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11월 28일 화요일 맑음
오늘 많이 심난했다,
충희가 수시 1차 합격으로 면접을 보러 가야하는 날인데. 그 학교 싫다고 포기를 했다. “그럼 그래라” 허락은 했지만 왠지 마음이 편하지는 못했다.
앞 일을 알지 못하니까.... ‘잘 못 된 결정은 아닐까 ?’
수술 날이 잡힌 것도 한 요인이었지.
처음으로 해보는 수술인데, 네 시간이나 걸린다니....
오른쪽 다리에서 옆과 뒤로 두 군데 수술하는데 두 시간이 걸리고, 왼쪽 다리 한 군데 수술하는데 한 시간 반이 걸린대나. 그래서 10시부터 오른 다리를 수술하고, 두 시간을 쉬었다가 두 시부터 왼다리 수술을 한다네. 그리고 휴식을 취했다가 퇴원한단다. 찢기도 하고, 고장난 핏줄을 뽑아 내기도 하고, 레이져로 지지기도 한다니 말이 그렇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
쫓기듯 수술 예약을 해 놓고 보니 ‘아차, 은행 탈피를 안했네.’ 농기계 은행에서 은행 탈피기를 빌려와서 무거운 은행 푸대를 들어 쏟고 기계를 돌려서 껍질을 벗기고, 햇빛에 널어 말려야지. 마른 은행을 다시 자루에 담아서 광생리 수매장까지 가서 수매를 해야 끝나는 간단치 않은 일이 남았더라.
말을 듣자하니 하지정맥 수술을 한 후에 삼주기 지날 동안은 조심해서 다리를 쓰라 했는데.... 게다가 힘든 물건을 들지 말고, 쪼그려 앉지도 말라던데, 이 걸 어떻게 하나 ? 다음으로 미루자고 했더니 두 딸들이 들고 일어난다.
“충희 시험도 끝났으니 충희 데리고 가서 들라고 하면 되지요. 안 되면 나라도 가서 도와 줄 게요, 예약을 다 해 놨는데 어떻게 바꿔요. 수진이가 있을 때 해야지 아빠도 편하지요. 아빠, 그러다가 안 하고 말려고 그러지요 ? 나중에 부작용이 생기면 어떻게 할래요 ?” 하도 왕왕대니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그 사이에 날이 추워지거나 눈이라도 오면 안 되는데....에이 어떻게 되겠지. 그냥 하자’ 그러니 마음이 찝찝할 수 밖에....
‘이럴 땐 일을 해야지. 뭐라도 꿈지럭 거리면 마음이 편해지지’
먼저 버섯밭으로 갔다. 날이 추워지자 버섯의 자람이 주춤하면서 며칠 동안 가지 않았었다. 추위 속에서도 자라준 고마운 놈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알뜰하게 살펴서 따냈더니 반 푸대는 실히 되더라.
건조기에 넣고 스위치를 올렸지. 잘 마르기를 바라면서....
다음은 마지막 남은 산수유씨 빼기로 달려들었다. 보기에는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지만 작은 열매가 끈닥지게 남아있다. ‘허유 징그러운 놈들, 이래서 산수유 나무가 있는 최선생님네도 아예 따지를 않는단다. 오후까지 힘들게 마쳤다.
확실히 잡념에는 일이 약이었다. 일 하는 동안에는 시름을 잊을 수 있으니까.... 다음에 할 일이 마땅치 않았다. ‘대전으로 떠나기 전에 뭔가 하나는 해야 시간이 맞는데....’ 저온창고에 들어가 봤지.
그런데 바닥에 말벌이 두 마리 떨어져 있네. 저온창고 온도가 높을 때 벌집에서 빠져나온 놈이더라. ‘이놈들 안 되겠다. 얼마나 들어있는지 봐야겠다. 만약에 많이 남아있다면 노봉주 한 병을 더 만들어야겠다’
벌집을 들고나와 겉 껍데기를 뜯어내니 얼어붙은 말벌들이 수두룩하다.
수지맞았다. ‘이 놈들이 깨나기 전에 술을 담그자’ 부지런히 서들렀다. 추위로 기절해있는 벌들은 조금만 따뜻해져도 정신을 차리고 날아간다.
먼저 병에 술을 약간 넣고 벌들을 집어넣으면 날아오르지를 못한다. 한 마리, 두 마리 셀 새도 없이 손으로 집어 부리나케 넣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한 두 마리 꼼지락 거리기 시작하니 마음이 더 급해졌다.
이백 마리는 될까 ? 한 병에 넣을 용량은 넘는다. 그 위에 30도 소주를 부어 한 병을 채웠지. 벌들과 사투를 벌이지 않고도 얻게 된 귀한 술 한 병이 얻어졌다. 창고의 선반위에 올려놓으니 그럴듯해 보인다.
빈집을 본 보겸이 엄마께서 “벌집을 삶아 그 물을 먹으면 풍을 예방한데요. 비닐봉지에 잘 싸 뒀다가 쓰세요” 하신다. “그래요 ? 그럼 그렇게 하죠” 비닐봉지에 싸서 선반에 올려 놓았지. 내 창고에 하나씩 쌓여 나가는 게 흐뭇했다.
이젠 대전으로 떠날 시간. ‘그래 집에 가서 충희하고 술 한 잔하자. 애들 술 버릇은 어른이 가르친다고 하지 않나’
“충희야. 아빠 지금 출발하는데, 오늘 아빠랑 술 한 잔 하자” “술요 ? 아빠, 왜 그래요 ?”
어리둥절 한가 보다. 그래도 아빠랑 처음해보는 술지리가 기다려지나 보지.
맥주 두 병, 노가리, 콜라 한 병을 사들고 들어갔지. 콜라는 막내 몫이다.
남자들끼리만 모였지. 삼 부자가....
삼 부자가 처음으로 술 병을 놓고 둘러 앉았다. 충희에게 술잔 따르는 법, 고개 돌려 마시는 법, 술 먹고 주정하지 않는 법 등을 가르치고, 셋이서 건배를 했지. ‘우리 아들이 벌써 이 만큼 컸나 ?’ 가슴이 뿌듯해지더라.
콜라를 들고 건배를 따라하는 충정이도 기분이 좋은가 보다. 콜라 한 잔을 마시더니 제 자리가 아닌 줄 알고 얼른 일어선다.
맥주 두 잔을 마신 충희가 “아빠, 나 졸려요, 자야겠어요”하네.
“그래 술을 먹으면 주정부리지 않고 자는 게 제일 좋아”
나도 얼근한 김에 자리에 누웠다.
할머니와 하룻밤 더 자고 온다는 수진이는 내일 새벽에 떠난다네. 우리 엄마 행복하실 거다.
내일 수술을 생각하면 쉽게 잠들지는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