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영화를 볼 요량으로 어제 화정CGV를 갔더니 이 영화는 없어 헛걸음을 했다. 집으로 오면서 뭔가 오펜하이머와 어떤 인연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억을 더듬었더니, 그렇지, 예전에 오펜하이머에 관해 쓴 글이 있었고 그걸 어떻게 뒤적거리며 찾았더니 있었다.
2012년 교수신문 있을 적에 Ray Monk가 오펜하이머에 관해 쓴 <Inside the Centre; The Life of Oppenheimer>를 리뷰한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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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the Centre: The Life of J. Robert Oppenheimer> by Ray Monk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 1904~1967)는 인류가 지속하는 한 영원히 기억해야할 인물이다. 가공할 살상무기인 원자폭탄을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따라다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는 그래서 붙여진 닉네임이다. 이런 관계로 오펜하이머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며 논란 속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가 세상을 뜬지 반세기가 지났어도 그에 대한 평가는 계속되고 있고, 그를 다룬 책들도 계속 나오고 있다. 오펜하이머의 생애와 업적을 다루고 그에 평가를 가한 <Inside the Centre>도 그 연장선에 있는 책이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닉네임이 주는 이미지는 거칠고 딱딱하다. 그러나 오펜하이머의 생애는 그렇게 딱딱하고 거칠거나 단순하지 않다.
원자폭탄을 개발한 천재적인 이론 물리학자이지만, 그와 더불어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과 인간성, 그리고 정치·사회적인 소신과 판단이 뚜렷했고, 그로인해 말년을 비롯한 그의 생애가 다양하게 점철돼 있다. 유능한 물리학자로 순탄한 삶을 살던 오펜하이머는 1943년 로스앨러모스의 연구소장으로 원자폭탄 개발을 총지휘, 감독하면서 생의 전환기를 맡는다.
그는 ‘맨해튼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일에 매진해 성공을 거둔다. 이 과정에 그가 보인 열정과 야심, 그리고 괴팍한 충성심 등은 그뒤 또 다른 전환기의 인생과 대비되면서 묘한 대조를 이룬다. 오펜하이머는 1945년 7월 원자폭탄을 성공적으로 만들면서 인생 최대의 정점에 선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돼 2차대전을 끝내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지만, 그로인해 수많은 인명이 살상당한 괴로움과 공포감이 그의 숨겨진 또 다른 양심을 일깨우게 하는 전환점을 제공했다. 이때부터 그의 삶은 완전 딴판이다.
핵무기 의존도를 최소화하라는 주장을 펼쳤고 소련과의 냉전 상황에서 수소폭탄 제조계획에 반대했다. 급기야 정부로부터 원자력관련 기밀사항에 대한 접근을 금지당하는 한편으로 매카시 선풍에 휘말려 공산주의자, 반미주의자로 몰리며 한동안 고초를 겪는다.
저자인 레이 몽크는 오펜하이머의 이런 ‘통합되지않은 개성(unintegrated personality)’에 초점을 두면서 그의 생애를 조명하고 있다.
책 제목은 그래서 더 묘한 느낌을 준다. 독일에서 이주한 부유한 유대계 무역상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를 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풍족했던 유소년시대, 하버드와 케임브리지대를 거쳐 독일 괴팅겐대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修學시대, 그리고 UC버클리를 미국 양자역학물리학의 중심지로 만든 UC버클리 교수 시절을 거쳐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장을 역임하기까지 오펜하이머는 항상 제목 그대로 ‘중심의 내부’, 말하자면 ‘주류’에 속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가정생활은 불운했다.
알콜중독 부인과의 불행한 결혼생활도 그렇고 슬하의 자녀들도 문제가 많았다. 오펜하이머가 죽은 지 6년 후 그의 딸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생존해있는 그의 아들은 지금까지도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에 갖다 붙이지 않고 있다.
저자는 오펜하이머의 이런 말년의 불운한 처지와 생활을 언급하지 않고 그의 성공적인 업적과 생애만을 내세우려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책 제목도 그래서 그런 것 같다.
오펜하이머의 가정생활 등 불운한 가족사는 832 쪽이나 되는 이 책의 끝 부분에 겨우 두 쪽에 걸쳐 몇 문단으로만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저자인 레이 몽크는 사우스햄턴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전기 작가로, 분석철학의 대가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철학자 버트랜드 러셀의 전기를 썼다.
(英 조너선 케이프 刊, 양장본 832쪽, 23.25 파운드)
김영철 편집위원 darby4284@kyosu.net
(2012.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