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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항산은 정상에 돌이 많아 돌더미산,
넓적한 관(棺) 모양의 바위가 있다고 해서 각데미산,
6,25 전쟁때는 몸서리 처진다며 갓뎀...갓데미산
그리고 현재의 여항산에 이르기까지 이름도 다양했던 함안과 마산의 경계인 산이다,
6,25 전쟁때인 1950년 8월 21일에서 9월 14일 미국이 북한군에 맞서 싸운 낙동강 방어선인 워커라인에 속했던 방어산, 전투산,
여항산 고사리마을, 서북산, 인성산까지 치열하게 싸워 마산 지역을 지켜낸 역사의 땅이기도 하지만
그해 7월 여항산 아래 여양리 민간인 학살사건 나라를 지키고 민간인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던 군인들이 민간인을 죽인 사건이 있었던 곳이다.
이번 하천은 낙남정맥의 맹주 격이며 본격적인 조망이 펼쳐지는 창원과 함안의 진산인 여항산 서쪽 계곡에서 발원하는
맑은 진전천으로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 지리산과 철쭉나라 황매산이 그리고 진주의 월아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고
남쪽으로 거류와 백방 그리고 미륵산과 거제의 산들이 보인다.
고개를 돌려 동쪽으로 보면 정맥길의 봉화와 광려 그리고 무학과 대암산이 있다
다시 북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여항면과 창녕의 화왕과 비슬산까지 조망되는데 조망으로 따진다면 나무랄 데 없는 산이며
여항산 주위로 한티재에 이르기까지 봉화산 서북산 인성산. 전투산을 거느리고 있다
이른 아침 경남 고성군 혜화면 배둔에 도착해서 택시로 마산시 합포구 진전면 둔덕마을 느티나무와 정자 앞에 내린다
가을 날씨인지 늦여름 날씨인지
두 눈을 감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몇 바퀴 빙빙 돌고 나면 여름인지 가을인지 모를 것 같다
이곳 마을은 6,25전쟁기간에 미군과 북한군이 치열하게 싸웠던 장소이기도 하지만
국군에 의해 민간인 200여명 이상 학살된 곳이라 관련 자료를 많이 찾아봐야 하는곳이다
장소는 진전면 여양리 420.421번지 (지금의 둔덕마을 회관에서 90미터가량 떨어진 곳)
여양저수지 바로 좌측 위 (여양리 산 273-1번지와 275-1번지)
아래 지도 참고
여항산 올라갔다가 내려올 진전천 발원지 옹골 계곡으로 맑은 물이 흐르고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여항산으로 가장 빨리 오를 수 있는 큰골로 향한다
큰골 초입의 폐광
철대문으로 굳게 막은 곳인데
일제가 사용하다가 이후에 해방이 되고 민간기업이 사용하던 곳인데 지금은 폐광이 되어 철문으로 막아두었는데
이곳에서도 민간인을 총살했던곳이다
폐광에서 좌측 보이는 희미한 등산로 따라 오르면 큰골로 향하는데 오고 가는이가 없으니 등로는 떨어진 낙엽으로 인해 겨우 보일 듯 말듯한데 비 온 다음이라 수량은 많고 단풍이 곱다
여항산이 이름난 명산이라면 이곳에도 멋진 등산로가 있겠지만 경치에 비해 등산로가 없다는게 흠이라면 흠이다
수없이 많은 나도폭포을 지나며
이런 곳은 장화처럼 목이 긴 신발을 신고 오르거나 내리거나 그렇게 해야 하건만 이른 아침에 급하게 나오다 보니
장화를 준비하지 못해 계곡 옆길 따라 오른다
오르면 오를수록 경치가 좋고
비 와야 폭포의 높이도 천양지차(天壤之差)
이쯤에서 희미하던 길은 없어지고 경사진 비탈길을 올라, 크고 작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는데
땅바닥에 떨어진 솔잎 사이로 이름을 알 수 없는 하얀 버섯이 지천으로 자란다
여항산 단풍
헬기장(국기봉) 아래의 돌무더기
아마도 여항산성터 같은데...
여항산성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함안땅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아라가야시대나 삼한시대의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참고로 함안군의 말이산 아라가야 (12개국 중의 하나) 고분군
5세기에서 6세기 약 100년간 조성된 가야국 지배층의 무덤인데
가야시대의 대표적 고분군이 자리하는 말이산 능선 1km가량 따라 127기의 봉토분과 1천여기 이상의 중소형 고분군이 밀집되어 있다.
여항산 헬기장에 철쭉이 더러 피어있어 가을과 봄 사이를 왔다리 갔다리 한 느낌이 들고
조망 좋은 여항산 주변이건만 산객은 전혀 없다
여항산 헬기장
낙남정맥 여항산
예전에 없던 나무테크가 깔려있는 여항산은 함안의 진산이며 낙남정맥 주산(主山) 이기도 하다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함안은 물이 역류하는 특이한 지세로, 이런 역류지형을 바르게 하고자 훤하게 트인 진동만이
함안까지 들어왔다면 천하제일의 미항이 되었으리라...
그래서 배가 다닌다는 뜻으로 여항(餘航) 자를 써서 여항산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진주시와 고성군을 거쳐오는 도중에 조망이 없다가 발산재 이후 본격적인 창원을 만드는 곳으로
사방팔방 조망이 보인다
둔덕마을과 올라온 큰골이 발아래 있고
도로 따라가며 도둑골이 길게 이어지며 멀리 진주의 월아산과 장군대산이 특별하게 보인다.
언젠가 다시 찾을 여항산
6,25 전쟁 기간 동안 낙동강 방어선이었던 워커라인 능선으로 마산이나 부산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던 여항산
다시 찾는다면...
미산재와 전투산인 661고지가 보이는데
6,25 전쟁 때 미군과 북한군이 3일 동안 19번이나 뺏고 뺏긴 곳이다
낙남정맥길에 있어 한발짝 물러난 곳에 있어 찾아보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함안의 661고지와 서북산 일대는 남하(南下)하는 인민군에게는 낙동강 돌파의 교두보였고 아군에게는
낙동강 방어 보루여서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였기에 피아간 많은 사상자를 낸곳이기도 하다
남해로 흘러드는 진전천은 여항산 헬기장봉(峰) 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진전면 일대를 지나 남해로 흘러드는
맑고 깨끗한 하천이지만 6,25 전쟁과 같은 해 7월 여양면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붉은 피가 하천 따라 흘렀던 20km의 짧은 하천이다
헬기장봉 서쪽 계곡인 경사진 옹골이다
전날 비가 와서 물기를 머금은 낙엽과 자갈돌이 많이 미끄럽다
하천 194개 누적거리 1만 0,576km
등로에서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물이 졸졸 흐르지만 갈수기 때는 어떤지
정맥길에 물 구한다고 내려오지 않기를 바라며
내려온 곳이건만 온통 축축하고
내려가야 할 곳에 나무가 어서 오라며 무지개다리를 닮은 아치를 만들어 놓았고
가을은 가을다워야
중턱쯤 내려왔을까 두 눈을 동그랗게 뜬 폐광이
무섭게 노려보는듯하다
아마도 일제강점기 때 광산으로 사용하고 폐광이 된듯한데
깊은 산중이라 무섭다는 생각만 든다.
인증 한 장 담아보려 들어 가는데
천정에서 물이 쉼 없이 떨어지고
어둠침침한 굴속으로 깊이를 알 수 없다
행여나 금붙이라도 하나 주울까 하여 허리를 굽혀 보려다..,
밖에서 본 폐광
마귀할매가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다
맑은 물은 본연의 본능대로 아래로 흐르는데
졸졸 물소리가 정겹다
폐광 아래 두 물이 합쳐지는곳에 사람이 살았거나 잠시 거주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어 바닥을 살펴보니 사기그릇 파편이 보인다
사람이 거주했던 곳인데
이쯤에서 묵은 길이라도 보여야겠지만
잡목만 가득 있고
나도 폭포에서
또다시 물은 흐르고
내려온 곳인데 그런대로 다닐만하다
두 번째 폐광지역으로 이곳은 굴은 입구를 반쯤 막아놓았고
주위에는 돌담인지 길인지 사람이 쌓은 흔적이 보인다
굴을 막은 것은 아마도 더 이상 나올 것이 없어 묻었거나 훗날 다시 파내기 위해서...
그것도 아니라면
폐광에서 나온 흙과 돌로 만든 돌무더기
암반을 가로질러가니 최근에 누군가 다녀갔는지
낫으로 잡목을 잘라 등산로 비슷하게 만들어 놓아 그나마 다니기 편안하다
시멘트 방수포가 보이고 산아래 마을로 가는 임도길이 나오는데
이제 편한 길이 이어진다
여항산으로 오르고 내리고 시간이 늦은 만큼 빠르게 진행해야 해지기 전에 바다를 볼 수 있을 것 같고
낙남정맥 마루금과 보은사의 극락전이 보이는데 마치 가정집처럼 생긴 곳
극락전에는 극락정토에서 늘 중생을 위해 설법을 하고 계시는 아미타불 부처님을 모시는 곳이다.
여항산 미산봉인 듯
그리고 지나온 계곡과 손바닥만한 밭에는 늦가을? 초겨울임에도 푸르름을 자랑하는 불량감자 가족이
가을햇살인지 초겨울 햇살인지 종잡을 수 없는 날씨 속에 무럭무럭 자란다.
지난날 새벽녘에 풍기던 소똥 냄새를 감자찌는 냄새라고 하던 분이 계셨는데...
둔덕마을 할머니께서 씀바귀를 뜯어놓고 다듬고 계시는데
잠시 말씀 나누고
태초에 세상을 만드셨던 마고할미의 커다란 돌망태 자루에 구멍이 생기셨나
멀리 서해 바다 파도리에 수많은 돌을 뿌려 놓으셨더니 이곳 골짜기에도 돌 천지다
오래전 이곳 마을에 터를 잡고 사셨던 어르신들께서 얼마나 힘들게 일을 하셨는지
돌담장을 보면서 고단하고 피곤했던 삶을 느껴본다.
아침에 올라갔던 곳으로 다시 내려와
둔덕마을에서 본 여항산
마을에서 멀리 산을 보는 조망이 좋은 곳이건만 뭔 놈의 전깃줄이 이렇게 많은지 보이지 않는 바람을 잡을 일이 있나
이곳 마을부터 아랫동네 여양리 옥방골까지는 88년 무렵까지 함안군 여항면에 속했으나
행정 구역 개편 때 마산시로 편입된 곳인데 태풍 루사가 전국을 강타했을 때
이곳에서는 산사태로 인해 유골 수십구가 쓸려 내려와 발굴했는데 (1950년 7월 국군이 죽인 민간인 학살사건)
유골 200구가 넘는 시신이 구덩이에 묻혀있었다고...
그래서 그런지 한때는 소복을 입은 귀신이 돌아다는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나돌던 마을이기도 하다
여양저수지
물빛은 초록빛이고 한가로운 시간에 세월을 잡는 강태공 한분쯤 있기 마련인데
이곳에서는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는듯하다.
제가 사진을 담은곳 바로 뒤편이 민간인 학살했던 장소이다
논 둑에는 논을 일구면서 골라낸 돌을 모아서 정성껏 쌓아 만들었는데 일명 돌담마을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성(城)을 쌓은 듯하면서도 모자이크 처리한 것처럼 보이는데
앞의 논은 농사를 짓지 않는지 잡풀이 무성하다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건 시골뿐만 아닌듯한데 전국 228개 시, 군, 구 중 52곳이 소멸지역이라 이곳은 물론
제가 태어난 고향 의성도 인구 소멸지역이다.
결국은 서울로 가지 않으면 모두 소멸이라는... 이야기다
지나온 하천길과 도둑골 따라 좌측 산 아래는 성을 쌓은듯한 돌담이 이어지고
예전에 다니던 길인지
하천 옆으로 돌담길이 길게 이어져 내려오는데
보이지 않을 듯하면서 자주 보인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밀성박씨 쌍효자비(䨇孝閣)가 두 개가 나란히 있는데
첫 번째 창효각(彰孝閣)이다
밀성박씨 박의진의 셋째 아들 박준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건물로써
주위에 돌담이 매우 인상적이다.
쌍효자비(䨇孝閣)
내력은 밀성박씨 문중의 박의진 부부가 고종 때 정부로부터 효자를 공인한다는 교지를 받은 뒤 세워진 건물이다.
두건물은 같은 듯 다른 듯 돌담의 보호를 받으며 서있다.
물은 아주 깨끗한데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 물 맑기라면
여름철 아이들 데리고 와서 물놀이해도 피부병에 걸리지 않을 곳이다.
고사리마을 앞의 느티나무
앞에 조그만 산은 고사리마을 입구의 산인데 6,25 전쟁 때 치열하게 싸웠던 곳이다.
지도 참고
고사리 마을은 북한군이 서북산과 인성산 여항산을 오르기 위해서 꼭 빼앗아야 할 산임에 틀림없고
현지의 고사리(거락리) 마을은 인성산으로 오르기 위해서 빼앗아야 할 산이다.
피아간 5천 명 사망한 전투지역
맑은 물 위로 윤슬이 반짝이고
하천가로는 길이 없어 도로 따라가며
논 가운데 돌무더기가 작은 산을 이루었는데
논가운데 작은 산처럼 보이는 곳은 돌무더기로
이곳 주위에 돌이 너무 많아 모아 쌓아둔 곳이다
앞에도 산이고 옆에도 산이고 뒤에도 산인 여양마을을 지나서
동네를 지나며 밭에 다녀오시는 어르신을 만나서 궁금한 건 모두 여쭈어 보는데
돌무더기와 6,25 전쟁에 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감사한 걸음이었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골라낸 크고 작은 돌을 이리저리 치우다가 결국 한자리에 모아 두었다는 말씀과
이곳 말고 다른 곳에도 돌을 모아둔 곳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것 두개뿐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천가에 범상치 안은 큰 절벽이 보이는데
슬픈 전설 하나쯤 있나 싶어 밭일하시는 분께 다가가 여주어보니 큰들바위이며
특별한 전설은 없는 대신 예전에 학교 선생님 한분이 저곳에서 힘든 삶을 마감하셨다는...
영양의 장파천처럼 맑은 하천으로 한여름에는 피서객들이 엄청 올 것 같고
훗날 전원생활을 꿈꾸는 분이 계시면 이곳 마산시 진전면에 들어와 사는 것도 아주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거락숲
진전면 고사리 마을 인근에 있으며 몇 백 년 된 왕버들이 인상적인데
조선시대 때 홍수가 발생하여 제방둑이 무너지자 관찰사가 제방을 보호하려 심은 것들로 모두 51그루가 하천을 중심으로 자라며
400년 된 왕버들도 보인다.
창원시를 지키는 관문격인 적석산이 보이며
오늘 늦게 왔더니 해가 지는듯하다
진전천과 적석산 맞은편으로 준봉산이 보이고
봄인 듯
하천가로 수십 그루의 벚나무가 초겨울이건만 용감하게 꽃을 피웠고
노란 국화밭을 지나니 국화향이 너무 좋고
조금 전에 벚꽃이 피었더니 이제는 가을국화가 노랗게 질린 얼굴로 산객을 맞이한다.
7미터가량의 절벽이 있는 곳은 용대미라는 곳인데 캠핑객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용대미 전설은 용이 살았다고 용대미라고 이름 지어졌는데
용을 본사람은 아직 한 사람도 없고 수심은 깊어 보이는데
여름철 아이들이 사고가 나자 바위로 바닥을 메워 지금은 그렇게 깊지 않다는 이야기다.
진전천에 치어 방류를 했다는데 어떤 물고기를 방류했는지...
해는 넘어가고
추수가 끝난 텅 빈 들판을 가로질러
해는 넘어가고 진전천이 남해 바다에 들어가는 진전면 율티리에서 짧은 20km의 하천을 마친다.
진전천을 찾고자 한다면 6,25 전쟁 낙동강 방어선이었던 전투산 661 고지와 여항산, 서북산, 그리고 인성산 주변
그리고 여양리 민간인 학살 사건을 공부해 가시면 많은 도움이 되며
진전천의 물은 아주 깨끗하니 국내의 이름난 여러 하천과 견주어도 전혀 속색 없는 하천이라 할 만하다.
다음 하천은 한양땅 북악산 서쪽 계곡에서 발원하는 청계천으로
첫댓글 남해 진해만으로 흘러드는 진전천...
지도를 펴 놓고 후기 보니.. 물이 맑을 수 밖에 없을 듯 싶어요.
주위에 모두 산이며... 남해로 바로 흘러 드는 물길~
주위로 온통 산이 많기도 많네요.
마귀할머니니... 기가 막힌 표현에 엄지척~ 해 봐 드립니다.
늦은 저녁까지 걸음하시느라 욕 보셨네요.
후기 덕분에 꽃길 가득했던 마창진길도 떠올려 봅니다.
진전면은 창원시 서쪽의 고성과 경계를 이루며 살다 보니
주위로는 온통 산이지만 물은 아주 깨끗한 동네였어요
마참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봄에 보는 꽃들도 피어있었기에
즐거운 길이 되었고...
글 감사합니다.
노브레인의 NC응원가 마산스트리트 가사에
"콜라빛나는 바닷물이 흘러흐르고"가 나오죠.
진전과 붙어있는 진북, 진동, 그리고 마산 가포는 예전에 냄새나고 더러운 바닷물로 유명했는데 진전천이 전국에서 드물게 깨끗하다니 너무 반갑네요.
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하고
또 그 국군이 나라를 지키기위해 치열하게 싸운 곳...
사진으로만 보아도 저 산 언저리, 저 계곡물 한 줄기에 깊은 슬픔이 느껴집니다.
나도 폭포, 비와야 폭포.. 방장님의 작명 센스 엄지척 👍 입니다.
아 그리고 저기 상류든 하류든 다슬기 진짜 많아요~~~
진전면으로 자주 가시나 본데
설마 다슬기 잡아서 생활 하시는건 아니시겠죠
글 감사드리구요 언제 얼굴 한번 봅시다
이 음악 좋네요 ㅎㅎ
여기 어디서인가에서 전화를 주셨군요.
낙남정맥길 준봉산의 추억이 진하게 남아있어
더 반갑구요.
언제나 그렇듯 글 잘보고 갑니다.
다음 행선지인 대천의 후기글이 빨리 보고 싶어집니다^^
여항산 골짜기가 너무 좋아서 한번 가보시라 추천 해드렸습니다.
나도 폭포와 비와야 폭포가 많으나 비 오고 난 다음날이 좋겠죠
대천은 아직 청계천 다음이라 조금 기다려야 하는데
가을산행 멋진 산행 하시구요 낙엽길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여항산에 그렇게 깊은 아픔이 서려있는지 몰랐어요.
아름다운 자연이 그 모든 슬픔을 덮고 있었군요. 공부 잘했습니다.
빡센 여항산 오름길에 비해서
옹골로 내려오는 길은 여유가 있어보입니다.
비온 다음날이라서 그런지 계곡의 풍경도
본연 그대로의 모습이라 더 정감이 가네요.
맑고 깨끗한 물과 여유로운 풍경이
강행기의 본연의 의미를 일깨워주는것 같습니다.
도심지를 가로지르는 청계천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도 보면서 여항산과 다녀오신 하천을 봤습니다. 큰골, 여항산헬기장, 보은사는 찾았는데 나도폭포는 지도에 나오지 않더라구요!ㅎㅎ 하천이 바로 바다로 빠지더라구요! 그런곳은 풍천장어가 올라올수도 있긴합니다.ㅎㅎ 믈론 낚시는 모르지만요! 후기 잘 보고 갑니다.
다음은 청계천 발원으로 가신다니! 후기가 기대됩니다.ㅎㅎ
항상 안산즐산하십시오. 방장님~^^
그나마 요즘은 계곡의 물들이 좀더 깨끗해 보이는듯 합니다 계절적 요인도 좀 작용 하겠지요 역사에 묻힌 여항산 잘보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