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두번째 방문이다. 언젠가는 경주에 있는 유적지를 다 보니라 생각했지만 쉽지 않은 곳이다.
경주 방문은 수원지기학교가 문화재지킴이로서 상을 받는 것이어서 더욱 의미있는 출발이었다.
비록 짧게 수원지기학교와 인연을 맺었지만 나 또한 뿌듯한 마음이었다.
경주에 동국대학교 100주년기념관에서 시상식이 이루어졌다. 시상은 수원지기학교. 곤양초등학교, 보문고등학교,
삼일고등학교, 양서고등학교가 받았다. 민간단체은 수원지기학교가 유일하니 얼마나 기쁜가....
시상후 우수 활동사례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처음은 곤양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나오셔서 발표를 했다.
발표 중 매끄러운 진행이 안 된 점도 있었지만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보면서 원석이,주원이가 다니는 학교는
왜 이런 열정이 없을까 생각이 들었다. 양서고등학교는 학생이 나와서 발표를 했는데 "영서 역" 이란 명칭으로
활동하고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발표중 몽양 여운형에 대한 UCC와 고지도 전시회가 인상이 깊었다.
끝으로 수원지기학교 신영주선생님의 발표가 있었다. 보는 동안내내 기분이 좋았다. 나뿐아니라 우리 수원지기학교
소속으로 간 선생님, 학생들 모두 그런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이 든다.
활동했던 사진들을 보니 그때가 새록새록 떠오르며 수원지기학교에 인연을 맺게 해준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어서 직접 참여해보는 시간이 있었다. 청소년문화재지킴이단 애칭, 표어 만들기 / 중요무형문화재 제 76호 택견 배우기
중요무형문화재 제 25호 영산쇠머리대기 실연이 있었다.
택견은 부드러움속의 날카로움이 숨어 있는 무술인 것 같다. 배우는 동안 왜이리 유연성이 없는지 실감, 운동 확실하게 되었다.
영산쇠머리대기는 명칭부터 생소했다. 영산은 경상남도 창녕군 14개 읍면 중에 한 면이다.
쇠머리대기는 영산지방에서 생겨나 영산지방에만 전승되어 오는 놀이이다. 쇠머리대기의 전초전으로 서낭대 싸움이 있다
이때 풍물패가 나와 흥을 돋고 진잡이 놀이을 하는데 대나무에 깃발을 달아 놀이를 한다. 드디어 결전과 승부를 내는 싸움이
시작 동부와 서부의 쇠머리를 어깨에 메어 올리고 서로 부딪치면서 승부를 낸다. 신명나게 풍물소리가 나고 긴장감까지
감돌고 조금 걱정도 되었다. 명훈이가 장군이 되어 겨루고 있으니 명훈이에게는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 같다.
식사를 하고 숙소로 이동하여 약간의 휴식을 갖고 신라문화체험장에서 국악공연을 보았다.
아쟁, 해금, 가야금(25줄), 대금, 태평소 등 전통악기의 아름다운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소원을 적은 등을 들고 분황사에서 탑돌이를 했다. 등에 촛불을 켜고 분황사석탑을 세바퀴 돌면서 소원이 이루어지게
빌어야 하는데 석탑만 자세히 보려고 했다. 소원은 이루어질까 싶다. 분황사는 선덕여왕이 만든 사찰이며 신라 왕실의
소원이나 명복을 비는 원찰이라 한다. 선덕여왕은 당시 남성 위주의 정치문화 속에서 여자가 왕 노릇을 하기에는 반대 세력이
많았다. 따라 왕권 신성화 작업의 일환으로 분황사와 분황사석탑, 황룡사구층탑 등의 대공사를 실시하여 왕의 권위를 세우고
통치 능력이 있음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노력도 담겨 있다.
등을 켜고 안압지를 한바퀴 돌았다. 안압지를 돌때 다른 관광객들이 잘못 돌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도 처음에 왔을때
반대로 돌았었다. 제대로 돌수 있도록 설명문이나 안내가 필요할 것 같다. 다 돌아보고 등으로 문화재사랑으로 글씨를
만들어 사진을 찍었다. 이제는 숙소로 하루에 많은 일정이다. 피곤이 몰려 온다.
다음날 이른 아침을 먹고 체험과 답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갔던 신라문화체험장에 가서 부채만들기, 탁본뜨기, 초콜렛만들기, 비누만들기 4가지 체험을 했다.
체험을 마치고 답사로 이어졌다. 답사코스는 첨성대, 반월성, 대릉원이다.
첨성대는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알려져 있다.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 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를 올리고 맨위에 정자형의 정사부를 얹은 모습이다. 내물왕릉과 가깝게 자리 잡고 있으며, 높이는 9.17m이다.
원통부의 27단은 27대 선덕여왕을 의미하고 창문3단을 빼면 24절기를 의미한다.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나와 있어 벽면이 고르지 않다. 벽돌의 수는 362개이다. 음력기준으로 할때 1년을 나타낸다고 한다.
첨성대를 나와 월성가는 길에 계림이 있어 설명을 들었다. 계림은 김알지 탄생설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꽃길과 박터널을 지나 월성으로 이동 월성은 신월성, 재성, 반월성으로 불리며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파사왕 22년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전한다. 이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었으며,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 임해전, 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어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탈해왕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월성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석빙고도 있다. 예전에 갔을때는 정말 시원한 바람이 불었는데 지금은 석빙고란 이름만으로
여기가 석빙고였구나 생각할 정도이었다. 석빙고는 지붕이 반원형이며 위에는 환기통이 3개가 있는데 뜨거운 공기가 밖으로
빠져 나갈수 있게 만들어졌다.
대릉원 안에는 미추왕릉, 황남대총, 천마총을 비롯한 23기에 달하는 고분이 있다. 대릉원이란 이름은 삼국사기에
"미추왕을 대릉에 장사지냈다 "라는 기록에 의해 부르게 되었다.
황남대총은 부부로 추정되는 2개의 둥근 무덤이다. 박정희대통령시절 황남대총을 발굴하라하였다. 그런데 그때까지
우리 학자들이 발굴해 본적이 없어 작은 무덤부터 시험삼아 발굴하게 되었다. 그 무덤이 천마총이었다.
천마총은 대릉원내에 유일하게 개방되는 무덤이다. 작은 무덤인데 많은 유물이 나왔다한다 그중에 천마를 그린 말다래가
출토되어 천마총이름으로 불린다. 말다래는 말이 달릴때 흙탕물이 튀는 것을 막아주기 위한 가리개이다.
한때 천마가 아니고 기린이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본다고 했는데 못 물어보았다.
선생님 알려주세요.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신라" 식당에서 뜨거운 불고기 전골을 맛있게 먹었다.
버스를 타고 동국대로 이동해서 우리는 수원으로 출발하였다.
1박2일 짧은 기간동안 너무나 알찬 일정에 경주의 좋은 기억을 다시 새기게 되었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 선생님 고맙습니다.
첫댓글 좋은 인연맺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기린이라는 설은 상상의 동물 기린을 말합니다. 기린의 이마에 뿔이 있답니다. 천마도그림을 정밀조사하니 천마이마에 뿔이 그려져있던 흔적이 나타나서 기린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기린이나 천마나 모두 상서로운 기운을 가진 상상의 동물이니 쉽게 바꾸긴 어렵지 않을까요?^^
선생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선생님이계셔 든든합니다~~~~쭈~~~욱 함께 할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