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일지 #10
템플스테이를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 동안 여러 가지 분주한 일이 많아서 그런지
벌써 한참 전의 일인 듯 느껴진다.
스테이 동안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예불, 108배, 쿤달리니 명상, 걷기 명상, 먹기 명상, 버리기 명상, 삼배 받기, 쑥뜸 체험, 차담 시간 등등…
모두 흥미롭고 새로운 경험이었고 감동적인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가장 많이 떠오르는 건
틈틈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순간들과 개구리 울음 소리를 듣던 순간이다.
어두운 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검게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 속에서 우렁차게 들리던 개구리 울음 소리.
내가 지금 자연 속에 있구나, 하는 알아차림.
낯설지 않은 소리지만 실제로 마주하긴 어려운 소리를 직접 듣고 있구나, 하는 알아차림.
자연의 소리는 거슬리지 않고 밤의 어둠 속에도 수 많은 생명이 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름을 보던 고요한 시간들이 자주 생각난다.
마침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내리기도 해서 산 속 사찰의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덕분에 산을 둘러 싼 풍경 또한 드라마틱했다.
평소에도 구름 관찰하기를 좋아하는데, 구름을 관찰하기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폭우가 쏟아져도 아무 걱정이 없고
천둥 번개가 쳐도 두렵지 않고
비가 내리는구나, 천둥 소리가 울리는구나. 번개가 번쩍이는구나, 하며
그저 알아차릴 뿐이었다.
구름은 어두운 밤에도 흔적을 보이며 흘러갔고
이튿날엔 하루 종일 엄청난 에너지로 활동했다.
산마루를 타고 일어난 안개가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기도 하고
부풀어 커진 구름이 다른 구름과 만나 더 커지기도 하고
거대한 구름이 증발되어 작아지거나 흐려지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살아 움직였다.
구름은 단 한 순간도 그대로 멈춰 있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한다.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생겨나 흘러가고…
구름은 마치 제행무상을 이미지화 한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
생겨난 것은 사라지고, 원인이 있어 결과가 있다.
무심히 구름의 움직임을 바라보듯이
일어나는 일을 알아차리고 그저 지켜보며 흘러간다면 삶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지겠지.
요즘은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언제가는 다 지나간다, 이 또한 사라진다, 좋을 것도 싫을 것도 없다, 길게 보면 지금은 순간이다…
하는 마음으로 대응할 때가 많아졌다.
애쓰지 않아도 절로 그런 상태인 것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명상이 내 삶을 이끌고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명상을 한다고 하지만 좀처럼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아 의기소침해지기 일쑤다.
하지만 이제 겨우 석 달이 지났을 뿐이고
내가 멈추지 않는다면 티끌만큼씩이라도 성장하겠지 하며
오늘도 호흡에 집중한다.
첫댓글 여유님, 템플스테이를 단녀와서 생생하게 체험하고, 자각 했던 한마디 한마디가
우주와 자연, 그리고 한 인간과의 평온한 만남을 여유롭게 쓴 글 잘 보았습니다.
짧지만, 귀한 글 때때로 읽어보기를 바랍니다. 수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