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보다 경력이 우선? 인맥이 우선?번역사 자격증 문제점
디자인 벤처 기업에서 3D 동영상 관련 번역을 하고 있는 김재일(가명·29)씨는 자격증을 따면 프리랜서가 보장되고 번역 일거리도 주어진다고 해 코리아 헤럴드에서 주관하는 S-ETAT 영한저널분야 번역 자격증을 땄다. 그러나 번역물을 주는 건 한 두 번. 그 이후에는 연락조차 없었다.
올 해 2월 말 「한국문학번역원」이 생기면서 번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다. 또한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쉽게 할 수 있는 고수익의 아르바이트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과 관련해 국가공인 자격증조차 아직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번역사 자격증 시험은 사설 기관에서 주관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것만 해도 11개가 넘지만 정작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는 곳은 코리아 헤럴드와 한국번역사협회 두 곳뿐이다.
인맥이 없으면 번역도 NO ?
현실이 이렇다 보니 각 기업, 출판사, 학교등 번역업무가 필요한 곳에서는 자격증이 있는 사람보다는 학교 후배, 친구들 중 외국에 갔다 온 사람이나 유명한 교수등 인맥을 중심으로 번역물을 맡기고 있다. 7년째 프리랜서로 번역일을 하고 있는 박소진(번역 프리랜서·27)씨는 자격증이 없지만 한번도 자격증의 필요성을 느껴본 적이 없다.
"자격증 자체가 믿을 수 없는 건데 누가 일을 맡기겠어요. 자격증이 없지만 필요성조차 느끼고 있지 않아요." 그녀는 돈 벌기에 급급한 번역회사들의 자격증보다는 번역물로 인정을 받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맥이 없는 경우는 번역일을 시작조차 하기 힘들다. 김성희(가명·23)씨는 자격증을 따면 번역 프리랜서로 자리잡기가 쉬울 거 같아 학원에 등록해 한국번역사협회에서 주관하는 자격증을 땄다. "학원에서 번역물을 보장한다기에 자격증까지 땄는데 연락도 없어요." 김씨와 같은 경우는 학원을 믿고 등록했다가 흔히 발생하는 일이다.
테스트 받으면 나도 이젠 번역사?
이렇게 자격증이 공신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기에 이곳 저곳에서 번역사가 되도록 해 준다는 광고가 많이 등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일간지에 난 광고. 「번역, 고졸이상이면 누구나 가능」,「A4 한장 번역에 1만5천원에서 3만원」이라고 난 이 광고들은 무료로 레벨 테스트까지 해주며 테스트 후 30만원이상의 교재비를 요구하며 번역을 시켜준다고 한다.
그러나 박소진(번역 프리랜서·27)씨는 그러한 글은 "모두 사기성 글"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번역이 체계가 잡히지 않아 직업에 대한 접근이 어렵다"며 번역사가 되려고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이용한 광고라고 비판한다.
실제로 양진숙(가명·23)씨는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여러군데 테스트를 해 봤는데 각각 결과가 달랐다"며 기준자체가 없는 것 같다고 허탈해 했다. 양씨가 본 테스트는 광고번역에서부터 짤막한 영화대사 번역등 다양했다.
이와 같이 신문광고 뿐만 아니라 학원에서도 자격증만 따면 번역일을 준다는 말로 학생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김재일씨의 예처럼 실제 번역일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름뿐인 번역사 자격증
국내 번역시장의 규모는 약 1천억원 정도이다. 번역학원들은 번역 일감이 많이 들어온다고 광고하지만 실제로 기업이나 대학교등의 기관에서 번역을 맡기는 곳은 번역 전문회사이다. 특히 기업에서는 전문분야의 번역을 많이 하기 때문에 전문 번역회사를 찾는다. 하지만 이들 번역전문회사에서도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번역을 맡기는 것이 아니다.
자체내에서 자격심사시험을 거쳐 뽑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번역일을 하던 사람을 쓰거나 외국에서 살다온 아는 사람에게 맡기는 경우도 많다. 또한 번역 전문회사는 건축, 의료, 예술 등 전문 분야에 대한 번역이 많기 때문에 각 전공출신 중에서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을 뽑는 경우도 다반사다.
전문성이 있어야 진정한 번역 가능
번역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번역에도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현재 번역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번역을 아르바이트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번역은 단순히 영문독해가 아니라 감각있는 문장 표현력을 요구합니다. 영어만 잘 해서 되는게 아니죠." 강승주(28)씨는 번역을 단순한 해석으로만 느끼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번역업무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Daum의 '번역사 시험 같이 공부 하죠...!!(http://cafe.daum.net/etran2/)'의 한 회원은 "솔직히 번역사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그 시간에 국어공부를 한 자 더 하라고 말하고 싶다"며 자격증 하나로 번역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전문성있는 번역사의 양성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절실한 문제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생겼지만 국가공인의 번역사 양성이 필요한 건 문학부분만이 아니다. 강재훈(25·대학교 번역업무 담당) 씨는 "수많은 번역서들이 요점에서 빗나가 있기에 많은 대학생들이 전공서적은 원서로 보는 것이 현실"이라며 제대로 된 번역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사설기관에 모든 걸 맡기고 방관하기 보다는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번역사 양성에 힘써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우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