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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한민족사 |
세계사 |
비고 |
1975 |
운요 호 사건 |
영국, 수에즈 운하의 주권 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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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
강화도 조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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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 |
한미 수호 통상조약 조인 한영 수호 조약 조인 한독 수호 조약 조인 임오군란 제물포 조약 조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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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 |
갑신정변 |
청프 전쟁 |
~1885 |
1893 |
동학 교도 2만여명, 충북 보은에 집결 |
디젤 기관 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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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 |
전라도 고부 군민, 항쟁 일으킴 동학 농민군, 전주성 입성 군국기무처 설치(갑오개혁 시작) 전봉준 체포 |
청일 전쟁, 엥겔스 자본론 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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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 |
을미개혁, 삼국간섭 |
시모노세키 조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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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 |
독립 신문 창간 독립 협회 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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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 |
국호를 대한 제국으로 고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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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 |
동학 교주 최시형 처형 독립협회, 관민 공동회를 개최하고 헌의 6조를 상주 독립협회 해산 |
아메리카와 에스파냐 전쟁 파쇼다 사건 중국의 무술정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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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 |
한일 의정서 조인 영국인 베델과 양기탁, 대한 매일 신보 제 1차 한일 협약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재정, 화폐 정리 |
러일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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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 |
고종의 특사가 루즈벨트에게 독립 청원서 전달 을사 조약 조인 민영환 자결 의병항쟁, 각지에서 발발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 |
러시아와 일본, 포츠머스 강화 조약 체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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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 |
초대 통감 이토히로부미 부임 |
일본, 남만주 철도 주식 회사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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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 |
신민회 결성 헤이그 특사 파견 정미의병 고종 황제 퇴위, 국채 보상 운동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 군대 해산 조칙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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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 |
전명운 장인환, 스티븐스 암살 일본, 동양 척식 주식 회사 설립 |
청, 서태후 사망 런던 제 4회 올림픽 대회 개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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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 |
안중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 저격 한국 은행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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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 |
안중근, 순국 국권 피탈 조선 총독부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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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 |
조선 토지 수용령 공포 조선 교육령 공포 105인 사건 (신민회 사건) |
신해혁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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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 |
대한인 부인회 하와이에서 조직 안창호, 샌프란시스코서 흥사단 조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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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 |
박용만, 국민 군단 조직 (하와이) |
제 1차 세계 대전 발발 파나마 운하 개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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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 |
세브란스 의학 전문 학교 개교 |
영국군, 세계 최초 탱크 사용 아인슈타인, 일반 상대성 이론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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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 |
이광수의 무정, 매일 신보에 연재 창덕궁 화재 |
독일 무제한 잠수함 작전 러시아, 2월 혁명 러시아, 10월 혁명, 소비에트 정부 수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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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 |
조선 식산 은행령 공포 상하이에서 신한 청년당 조직 토지 조사 사업 완료 |
윌슨, 민족 자결주의 선언 소련, 대독일 단독 강화 조약 체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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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이 가졌던 자기 믿음에 대한 확신 또한 '앎'에서부터 나온 自信感이겠지요. 사회를 개혁하려는 意識의 自覺도 '知'가 先行되어야 가능한 것이고요. 배움의 重要性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진리를 서재필이 다시 한번 되짚어 주었네요. [민족과역사] 수업 시간을 통해서 '정말로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결론을 매시간 내립니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서재필이 獨立新聞과 獨立協會를 통해 한국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先覺者이기 때문입니다. 서재필이 깨어있는 意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많이 알고 있었고, 그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현실의 모순점을 지각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意識을 가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依存하지 않고 여러 가지를 배우고 努力한 결과가 바로 서재필이라는 인물로 집약된 것입니다.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우고, 그것을 단순히 머릿속에 암기하고 있는 지식으로 머물게 하지 말고
현실 속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우리도 진정한 知識人, 敎育者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서재필은 시대를 올바르게 읽는 눈을 지녔고 현실에 대한 批判과 問題意識을 가졌으며 자기 信念에 대한 確信도 가지고 있었죠. 그러나 그것을 생각만 하고 비판하는 것에만 그친다면 아무런 進展도 發展도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들을 서재필은 그대로 實踐에 옮겼고 改革에 그대로 反映했기에 그 시대에는 물론 오늘날에도 진정한 先驅者, 知識人, 敎育者로서 인식되고 기억될 수 있는 것이죠. 우리도 생각만 하거나 말로만 떠든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도 비판했던 공리공담을 우리 자신이 하게 되는 꼴이 됩니다. 그러므로 배운 것을 잘 받아들이고 그것을 實踐에 옮기려고 노력할 때 積極的인 삶의 자세를
실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생각만하고 -> 생각만 하고 2) 오늘날에도.....있었던 것이죠. -> 오늘날에도.....있는 것이죠.
수정하였습니다.^^
서재필이라는 한 人間에 대해 가장 감명 깊었던 점은 그가 甲申政變의 失敗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서 改革을 시도했다는 점이었습니다. 甲申政變의 失敗는 결코 작은 失敗가 아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 失敗에 대해 自責하며 세월을 보냈을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서재필은 失敗를 克復하고 그러한 경험을 오히려 자기 發展의 토대로 삼아 다시 조선의 땅에 발을 디디고 조선의 發展을 위해 용감하게 改革을 추진했습니다. 失敗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정신은 작은 실수조차 두려워 몸을 사리는 제 자신을 너무 부끄럽게 했습니다. 그의 불굴의 의지는 바로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 그리고 조선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봅니
다. 그러한 정신이 失敗를 경험한 그를 다시 일어서게 했고 民衆의 代辯者이자 指導者로서 거듭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신념에 대한 믿음과 확신은 분명히 현재와 미래의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이것으로 정신을 잘 다졌을 때 비로소 失敗를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자세가 나타나게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코멘트 내용, 좋군요.
자신의 신념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서재필은 독립협회라는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죠^^
發表 잘 들었습니다. 교수님 質問에도 당황하지 않고 조리 있게 말씀 하시는 모습에서 準備를 많이 하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번 發表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이 ‘서재필’이라는 人物이었습니다. 그는 양반으로 태어나서 20세의 나이로 별시문과에 合格한 수재였습니다. 하지만 甲申政變으로 그는 부모와 자식을 잃게 됩니다. 그리곤 미국으로 건너가 힘들게 공부를 하죠. 그러한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의 가족을 죽게 만든) 肇國을 생각하여 獨立新聞, 나아가 獨立協會라는 愛國的 행동을 하는데요. 이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愛國心에서 비롯된 것이죠.
우리나라라는 말을 자주 쓰죠? ‘우리’라는 단어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앞의 문장과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서로 문맥이 통하도록 보완하기 바랍니다.
우리 근대사에서 祖國의 安寧를 위하여 진정한 改革을 시도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더욱이 이러한 시도가 시대적 흐름과 現實에 맞아 떨어진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할 것입니다. 서재필은 명성황후를 비롯한 보수계층이 나라를 바로 이끌기에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甲申政變을 일으키나 失敗하게 됩니다. 그 후 그는 甲申政變 때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하여 獨立新聞을 창간하여 민중을 계몽하여 조국에 헌신합니다. 또한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수많은 열사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투신합니다. 자신이 모범을 보이고, 이를 통해 타인을 변화시킨 점을 볼 때 그는 근대사에 몇 없는 뛰어난 先覺者라 생각합니다.
그래서요? 글의 매듭이 지어지지 않은 느낌입니다. 왜일까요? 1) 몇없는 ->
그를 통해 실패를 성공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조건과 자세를 배울 수 있었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실패에 좌절하여 그 자리에 머무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擧國的 세력 단체인 獨立協會는 甲申政變에 실패한 서재필이 과거의 실패를 미래의 자양분으로 삼는 先驅的 의식, 실수를 그냥 넘기지 않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임하여 얻은 결과물입니다. ‘社會團體’라는 것은 당시에 前無後無한 존재였으며, 아직 개념조차도 정립되지 않았던 상태입니다. 하지만 서재필은 서구사회를 체험하며 쌓은 지식과 확신으로 이를 조선사회에서도 가능하게끔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獨立協會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甲申政變에서는 列外되어 있었던 민중을 주체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중 의식을 높이기 위한 ‘新聞’을 제작하고 ‘發表會’를 연 효과는 곧바로 개혁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 형성과 정당성 획득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를 통해 資本主義 경제체제와 中世的 사회에서의 해방 등 근대적인 사상을 납득시켰고, 결국 근대국가인 대한제국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先導的 知識人 서재필을 통해 자기 수양과 노력이 사회 변혁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배움을 위해선 과거의 실패를 냉정히 진단할 理性的 사고와 그를 보완할 實踐力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개혁의 힘은 민중으로부터 얻어야 한다는 原論的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서재필에 대해 발표를 해주셨는데요. 서재필이 改革運動의 先驅的 役割을 하였고, 폭넓은 대중의 지지기반을 가졌던 독립협회를 만들 수 있던 힘을 알기 쉽게 잘 설명해주셔서 좋았습니다. 비록 갑신정변에 실패를 하였지만 서재필은 그에 굴복하지 않고 더 큰 熱望을 품고 나아가 민중을 敎育시키고 개혁을 이끌어가려는 獨立協會를 만들게 됩니다. 이는 현명한 지식인으로서의 진면모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약한 현대인들은 조금의 시련 앞에서도 쉽게 꺾이고 말아버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에 우리는 서재필의 올바르고 현명한 판단의식을 배워야겠고, 과거의 아픔을 그 자체로 치부해버리지 않고 그것을 밑바탕삼아 한 단계 높이 飛上할 줄 아는 柔軟性을 길러야하겠습니다.
글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다듬도록 하세요. 1) 하지만 서재필의 올바르고 현명한 판단의식과 과거의 아픔을 그 자체로 치부해버리지 않고 그것을 밑바탕삼아 한 단계 높이 飛上할 수 있도록 하는 柔軟性을 길러야하겠습니다. ->>
저 역시 서재필의 훌륭한 면모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서재필은 甲申政變의 失敗에 좌절하지 않고, 더욱 努力하여 독립협회라는 훌륭한 역사적 소산을 남겼습니다. 패배의 쓰라림에 쓰러지지 않는 굳건한 모습은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이 시대의 知識人이 될 사람으로서 앞으로의 시련에도 굳건해지고 더욱 發展할 줄 아는 자세를 갖추어야겠습니다.
수정했습니다.^^
독립신문이나 만민공동회의 모습에서 趙光祖가 떠올랐습니다. 言路가 막히면 나라가 망한다고 한 그의 모습과 독립협회의 생각은 같다고 봅니다. 지배층의 생각뿐 아니라 민중의 생각이 함께 정치에 反映되어야 나은 사회가 된다고 본 것이겠지요. 민중의 뜻이 반영되지 않는 수직적이고 硬直된 사회는 發展하지 못하고 도태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알아 볼 수 있는 한글의 사용은 민중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習得할 수 있게 해주었고, 만민공동회와 같이 민중의 자유로운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자리는 새로운 뜻을 펼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지배층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各界各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독립협회는 새로운 사회를 주체적으로 건설하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抑壓된 상황을 주체적인 노력으로 打破하려는 의지와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疏通하는 모습을 독립협회를 통해 배워야 할 것입니다.
甲申政變이 민중의 의식을 개혁하지 못하고 지도층의 의식만 가지고 끌고 가려다 실패한 것과는 달리 서재필은 독립신문이나 만민공동회에서 민중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고, 민중을 啓蒙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근대화는 民衆의 의사가 자발적으로 솟구쳐 나오고 그것이 충분히 반영될 때 가치가 있습니다. 서재필은 막 발아한 조선의 近代化 意識을 言論을 통해 成熟시키려는 노력을 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서재필은 진정한 指導者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중을 억지로 끌어가려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의식을 성숙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진정한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제에서 가장 注目해야 할 포인트는 ‘서재필’이라는 인물입니다. 양반 신분으로서 양반을 批判적으로 보았고, 보수적인 한국이 母國이면서도 외국인과 결혼한 그는 시대를 훨씬 앞서간 개혁인입니다. 앞선 발걸음으로 당시 닫힌 韓國社會를 열어줄 인물로 적합했던 것이지요. 때문에 그가 이루어낸 業績은 지극히 참신하고 개혁적이었습니다. 서재필이 리더이자 지식으로서 튼실한 역할을 한 탓에 우리 역사에 ‘독립협회’라는 이름이 굳건히 세워진 것이 아닐까요?
발표 내용을 듣고, 무슨 일이든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냉철한 判斷力과 뜨거운 熱情으로 사회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지식인의 先頭가 되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서재필은 美國 市民權者로 美國에서 선진문물을 많이 접하였습니다. 意識이 틔여진 상태에서 改革을 실행하게 됩니다. 서재필의 獨立協會가 獨立新聞을 만들고 여러 活動을 성공적으로할 수 있었던 것은 서재필이라는 知識人의 뛰어난 識見과 民衆의 조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서재필은 改革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民衆의 啓蒙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위에서 끌어주고 밑에서 밀어주는 조화로운 방식은 成功의 기초가 되는 것을 서재필은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교사로서 학생들을 위에서 끌어줄 義務를 가지고 있습니다. 잘못된 思想을 가지고 있어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그 결과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올바른 思想과 넓은 識見을 가지고 바른 방향으로 학생들을 인도해야할 것 입니다.
서재필은 신지식층으로써 개화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그는 나라를 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敎育을 생각했습니다. 교육만이 조선의 살 길이라고 여겼던 그는 獨立協會를 결성하고 獨立新聞을 편찬함으로써 민중을 교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교육 받은 많은 사람들이 후에 독립 운동의 주축이 되어 활동하게 됩니다. 비록 독립협회로 인해 독립을 완전히 이루진 못했지만 서재필이라는 한 知識人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선의 독립의 길을 밝혔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서재필이 일찍이 인식한 교육의 重要性 또한 의미있게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중을 개화시키고 새로운 사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교육은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이번에 발표는 들으면서 서재필이라는 한 사람을 통해 애국 사상과 더불어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는 機會였습니다. 당대의 지식인으서 한 나라의 미래에 희망을 던지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의 모습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교육의 중요성을 認定하는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번 발표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도 교육을 중시한 서재필의 모습이었는데요, 배우고 알게 되는 것이 한 민족과 국가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저 역시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獨立協會의 성립과 역할에 대해서 서재필을 중심으로 살펴본 점이 이번 발표에서 무엇보다도 좋았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국 最初의 근대적인 사회·정치단체로서 민중계몽운동, 정치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면서 독립문, 독립신문, 만민공동회, 이권 수호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독립협회는 매우 意味 있는 단체였습니다. 그러한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이끌어간 리더로서의 서재필의 역할은 매우 컸습니다. 서재필은 갑신정변의 실패를 契機로 민중의 지지기반 결여와 외세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 대한 문제점을 정확히 認識하였으며, 미국으로의 망명을 통해 선진적인 것을 접하고 배움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밑거름을 통하여 그는 독립협회를 조직할 수 있었으며 의미 있는 단체로 이끌어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실패를 계기로 실패를 밑거름 삼아 크게 일어난 서재필의 精神이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삶에서 수많은 試鍊과 逆境이 있겠지만 그것을 꿋꿋이 견뎌내고 실패를 밑거름 삼아 일어나는 雜草같은 정신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만일 서재필이 甲申政變의 失敗 후 미국에서 시민권을 얻고 그곳의 생활에 安住하고 우리 민중의 무지함을 한탄하는 것에서 끝났더라면, 지금 그가 이룬 업적은 물론이거니와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고 우리의 獨立運動 방향이 어떻게 展開되었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실패에서 배우고 이를 改善하기위해 힘쓰는 사람과 그 努力만이 비틀어진 歷史를 바로잡고 다시 써나갈 수 있는 契機를 마련해 주는 것이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甲申政變의 失敗가 民衆의 무지함에서 비롯했다고 여긴 서재필이 啓蒙을 가장 큰 과제로 생각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이를 행동으로 옮겨 民衆 意識 改革을 위해 獨立協會 설립과 獨立新聞 창간으로 보여주었다는 것에 큰 意味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립은 선전만으로 될 수 없고 허장성세(虛張聲勢)만으로 될 수 없다. 독립의 가장 근본적 요소는 각성한 민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중의 교양에 총력을 집중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2천만민중이 총궐기하여 독립을 부르짖게 되면 한국의 독립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라는 서재필의 말을 통해 信念에 대한 확고한 意志는 생각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준비를
통해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先覺者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獨立은 선전만으로 될 수 없고 허장성세(虛張聲勢)만으로 될 수 없다. 獨立의 가장 근본적 요소는 각성한 民衆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중의 교양에 총력을 집중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2천만민중이 총궐기하여 독립을 부르짖게 되면 한국의 독립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라는 서재필의 말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서재필에게서 가장 의미 있는 점을 찾아내라면 아마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를 통하여 더 나은 발전을 도모했다는 점이겠지요..^^ 우리들도 失敗해버리는 現實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분석하는 姿勢를 키워 보다 나은 未來를 내다볼 수 있는 能力을 키워야겠습니다.
開化時機에 많은 성과를 이뤄 낸 獨立協會가 우연히 만들어 진 것은 아닙니다. 서재필이라는 지식인과 대중의 조화가 부른 成功이었습니다. 그는 개화파와의 남다른 親分관계 덕분에 남들보다 앞선 생각을 가지고 갑신정변에 참여하게 됩니다. 近代化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대에서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자각이 필요함을 깨닫고 민중을 계몽시키는데 노력합니다. 민중의 무지를 안타까워 한 지식인으로서 한글보급으로 민중들은 토론회로 끌어들이게 됩니다. 방법은 좀 다르지만 현대의 參與民主主義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직접 민중의 불만을 표출하게 하고 목소리를 내게 하는데 큰 몫을 한 지식인의 선구자적인 태도를 배워야겠습
니다. 그리고 민중의 힘의 중요성을 알고 그것을 끌어내려고 한 계몽가의 정신도 미래의 교사로서 꼭 배워야 할 태도인 것 같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고 한명의 의견이라도 귀 기울일 줄 아는 敎師의 모습을 배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暗鬱한 日帝强占기에 빛나는 抵抗의 대표적 예인 독립협회. 그리고 그것을 세우고 이끌어나갔던 서재필. 발표자의 말대로 그의 성공 열쇠의 첫 번째 요인은 실패를 幾回 삼은 점이었습니다. 갑신정변의 실패 후 어쩌면 挫折하여 주저앉을 수도 있었을 텐데 서재필은 오히려 갑신정변의 쓰라린 실패가 주는 교훈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교훈을 직접 실천으로 옮겨 더 나은 것을 추구했습니다. 이것은 獨立運動뿐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반드시 본받아야 할만한 性品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의 안위가 아니라 진정 민족을 위했다는 점입니다. 갑신정변 후에 그는 미국으로 망명을 갔고 미국인과 結婚했습니다. 어려운 조국의 현실을
잊고 편한 삶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조국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열과 성을 다해 민족을 위해 일했습니다. 단지 자신의 명예나, 다른 것에 욕심이 있었다면 독립협회와 독립신문은 그 같은 지지를 결코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려운 난세일수록 훌륭한 인물이 많다고들 합니다. 어두웠던 일제강점기에 민족적 自矜心을 높인 서재필을 보며 그 말이 맞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북핵문제나 여러 국내외 정세 속에 어려운 현재의 우리 민족사에서 우리도 그처럼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인물이 되어야겠습니다. 쉬운 설명과 깔끔한 파워포인트가 돋보이는 발표였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서재필은 甲申政變에서는 실패했지만 그 후 그 실패를 발판삼고 더 많은 준비와 공부를 해 실패의 가능성을 줄이고 見聞을 넓힘으로써 다시 시도를 했습니다. 이와 같은 끊임없는 노력이 인간과 사회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이죠. 서재필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알고 있었고 新聞이 당시 時代狀況 속에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알고 있음으로써 자신이 志向하는 바에 가깝게 갈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자신이 혹은 團體가 현재 처한 상황 속에서의 역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