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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일 수성자치대학에서 2011대구육상 선수권대회조직위 문동후 부위원장님께서 아름다운도전이란 제목으로 8.27-9.4까지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대한 강의를 하셨는데 스포츠에 대한 강의가 너무 재미있어서 제가 강의 중 메모한 내용을 대강 적어봅니다 본대회가 세계3대 스포츠 대회의 하나이고 대구를 홍보 할수 있는 큰 대회임에도 시민들의 관심이 다소 떨어진다는 기사가 있어 홍보차원에서 서툰 솜씨로 한번 올려 봅니다 (강의가 스라이드나 유인물이 없이 말씀만으로 하신 강의를 대충 메모한 것이라 숫자나 인명 등에 다소 오류가 있드라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카페지기께서 일정 기간 후 임의 삭제해도 좋습니다-) 바다꾼
아름다운 도전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강사: 문동후(62세) 경북 김천, 대구 세계육상 선수권대회 조직위 부위원장 경력: 행시로 공무원시작,88올림픽 조직위 과장 ,총무처 조직국장, 총무처소청 심사 위원장, 2002월드컵 한국 측 사무총장
강의 내용
-1965년 고교시절 대한 적십자사 학생대표(서울 남녀2명 지방남 여2명)로 일본 견학 -지금부터 45년 전 한국 김포공항은 가는 길부터 시골2차선 농노 길 공항은 초라 했는데 -일본 하내다 공항의 움직이는 계단(엘레스카이트)을 보고 너무 놀랐다 호텔에 좌변기를 보고 너무 신기했다 -1964년에 동경 올림픽을 치른 요요기 경기장의 잔디구장, 포장 된 트랙, 개인별 의자로 되어 있는 관중석, 전광판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그 당시 우리 경기장은 계단식 둑에 가마니를 깔고 관람하고 스코어 판은 수동으로 스코어를 붙이는 실정 이였는데 우리는 언제 그런 경기장 한번 가저 보나 하는 염원도 생겼다 -당시 동경 주민들은 올림픽을 잘 치르기 위해 전 국민들이 물통 과 걸레를 들고 나와 아스팔트 도로를 닦았다고 한다 -당시 미국 유학를 하고 있던 중 1981년 88하계 올림픽을 서울 에서 한다는 뉴스를 듣고 깜짝 놀랐다 과연 우리가 올림픽을 잘 치를수 있을까 하는 생각 에서 -그런데 우려했든 올림픽 결과는 대 성공 이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스포츠 기자 대이비트 밀러가 평한 서울 올림픽은 -독일의 조직력과 미국의 상업화 그 위에 동양의 예절이 결합된 최고의 올림픽 이라고 평했다 -근세 올림픽의 교과서가 된 1972년 독일 뭔헨 올림픽의 조직력, 올림픽 사상 국가지원 없이 개최도시 자체제정으로 치러 엄 청난 흑자를 낸 1984년 LA올림픽(조직위원장 피토 유베르) 의 상업성은 대단한 성과였는데 그보다 더좋은 평가를 받았다 -세계 3대 스포츠 대회를 첫째 하계올림픽대회 둘째 월드컵 대회 셋째 세계육상 선수권 대회인대 그 육상대회를 대구에서 하게 된 것은 엄청난 대구의 영광이다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는 1981년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최초 개최한 후 이번 대구대회가 13회 대회이다 지난번 개최국 경쟁 에서 모스코바와 경쟁에서 이겼다 -2013년에는 모스코바 2015년에는 배이징에서 개최 되는등 이름 있는 도시에서 열리는 아주 비중있는 대회이다 -국가와 도시의 인지도를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홍보 이벤트는 세계적인 스포츠 만 한게 없다 -통상 국가인지도가 1% 높아짐에 따라 1조원의 경재효과가 있 다고 한다 -2002월드컵으로 우리나라의 인지도가 10% 상승했다고 한다 인 지도로 인한 경재효과만 10조이다 -당시 월드컵 응원은 전 세계인에게 깊은 인식을 주었다 -88서울 올림픽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이 밸러드룸 경기장 조정경기장 등의 각종 시설이 생겼고 현금수입만 3350억 그 외 기업이 익까지 계산하면 엄청나다 -미국 유명방송국 인기프로그램인 퀴즈프로에 나온 문제가 대구, 부산이라는 도시가 있는 나라는 어느 나라인가 하는 문제인대 퀴즈에 달인이라는 출연자 모두가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 -이번세계육상 선수권 대회를 통해 대구를 세계에 알리자 -이번 2011세게 육상 선수권 대회를 기화로 실내육상을 할수 있는 육상진흥센타가 대구에 유치되고(현재 주경기장 옆에 신축중) 이건물이 완공되면 세계 실내 육상 선수권 대회등도 가능하다 -육상은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다 육상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우리 나라 스포츠는 한계가 있다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보다 참가국도 적고 시청관중도 적은 평창 동게올림픽을 유치할여고 첫번째 도전에350억 두번째 도전에 350억 금년에 350 억의 공식적인 유치 비용을 쓰고 있고 각기업체별로 홍보하고 있는 비용을 포함하면 엄청난 유치비용이 투입 되는데 그기 비하면 -이번 대구육상선수권대회는 엄청난 비중 있는 대회이다 -우리나라의 올림픽 최초 금메달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 정모 선수가 레스링에서 금메달을 딴게 처음이다 당시 전국민이 라디오로 이 소식을 듣고 온 나라가 축제의 분위기였다 -그 후 88서울 올림픽 금메달 12개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10위권 이내를 유지하고 있다 -88올림픽은 1981년에 선정 되엿는대 당시 전 두환 대통령이 올림픽 그거 전 세계 이목을 받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당시 유일한 IOC위원 이였든 김 택수 회장에게 한번 유치해 보라는 하명을 하고 정주영 회장이 재정 지원 담당을 하여 추진 하였으나 아무도 서울이 가 능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다 -그 당시 세계 스포츠계는 1976년 케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이 엄 청난 적자로 문제가 생겨(현재도 부체를 갚고 있는중임)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엄두를 낼 형편이 아니였고 -경쟁국 도시인 일본 나고야로 그의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 그저 우리는 다만 창피 당하지 않게 당신나라 표라도 도와 달라고 했고 개도국이나 아프리카 등 후진국에는 올림픽은 선진국만의 잔치인가 우리 같은 나라도 치를수 있다는 본때를 보여주자는 등 다만 몇 표라도 얻어려고 개별 설득으로 나선결과 -개표결과는 세계가 깜짝 놀라는 이변이 발생 52대 29라는 스코어로 서울이 결정 되여 온 나라가 환희와 축제의 분위기였다 -올림픽 결과도 성공적 이였다 특히 한국 국민들의 외국인 대한 친절은 전 세계가 감동했다 -당시 유명한 스포츠 기자가 출입증 페스를 숙소에 두고 가저 오지 못했다 중요경기 시간이 임박하여 부득이 행사 사무실에 사정을 하니 그 당시 그렇게 발달하지도 않은 컴푸터 조회로 신원을 확인하여 임시패스를 발급 받아 출입을 했다 외국 같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 기자가 훗날 한국 올림픽를 가장 선공 적인 올림픽이라는 평가기사를 실었다 -올림픽의 양궁 비화 우리나라가 가장 잘하는 종목이 양궁 이였는데 당시 미국에서 세계스포츠 관계자들이 모여 88올림픽 종목 선정 작업을 하는데 당시 문동후 과장이 담당 국장님과 같이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 는대 수영에 50m코스를 신설하자는 안이 나왔는데 우리는 수영에 불모지나 다름없어 반대을 해야 되는데 국장이 외국어를 잘 이해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문과장이 대신 일어나 선수가 늘어나 면 수용 문제 수영의 터치판 시설문제를 들어 끝가지 반대를 하고 귀국 하였드니 제안자가 전화로 또 사정을 하는 것을 그럼 수영 50m를 찬성하면 우리에게 무었을 주겠는가 하니 한국이 요구하는 종목 한 두개를 추가해 주겠다 하여 당시 양궁 남녀 개인전 두 종목 밖에 업는 것을 남녀단체전 두 종목을 추가하여 서울 대회에서 양궁 금메달 4개를 모두 삭슬이 했다 -지금 우리는 육상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아니다 하면 다된다 -수영에서도 금메달이 나왔는데 육상은 뭐 때문에 않되나 -육상해서 밥벌이가 않되니 모두 기피해서 그렇다 박세리도 이승엽도 본래는 육상 선수다 -그래도 올림픽의 최고 인기 종목은 육상이다 같은 금메달이라도 6-7만명이 관람하는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받는 메달은 1-2백 명 모인 경기장에서 받는 메달과 격이 다르다 -대구의 주경기장 관중석은 67.000석이다 경기장 자체가 한번은 볼만하다 음향시설은 40억을 들여 HD로(실제 값어치는 월신 고 가이나 가격 절감으로 설치) 확 바꿔 음악이 흐르는 경기장으 로 변화하였으며 전광판이 20m*10m 대형 전광판이며 이것이 3개나 설치 되였고 세계 최초로 몬도트랙(프른색) 시설 등 경기장 자체가 구경거리이다 -그기에 세계적인 선수인 스프린트의 제왕 유세인 볼트,미녀새 엘레나 이신바 에바, 장거리의 신 하일래 개버르셀리시에 등을 직접 볼수 있는 기회 우리의 유망주 단거리 김국영,허들 이정준, 미녀새 임은지 최윤희,투창 박재명,마라톤 지영준,멀리뛰기 김덕 원 육상꿈나무 하선애 등을 직접 볼수 있다 -특히 어린이에게 꿈을 심어주고 안목을 넓히는 좋은 기회이다 -훗날 손자 손녀로 부터 그때 대구에 살면서도 우리에게 그런 경기 관람을 왜 보여 주지 않았습니까 하는 원망 듣지 말고 이번기회에 꼭 보여 주자 -런던 올림픽 당시 제일 비산 좌석은 4-5백만원 ,일반경기 육상 결승이 140만 원이나 이번 대구 대회는 프리미엄석 10만원내 외 일반석 4만원에 어린이 30%가 활인되고 오후 선선한 시간에 경기를 하니 꼭 한번 보여주자 -참고로 1936년에 건설한 베르린 경기장은 76.000명 수용하는 규 모이나 이는 히틀러가 정치적 야망으로 만든 것이고 우리는 순수한 스포츠 정신에 입각하여 건설한 것이다 (최초 당시 대구 문희갑 시장은 8만명을 수용하는 경기장을 만 들려 했어 나 만석하기가 어려우니 주리자고 하여 67.000석으 로 건설 하였다 평상시 축구경기에 2-3백명이 고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