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LCD공장의 설비엔지니어였던 고(故) 김주현 씨가 회사기숙사에서 몸을 던진 지 44일이 지났다. 유가족들은 "이대로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며 삼성 측의 책임 있는 태도를 요구하고 있지만, 삼성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김 씨의 죽음이 세상에서 잊혀져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는 시민사회의 조문으로 이어졌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23일 김 씨를 조문하고 앞으로 삼성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논의할 계획이다.
하지만 유가족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소수다. 김 씨의 누나인 김정 씨는 "유가족이 삼성의 사과를 받으려는 것이 마치 무리한 요구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상처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김 씨의 죽음을 다룬 기사에 달린 '악플'이 유가족의 가슴에 생채기를 냈다.
평소에 활동적이었던 동생을, 자식을 하루아침에 보낸 유가족의 심정은 어떨까. <프레시안>은 유가족인 김정 씨가 말하는 '동생에 대한 기억'과 '김주현 씨의 죽음을 둘러싼 오해'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제 동생과 저는 세 살 차이로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잘 놀았고 취미나 좋아하는 것도 비슷해서 거의 늘 붙어 다녔습니다. 동생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흠씬 패주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동생과 저의 관계는 다른 남매보다 각별했습니다. 저는 동생을 제 아들같이 챙겨주고 지켜주려고 했습니다.
동생은 2010년 1월 4일에 삼성전자에 입사했습니다. 그날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교통이 완전히 마비되어 제 동생은 터미널까지 트렁크를 끌고 흰 눈을 맞으며 걸어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동생은 사회초년생으로써 희망찬 각오와 다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힘들어하는 표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입사 후 한 달간 연수를 받고 왔을 때 동생은 여기에만 만족하지 않고 일하면서 학점을 더 따서 편입도 하고 삼성전자에서 인정받는 훌륭한 설비엔지니어가 되겠다며 굳은 결의에 차 있었습니다. 동생은 대견스럽게 처음으로 스스로적금까지 들기도 했습니다.
▲ 지난 11일 충남 아산 탕정면 삼성전자 가숙사 13층에서 뛰어내린 고(故) 김주현(25) 씨의 영정 ⓒ프레시안(김봉규)
"훌륭한 설비엔지니어 되겠다던 동생, 주검으로 돌아와"
하지만 입사 후 몇 달이 지나면서 동생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없었습니다. 주말마다 올라올 거로 생각했던 동생은 거의 오지 못했고, 오더라도 잠만 자기 바빴습니다. 운동도 좋아하고 활동적이었던 동생은 "일이 너무 많아서 잠이 부족하다"며 "나가는 것도 귀찮고 누구 만나서 얘기하고 놀 힘도 없다"라는 말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여름이 돼서 동생을 봤는데 몸과 다리와 손에 허물이 벗겨지고 피부가 매우 안 좋아져서 집에 왔습니다. 그리곤 "도저히 안 되겠어. 방진복을 입으니깐 피부가 이렇게 변해"라며 부서를 바꿔달라고 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9월이 되어 동생이 엄마한테 전화해서 "부서가 오피스로 바뀌었어. 지옥에서 천국을 온 기분이야. 이젠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라인 업무를 할 때와 달리 주말이나 휴일에 자주 올라오고 얼굴도 밝아진 동생의 모습에 너무 기뻤습니다.
오피스 업무 한 달이 되어 가는데 동생이 맡은 일이 갑자기 자재관리 업무로 바뀌었습니다. 동생은 사수(바로 윗 상사)가 일을 잘 안 알려준다면서 "일을 입으로 배우냐. 몸으로 배우지", "태어날 때부터 이 일을 했느냐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동생을 대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런 동생의 사수를 아주 죽도록 패주고 싶었지만 동생은 "맞는 소리지 뭐. 근데…"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동생은 속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나 봅니다. 하루는 전화기를 꺼놓고 근무를 안 나갔고, 회사에 가기 싫다고 호소했습니다. 동생한테 그렇게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고 했는데, 동생은 "일 년만 더 참아 볼까"라며 무척 고민했습니다.
저와 저희 가족은 이런 동생의 모습에 병원에 데려가 우울증으로 병가를 받았고, 결국 동생은 2개월간 집에서 쉬게 되었습니다(병원에서는 5개월을 쉬어야 한다고 했지만 회사가 병가를 두 달만 허락했습니다). 동생은 쉬면서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친구들과도 자주 만나면서 삼성에 들어가기 전의 모습으로 호전되었습니다.
하지만 복귀하는 날이 다가오자 동생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서 진단서를 받아 오라고 했기 때문에, 지난 1월 6일 우울증치료를 받았던 병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주현이는 회사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갑자기 허겁지겁 "다 나았다는 진단서를 끊어 달라"고 요구했고 의사는 "다 낫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는 끊어 줄 수 없다"며 마지못해 "호전 중이나 추후 2~3개월 약물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끊어줬습니다.
회사에 복귀하기 전날인 1월 10일, 저는 회사에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고 했지만 동생은 이미 늦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나머지는 언론에 알려진 대로입니다. 삼성전자 장례 관계자라는 사람이 저를 끌고 사무실에 가서 자기 마음대로 장지와 화장터를 예약하고는 3일장을 종용했습니다. 아버지를 모텔로 끌고 가서 죽은 동생의 몸값을 운운했습니다.
ⓒ프레시안(성현석)
삼성 천안 공장 생긴 지 10년, 감독에 손 놓은 노동청
조문하러 왔다하는 삼성전자 직원은 조문은커녕 빈소에도 들르지 않고 식사를 하며 웃고 떠들며 술 마시고….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가족을 자극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리곤 삼성전자는 같은 회사직원이 죽었고, 유가족이 42일 넘게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고 있는데도 무책임하게 어디 언제까지 하나 보자라는 식으로 손 놓고 있습니다.
삼성뿐만이 아니라 경찰과 노동청도 초지일관 손 놓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구나"라는 생각이 너무나 강하게 들었습니다.
우선 형사는 장례 이튿날 입관에 필요한 서류인 사체검안서를 유가족이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손수 장례식장까지 들고 가져다줍니다. 그리곤 형사는 유가족이 진실규명을 위한 수사를 요구하자 "자신이 얼마나 바쁜지 아느냐"고 말하더군요. 또한 유가족이 직접 CCTV를 경찰서에서 보고 있는데 새로 온 팀장이 "아니 그 사건 아직도 안 끝났어? 아직도 합의 안 본 거야? 뭘 그렇게 오래 끌어? 자살한 걸로…" 이러고 있습니다.
노동청도 삼성과 유가족 양쪽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노동청에 삼성전자에 대한 특별감독을 요청한 날, 삼성전자 관계자가 우리와 면담한 감독관과 만난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노동지청장 면담이 있던 날 감독관들에게 사실을 확인하니 해당 감독관은 얼굴이 빨개져서는 머뭇거리며 "잘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 아니 만나긴 했다"라며 횡설수설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삼성전자 천안공장이 생긴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노동청은 한 번도 삼성을 관리감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직접 겪어보니 최진실이 왜 악플에 힘들어했는지 알겠다"
고 김주현의 죽음에 대해 삼성전자가 무조건 책임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직원이 그 회사 기숙사에서 복직을 앞두고 투신을 했습니다. 왜 자살을 했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회사는 모든 것을 돈으로 종용하며 유가족을 기만했습니다.
삼성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저희 가족은 아직까지 편안하게 눕지도 못하고 있는 차디찬 안치소에 주현이를 두고 눈물로써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동생을 보기 위해 매일 어머니와 안치실에 가는데 이제는 동생의 얼굴이 점점 변하고 있습니다. 설날이 되기 전까진 동생은 영정 사진 속 모습처럼 잠자고 있는 얼굴이었는데, 이제는 동생의 얼굴이 점점 말라가고, 검게 변하는 모습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 고 김주현 씨의 유가족이 삼성 본관에서 일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삼성일반노조
그런데도 "자살한 개인이 제일 문제고 유가족도 문제다", "회사가 그렇게 가기 싫으면 때려치우지 바보같이 왜 죽느냐", "돈 때문에 장례를 치르지 않는다"는 식으로 고인이 된 동생을 비난하는 악플이 달리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 댓글을 다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뱉은 말들을 직접 겪어보니 故 최진실 씨가 왜 악플에 힘들어했는지 알게 됐습니다.
개인의 마음이 심약해서 자살한다고들 하지만 동생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의 원인이 됐던 우울증은 삼성에 다니고 나서 생겼습니다. 장시간 업무 스트레스와 사수의 고압적인 태도로 인한 우울증에 회사는 책임이 없을까요? 또한 라인에서 근무할 수 없는 상태임을 알아서 업무를 바꿔줬다면 사원이 업무에 잘 적응하게끔 해야 합니다. 하지만 회사는 그런 근로조건을 만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회사 때문에 생긴 병이 다 낫지 않았는데도, 복직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의사의 처방이 있었는데도 회사는 강제로 복귀를 결정했습니다. 게다가 방재 요원은 기숙사 관리뿐 아니라 사원들의 안전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사원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부서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회사는 제대로 안전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만약 동생이 하루에 12~16시간씩 일하지만 않았다면, 회사에서 고압적인 태도로 동생을 대하지 않았다면, 우울증에 걸렸을 때 완치될 때까지 조금만 더 복귀를 미루고 기다려줬다면, 자살을 결심한 날 제대로 안전 조치를 취했다면 막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삼성은 이 모든 조처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직접 겪어봐야 그 심정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을 모두가 겪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일은 이 세상에서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이 뜻대로 됩니까? 저도 이런 일을 겪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하지만 진실규명을 하지 않고,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가 또 겪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희 유가족은 삼성전자가 잘못한 부분을 사과하고 여기에 대해 책임지라는 겁니다. 42일이 넘게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고 동생을 보내지도 못하는 유가족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에게 한마디만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이런 태도로 진실이 숨겨지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힘과 돈으로 힘없는 사람을 탄압하게 되는 겁니다. 진실을 바르게 바라봐야 이런 일이 더 이상은 생기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