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기 274 - 日本 오사카 시립 주택박물관
3월21일 오사카성에서 오사카 시립 주택박물관으로 갔습니다.
에도시대 후기의 오사카 모습의 단편을 완벽하게 복원하고 있으며, 그 밖에도 메이지・
타이쇼・쇼와 시대의 오사카와 당시의 생활 모습을 전시 및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모노 체험을 나 혼자서 했습니다. 이상원과 목동원은 일본옷을 입는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나봅니다.ㅎㅎ 나는 백제의 옷을 입는 느낌인데...ㅎㅎ
옛날 처음 시작된 현대문물 사진들이 있습니다. 만년필은 명치말년에 처음 나왔고 칠판에
쓰는 분필은 대정원년(大正元年 たいしょう/1912)이라고 써있습니다. 신문물을 빨리 받아
드렸기때문에 일찌기 이런 문물들이 일찍이 사용되었습니다.
삼륜자동차는 소화5년(1931)에 첫선을 보였습니다.
이곳에 에도시대(江戶時代) 한약방이 있습니다. 마치도 내가 원장인것 처럼 앉아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가사끼에 있는 한의원 "우루요스"
이집은 잡화물건을 파는곳입니다.
いらっしゃいませ。 (어서오셔요: 이랏샤이마세) ㅎㅎ
오사카시립 주택 박물관은 키타지역 북동부에 위치한 주목할 만한 시설입니다. 에도 시대와
근대 오사카의 건물과 거리가 재현되어 있습니다.
한의원에서 약초를 가루로 내는 도구입니다. 환(丸)으로 만들때 먼저 약초를 말려서
갈아냅니다. 그때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일제 강점기 이후 일본의 영향으로 일본식 용어인 한방(漢方)으로 불렸으나 해방후 북한
먼저 동의(東醫)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전통의학의 자주성을 강조하자, 우리나라는 한의학의
漢을 韓으로 바꿔표기하다가 1986년에 의료법개정으로 명칭변경이 법제화되었습니다
일본 유일의 에도 시대 도시 전체의 모델이 이 곳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방문객들은 전시물을
통해 에도 시대와 일본 근대의 생활양식을 보면서, 오사카의 발전사를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눈의 띠는 薏苡子(율무), 조각자, 패모 등등 한약재 글씨가 보입니다.ㅎㅎ
마치 에도시대 한의원(원장 이풍원)을 한국에서 이상원과 목동원이가 방문하여 기념 사진
찍는 것 같습니다.ㅎㅎ
이곳 주소는 〒 530-0041 Osaka Municipal Housing Information Center, 6-4-20
Tenjinbashi, Kita-ku, Osaka입니다.
唐高麗물품을 파는 곳으로 그당시는 수입물품 취급하는 곳입니다.
노렌에 "유(ゆ)" 있는것을 보면 이곳은 온천장입니다.
에도 시대(江戸時代 えどじだい) 또는 도쿠가와 시대(徳川時代)는 에도 막부가 정권을 잡은
시기를 가리킵니다. 1603년3월24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이대장군이 되어 에도에 막부를
연 시기를 에도 시대의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1868년5월3일 에도 성이 메이지 정부군에
함락되는 때까지의 265년간을 가리킵니다.
일본은 임진왜란의 과오도 기회 있을 때마다 사과했다고 합니다. 18세기 일본 문인
나와로도는 조선통신사와 대화하는 자리에서 "히데요시 정권은 조선보다 일본에 더 큰
해를 끼쳤으니 어찌 조선의 원수에 그치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조선 선비들의 대응은
'용서하되 잊지는 않는다'였습니다.
통신사들이 조선으로 돌아갈 때면 일본 문사들이 마중 나와 석별의 눈물을 뿌렸다고 합니다.
.
원중거는 '화국지'에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부대 편성, 전쟁에 참여한 장수 이름과 직책,
각 부대가 살육한 조선인 수 등을 세밀하게 기록하고서 "내가 반드시 이것을 기록하려고
한 이유는 곧 그것을 잊지 않고자 한 것"이라고 썼습니다. 그러면서도 일본인들이
"우리에게 복수하려는 건가"라고 물으면 "일본에 대해선 은혜만 있고 원망은 없다"며
양국의 화해를 역설했습니다.
에도 시대 중기인 17세기 후반 ~ 18세기 초반에는 경제 호황기로 국부를 축적하고 국력도
신장해 소위 겐로쿠 시대를 맞았으나, 18세기 중후반 이후 개혁의 실패, 자연재해의 빈발
등이 거듭되면서 문제점이 차곡차곡 쌓이는데, 막번(幕藩) 체제는 임시 방편만 남발할 뿐
제대로 된 대처를 못했습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지방의 강력한 번들이 개혁을 주장하고
지방민의 반란이 거듭되면서 붕괴에 직면하였습니다
결국 1853/54년 쿠로후네 사건(흑선내항)으로 미국의 압력으로 개항한 뒤 격동의 동란기에
빠져 사쿠라다문밖의 변((櫻田門外の變)이 일어나고 번들은 대놓고 막부의 말을 안듣으며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등 사실상 통치능력을 상실하였습니다.
결국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내세운 사쓰마, 조슈 등의 토막(討幕)파 번들과의 투쟁에서 패배하고, 1867년 대정봉환으로 천황에게 권력을 이양하면서 소멸, 이듬해 무진전쟁 (보신(戊辰)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에도막부가 소멸한 1868년은 일반적으로 메이지 유신(明治) 시대의 시작이라 하여 일본 근대화의 출발점으로 여겨집니다.
카메라는 소화4년(1930년)에 등장합니다.
전기다리미는 소화2년(1928년)에 등장하고 만년필은 명치말년(1900년도)쯤에 등장합니다.
원브라더스(이상원, 이풍원,목동원)이가 에도시대 거리를 걸었습니다.ㅎㅎ
에도시대(江戶時代) 오셔서 감사합니다(아리가도 고자이마스) ㅎㅎ
점심에 맛집 덴부라집 "에비노야" 에 가서 "味わい (아지와이)定食(데이쇼쿠)"를 시켜
먹었습니다. "에비노야"는 에비는 새우를 말하기에 "새우의 집"입니다.
"아지와이"는 "맛"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맛정식입니다.
이집도 사람들이 계속 기다리고 있습니다.
간판에 명란젓은 무제한(食べ放題 다베호다이)라고 써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큐가츠"와 이곳에서 먹은 "맛정식"이 제일 맛있게 먹었습니다.
博多(하카타) 후쿠이찌 멘타이코(명란젓)이 "몬도.세레구숀 최고금상"을 12년 연속수상을
하였는데 그 명란젓을 무한 리필하기에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튀김도 바삭바삭 구워서 나오는데 입에서 살살 녹았습니다.ㅎㅎ
일본식 표현으로 "홋뻬가오찌루호도오이시이"(볼이 떨어질 정도로 맛있다)
홋빼(볼)오찌루호도(떨어질 정도) 오이시이(맛있다)
이것이 맛정식입니다. 오랜만에 입맛에 맛는 맛있는 점심을 마음껏 먹었습니다.
특히 명란젓을 계속 먹었습니다. 짜지도 않고 슴슴한 맛으로 하카타(博多)의 맛을 음미하게
되었습니다. 하카타는 후쿠오카를 말합니다.
그곳 주방장입니다.
사진을 찍으니 주방장이 쳐다봅니다. 나는 근데 위의 메뉴를 찍었는데...ㅎㅎ
첫댓글 모델도 출중한데 누가 찍었는지는 몰라도 사진 잘찍었다...ㅎㅎㅎ
맞아 맞아
우리 상원엉아가 잘 찍었지..ㅎㅎ
근데 누드모델이 아니라서..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