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은 직역과 맡은 분야에 따라 일부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법적 분쟁의 사실관계를 확인하여 법률을 해석, 적용하는 일을 업으로 한다. '사실인정'이 우선하고 법리는 이를 따르므로, 법적추론의 첫 단추인 사실관계를 어떻게 확정하느냐가 분쟁의 결과물을 좌우한다. 영상녹화물처럼 과거사실을 고스란히 재현시켜 주는 증거물 등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실인정'은 과거의 편린들을 조합하여 퍼즐을 맞춰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정보는 충분하지 않고, 주요 퍼즐 조각은 이미 소실되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적법절차 준수'의 룰은 흔적을 찾아내는데 동원할 수 있는 수단마저 효과적으로 제한하기도 한다. 경력 법조인이라면 한 번쯤은 허용된 시간 내에 고군분투했음에도 안개 속에 가려진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막막함'을 느껴보았으리라.
'사실인정'의 험난한 여정에는 '인지적 오류'의 장애물도 놓여 있다. 어쩌면 '자유심증에 따른 합리적 증거 평가'라는 지향점은 극히 이성적인 인간관에 기초한 수사(修辭)일지도 모른다. 사회과학적 연구결과들에 따르면, 사람의 판단에는 여러 '편향'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옳다고 믿는 스토리에 따라 증거를 선택하려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어떤 문제에 대해 손쉽게 떠오르는 생각에 의존하려는 '가용성 편향'(availability heuristic) 등이 대표선수들이다. "이성은 감정의 노예"라는 18세기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말처럼, 감정이 간섭하면 부지불식간에 이성적 사고가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정의의 여신상이 눈을 가린 이유와, 세익스피어의 비극 '오델로'의 명언, "공기처럼 하찮은 것도 질투에 눈먼 자에게는 성서(聖書)와도 같은 확고한 증거일지니"가 이해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과거 오랜 기간 신판(神判)이 유지되다 사람에게로 아웃소싱 되면서부터, 이미 법조인에게 '사실인정'이란, 오류 가능성을 지닌 존재가 버거운 짐을 짊어진 채로 운명처럼 꿋꿋이 걸어가야 하는 일인 것을.
다만, 조선의 뛰어난 형사법학자이기도 했던 정약용 선생이 '흠흠신서'(欽欽新書)에서 설파한 '흠휼'(欽恤)의 마음으로, 삼가고 경계하며 조심스레 전진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