贈妓(증기)
신흠(申欽:1566~1628)
본관은 평산. 자는 경숙(敬叔), 호는 상촌(象村)· 현옹(玄翁).
어려서부터 문장으로 이름이 높아 이정구(李廷龜)·장유(張維)·이식(李植)과 함께
‘월상계택(月象谿澤)’이라 불리는 조선중기 한문4대가의 한 사람이다.
158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에는 삼도순변사 신립(申砬)을 따라 종군하였다.
1627년 좌의정이 되었고,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소현세자를 받들고 분조와 동행했다.
이후에 영의정에 올랐다.
1628년 7월 29일 병에 걸려서 한성부 집에서 죽었다.
문집에 『상촌집』이 있다.
얼마나 그리우면 저 구름 끝에도
相思在雲端 상사재운단
꿈속에 넋이라도 멀리 있는 당신에게 다가가리
魂夢遙能越 혼몽요능월
서풍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落葉下西風 낙엽하서풍
빈 뜨락에 서서 초승달만 바라보네
空庭望新月 공정망월신
*
얼마나 정을 둔 연인(戀人)이었으면
사대부 체면을 모두 벗어던지고
이렇게 애절한 연시를 써서 보냈을까.
더구다나 그 대상이 기생(妓生)이라면
실록 파격이 아닐 수 없다.
당대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조선의 4대 문장가 신흠이 아니던가
구구절절 사무친 마음
구름 끝에 물드는 노을을 보다가도 그대 생각
꿈속에 넋이라도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은 마음
나뭇잎 지는 소리에도 그대가 오는 줄, 깜짝깜짝 놀래는
빈 뜰에서 달을 보아도
그대의 얼굴인양 잠 못 드는......
이렇게 그립고 사무친 사랑이었으면
서로 애틋하게 알토란 같은 자식 낳고 살 수는 없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그 시대의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헤어졌다 말인가!
다음 생에서 만날 날이 있으면
꼭,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지금도
그 마음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