원로가 저도 모르게 ‘아이고!’소리를 낸다. 그 쪽을 보고 눈을 흘기는 사람들.
드디어 윤복이 여인의 가슴에 붉은 점을 찍자,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마지막 향, 안타깝게 위태위태, 꺼질 듯 한 가운데.. 윤복, 갑자기 붓질을 멈춘다.
홍도 : 무엇이냐!! 어서 화사를 마치거라!!
윤복 : (미동도 않고 그림 들여다보면)
홍도 : (향시계 보고) 어서!!!
향시계, 당장이라도 꺼져 떨어질 듯 위태위태.. 한 가운데,
장벽수, 홍도 보고 미소짓고..
홍도, 입술 물며 차마 소리내지 못하고 ‘어서!!’ 입모양으로 말하며 윤복 보고...
신한평, 기도하듯 눈 감고 손가락 깍지 끼고 있는데..
윤복, 갑자기 ‘됐다!!’ 소리치며, 다른 붓을 들어 먹을 묻힌다.
홍도 : (작게) 서두르거라...
고봉 : 하이고, 미치겠네!!
술태 : (마치 자기가 그림 그리듯 붓 든 시늉 하며 조마조마 하고)
만보 : (배탈이 난 듯.. 아랫배 만지면서도 눈은 윤복 향해 있고.. 자리 뜨지 못해 죽을 맛이고)
윤복, 일필휘지로 바위 틈에 동자승 두 명을 그리고,
홍도 : 다 마쳤느냐!
윤복 : (붓 놓고 재빨리 세필 들며) 아직입니다!
홍도, 안타깝게 향시계 보면, 떨어지려고 재가 스스스- 떨어지고..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재가 천천히 떨어지고,
그 순간, 윤복, 세필로 동자승 둘의 눈을 찍으며...
윤복이 붓을 놓는 것과 동시에, 마지막 향시계 툭! 떨어지고, 관리, 붉은 깃발 올린다.
관리 : 시험 종료!!!
고봉,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장효원, 고봉을 노려본다.
생도들, 화원들 감탄하고,
여기저기 물감이 묻은 얼굴로 벌떡 일어나 홍도 보는 윤복.
윤복 : 되었습니다! 스승님!
홍도 : (저도 모르게 윤복 와락 안고) 잘 해 내었다!!
홍도, 윤복 안고 있다가, 주변 의식하며 떨어져서는,
홍도 : (윤복의 머리 툭 치며) 어지간히 애간장을 태우거라.
신한평, 윤복의 어깨 치며 웃고, 생도들, 윤복을 둘러싼 가운데...
홍도, 조금 물러서 있고, 화원들, 생도들의 그림을 걷어가는 광경 보이는데,
홍도 옆을 스쳐가는 장벽수.
장벽수 : 잘 마쳤군. 잘 해 내었네.
홍도 : (장벽수 보면) 감사합니다.
장벽수 : 허나, (미소 지으며) 여기는 도화서란 것을 잊지 말게. 그게 무슨 말인지는... 잘 알고 있겠지? (홍도 어깨 툭툭 치고 가면)
홍도, 불길한 얼굴로 멀어지는 장벽수 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해맑은 얼굴로 생도들에 둘러싸인 채 홍도 보다가, 뭔가 불길한 느낌 받아 굳는 윤복의 얼굴 되고.
슥- 미소짓고 멀어지는 장벽수 뒤로 홍도와 윤복의 긴장된 얼굴 보이는 위로..
- 4부 끝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