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방 15분 전에야 소식 접해" 北 억류생활 떠올리며 농담도
13일 큰빛교회 신자들이 북한에서 석방돼 2년6개월여 만에 캐나다로 돌아온
임현수 목사를 목말 태워 친교실을 돌고있다. 사진 정재호 기자 화보 보기
큰빛교회는 대축제의 장이었다.
북한에서 31개월 동안 억류됐다 풀려나 12일 귀국한 임현수(관련 기사 A2·3면) 목사가
13일 교회에서 신도들과 처음 만났다. 임 목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교회엔 박수소리와 환호가 넘쳤다.
임 목사를 태운 차는 13일 오전 11시15분경 미시사가 큰빛교회에 도착했다.
지난 10일 평양에서 출발해 12일 온주 트랜튼 공군기지에 내려 캐나다 땅을 다시 밟은 이후
가진 첫 공식 일정이었다. 그는 12일 도착하자마자
31개월 만에 다시 만난 부인 임금영씨를 끌어안았다.
밝은 표정으로 차에서 내린 임 목사는 노희송 담임목사와 교회 원로들의 환대를 받은 뒤
곧 수십 명의 국내외 취재진에게 둘러싸였다. 그는 취재진을 향해 “행복하다.
캐나다인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 본당은 임 목사의 귀환을 환영하는 인파로 가득했다.
1층은 물론, 2층 로비와 1층을 내려다볼 수 있는 2층 사무실도
임 목사를 보기 위한 신도들로 가득했다.
13일 오전 11시15분 큰빛교회 정문에 도착한 임 목사가 노희송 목사와 포옹하고 있다.
사진 정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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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임 목사가 교회문을 열고 들어서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로비를 가득 메운 신도들을 보고 깜짝 놀란 임 목사는 감격한 표정으로
두 손을 흔들며 환한 웃음으로 응답했다.
신도들은 비교적 건강한 모습의 임 목사를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임 목사는 애초 예배 후반부에 본당으로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교인과 함께 하고 싶다는 본인의 뜻에 따라 처음부터 예배에 참석했다.
임 목사는 예배 말미에 단상에 올라 북한에서 겪었던 일들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임 목사는 “외부 뉴스와는 철저히 단절돼 있었다.
내가 석방된다는 사실도 나오기 15분 전에야 알았다.
특사단이 온 것도 몰랐다”면서 “그들(북한 당국)은 원래 날 절대로
내보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모든 것이 갑자기 이뤄졌다”고 전했다.
그는 수용소 생활에 대해 “겨울엔 매서운 추위,
여름엔 뜨거운 태양볕 아래 하루에 8시간씩 노동을 했다.
첫 2개월 동안 몸무게가 90kg에서 67kg으로 줄었고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고 밝혔다.
임 목사는 힘들었던 시간을 떠올리는 자리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중간중간 농담을 섞어 교회 본당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노희송 담임목사는 예배 후 “기도가 응답했다.
교회는 이 순간을 너무나 기다려왔다”고 감격스럽게 말했다.
앞으로 교회 내에서 임 목사의 역할에 대해서 노 목사는
“아직 어떤 일을 하실지 정해지지 않았다.
목사님께서 홀로 독방에 계시는 지난 2년 반 동안 많은 것들을 구상하셨다고 했다.
많은 일들을 하고 싶어하신다”고만 밝혔다.
겨울에 땅 파느라 동상 걸려
북한서 24시간 감시 당한 임 목사
加 시민권자 감안 사형→종신형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외로움"
13일 큰빛교회 친교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대한 질문에 대해 리사 박(왼쪽) 대변인이
마이크를 붙잡고 농담으로 "대답을 못하시게 막아야겠다"고 말하자 박장대소하고 있는
임현수(가운데) 목사. 오른쪽은 임 목사 부인 임금영씨. 사진 정재호 기자
“종신 노동교화형을 선고 받고 땅을 파기 시작했는데 북한의 겨울이 너무 추웠다.
꽁꽁 얼어붙은 석탄 덩어리를 깨뜨리는 작업도 중노동이었다. 양말을 네 켤레나 신었다.
그래도 발이 시려서 양말 위에 비닐봉지로 감쌌는데 발가락 10개가 모두 동상에 걸렸다.”
큰빛교회 임현수 목사가 13일 주일 예배에서 강단에 올랐다. 노희송 공동 담임목사가 설교를 마친 뒤 단상에 선 임 목사는 북한에서의 고단했던 생활을 담담하게, 하지만 유머까지 섞어가며 털어놓았다.
임 목사는 “처음에는 하루에 구덩이 하나씩을 파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틀에 하나씩 파기로 했다. 구덩이 하나 파는데 꼬박 16시간이 걸렸다.
겨울에 얼어붙은 땅은 또 얼마나 단단한지 곡괭이 자루를 3개나 부러뜨리기도 했다”면서 “두 달 만에 90kg 나가던 몸무게가 67kg까지 빠졌다. 살이 갑자기 많이 빠지니까 숨쉬기 조차 힘들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두 달간 병원에 입원했었다”고 말했다.
또 “발은 시려 동상에 걸렸지만 쉬지 않고 땅을 파다 보니 상체에는 열이 났다. 윗옷을 벗고 일년 내내 일을 하면서 햇빛에 그을려 등은 아예 시커멓게 변했다”고 말했다.
임 목사를 향한 감시의 눈길은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단 1분의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던 것. 임 목사는 “365일, 24시간 두 명이 총을 차고 따라다녔다. 50명의 군인들이 2인 1개조로 계속 감시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힘든 것은 몸이 아픈 것이나 중노동이 아니라 외로움과 고독이었다.
임 목사는 “독방에서 2년 6개월 9일동안 2,757번이나 혼자 식사를 하는 등 너무나도 괴로운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성경도 주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었다”면서 “주일(일)에는 일을 시키지 않았는데 아침 7시에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면 3~4시간씩 불렀다. 저녁 8시경까지 혼자서 예배 드렸다. 무려 130번의 주일을 혼자서 예배했다”고 밝혔다.
그 고통의 시간을 이긴 것은 신앙의 힘이었다. 임 목사는 “긴긴 고통의 시간은 주님과 나만의 시간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처음 검사가 사형을 구형했고, 판사는 캐나다 시민권자라는 점을 감안해 종신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그들은 나를 보내주고 싶어하지 않았다. 적어도 10년은 붙잡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판결이 내려진 이후에는 오히려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들과 교회에서 보내준 성경을 받은 후에는 말씀을 외우는 훈련을 했다. 잘 되지는 않았다. 머리가 나빠서… 그러나 한 가지 방법은 돌(머리)에 새기는 것이었다. 같은 구절을 몇백번씩 외우기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임 목사는 “수도원처럼 조용한 곳에 살다 갑자기 시끄러운 세상에 나온 기분”이라며 20분 가까이 북한생활을 전했다. 조용히 듣던 임금영 사모가 '이제 그만하시라'고 말했고, 임 목사는 “세상에 나오니 바가지 긁는 사람도 만난다”고 농담을 던져 큰 박수를 받았다.
"北 다시 가겠냐고요?"
기자회견 임 목사 "기도할 것"
"귀국 아직 실감 안 나"
임 목사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신자를 안아주고 있다. 사진 정재호 기자 화보 보기
“북한이 날 원할지 몰라…기도할 것.”
다시 북한을 방문할 것인지에 대한 임현수 목사의 답이다.
임 목사는 13일 큰빛교회에서 예배가 끝난 뒤 친교실에서 기자단과 짧은 회견을 가졌다.
주류 방송·신문·라디오는 물론 일본과 한국에서도 특파원을 파견해 취재했다.
임 목사는 먼저 집에 돌아온 소감으로 “그저 너무 행복하다. 기적과 같은 일이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에서 처음에 사형선고를 받았었는데
만약 내가 캐나다인이 아니었다면 죽었을 것”이라며
“바울의 로마 시민권처럼 캐나다 시민권이 나를 살렸다.
캐나다인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13일 임 목사가 큰빛교회에 도착하자 신도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 정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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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다시 돌아갈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단의 질문에
그는 “북한이 날 (다시)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경험한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알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기자회견 후 임 목사는 친교실을 돌며 성도들과 일일이 인사했다.
일부 신도들은 임 목사를 목말 태워 강당을 돌기도 하는 등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베테랑 외과의사도 동행
첩보작전 같았던 임 목사 귀국길
정부, 공군 특별기 2대 투입 하와이 등 거쳐 트렌튼 안착
임현수 목사가 12일 오전 온주 트렌튼 공군기지에 착륙한 뒤 아내(임금영 사모)와 가장 먼저 포옹하고 있다. 임씨 뒤쪽은 아들 성진씨. 비행기에서 내리는 이는 대니얼 장 총리 특사. 사진 제공 임 목사 가족 화보 보기
임현수 목사의 석방과 귀국 과정은 한편의 첩보영화였다.
캐나다 정부가 임 목사 석방 교섭을 위해 대니얼 장 국가안보보좌관 등 특사단 6명을 파견한 것은 지난주 초. 특사단을 태운 공군 특별기 두 대가 지난 8일 일본 요코다 미군 기지에 도착했다. 캐나다 공군이 보유한 귀빈 수송용 CC-144 챌린저 4대 가운데 2대가 동시에 날아간 것이다.
한 대는 일본에 대기했고, 특사단이 탄 1대는 평양 순안공항으로 향했다. 캐나다 공군 특별기는 특사단을 평양에 내려준 뒤 보안 등을 이유로 곧바로 일본으로 되돌아갔다.
임 목사 석방을 둘러싼 캐나다 정부와 북한의 협상은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 된 것으로 전해졌지만
최근 급물살을 탔다. 북한이 캐나다에 외교관계 회복 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진척은 없었다.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10일 새벽 1시 임 목사 석방을 알렸다. 특사단이 평양에 체류한 지 만 이틀이 되지 않은 시점이며, 특사단 일행이 북한 영공을 벗어나 일본에 진입한 시점으로 보인다. 임 목사의 2년6개월여에 걸친 억류 생활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캐나다 정부는 임 목사의 안전한 귀환을 위해 비상 작전을 펼쳤다. 건강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특사단에는 28년 경력의 베테랑 외과의사가 수술에 필요한 각종 장비까지 챙겨 동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목사 귀국에 특별기 두 대가 동원된 것도 보안이나 기체 고장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13일 큰빛교회 친교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는 임 목사.
사진 정재호 기자 화보 보기
임 목사의 캐나다 귀환까지는 석방 이후에도 사흘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현지시각 10일 오전 9시30분께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행보는 철저한 베일에 가려졌다. 임 목사는 보안 등의 이유로 일본을 거쳐 괌의 미군 기지에서 1박을 한 뒤 마샬군도, 하와이, 밴쿠버를 거쳐 12일 오전 온타리오주 남부 트랜튼 공군기지에 안착했다.
임 목사는 “저의 석방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 평양공항에서 캐나다국기가 달린 비행기를 보는 순간 너무나 감격했다”면서 “특사단은 너무나 친절했고, 많은 배려를 베풀었다. 트뤼도 총리를 비롯해 캐나다 정부, 스웨덴 대사관 등에 감사의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
첫댓글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낌쫑은이가 왼일이지요? 미국이 무서워 양면작전을 펴는가?
임현수 목사님 무사 귀환을 환영하고
이를 중재한 카나다 정부 당국자에게 감사드려요.
대한민국 만세! 카나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