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사스, 국내서 오히려 과민반응"
[이광회 특파원의 홍콩 사스 일기]
피하지 말고 정상적인 경제활동 지속해야
안녕하십니까? 홍콩 이광회 특파원입니다.
홍콩 하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떠오르실 겁니다.
홍콩에 사는 저로서도 이같은 나쁜 이미지 때문에 애로가 한 둘이 아니지요. 지난 2월말부터 5월 말까지 중국과 홍콩, 대만, 싱가포르, 캐나다 등 전세계 화교권(圈)을 강타한 살인적인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진지 불과 3~4개월 전입니다.
그러나 홍콩 등 화교권은 또다시 사스 공포에 빠져 들고 있습니다. 기억하실 겁니다. 싱가포르에서 지난 9일 사스 환자가 발생, 여파가 아시아 각국으로 급속히 파급되고 있지요. 화교권 국민들 뿐만 아니라
이와 밀접한 거래관계를 가진 우리도 예외가 아닐 겁니다.
chosun.com 독자분 들에게 오늘도 사스 얘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다른 각도의 사스 얘기입니다. 다름 아닌 현장에서
느끼는 분위기, 분위기 전달 과정에서의 오류들, 그로 인해 증폭되는
두려움·과잉대응 등….
저 개인적으로 해외 현지 보다는 국내에서 너무 과잉반응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저 역시 제한된 지면에 팩트(facts·사실)만을 전달하다
보니 충분한 설명없이 자극적인 보도로 분위기 고조에 기여했을 수
있을 겁니다. 저 스스로 사스 뉴스 전달과정과 메카니즘에 오류가 있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를 지적하면서 앞으로 현실로 나타날지도 모를 ‘사스 뉴스보도 관전법’을 설명해 드릴까 합니다.
◆ 아직까지는 심각하지 않다
현장에 있는 제 느낌은 “홍콩의 사스는 아직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 솔직한 느낌입니다. 홍콩에 거주하시는
6000여명의 교민들 중 저와 의견을 달리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가 본 바는 그렇습니다.
판단의 근거는 두 가지 입니다. 첫째 사태의 시발점인 싱가포르 케이스가 ‘단발성(單發性)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싱가포르 사스환자는
싱가포르 국립대학 ‘박사후 과정(post-doctor)’연구원이자 국립환경위생연구소 연구원이 실험실에서 연구활동을 하다 감염됐지요. 이
연구소는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를 냉동상태로 보관하고 있었고, 그는
이곳에서 사스에 감염됐다는 보고입니다. 이 환자는 다행히 초기부터
병원을 찾았고, 다른 이들과의 접촉도 그다지 빈번하지 않았지요. 전염 가능성이 낮았다는 얘기입니다. 이 환자는 벌써 회복돼 퇴원했고,
이후 다른 사스 발생 사례는 보고되지 않고 있습니다.
두번 째 홍콩·싱가포르 정부의 사스 대책이 높은 수준으로 준비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완벽에 가깝다는 표현을 쓰고 싶지만, 눈으로 보지 않은 만큼 자신은 없습니다. 다만 정부 발표만을 놓고 보면 이번 사스 방역책은 안심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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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6일 홍콩의 '로마 가톨릭 성당'에 모인 신자들이 사스 감염을 피하기
위해 마스크를 쓴 채 미사를 드리고 있다./조선일보 DB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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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정부 대책 믿을 만 하다
홍콩에는 홍콩대학 부설 퀸 메리 병원 등 9개 정부병원이 있습니다.
모두 각 지역을 대표하는 대형 병원들입니다. 홍콩정부는 이들 9개 병원에서 1290개 병상 규모 격리병동을 확보했습니다.
싱가포르 환자가 사스 연구원으로 알려지자 홍콩정부는 즉각 대학 연구실 실태조사를 벌여 국제기준에 미달한 홍콩대와 중문대 연구실을
폐쇄시키기도 했지요. 자칫 있을지도 모를 실험실에서의 감염을 차단하자는 의도입니다.
또 마스크·보호복 등 보호장비도 3개월치나 비축했고, 곧 ‘홍콩식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오픈합니다. 공항·항만내 출입국 보건검사도 물샐틈없고, 골목 골목, 심지어 수퍼 마켓 어항까지 뒤져 기준미달 업소 적발에 최선을 다하는 중입니다. 이 정도 되면 사스 발생 자체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지난 번 처럼 수십 명, 수백명의 집단감염이나 병원 내 감염 가능성은 무척 낮아질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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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9일 인천공항 직원이 홍콩발 비행기를 타고 입국하는 승객들이 사스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열적외선 감지기를 이용. 체온검사를 하고 있다./조인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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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뿐 아닙니다. 싱가포르는 아예 전 지역 방역작업에 돌입, 의심환자만 발생해도 전 지역 비상령이 동원될 정도지요. 두달 전 출장 길에
경험했던 싱가포르 병원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한국인 사랑 등 샴 쌍둥이 자매 취재 때 들렀던 래플즈 병원은 사스가 끝났는데도 의료진
전원이 마스크를 쓰고, 내방객들의 입출입도 강하게 통제하더군요.
사스방역 때문이었습니다.
◆ 홍콩 교민들의 ‘과민반응 말라’ 호소
홍콩 교민들이나, 중국 교민들은 요즘 기분이 썩 좋지 않습니다. 홍콩
교민들은 요즘 사석에서 지난 봄 기억을 떠올리며 씁쓸해 합니다. “홍콩에서 왔다고 하니 벌레대하듯 하던데요”, “아이가 유치원에서
입학했는데 홍콩에서 왔다고 하니 다시 나가라고 하더라”, “처제
결혼식 때 갔더니 고향 친지, 친구들이 손도 안잡는 바람에 멋적었다”….
홍콩 교민들은 이러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사업기반이 더 흔들릴까 불안해 합니다. 실제 “사스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호들갑이냐” 하고 목소리 높이는 분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홍콩 교민들은 자기사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이 분들은
자기 사업터전이 건강하게, 안정적으로 돌아가야 장사 역시 호조를
보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스가 터졌거나 심지어 ‘터질 것이다’
소문만 나도 바이어(buyer)들이 오다가 돌아가고, 사인한 주문계약 마저 취소하려 한다고 걱정이 태산입니다.
한 교민은 “이번에 사스 터지면 홍콩 떠날 교민 많을 겁니다”라고
얘기합니다. 중국 광둥(廣東)성은 미국의 겨울철 세일 물건을 대거 만들어 납품하는 일종의 거대 제조공장인데 올해는 사스 때문인지 상하이 쪽으로 바이어들이 대거 옮겨 갔다고 합니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정작 사스가 닥치면 정말 보따리 싸야 할 지도 모를 상황입니다.
관광업 하시는 교민들도 꽤 됩니다. 이 분들은 어려움은 비슷합니다.
한국관광객들이 뚝 끊기니 할 일이 없어지고, 그도 하루 이틀 아닌 수개월씩 지속되니, 걱정이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솔직히 ‘조선일보
특파원 양반, 사스 보도 그만 하면 안됩니까!’하고 좀 심하게(?) 항의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얼마나 울화통이 치밀면 저럴까?’하고 이해하지만 그래도 씁쓸한 것은 사실이지요. 정말 ‘사스가 오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만 간절할 뿐입니다.
◆ 언론보도의 혼선도 과민반응에 한 이유
국내에서 사스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백번 옳은 일입니다.
사스는 한번 당하면 그 손실을 천문학적이기 때문에 ‘철저한 사전
방역’이 최선입니다. 홍콩 언론들은 사스를 ‘9·13사건’이라고
빗대 말합니다. 홍콩의 사스 진원지가 홍콩 매트로폴 호텔 913호이기
때문이지요.
중국 광둥성 중산(中山)대 의과대학의 한 교수(64)가 이 호텔 913호에
묵으면서 다른 투숙객들에게 사스를 전파시켰지요. 9층에 묵었던 투숙객들은 이후 싱가포르, 베트남, 캐나다 등 생활근거지로 돌아가 그곳에 사스 바이러스를 퍼뜨렸어요. 그런데 이 ‘9·13사건’ 피해손실액이 ‘9·11 뉴욕 월드센터 피해액’의 5배 규모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홍콩만 지난 번 3조1000억원의 손실을 봤지요.(추정입니다만)
그러나 ‘과민반응, 과장반응’은 좋지 않습니다. 경제활동을 위축시켜 개인, 조직, 국가 모두 손실을 볼 뿐이기 때문입니다. 언론사들 책임도 피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언론보도 혼선으로 과민반응이 빚어져 기자인 저로서도 안타까운 일이 터졌습니다.
지난 17일 오전 10시쯤 ‘홍콩=AFP통신 ’ 외신기사가 한국에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이 보도내용은 “7명의 사스 의심환자가 발생, 격리조치 됐으며, 병원측은 1단계 비상경계를 발동했다”는 식의 다소 의시시한 보도였습니다. 보도 시점에는 이미 감기환자로 밝혀졌는데 뒤늦게 알려지다 보니 ‘없던 사스환자가 그만 있는 꼴이 돼 버리는’
대혼선이 빚어졌지요. 17일 오전 AFP 홍콩발 기사는 이미 전날 밤 “사스가 아닌 유행성 감기 환자인 것으로 판명났다”고 확인된 뒤에
나온 뒤늦은 보도였습니다.
조선일보의 경우 ‘7명은 유행성감기 환자로 판명났다. 하지만 홍콩인들은 낮은 발표 오보(誤報)에 노이로제 걸릴 지경’이라고 사실에
근거한 스케치 보도를 제 때 내보냈지만 특파원이 없는 대다수 언론사들은 뒤늦은 AFP보도를 베끼며 결국 오보(誤報)를 낸 셈이 됐습니다. 국내 정부 당국도 홍콩에서 사스 환자가 발생했다는 오보(?) 놀라
홍콩발 항공기 탑승객들을 대상으로 보건검색을 강화하는 조치를 보면서 저조차 씁쓸해 지더군요.
홍콩 정부는 요즘 거의 매일 한차례씩 ‘홍콩인 몇 명이 사스 의심 증세를 보여 어느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있다’는 발표문을 냅니다. 20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사스 의심증세를 보이는 여성 환자 4명이 추가로 발생했고, 추가 검사·관찰을 위해 3단계 사스경보 중 첫 단계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홍콩의 사스 경보는 지난 주 이후 네번 째가 됩니다. 지난 16일에는 34세 여성이 사스 의심 증세를 보였다가 회복됐지요. 하지만 이들은 모두 유행성 감기 환자로 판명났고, 따라서 홍콩에는 사스가 발생하지 않은 셈이 됩니다.
◆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급선무
앞으로도 언론보도의 혼선과 이로인한 과민반응은 자주 있을 겁니다.
조선일보는 제가 현지 확인을 통해 사실보도를 하면 되겠지만 다른
언론들은 솔직히 저도 불안합니다.
앞으로 홍콩 현지 언론 뿐 아니라 외국 통신사, 한국 특파원단, 국내
기자들이 제각각의 정보원을 찾아서 사스 기사를 쏟아낼 것입니다.
홍콩 교민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특파원단이 보도를 안한다고 해서
국내에 사스 기사가 나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특파원들
마저 없다면 더 엉뚱한 기사가 나갈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 17일 AFP보도처럼 하루 전날의 상황종료(終了)기사를 다음날에 내보낼 경우
감기 환자가 사스환자가 되는 것이나 똑 같은 이치지요.
‘정보의 홍수’인 속에서 국내 독자분들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차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홍콩 정부의 사스 방역은 철저합니다. 조심하면서 출장길이나, 여행계획, 친인척 방문 등 모두 정상대로 추진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상황이 심각해 지면 홍콩의 한국특파원단들이 심각성을 알릴 겁니다. 이 곳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연합뉴스 3개사가 특파원을 파견 중입니다.
걱정되는 부분은 중국 쪽입니다. 홍콩과 중국은 하루에만 30여만 명이 오가는 사실상 같은 경제권입니다. 홍콩만 조심한다고 될 일은 아니지요. 중국에서 환자가 홍콩으로 넘어와 전세계로 확산되는 지난
번 ‘감염경로’가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입니다. 홍콩 이민국에서
공항, 항만, 접경지 보건검사를 강화 중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중국도
많이 바뀌었더군요. 얼마 전 중국 선전(深 )의 한 식당에 들렀다가 식사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위생당국에서 검사를 나와 반찬 하나 하나를 샘플 용기에 담아가더군요. 위생검사가 목적이었습니다.
홍콩 전문가들 조차 사스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규모·시기만이 문제일 뿐 어느 시기든 재발(再發)할 가능성이 높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가장 유력한 시기는 홍콩의 경우 12월에서 내년 2월 중입니다. 겨울철이지요.
둥젠화(董建華) 홍콩 행정수반(서열 1위)도 지난 번 “사스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때”라고 현실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사스를
조심하되 사업이나 개인 취미활동 등 할 일은 하자는 취지이지요. 앞으로 4~5개월을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면서 무사히 넘겼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심각한 상황 변화가 오면 다시 글을 올리겠습니다.
(이광회 드림 santafe@chosun.com )
입력 : 2003.09.21 08:47 47' / 수정 : 2003.09.21 13:46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