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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醫王의 善智衆藥
復次佛子야 譬如醫王이 善知衆藥과 及諸呪論하야 閻浮提中諸所有藥을 用無不盡하며 復以宿世諸善根力과 大明呪力으로 爲方便故로 衆生見者가 病無不愈어든 復以宿世諸善根力과 大明呪力으로 爲方便故로 衆生見者가 病無不愈어든 彼大醫王이 知命將終하고 作是念言호대 我命終後에 一切衆生이 無所依怙니 我今宜應爲現方便이라하고 是時醫王이 合藥塗身하며 明呪力持하야 今其終後에 身不分散하야 不萎不枯하며 威儀視聽이 與本無別하며 凡所療治가 悉得除差인달하야 佛子야 如來應正等覺無上醫王도 亦復如是하사 於無量百千億那由他劫에 鍊治法藥하야 已得成就하며 修學一切方便善巧하야 大明呪力이 皆到彼岸하사 善能除滅一切衆生의 諸煩惱病하며 及住壽命하야 經無量劫호대 其身淸淨하야 無有思慮하고 無有動用하야 一切佛事를 未嘗休息이어든 衆生見者가 諸煩惱病이 悉得消滅이니라 佛子야 是爲如來身第八相이니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見이니라
“또 불자여, 비유하면 마치 어떤 의사가 여러 가지 약과 여러 가지 주문을 잘 알며 염부제에 있는 모든 약을 쓰지 않는 것이 없느니라.
또 전생의 모든 착한 뿌리의 힘과 크고 밝은 주문의 힘으로써 방편을 삼았으므로 그를 보는 중생들은 모두 병이 쾌차하였느니라.
저 큰 의사가 목숨이 다한 줄을 알고 생각하기를 ‘내가 죽은 뒤에는 모든 중생이 의지할 데가 없으리니 내가 이제 마땅히 방편을 보이리라.’라고 하느니라.
이때에 의사는 약을 만들어 몸에 바르고 밝은 주문의 힘으로 부지하여 그가 죽은 뒤에도 몸이 흩어지지 않고 시들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아서 행동이나 보고 들음이 본래와 다르지 아니하며, 무릇 병을 치료하면 모두 쾌차하였느니라.
불자여, 여래 응공 정등각인 가장 높은 의사도 또한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백 천억 나유타 겁 동안에 법의 약(藥)을 수련하여 성취하였느니라.
모든 방편의 선교와 크고 밝은 주문을 닦아 배운 힘이 모두 저 언덕에 이르렀으며, 일체 중생의 여러 가지 번뇌의 병을 능히 소멸시키느니라.
목숨이 한량없는 겁까지 살며, 그 몸이 청정하여 생각함도 없고 작용도 없으면서도 모든 불사(佛事)를 쉬지 아니하거든, 그를 보는 중생들은 모든 번뇌의 병이 다 소멸케 되느니라.
불자여, 이것이 여래 몸의 여덟째 모양이니 보살마하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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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왕(醫王)의 선지중약(善智衆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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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잘하는 의사가 여러 가지 약을 잘 안다.
의왕, 여기서는 의사가 여러 가지 약을 잘 안다.
그런데 남을 치료 잘하는 의사도 한계가 있어서 ‘세월은 늘릴 수 없고 사람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돌아가셔야 된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셨는데 부처님이 돌아가셨다고 믿고 싶지 않으니까 우리는 ‘나무(南無) 영산불멸(靈山不滅) 학수쌍존(鶴樹雙尊)’ 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학수에서 분명히 돌아가셨는데, 영축산에서 안 돌아가셨다, 영산불멸이라고 한다.
우리가 부처님 몸에 발라 놓은 약을 뜯어먹고 있다고 화엄경에서 비유하고 있다.
화엄경 같은 것, 부처님이 남겨 놓으신 교법을 부처님 약에 비유한 것이다.
부차불자(復次佛子)야 : 또다시 불자야
비여의왕(譬如醫王)이 : 비유하건대 어떤 의왕, 의사 중에서도 대빵 의사, 잘 치료하는 명의가
선지중약(善知衆藥)과 : 선지(善知) 잘 안다. 여러 가지 약과
급제주론(及諸呪論)하야 : 여러 가지 주문을 잘 안다. 부적도 잘 쓰고 약치료를 잘한 모양이다.
염부제중제소유약(閻浮提中諸所有藥)을 : 염부제 중에 있는 모든 약을
용무부진(用無不盡)하며 : 쓰지 않는 것이 없었다. 약이란 약은 개똥까지 해서 다 썼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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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이숙세제선근력(復以宿世諸善根力)과 : 또 부(復), 숙세에, 전생에, 전세에, 지난 세상에 모든 선근의 힘과
대명주력(大明呪力)으로 : 밝은 주문의 힘으로써 지혜를 열심히 닦아서
위방편고(爲方便故)로 : 방편을 삼은 까닭으로
중생견자(衆生見者)가 : 중생이 보는 자가
병무불유(病無不愈)어든 : 병이 모두 다 낫지 아니함이 없었다. 모든 병이 다 쾌차했다.
나옹스님의 발원문에는 ‘견아형자득해탈(見我形者得解脫)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途)’라고 하였다. 화엄경 입법계품에도 고 대목이 그대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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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대의왕(彼大醫王)이 : 저 큰 의사, 피대의왕이 저 명의가
지명장종(知命將終)하고 : 지(知) 아셨다. 당신 목숨이 장차 명장종이라. 장차 ‘아이고 내가 이제 죽겠구나’ 하는 것을 아시고
작시염언(作是念言)호대 : 이와 같이 생각하기를, 염언이라는 말이 경전에 굉장히 많이 나온다. 이와같이 생각하기를, 생각 깊은 사람들은 염언을 한다. 바깥으로 외언(外言)을 하지 않는다.
바깥으로 입으로 내는 사람들은 좀 하수들이나 내어서 시비(是非)지 부처님도 중생들이 염언하는 것, 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알고는 그냥 다 알아서 해주시지 않는가.
부탁 부탁해서, 손발이 닳도록 부탁을 해서 ‘날 좀 도와주세요 ’할 때야 아는 것은 선지식이 아니지 않는가? 선지식은 척 보면 알아야 된다. 여기도 그런 것 같다. 중생들의 마음을 다 알고 혼자 생각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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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명종후(我命終後)에 : 내가 죽은 뒤에
일체중생(一切衆生)이: 모든 중생이
무소의호(無所依怙)니 : 의지할 데가 없으니
아금의응위현방편(我今宜應爲現方便)이라하고 : 내 죽으면 끝일 것인데도 이만큼 죽은 뒤에도 중생을 생각하는 자비심, 그 DNA라고 할까, 그 아뢰야식이 흘러 흘러서 우리한테 이 화엄경까지 온 것 같다.
그때 KTX도 없고, 비행기도 없을 때, 화엄경을 그 사막에서 짊어지고 이고 지고 해서 우리한테 보여주려고 몇천 년 전에 이 땅을 건너온 것 같다.
화엄경 소초에 보면 그렇게 나온다.
문수보살이 결집하시고 문수보살과 아난존자가 화엄경을 결집해서 용궁에 안치를 했는데, 용수보살이 가서 그 화엄경을 상본(上本) 중본(中本) 대본(大本)을 보고 짊어지고 다 외워 나와서 하본(下本) 48품을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전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9품은 누락되고 39품 4만 5천 게송이 남아 있다.
그 사이에 용수보살이 들고 나온 것을 가지고 불타발타라(佛駄跋陀羅;覺賢)스님이 목숨을 걸고 번역을 하고 그 뒤에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하고 청량이나 통현(通玄)장자나 현수법장(賢首法藏)이나 원효, 의상까지 해서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다. 그 공덕은 말씀으로 다 할 수가 없다 해서 화엄경 현담 제7권에 보면 그런 대목이 자세하게 나온다.
그 대목을 보면 화엄경 공부하는 사람들은 잠시 읽던 책을 멈추고 멍하니 책을 덮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야, 역대전등 제대조사가 위법망구(爲法忘軀)로 고생을 하셨구나’
생각해보면 밥이나 제대로 자시고 그것을 들고 오셨겠는가? 그 뙤약볕에 신발이나 뭐 나이키 신발도 없었을 것이다. 짚신 같은 것 맨발로 옷이나 제대로 있었겠는가?
이고 지고 해서 그렇게 그렇게 우리에게 오신 것 같다.
그래 화엄경을 번역하실 때 제가 이렇게 보니까 80권 화엄경을 볼 때 법상종 유식이든지 중관이든지 선종이든지 율종이든지 화엄경 천태종 할 것 없이 큰스님들이 다 망라해서 우리 신라 원측(圓測)스님도 80화엄경 번역하실 때 1년 동안 참여하셨다가 돌아가셨지 않은가.
그런 내용이 청량국사 화엄경 약책(略策)에 자세하게 잘 나온다. 60권 마무리 지을 때도 그렇고, 80권 할 때도 그렇다.
요새는 혼자서 뒷방 번역하고 이렇게 하잖는가. 그런데 그게 아니고 온 나라의 어른스님들이 다 모여서 번역을 했다. 이것이 보배덩어리인 줄 알았던 것이다.
요즘 지식적으로 박사학위 하고 이런 것이 아니고, 화엄경은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정신적인 무기다, 핵무기보다 강한 ‘국가적인 힘을 여기서 길러야 된다’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화엄경 번역하실 때 ‘야 어떻게 해서 선종의 대선사도 참여하시고 현장법사 제자들 법상종, 유식종에서도 참여하시고, 천태종도 참여하였는가’ 저는 그런 대목을 읽어놔서 그런지, 여기서 이렇게 여러 승속을 막론하고 문수선원에서 어른 스님께서 가르치시는 모습을 볼 때 ‘아 제대로 된 화엄강당이 있구나’ 하고 다행스러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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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의왕(是時醫王)이 : 이때에 의왕이 그 명의가
합약도신(合藥塗身)하며 :약을 만들어서, 조합해서 만들어서 도신이라 자기 온몸에 발라서 스스로 미라가 된 모양이다.
명주력지(明呪力持)하야 : 밝은 주문의 힘으로 부지해서
영기종후(今其終後)에 : 지금도 그가 죽은 후에
신불분산(身不分散)하야 : 몸이 흩어지지 않고, 영산불멸이 이런 데서 나오지 않았겠는가.
불위불고(不萎不枯)하며 : 몸이 시들지도 않고 불고(不枯)라 마르지도 않고
위의시청(威儀視聽)이 : 행동이나 보고 들음이
여본무별(與本無別)하며 : 본래 살아있을 때와 똑같아서
범소료치(凡所療治)가 : 무릇 병을 치료하자면
실득제차(悉得除差)인달하야 : 사람들이 모두 다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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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래응정등각무상의왕(如來應正等覺無上醫王)도 : 여래 부처님 응공 정등각인 무상 의왕이라. 가장 높은 의왕께서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사 : 또한 이와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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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무량백천억나유타겁(於無量百千億那由他劫)에 : 한량없는 백천억 나유타겁에
연치법약(鍊治法藥)하야 : 법의 약을 잘 볶아서 다려서 약을 잘 다스려서
이득성취(已得成就)하며 : 모두 다 성취하였나니라.
해인사 일주문에 가면 주련이 있다.
긍만세이장금(亘萬歲而長今)이요 역천겁이불고(歷千劫而不古)
라
부처님의 몸은 어떠냐? 긍만세이장금(亘萬歲而長今)이라. 만세를 흘러가더라도 늘 오늘 현재와 같다.
부처님의 몸은 어떠냐? 역천겁이불고(歷千劫而不古)라. 천겁이 지나더라도 중고품이 안된다. 부처님의 몸은 유통기한이 없다, 이렇게 해 놓았다. 유통기한이 없는 것, 변질이 안 되는 것은 허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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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일체방편선교(修學一切方便善巧)하야 : 수학해야 선능이된다. 밑에 선능(善能)이 나온다. 열심히 보고 닦아야 나중에 솜씨를 얻어서 프로페셔널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선능이다.
수학이 어떻다, 선능은 어떤 것이다, 청량국사는 그런 것을 하나하나 다 짚어 놓았다.
모든 방편의 선교와
대명주력(大明呪力)이 : 크고 밝은 주문을 닦아
개도피안(皆到彼岸)하사 :배운 힘이 모두 저 언덕에 이르며
선능제멸일체중생(善能除滅一切衆生)의 : 선능 일체 중생의
제번뇌병(諸煩惱病)하며 : 모든 번뇌의 병을 능히 소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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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주수명(及住壽命)하야 : 목숨도
경무량겁(經無量劫)호대 : 한량없는 겁까지 무량겁토록 살고
기신청정(其身淸淨)하야 : 그 몸이 청정하여
무유사려(無有思慮)하고 : 생각함도 없고, 근심 걱정도 없고
무유동용(無有動用)하야 : 움직이고 작용하는 것도 없고
일체불사(一切佛事)를 : 모든 불사(佛事)를
미상휴식(未嘗休息)이어든 : 일찍이 쉬지 아니하겠거든
중생견자(衆生見者)가 : 그런데 그를 보는 중생들은
제번뇌병(諸煩惱病)이: 모든 번뇌의 병이
실득소멸(悉得消滅)이니라 : 다 소멸케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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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시위여래신제팔상(是爲如來身第八相)이니 : 이것이 여래의 몸의 법신의 제 여덟 번째 모양이니
제보살마하살(諸菩薩摩訶薩)이 : 모든 보살마하살이
응여시견(應如是見)이니라 : 응당히 이와 같이 볼지니라.
자. 大海의 大摩尼寶
復次佛子야 譬如大海에 有大摩尼寶하니 名集一切光明毘盧遮那藏이라 若有衆生이 觸其光者면 悉同其色이요 若有見者면 眼得淸淨이며 隨彼光明의 所照之處하야 雨摩尼寶하니 名爲安樂이라 令諸衆生으로 離苦調適인달하야 佛子야 諸如來身도 亦復如是하사 爲大寶聚一切功德大智慧藏이니 若有衆生이 觸佛身寶智慧光者면 同佛身色이요 若有見者면 法眼淸淨이라 隨彼光明의 所照之處하야 令諸衆生으로 離貧窮苦하며 乃至具足佛菩提樂이니라
佛子야 如來法身이 無所分別하며 亦無戱論호대 而能普爲一切衆生하야 作大佛事니라
佛子야 是爲如來身第九相이니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見이니라
“또 불자여, 비유하면 큰 바다에 큰 마니보배가 있어 이름을 ‘집일체광명비로자나장(集一切光明毘盧遮那藏)’이라 하는데, 만약 어떤 중생이나 그 광명이 닿으면 그 빛과 같아지고 그 광명을 보는 이는 눈이 청정하여지며, 그 광명이 비추는 데는 ‘안락(安樂)’이라는 마니보배의 비를 내려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괴로움을 여의고 화평하게 하느니라.
불자여, 모든 여래의 몸도 또한 그와 같아서 큰 보배덩이로써 모든 공덕의 큰 지혜 창고가 되나니, 만약 어떤 중생이 부처님 몸의 보배 지혜 광명이 닿으면 부처님의 몸빛과 같아지고, 만약 그 빛을 보는 이는 법의 눈이 청정하여지며, 그 광명이 비치는 곳에는 모든 중생들이 빈궁한 고통을 여의게 되며 내지 부처님 보리의 낙을 구족하게 되느니라.
불자여, 여래의 법신은 분별도 없고 부질없는 말도 없지마는 두루 일체중생을 위하여 큰 불사를 짓느니라.
불자여, 이것이 여래 몸의 아홉째 모양이니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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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大海)의 대마니보(大摩尼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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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대해의 대마니보라. 큰 바다에는 마니보배가 있다. 부처님 몸을 큰 바다의 마니보에 비유했다. 오늘 그 때문에 제6회차 십지품 법운지,십지공덕을 마치면서 나온 내용을 유인물로 드렸다.
이거 두 개 해보고 난 뒤에 유인물을 한 번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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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불자(復次佛子)야 : 또 불자야
비여대해(譬如大海)에 : 비유하면 큰 바다에
유대마니보(有大摩尼寶)하니 : 당연히 큰 마니보배가 있다. 유대마니보 하니
명집일체광명비로자나장(名集一切光明毘盧遮那藏)이라 : 이름이 집일체광명 모든 광명을 모은 비로자나장이라.
화엄경은 잘 아시다시피 2회차, 7회차, 8회차 설법을 할 때 보광명전에서 한다.
보광명(普光明)은 넓은 광명, 다른 말로 하면 광명변조다.
비로자나를 이렇게 해석하고 보광을 비로자나라고 한다.
일체 광명이 바로 비로자나 보광이 되겠다.
무량광(無量光) 무량수(無量壽)하듯이 비로자나장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몸이다.
화엄경 보현삼매품에 보면 보현보살이 비로자나여래장신삼매(毘盧遮那如來藏身三昧)에 든다. 비로자나여래장신은 비로자나여래장(毘盧遮那如來藏), 여래장법신(如來藏法身)이라고 한다.
1회차에서 보현보살이 비로자나부처님의 비로자나여래장신삼매에 들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여기처럼 일체 광명을 모은 비로자나장이 부처님의 몸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몸이 뭐냐?
부처님은 어떻게 만들어졌느냐?
화엄경의 유심게(唯心偈)는 일심(一心) 오직 마음이다, 라고 하지 않는가? 유심게에 약인욕요지(若人欲了知)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60 화엄경에 보면 심조제여래(心造諸如來)라, 마음이 모든 부처님을 만든다. 심조(心造)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80 화엄경에서는 삼세제불이 오직 마음으로 유심(唯心)이 지은 바다,라고 하지만 60 화엄경은 더 간단하게 심조(心造)라고 한다. 마음이 만들었다. 심조제여래라. 그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우리가 화엄경을 본다면 좀 편하게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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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유중생(若有衆生)이 : 만약에 어떤 중생이나
촉기광자(觸其光者)면 : 그 광명에 닿으면
실동기색(悉同其色)이요 : 그 빛과 같아진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강의할 때 자주 하는 게송이고, 염불할 때 자주 하는 게송이기도 하다.
언제 우리가 부처님의 빛과 똑같아지느냐?
6문(六門)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언제 부처님하고 똑같아지느냐?
6문(六門)이 상방자금광(常放紫金光)이라, 자금광이 언제 같아지느냐? 염도염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라, 부처님하고 똑같은 마음 심보가 되었을 때 우리의 안이비설신의 육문이 항상 부처님의 눈으로 보고 부처님의 귀로 들을 수가 있다.
이렇게 이 고깃덩어리로 되어 있는 부진근(扶塵根)이 아니다.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어두워지고 밝아졌다 하는 것이 아니라, 보청기를 꼈다 해서 어디 더 밝아지고 이런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은 본래 없지만 항상 듣고 있고 무설설(無說說)하고 불문문(不聞聞)하듯이, 여기도 만약 어떤 중생이나 그 광명에 닿으면 촉기광자 하면 실동기색이라, 모두 다 그 색깔하고 같아진다.
이런 내용이 입법계품 같은 데는 저 뒤에 나온다.
모든 선지식들을 다 친견하고 난 뒤에, 선재동자가 110 선지식을 친견하고 난 뒤에 미륵보살을 만났을 때 마정수기를 받으면서 미륵보살의 자비심을 얻게 된다.
법화경도 공히 같다.
법화경도 똑같이 되어 있고, 화엄경도 말미에 똑같이 되어 있다.
그다음에 선재동자는 문수보살을 만나서 문수보살에게 지혜를, 마정수기 받는 순간에 같이 지혜 광명을 구족하게 된다.
술 먹으면 사람이 술 되고 차 먹으면 사람이 차가 된다. 신토(身土)가 불이(不二)하다.
그 광명이 내 몸에 닿는 것이 촉기광명인데 가장 대표적으로 촉기광명이 나온 곳은 광명각품이다.
다른 데는 소를 남겨 놓은 것은 없고, 광명각품에서 원효스님의 소가 조금 남아 있다.
거기 보면 부처님의 광명을 내 몸의 내 광명하고 같이 접착시킨다, 라고 광명각품에 대한 요지가 나온다.
여래출현품의 촉기광명 이 대목이 그것이다.
부처님이 출현하려면, 부처님이 당신 혼자 출현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고, 부처님이 출현하셔서 반드시 파급을 시켜야 된다. 중생이 똑같이 부처가 되어야 한다.
종경록에 보면 자벌레가 녹색 이파리를 갉아 먹으면 몸뚱이가 녹색이 되고 갈색 잎을 먹으면 갈색이 된다고 나와 있다. 홍학이 붉은 플랑크톤을 먹으면 몸이 붉게 된다.
매화나뭇가지도 잘라보면 붉은 꽃이 피는 것은 가지 안쪽까지도 붉다. 흰 꽃이 피는 매화가지는 잘라보면 가지까지도 흰색이다.
빨간색 홍매 있잖은가? 화엄사 홍매는 잘라보나 안 잘라보나, 그 가지를 자르면 무슨 색깔일 것 같은가?
죽던지 말던지 우리가 한 번 잘라보면, 내가 설중매를 잘라봐서 안다.
사람도 얼굴빛만 이렇게 보면 속에 소갈딱지가 어떻게 생겼다는 것이 거의 찍혀 보인다. 콱 콱 찍혀 보인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약유중생이 촉기광자면 그 빛을 불광을 받았는데 그 색깔이 동등하게 된다. 부처님의 빛을 자금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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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유견자(若有見者)면 : 만약 보는 사람이 있다면
안득청정(眼得淸淨)이며 : 안득청정이라.
견아형자득해탈(見我形者得解脫)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途) 이런 것들이 눈으로 청정해진다는 것은 없는 눈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무안이비설신의로 봤을 때다.
무색성향미촉법 무안이비설신의가 되어야 분별심으로 보는 것이 아닌 것이 된다.
그 광명을 보는 사람이 이미 눈이 청정하다고 하는 것은 그 광명을 보려고 하면 집착이 있는 이 고기덩어리 눈, 육안을 가지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법안이 청정해져야 되고 혜안이 청정해져야 그 광명을 제대로 보는 것이다. 복이 없는 사람, 육안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씻고 닦고 봐도 생멸에 매여서 그 광명을 볼 수 있겠는가?
수피광명(隨彼光明)의 : 그 광명이
소조지처(所照之處)하야 : 비추는 데는 소조지처는
우마니보(雨摩尼寶)하니 : 마니보배를 우(雨) 비 내리니
명위안락(名爲安樂)이라 : 그 이름이 안락이다.
법화경 안락행품에 보면 이렇게 나온다.
불교에서 안락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와중에서, 사바세계에 살아가면서 어렵고 힘든 와중이 늘 많지만, 그 힘든 데 매몰되지 않는 것이다. 힘들어도 힘든 데 매몰되지 않는다면 어디에 있더라도 편안하다, 그것이 안락이라고 해 놓았다.
예를 들어서 히말라야산에 올라가는데 그 눈보라 몰아치고 힘들어 죽겠는데 즐기고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고통스러운 것이 고통이 안 된다는 것이다.
흔히 수준 낮은 해석은 잘먹고 잘사는 것을 안락으로 생각한다. 일반적으로는 생멸법에 사는 생멸 인연을 안락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여기서 안락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불생불멸의 안락을 추구해야 되지 않겠나.
부처님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 노구를 이끌고 아침마다 남의 집에 밥을 빌러 가시면서 땡볕에 그렇게 힘들게 고생을 하셨는데 당신의 입장에서는 무념이니까 늘 안락한 것이다.
영제중생(令諸衆生)으로 : 모든 중생으로
이고조적(離苦調適)인달하야 : 괴로움을 여의고 화평케 하나니라.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이라고 의상스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마니보하니 명위안락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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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제여래신(諸如來身)도 : 모든 여래의 몸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사 : 또다시 이와 같다. 역부여시 하야
위대보취일체공덕대지혜장(爲大寶聚一切功德大智慧藏)이니 : 큰 보배 무더기의 일체 공덕의 대지혜 창고다. 부처님의 몸은 지혜의 창고이고 공덕의 창고이다. 이것을 굳이 이야기하라면 이것은 부처님의 몸 본체 체대라기보다는 상대(相大)를 이야기한다. 여기서 물론 여래 신상을 이야기하지만 부처님의 상대, 기신론 같은 데는 상대를 대보취일체공덕지혜장이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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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유중생(若有衆生)이 : 만약 어떤 중생이
촉불신보지혜광자(觸佛身寶智慧光者)면 : 부처님 몸의 보지혜광을 닿으면
동불신색(同佛身色)이요 : 부처님의 몸빛과 같아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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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유견자(若有見者)면 : 만약에 그 광명을 보는 사람은
법안청정(法眼淸淨)이라 : 법안이 청정하야
수피광명(隨彼光明)의 : 그 광명이
소조지처(所照之處)하야 : 비치는 곳에는
영제중생(令諸衆生)으로 :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이빈궁고(離貧窮苦)하며 : 빈궁한 고통을 여의게 된다.
우리가 재력이 없는 것도 빈궁하지만, 중으로서 법력이 없는 것도 중생이 아주 빈궁하다.
재력이 없든지 학력이 없든지 체력이 없든지 이런 것은 좀 가난해도 괜찮은데 가사 입고 법력이 없으면 좀 난감하다.
내지구족불보리낙(乃至具足佛菩提樂)이니라 : 내지는 부처님의 보리의 낙을 구족하게 된다.
이빈궁고 내지 구족불보리낙 이것을 넉 자로 줄이면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고 한다.
기신론 같은 데서는 이일체고(離一切苦) 득구경락(得究竟樂) 일체 고통을 떠나서 구경락이라고 한다.
삼법인(三法印)으로 보자면 열반적정(涅槃寂靜)이다. 앞의 것은 일체개고(一切皆苦)다.
법력이 없는 것이 가난한 것이다, 여기서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래법신(如來法身)이 : 여래의 법신은
무소분별(無所分別)하며 : 분별하는 바도 없다. 불생불멸이다 라는 말이다.
역무희론(亦無戱論)호대 : 역무희론이다. 부질없는 말도 없지만
이능보위일체중생(而能普爲一切衆生)하야 : 이(而) 그러나 능히 널리 일체 중생을 위하여
작대불사(作大佛事)니라 : 큰 불사를 짓는다.
광명이 불사를 한다고 여래현상품부터 나온다.
여래현상품부터 부처님의 입으로 나온 광명이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불사를 짓고 난 뒤에 부처님의 오른쪽으로 돌아서 부처님의 발밑으로 들어갔다.
그다음에 미간에서 나온 부처님의 광명도 그러했다.
광명은 나와서 모든 불사를 짓는다.
그러니까 미간에서 나온 광명이나 입에서 나온 광명이나 똑같은 광명이다.
부처님께서 1회차에서 방광하시고 2회차 방광, 3회차 방광, 4회차 방광, 5회차 방광 등등 8회차만 빼고 화엄경 9회의 설법 동안 회차마다 방광을 하신다.
다 아시다시피 2회차는 발바닥에서, 1회차에서는 먼저 입에서 그다음 미간에서 방광한다. 2회차는 발바닥에서 3회차는 발가락에서 4회차는 발등에서 5회차는 무릎에서 6회차는 미간에서 방광한다. 7회차는 1회차하고 반대로 먼저 미간에서 방광하고 나중에 구중 방광은 보현보살한테 입에다가 쏟아붓는다. 그래서 입에서 방광하시고 마지막 9회차 방광은 미간백호에서 방광을 하시는데 방광을 하시면서 하는 말이 한결같이 여기 나온 내용과 똑같다. 불사를 위해서 한다.
중생불사를 위해서 방광한다. 방광의 의미는 중생 불사다.
삼매는 왜 그러냐?
중생이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가피를 주기 위해서 삼매에 든다.
8회차만 방광이 없고 삼매는 2회차에 삼매가 없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쭈욱 나온다.
두루 일체 중생을 위해서 큰 불사를 짓는다.
광명이 불사를 한다.
광명이라고 하는 것이 일심의 대자대비심이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시위여래신제구상(是爲如來身第九相)이니 : 이것이 여래 몸의 아홉 번째 모양이니
제보살마하살(諸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들이
응여시견(應如是見)이니라 : 마땅히 이렇게 보아야 하느니라.
차. 大海의 大如意摩尼寶
復次佛子야 譬如大海에 有大如意摩尼寶王하니 名一切世間莊嚴藏이라 具足成就百萬功德하며 隨所住處하야 令諸衆生으로 灾患消除하고 所願滿足이나 然此如意摩尼寶王은 非少福衆生의 所能得見인달하야 如來身如意寶王도 亦復如是하사 名爲能令一切衆生으로 皆悉歡喜니 若有見身聞名讚德이면 悉令永離生死苦患하며 假使一切世界一切衆生이 一時專心하야 欲見如來라도 悉令得見하야 所願皆滿이어니와 佛子야 佛身은 非是少福衆生의 所能得見이요 唯除如來自在神力으로 所應調伏이니 若有衆生이 因見佛身하면 便種善根하야 乃至成熟하며 爲成熟故로 乃令得見如來身耳니라
佛子야 是爲如來身第十相이라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見이니라
“또 불자여, 비유하면 마치 큰 바다에 큰 여의주 마니보배가 있으니 이름은 ‘일체세간장엄장(一切世間莊嚴藏)’이라. 백만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하였으므로 머무는 곳마다 모든 중생들이 재앙은 소멸되고 소원은 만족하게 되느니라. 그러나 이 여의주 마니보배는 복이 적은 중생들은 보지 못하느니라.
여래의 몸 여의주 보배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일체중생들로 하여금 환희케 함’이라 이름하나니, 만일 그 몸을 보거나 이름을 듣고 공덕을 찬탄하면 생사의 고통을 아주 여의며, 가령 모든 세계의 모든 중생들이 한꺼번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여래를 보고자 하더라도 모두 보고 소원이 만족하게 되느니라.
불자여, 부처님의 몸은 복이 적은 중생들은 볼 수가 없거니와 오직 여래의 자유자재한 신통의 힘으로 조복 받을 수 있는 이는 제외되느니라. 만일 중생이 부처님 몸을 보면 곧 착한 뿌리를 심어서 마침내 성숙될 것이며, 성숙되게 하기 위해서 여래의 몸을 보게 할 뿐이니라.
불자야 이것이 여래 몸의 열째 모양이니 보살마하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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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大海)의 대여의마니보(大如意摩尼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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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여의마니보, 조금 전에도 큰 바다의 마니보배가 나왔다.
여기는 여의라는 말이 들어갔다. 왜 그렇게 나올까?
조금 전에 마니보배 큰바다가 나왔지 않은가?
여의라는 말만 들어갔지 똑같은 말이 또 나왔다면 그 뜻을 새겨 봐야 될 것이다.
앞의 것은 근본적으로 부처님의 입장에서 마니보배라고 하는 것이다. 마니보배라고 하는 것은 색깔이 없어서 색깔이 오는 데마다 맞춰주는 투명한 것이다. 색깔 중에 제일 좋은 색깔은 무색이다.
그런데 여기서 마니보의 색깔을 여의라고 한 것은 중생이 뭔가 뜻대로 안 되기 때문에 여의가 필요한 것이다.
여의원만(如意願滿) 성취지대원(成就之大願), 철저히 중생의 수준에 맞추겠다는 마지막 결론을 짓고자 여의(如意)가 들어간다. 이만큼 자세하게 화엄경을 치밀하게 구성해 놓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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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불자(復次佛子)야 : 또 불자야
비여대해(譬如大海)에 : 비유하면 마치 큰바다에
유대여의마니보왕(有大如意摩尼寶王)하니 : 큰 여의주 마니보배가 있으니
명일체세간장엄장(名一切世間莊嚴藏)이라 : 이름은 일체세간장엄장이라.
딱 답이 나와버렸다. 일체세간장엄, 일체세간은 모든 중생세간을 장엄하는 창고이기 때문이다. 중생이 얼마나 욕심이 많고 탐진치가 많은가? 그래서 여의(如意)라는 말을 거기에 넣어 놓았다. 중생 뜻대로 다 맞춰주겠다.
‘그런데 소초에 찾아보고 통현장자에 찾아보니까 여의 그런 뜻이 없는데?’ 제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가 읽어보고 만들었기 때문에 여의는 그렇게 해석해야 맞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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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족성취백만공덕(具足成就百萬功德)하며 : 백만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하였으므로
수소주처(隨所住處)하야 : 소주처 머무는 곳을 따라서 머무는 곳마다
영제중생(令諸衆生)으로 :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재환소제(灾患消除)하고 : 재앙이 소멸되게 하고 소제하고
소원만족(所願滿足)이나 : 소원을 만족하게 되나니라.
큰바다에 큰 여의주 마니보배가 있는데 그 머무는 곳마다 모든 재앙이 소멸되고 소원이 만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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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여의마니보왕(然此如意摩尼寶王)은 : 그러나 이 여의마니보왕은 이 여의주 마니보배라고 하는 것은
비소복중생(非少福衆生)의 : 비(非) 아니다. 복이 적은 중생, 박복한 중생들은
소능득견(所能得見)인달하야 : 볼 수가 없다.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의주 마니보배는 못 본다.
평생토록 일심의 진심자리는 못 보고 망상분별만 실컷 보다가 죽게 되니까 소원이 하나도 안 이루어지고 고통 속에서 살다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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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신여의보왕(如來身如意寶王)도: 여래신의 여의보왕도 비유하자면 부처님 몸에 여의(如意) 보배가 있는데 왕(王)자를 붙여 놓은 것은 ‘최고다’ 이런 뜻이다.
역부여시(亦復如是)하사 : 또한 이와 같아서
명위능령일체중생(名爲能令一切衆生)으로 : 이름을 뭐라고 하는가 하면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개실환희(皆悉歡喜)니 : 모두 다 환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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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유견신문명찬덕(若有見身聞名讚德)이면 : 만일 그 몸을 보거나 견신문명이라 이름을 듣고 찬덕 그 공덕을 찬탄한다면 아금문견득수지(我今聞見得受持)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意)라.
실령영리생사고환(悉令永離生死苦患)하며 : 생사의 고통 고환을 영리 모두 다 영원히 아주 여의고
가사일체세계일체중생(假使一切世界一切衆生)이 : 가사, 가령 일체 세계 중생이
일시전심(一時專心)하야 : 한순간이라도 일시라도 전심이라. 완전히 오롯한 마음으로, 한결같은 전심전력이 있지 않은가.
오로지 전(專)자다. 전심해서
욕견여래(欲見如來)라도 : 욕견여래라도. 한순간이라도 부처님을 뵙고자 전심전력하여, 마치 모기가 쇠로 만든 소대가리 위에다가 하취부득처(下嘴不得處)라 침을 못 내리면, 화신투입(和身透入)이라 온몸으로 뚫고 쇳덩어리 속으로 모기가 들어가듯이 일시전심한다.
일시에 전심해서 일체세계의 모든 중생이 일시에 오로지 한마음으로 부처님을 보고자 하더라도
실령득견(悉令得見)하야 : 모두 보고
소원개만(所願皆滿)이어니와 : 소원이 다 만족하게 된다.
부처님의 몸을 보거나 이름을 듣고 그 공덕도 찬탄하는 사람들은 부처로 가고자 하기 때문에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
앞에서 복이 적은 사람들은 못 본다고 하지 않았는가?
여기서는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피력이다.
우리 힘으로 안 되는데 은행에 좀 대출을 받아서 레버리지 효과 지렛대 역할로 지렛대가 되어준다, 이 말씀이다.
앞부분에 나왔듯이 분명히 복이 없는 사람들은 영원히 못 볼 것 같았다. 그런데 누구의 가피력으로 보는가 하면 부처님의 위신력과 가피력으로, 대자대비심으로 해서 우리가 그래도 부처님을 얻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힘으로는 화엄경 볼 제가 안 되는데 다행히 노력해 오신 분들이나 부처님의 은덕으로 우리가 보게 됐다, 이런 뜻이다.
*
여기 답이 나왔다.
불자(佛子)야 : 불자야
불신(佛身)은 : 부처님의 몸은 불신은 여래신은
비시소복중생(非是少福衆生)의 : 복이 적은 중생들은
소능득견(所能得見)이요 : 볼 수 있는 바가 비(非) 안 된다.
유제여래자재신력(唯除如來自在神力)으로 : 오직 여래의 자유자재한 신통한 힘으로
소응조복(所應調伏)이니 : 마땅히 조복 받을 수 있는 이는 제외가 된다. 우리는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가피를 입었기 때문에 복이 얇은 박복한 중생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다가 맹구우목처럼 나무 하나 걸쳤다는 것이다.
*
약유중생(若有衆生)이 : 만약 어떤 중생이
인견불신(因見佛身)하면 : 인하여 부처님의 몸을 보게 된다면
변종선근(便種善根)하야 : 변(便) 문득 선근을 심어서 만약 어떤 중생이 부처님을 뵙고는 선근을 심었다.
중생이 할 수 없는 짓을 했다는 말이다.
박복한 중생이 심었다 하면, 그리고 그 선근을 심어놓은 것이
내지성숙(乃至成熟)하며 :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리고 성숙되면
위성숙고(爲成熟故)로 : 성숙된 까닭으로
내령득견여래신이(乃令得見如來身耳)니라 : 여래 몸을 보게 할 뿐이다. 선근공덕으로 보았다, 이런 뜻이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시위여래신제십상(是爲如來身第十相)이라 : 이것이 여래 몸의 열 번째 모양이니
제보살마하살(諸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들은
응여시견(應如是見)이니라 :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여기까지 했던 것을 다 맺는다.
(3) 就法總結
以其心無量하야 徧十方故며 所行無礙하야 如虛空故며 普入法界故며 住眞實際故며 無生無滅故며 等住三世故며 永離一切分別故며 住盡後際誓願故며 嚴淨一切世界故며 莊嚴一一佛身故니라
“그 마음이 한량없어 시방에 두루 한 연고며, 다니는 것이 걸림이 없어서 허공과 같은 연고며, 법계에 널리 들어가는 연고며, 진실한 경계에 머무는 연고며,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연고며, 세 세상에 평등하게 머무는 연고며, 모든 분별을 영원히 여읜 연고며, 맨 나중까지의 서원에 머무는 연고며, 일체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는 연고며, 낱낱 부처님의 몸을 장엄하는 연고이니라.”
*
취법총결(就法總結)
*
이기심무량(以其心無量)하야 : 그 마음이 한량이 없어서
변시방고(徧十方故)며 : 시방에 두루한 연고이고
소행무애(所行無礙)하야 : 다니는 것이 무애해서
여허공고(如虛空故)며 : 허공과 같은 까닭이며
보입법계고(普入法界故)며 : 널리 법계에 들어가는 까닭이며
주진실제고(住眞實際故)며 : 진실한 경계에 머무른다.
진실제경계라고 하는 것은 상구보리도 없고, 하화중생도 없는 것을 진실제라고 한다. 진실제는 무거무래(無去無來)다.
십회향품에 보면 삼처회향(三處廻向)이 있는데, 중생회향(衆生廻向) 보리회향(菩提廻向) 실제회향(實際廻向)이다.
중생회향과 보리회향은 수상회향(隨相廻向)이라, 모양을 따라가는 회향이다. 그런데 실제회향이라고 하는 것은 이상회향(離相廻向)이다. 모양을 떠난 회향이다. 진실제(眞實際)라고 한다.
흔히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 모든 분별심이 끝난 것을 진실제에 머무른다, 진실한 경계에 머무른다고 한다.
법계에 들어간다, 보입법계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법계는 모든 성품이 연기로 일어나 있는 모든 인연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보입법계와 주진실제, 그 두 말이 딱 물고 있다.
허공고(虛空故)다, 이런 것은 이상회향이다.
다 이상회향이겠지만 법계고(法界故)는 상을 떠난 가운데서 수연부감미부주(隨緣赴感靡不周)라 수연한다, 인연을 따라간다. 또 다른 말로는 중생이 물든다고 해서 수염(隨染)이라고 한다. 수염본각(隨染本覺)이라고 물들 염(染)자를 쓴다. 똑같은 뜻으로 수동(隨動)이다, 수염(隨染)이다, 수연(隨緣)이다, 이 세 가지는 똑같이 쓴다. 인연을 따라가든지, 물드는 것 오염되는 것을 따라가든지, 흔들림을 따라가든지 한다.
안 따라가는 것, 허공같이 수동 수연이 안 되는 것은 뭐라 하느냐 하면 부동(不動)이라고 한다. 부동을 다른 말로는 무념무상절일체(無念無想絶一切)라고 한다. 여기서 허공과 같은 것이다.
시방에 두루하다 이런 것은 인연을 따라가는 것이다.
보입법계도 인연을 따라가고 진실제에 머문다는 것은 따라가되 따라가는 바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무생무멸고(無生無滅故)며 : 무생무멸고다, 라고 한다.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연고다.
그 마음이 한량이 없어서 시방에 두루 한 연고이고, 다니는 것이 걸림이 없고 허공과 같다. 법계에 들어가고, 진실한 경계에 머무르고, 무생무멸고라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
부처님의 몸은 무생무멸이다.
반야심경의 6불(不)을 반드시 떠올려야 한다.
무생(無生) 무멸(無滅)이면 무증(無增) 무감(無減)이고 무구(無垢) 무정(無淨)이다. 왜 땟구정물이 묻는 것도, 청정할 것도 없느냐? 본래 없기 때문에 그렇다.
*
등주삼세고(等住三世故)며 : 세 세상에 평등하게 머무른다. 영리일체분별고(永離一切分別故)며 : 세 세상에 평등하게 머무르는 방법은 어떻게 하느냐?
심불망취과거법(心不妄取過去法)이라
과거법에 허망하게 집착하지 말아라.
역불탐착미래사(亦不貪着未來事)라
미래 일에도 또한 탐착하지 말아라
불어현재유소주(不於現在有所住)라
현재 있는 바에도 우쭐대거나 쪼그라들지도 말아라.
요달삼세(了達三世)가 실공적(悉空寂)이라
그러면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끊어진다. 삼세실공적이라.
십회향품에 잘 나오는 게송이다.
서장 같은 데도 참선을 근거할 때 간화선에도 그 게송을 선요나 서장에서 많이 언급한다.
심불망취과거법(心不妄取過去法) 역불탐착미래사(亦不貪着未來事) 여래 몸을 보려고 하면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이라는 말이다.
‘여래의 몸은 어떻습니까? 여여부동이 즉명제불이니라. 부동이라. 움직임이 없는 것이 부처님이다.’
‘움직임이 없으면 부처님을 어떻게 봅니까? 몰라 수동이니라. 움직임을 따라 가야 되느니라.’
이렇게 할 수가 있다.
수동즉시 부동이니라. 그말인즉슨 색즉시공이되 공즉시색이니라, 그렇게 연결이 되어있겠다.
주진후제서원고(住盡後際誓願故)며 : 맨 나중까지의 서원에 머물고
엄정일체세계고(嚴淨一切世界故)며 : 엄정한다. 일체 세계를 장엄하는 연고고
장엄일일불신고(莊嚴一一佛身故)니라 : 부처님의 몸을 장엄하는 연고이니라.
(4) 十種譬喩의 重頌
爾時에 普賢菩薩摩訶薩이 欲重明此義하사 而說頌言하사대
譬如虛空徧十方하야 若色非色有非有와
三世衆生身國土에 如是普在無邊際인달하야
諸佛眞身亦如是하사 一切法界無不徧하야
不可得見不可取나 爲化衆生而現形이로다
譬如虛空不可取라 普使衆生造衆業호대
不念我今何所作이며 云何我作爲誰作인달하야
諸佛身業亦如是하사 普使群生修善法호대
如來未曾有分別하야 我今於彼種種作이로다
譬如日出閻浮提에 光明破闇悉無餘하며
山樹池蓮地衆物과 種種品類皆蒙益인달하야
諸佛日出亦如是하사 生長人天衆善行하며
永除癡闇得智明하야 恒受尊榮一切樂이로다
譬如日光出現時에 先照山王次餘山하며
後照高原及大地호대 而日未始有分別인달하야
善逝光明亦如是하사 先照菩薩次緣覺하며
後照聲聞及衆生호대 而佛本來無動念이로다
譬如生盲不見日호대 日光亦爲作饒益하야
令知時節受飮食하야 永離衆患身安隱인달하야
無信衆生不見佛호대 而佛亦爲興義利하시니
聞名及以觸光明에 因此乃至得菩提로다
譬如淨月在虛空에 能蔽衆星示盈缺하며
一切水中皆現影이어든 諸有觀瞻悉對前인달하야
如來淨月亦復然하사 能蔽餘乘示修短하며
普現天人淨心水하시니 一切皆謂對其前이로다
譬如梵王住自宮하야 普現三千諸梵處하니
一切人天咸得見호대 實不分身向於彼인달하야
諸佛現身亦如是하사 一切十方無不徧하시니
其身無數不可稱이나 亦不分身不分別이로다
如有醫王善方術에 若有見者病皆愈라
命雖已盡藥塗身하야 令其作務悉如初인달하야
最勝醫王亦如是하사 具足方便一切智하야
以昔妙行現佛身하시니 衆生見者煩惱滅이로다
譬如海中有寶王하야 普出無量諸光明이어든
衆生觸者同其色이며 若有見者眼淸淨인달하야
最勝寶王亦如是하사 觸其光者悉同色이며
若有得見五眼開하야 破諸塵闇住佛地로다
譬如如意摩尼寶가 隨其所求皆滿足이나
少福衆生不能見하나니 非是寶王有分別인달하야
善逝寶王亦如是하사 悉滿所求諸欲樂이나
無信衆生不見佛하나니 非是善逝心棄捨로다
그때에 보현보살마하살이 이 뜻을 거듭 밝히려고 게송을 설하였습니다.
비유하면 허공이 온 시방에 두루 하여서
형상과 형상 아님과 있음과 있지 않음과
세 세상 중생들의 몸과 국토에
이와 같이 두루 있어 그지없듯이
부처님의 참몸도 그와 같아서
온 법계에 고루고루 두루 했는데
볼 수도 취할 수도 모두 없지만
중생을 교화하려 형상 나타냈도다.
비유하면 허공은 붙잡을 수 없는 것인데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업을 짓게 하지만
내가 지금 짓는다고 생각 않거니
어떻게 ‘내가 짓는다, 남이 짓는다.’라고 하리오.
모든 부처님 몸의 업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로 하여금 착한 법을 닦게 하지만
여래는 본래부터 분별없으되
내가 지금 온갖 것을 지음이로다.
비유하면 마치 해가 염부제에 뜨게 되면
광명으로 모든 어둠 다 깨뜨려서
산의 나무와 못의 연꽃과 모든 물건과
가지각색 종류가 다 이익 얻듯이
모든 부처님의 해가 뜸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인간 천상의 착한 행을 자라게 하고
영원히 어리석음을 깨뜨리고 밝은 지혜를 얻어
높고 귀한 온갖 낙(樂)을 받게 하도다.
비유컨대 태양이 처음 뜰 적에
먼저 높은 산을 비추고 다음은 낮은 산
나중에는 고원(高原)과 평지를 비추나
해는 본래 분별이 있지 아니하듯이
잘 가신 이[善逝]의 광명도 그와 같아서
먼저는 보살을 비추고 다음은 연각
성문과 다른 중생을 나중에 비추나
부처님은 본래부터 생각이 없도다.
비유하면 배냇소경들은 해를 못 보나
햇빛은 또한 그에게도 이익을 입혀
밤낮의 때를 알게 하고 음식을 받게 해서
온갖 걱정 여의고 몸을 편안하게 하듯이
신심 없는 중생들은 부처님을 보지 못하나
부처님은 그에게도 이치를 알려
이름을 듣고 광명도 받게 되어서
그로 인해 보리를 얻게 되도다.
비유컨대 밝은 달 허공에 떠서
모든 별 가리며 찼다 기울었다 하며
간 데마다 물속에 비친 그림자를
보는 이들 자기 앞에 있다 하듯이
여래의 밝은 달도 그와 같아서
삼승(三乘)을 가리고 길고 짧음 보이며
천신들과 인간 마음 물에 나타나거든
모든 중생 자기 앞에 대하였다 하도다.
비유하면 범천왕이 제 궁전에 머물러 있어
삼천의 모든 범천에 널리 나타내거든
모든 인간 천신들도 모두 보지만
실로는 몸을 나눠 저들을 향하지 않았듯이
부처님들 나투는 몸도 그와 같아서
일체 시방에 두루 하지 않는 데 없어
그 몸이 수가 없어 말로 할 수 없지만
몸 나누는 일 없고 분별도 없도다.
예컨대 어떤 의사가 신기한 약방문을 알아
모든 병 보는 대로 다 잘 고치더니
죽을 적에 임시로 몸에 약을 발라서
온갖 일을 하는 데 예전과 같듯이
가장 높은 의사[醫王]도 그와 같아서
방편과 온갖 지혜 구족하다가
예전처럼 부처님 몸 나타내거든
중생들 보는 대로 번뇌를 소멸하도다.
비유컨대 바닷속 보배왕들이
한량없는 모든 광명 널리 내거든
광명에 닿는 중생은 그 빛과 같아지고
그 빛을 보는 이는 눈이 청정해지듯이
가장 높은 보배 왕도 그와 같아서
그 빛에 닿는 이 그 빛과 같아지고
보는 이는 다섯 눈 모두 열려서
어둠을 깨뜨리고 부처님 지위에 머물도다.
비유컨대 뜻과 같은 마니보배가
찾는 대로 그 마음 채워 주는데
복이 적은 중생들 보지 못하나
보배는 분별하는 생각이 없듯이
잘 가시는 보배왕도 그와 같아서
구하는 이 모든 욕망 채워 주지만
신심 없는 중생들이 부처님을 보지 못해도
부처님은 마음에 버리는 것이 아니로다.
*
십종비유(十種譬喩)의 중송(重頌)
*
열 가지 비유를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
이시(爾時)에 :그때에
보현보살마하살(普賢菩薩摩訶薩)이 :보현보살마하살께서
욕중명차의(欲重明此義)하사 : 하고자 하셨다. 이 뜻을 이 거듭 밝히고자 하신 까닭으로
이설송언(而說頌言)하사대 : 게송을 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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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처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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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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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부처님의 몸을 뵙고자 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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