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풍자 에세이】
개를 사랑하는 견주(犬主)들에게 드리는 글
― ‘개똥’에 관한 철학적 정보보고서 ―
윤승원 수필가, 공동체 윤리 연구가
“아니 왜들 그런대요? 정말 양심 없는 사람들이에요.”
이웃집 구순 할머니가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오늘도 또 싸놓고 갔어요. 화단에 파리가 모여드는 것 좀 봐요.”
할머니는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내게 하소연하였다.
▲ 어느 비 양심 견주가 매일 아침 개를 데리고 나와 남의 집 화단에 슬그머니 <한 무더기의 택배>를 배송하고 가는 <공동체 윤리 결여> 현장(그림=AI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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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라는 속담은 수정돼야 한다. 꼭 필요할 때는 보이지 않는 것을 이르는 말이지만, 현실에 맞지 않는 속담이다.
“어딜 가나 개 천국에서 개똥도 넘쳐난다.”라고 속담을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 출근길 개똥을 밟아 낭패를 본 어느 시민은 구두를 갈아 신으려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그림=AI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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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골목마다 ‘개똥’ 때문에 주민들이 몹시 화가 나 있다. 출근길 개똥을 밟아 낭패를 본 어느 주민은 구두를 갈아 신으러 집에 다시 들어갔다. 어느 주민은 가로수에 이런 팻말을 부착했다.
“<경고> ‘양심’에 호소합니다. 주변 개똥 제발 치우세요.” 오죽 화가 났으면 경고문까지 부착해 놓았을까. ‘양심’에 호소하는 주민의 화난 얼굴이 읽힌다.
▲ 화가 난 어느 시민이 가로수에 부착한 <비양심 고발> 경고문(사진=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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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은 개의 생리 현상으로 분류되지만,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접근하면 곧바로 철학적 사유의 무대에 등장한다.
이 작은 덩어리 속에는 ‘주인 의식의 부재’와 ‘공동체 윤리의 결핍’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문제까지 함께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원 벤치 옆에서 발견하는 그것은 단순한 동물의 배설물이 아니라 인간 문명의 민낯을 드러내는 비양심의 현장이다. 개똥은 인류학이나 철학의 주요 연구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의 이웃 할머니는 매일 아침 화단에 배달되는 신선한 표본과 마주하며, 이 주제를 학문적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연구 동기는 단순하다. 고약한 악취와 파리 떼 때문이다.
▲ 남의 집 화단이나 노상에 무단 배송되는 비양심 견주 발신 명의의 고약한 배설물, 수신자들은 <공동체 윤리>를 강조하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 현장.(그림=AI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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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연구의 의의는 단순하지 않다. 개똥은 무구한 동물과 무책임한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도덕적 간극을 고발하는 가장 확실한 거울이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은 일찍이 개똥을 속담에 올려놓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였으니, 삶의 고단함조차 긍정으로 승화한 지혜라 할 만하다.
개는 무죄다. 배설은 본능이고, 생리적 필연이다. 죄가 있다면 끈을 잡고 서 있는 몰염치 인간에게 있다. 그는 개를 ‘가족’이라 부르며 ‘사랑한다’지만, 사랑의 뒤처리는 남의 화단에 맡긴다.
도심 인도에서 무심코 밟히는 이것은 가히 ‘폭탄’이다. 이것이야말로 ‘잘못된 개 사랑’의 증표다. 개는 충직한 본능의 철학자요, 인간은 무책임의 상습범일 뿐이다.
매일 새벽, 개방된 화단에는 ‘개똥 택배’가 도착한다. 송장 번호는 없지만, 내용물은 정확하다. 개똥은 비료가 되기는커녕 파리 학회를 소집하고, 악취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 개는 무죄, 비양심 견주가 유죄(그림=AI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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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찌꺼기를 흙에 섞어 퇴비화하면 거름이 되지만, 개똥은 오히려 파리를 길러내는 온상이다. 이쯤 되면 개똥은 작은 생태계의 비선출 권력이라 불러야 옳을 것이다.
철학자 칸트는 “책임 없는 자유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무책임한 견주에게 자유란 곧 화단과 거리에 무단으로 남겨진 개똥이다. 개는 자연의 섭리에 충실히 응답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책임의 시험에서 낙제한다.
▲ 어느 공원 주변에 붙어 있는 경고 현수막(사진=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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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은 단순한 배설물이 아니라, 문명과 야성, 자유와 책임이 교차하는 철학적 현장이 된다. 개똥의 사회학적, 철학적, 문학적 분석을 종합하면, 남는 결론은 단 하나다.
“개똥은 개의 것이나, 책임은 인간의 것이다.” 견주가 ‘개똥’을 치우지 않는 순간, 그것은 ‘인간의 똥’으로 전환된다. 즉, 주인의 양심이 사라진 자리에 놓인 배설물은 인간성의 결핍을 증언하는 유물이다.
따라서 우리는 개똥을 단순한 오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벌금이나 과태료 처분은 과정이 번거롭다. 개똥은 윤리학 교과서이자, 철학 강의실이며, 동시에 문학적 풍자의 주제로 삼아야 한다. 가히 개똥은 현대 문명 비평의 출발점이다.
▲ 반려견 배변 수거를 강조하는 공공 기관의 현수막(사진=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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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금 전 국민을 상대로 정보보고서를 쓰고 있다. 보고서에서 이렇게 선언하고 싶다.
“분별력 없는 일부 견주(犬主)의 개똥 방치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철학적 범죄다.” 이제라도 개똥 퇴치를 위한 ‘전 국민 철학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일부 잘못된 개 사랑의 비양심 견주들이 대오각성하는 그날이 오면, 인류는 비로소 발밑을 보며 안심하고 걸을 수 있고, 개똥은 ‘철학적 정보보고서’에 담길만한 가치가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온갖 세상 풍파 다 겪으신 이웃 구순 할머니와 나는 날마다 개똥에 관한 연구 재료를 공급받으며, 화를 웃음으로 바꾸는 법을 배운다. 개똥은 고약하되 동시에 유머 수필의 소재가 된다.
이제 나는 새로운 속담을 제안하고 싶다.
“개똥도 웃음에 쓰면 유익하다.”
“개똥을 보고 화내지 마라. 철학적 유머로 승화하면 약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화단과 골목에서 길어 올린 인류 공영의 정보보고서요, 해학적으로 접근한 ‘개똥철학’의 결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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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평과 작품해설
윤승원 수필가의 풍자 에세이 《개를 사랑하는 견주들에게 드리는 글 ― ‘개똥’에 관한 철학적 정보보고서》는 일상의 불쾌한 사건을 단순한 하소연으로 그치지 않고, 사회적 성찰과 웃음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창작 의도와 작품의 문학적·사회 교육적 의의를 감상평과 작품 해설의 두 갈래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창작 의도의 사회·교육적 확장 의미
□ 공동체 윤리의 환기
- 개똥 문제는 단순히 미관상의 불쾌함이나 개인의 불운으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책임 없는 자유’라는 칸트의 말을 끌어온 대목처럼, 작가는 개똥을 통해 사회 윤리와 공동체 의식의 결핍을 직시하게 합니다.
- 이는 곧 생활 속의 작은 무책임이 공동체 전체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일깨워, ‘작은 예의가 곧 큰 평화’라는 시민 교육적 메시지로 확장됩니다.
□ 분노의 사회적 해소 장치
- 개똥 문제로 인한 시민들의 분노는 이미 팻말, 항의,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노는 지속적 갈등만 낳을 뿐 해결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 이 수필은 화를 ‘웃음’으로 바꾸어 사회적 갈등을 순화하고, 동시에 문제를 환기하는 공공 담론으로 확대시킵니다.
□ 환경·생태 윤리의 교육적 소재화
- 개똥을 단순 오물로 치부하지 않고, 파리의 생태학적 번식지로, 또 인간 무책임의 생태계적 결과물로 재조명한 점은 교육적 접근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 학생, 시민 교육 현장에서 ‘작은 일상의 무책임이 환경 파괴로 이어진다’는 교훈을 전달하는 훌륭한 사례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2. 문학적 해설과 의의
□ 유머 수필로서의 가치
개똥이라는 속되고 불쾌한 소재를 웃음의 언어와 철학적 은유로 탈바꿈시킨 점에서 ‘유머 수필’의 미학적 가치를 보여줍니다.
“개똥 택배”, “개똥은 작은 생태계의 비선출 권력” 같은 표현은 해학과 풍자가 결합된 언어 실험으로, 독자에게 웃음을 주면서도 뼈 있는 성찰을 안겨줍니다.
□ 철학적 풍자의 성취
개똥을 ‘철학적 범죄’라 명명하고, ‘인간성의 결핍을 증언하는 유물’로 규정하는 대목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인문학적 통찰이 가미된 풍자입니다.
이로써 수필은 가벼운 잡문을 넘어서, 현대 문명 비평의 장르적 깊이를 획득합니다.
□ 문학과 현실의 접목
구순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출발해 철학자 칸트까지 소환하는 전개는, 생활 현장의 작은 문제와 보편적 철학 사유가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수필의 본령인 ‘생활과 사유의 결합’을 탁월하게 드러낸 사례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3. 종합 감상평
윤승원 수필가의 이번 작품은 분노를 해학으로 승화시키는 힘, 일상의 불쾌함을 사회적 윤리 문제로 확대하는 시선, 생활의 자잘한 현상을 철학적 사유로 연결하는 문학적 실험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그 결과, 이 수필은 단순한 풍자문이 아니라 “웃음을 통한 시민 교양 수업”이자, “생활 속 인문학 강의”로서의 의미를 지닙니다.
결론적으로, 《개똥에 관한 철학적 정보보고서》는 문학이 사회 문제를 어떻게 유쾌하면서도 성찰적으로 다룰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수작이라 할 만합니다. ♣ (📚 裕花, 윤승원 수필 전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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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카페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5.09.09. 07:12
윤 선생님의 개똥에 대한 글은 사회적 고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고발을 넘어서 철학과 문학, 역사학
즉 인문학적 고발일 뿐만 아니라
결론은 종교적 관용으로 승화되어있습니다.
개똥의 수거가 중요하겠지만 노변 방뇨하는 모습도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좋은 글 격조 높은 글 감사합니다. 추천합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이웃 할머니가 그처럼 화를 내는 것을 일찍이 본 적이 없습니다.
개를 두 마리, 세 마리씩 끌고 나와 똥을 누이고 유유히 사라지는
비양심 견주를 향해 할머니가 소리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하소연하였습니다.
“개 주인은 개를 예뻐하는지 모르지만, 개를 무서워하고
개똥을 혐오하는 시민들 생각은 왜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나라가 선진국 맞아요? 저들이 선진국 국민 맞아요?”
화를 참지 못하는 할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우리 사회 큰 어르신으로서 공감해 주시고,
사회적 고발로 격조 있게 확산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네이버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카페 회원 댓글
◆ 오스톤(서울에서 네이버 독자) 2025.09.09. 11:15
이십 대 중반까지 시골에서 아버지를 도와 돼지를 길러,
남들에 비해 동물의 똥에 대한 거부감은 거의 없는 편이에요.
묽은 돼지똥에 비해 개똥은 배탈 났거나 속이 불편한 개가 아니라면 된 똥을 싸지요.
아침 공원 잔디밭에서 맨발 걷기 할 때 일주일에 서너 번 개똥을 치워요.
공원 전체를 치우는 게 아니라 제가 걷는 길(?)만 치우는 데도 그렇습니다.
된 똥은 나뭇잎으로 싸서 치우는데, 문제는 묽은 똥.
이건 나뭇잎으로는 잘 집을 수 없고 괜히 건드렸다가 주변 잔디에 똥칠을 하게 되지요.
그럴 때는 할 수 없이 나뭇잎으로 덮어 표시를 해두고 그 자리를 피해서 걸어요.
다행히 개똥은 사람 똥에 비해 냄새가 거의 안 나요.
그리고, 미처 못 본 똥은 그 방면의 전문가인 똥파리의 비행으로 알 수 있어 다행이구요.
윤 선생님 말씀처럼 개야 무슨 죄가 있겠어요.
관리를 소홀히 하거나, 똥 산 걸 알면서 외면하는 개 주인이 문제죠.
아~ 요즘은 개 주인이라 하지 않고 아빠 엄마라고 하더군요.
오래전 들은 우스갯소리 중 이런 게 있어요.(계속)
어떤 여인이 자기 반려견에게 그러더랍니다.
“엄마 말 잘 들어야지?”
옆에서 이걸 들은 어느 할머니의 한 마디.
“어쩌다 개를 낳았수?”
농담이유~^^
▲ 답글 / 필자 윤승원
요즘 개는 사람보다 영양가 있는 것을 잘 먹어서 그런지
냄새도 인분 못지않게 고약합니다.
오늘도 화단에 한 덩어리를 싸놓았는데, 양도 많고 냄새도
고약할 뿐만 아니라 파리가 엉겨 붙어 난리가 났습니다.
이럴 때는 호미도 안 되고 삽으로 구덩이를 파야 합니다.
구덩이를 파고 깊이 묻어야지 그렇지않으면 잔해가 밖으로 나옵니다.
마침 비가 내려, 묽은 똥은 반쯤 흘러가고 반쯤 되는 덩어리를
땅속에 파묻었습니다.
법당 앞에 있는 화단입니다. 부처님이 다 보고 계십니다.
욕이 나올 때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라고 부처님이 그러셨어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세 번 외고 나니 화가 좀 풀렸습니다.
<관세 音> 보살님은 소리[音]를 내야 알아들으시는 분입니다.
입 밖으로 크게 소리 내어 “관세음보살”을 외었더니 자비를 베푸십니다.
그리하여 이 글을 읽고, 수많은 독자분이 응원을 보내 주셨습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